13구간 1998년 2월 22일(일) 맑음
정맥능선: 작은 싸리 재-725봉-장군봉-787봉-676봉-운장산 서봉-연석산-
신궁 저수지 위 570능선
산 행: 윗진등 마을-작은 싸리 재(50분)-725봉(70분)-장군봉(65분)-
787봉(30분)-676봉(60분)-운장산 서봉(145분)연석산(80분)-
570능선(55분)-신궁저수지(30분)
약 23Km 9시간 45분소요
5시 10분에 월평동 누리아파트에서 정진관 대원을 만나 원동 청주해장국 집으로 가 아침식사를 하고 주천으로 출발한다. 주천에서 택시를 타고 윗진등 마을 염소농장으로 와서 가볍게 체조를 하고 산행에 들어간다.
지난 번 하산한 작은 싸리 재를 향해 50분쯤 올라가 금남정맥 능선에 이른다.(8:15) 오늘 종주 산행은 세밀한 계획도 세웠고 최상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는 등 충분한 준비를 했다. 오늘 진행하는 구간은 금남정맥에서 제일 높은 금남정맥의 맹주 운장산을 비롯하여 좋은 곳이 많은데 종주 리본을 차에다 놓고 휴대하지 못해 무척 서운했다. 앞으로는 산행 출발 직전 휴대할 장비를 일일이 꼼꼼하게 확인해야겠다.
1차 목표 고지인 삼각점이 박혀 있는 725봉을 향해 정맥 종주 첫발을 힘차게 내딛는다. 지난 번 산행 때는 능선 길이 희미하고 잡목이 많아 고생이 심했는데 정맥 능선 길은 뚜렷하게 길이 잘나있어 빠른 속도로 진행을 한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능선을 지나고 써레봉 조망이 뛰어난 봉도 지나고 5개의 봉우리를 넘어 55분 정도 진행하여 717봉에 올라선다.(9:25)
이어서 15분쯤 더 나아가 삼각점 봉우리 725봉을 확인한다.(9:50) 여전히 정맥 길이 좋아 내리막 능선에선 뛰면서 진행하기도 한다. 잠시 후 암릉 길이 이어져 탄성을 지르며 기분 좋게 전진하는데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바위봉우리가 나타나 우회하면서 암릉 타기를 계속한다. 이곳은 경관이 참 좋고 산악회 리본도 많이 눈에 뛴다.
암릉 타기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사진도 찍어야 되고 위험한 길이라 천천히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진행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 곳의 육중한 바위봉우리를 통과하니 또다시 수직단애로 이루어진 암봉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서 갈 길을 막고 있다. 여기는 도저히 우회할 수가 없는 곳이라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밧줄이 두 군데 설치돼 있다.
바위는 얼어있는 부분이 많고 밧줄도 같이 얼어 있어 고맘이로 밧줄을 내려쳐 밧줄을 떨어뜨린다. 밧줄을 타고 얼은 곳을 피해가며 조심조심 올라가다가 왼발이 미끄러져 왼 무릎을 부딪쳐 무릎이 터진다. 어쨌든 상당히 위험한 이곳을 무사히 기어 올라가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장군봉 730고지에 선다.(10:55)
내가 하고 있는 금남정맥 종주는 위험을 무릎 쓰고 해야 하는 곳이 많아 산행이란 말 보다는 탐험이란 말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장군봉에서의 조망은 뛰어나 대둔산이 하늘금을 긋고 태평봉수대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곳은 기암절벽이 멋진 3개의 봉이 나란히 서있어 삼형제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15분쯤 쉰 다음 길을 재촉한다. 정맥은 급경사 내리막길이 돼 잘록이로 내려선 후 오르막길이 된다. 조릿대 숲을 지나 헬기장으로 돼있는 787봉에 올라서니
(11:40) 주변에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어 돌무더기가 보이고 온통 억새와 싸리잡목이 자라고 있다. 787봉을 떠나다가 나뭇가지에 왼쪽 눈을 찔렸는데 상처가 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선글라스를 끼고 진행을 해야겠다.
조금 지나서 소나무 향기가 나고 산길이 푹신푹신한 가장 이상적인 정맥 능선을 기쁜 마음으로 걷다가 모처럼 등산객 5명을 만났다. 787봉서 60분 정도 진행하여 삼각점이 있는 676봉에 닿으니(12:45) 헬기장으로 돼있다. 간식을 많이 먹은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 10분쯤 더 나아간 식사하기 좋은 능선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12:55) 13시 30분에 운장산 서봉 16시 도착을 목표로 정맥 종주를 이어간다. 금방 정맥이 훼손된 독자동 고개로 내려선다.
독자동 고개는 휴게시설과 주차시설이 돼있고 많은 등산객들이 운장산을 오르고 있었다. 경관이 뛰어난 이렇게 좋은 곳을 터널을 뚫어서 정맥을 보호해야지 정맥의 기를 잘라 민족정기를 끊고 보기 흉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운장산 서봉은 높이가 1120m나 되고 계속해서 오르는 능선이라 힘이 들고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아 윗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단단한 각오로 한참 올라간 암릉에서 잠시 휴식하며 조망을 하니 내 고향 대전 식장산이 보여 무척 기뻤다. 얼마 후 서봉 직전 능선에는 눈이 녹지 않은 빙판 길이 나타났지만 침착하게 통과한 다음 열심히 올라가 운장산 서봉을 밟는다.(15:45)
사방으로 조망을 하니 백두대간 남북덕유산 줄기의 웅장함이 남쪽에 펼쳐있고 서로는 오늘 진행할 연석산이 옆에 있다. 북쪽으론 내 마음의 안식처 계룡산과 대전시가지까지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다. 세상천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일망무제 환상의 조망이다. 그림보다 멋진 대자연의 풍광에 소인의 마음은 사라지고 군자의 마음이 생긴다. 오랫동안 세상 시름 다 잊고 자연에 취해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연석산 으로 발길을 돌린다.(16:00)
금방 정확한 정맥 길을 찾아내 어려운 능선을 통과한다. 이어 암릉 지대를 지나 연석산 정상 직전 암릉에 닿는다. 그곳에서 운장산 서봉을 향해 산행을 하는 한 산객을 만났는데 그 분은 운장산 서봉에 오른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하기에 앞으로 1시간 30분쯤 지나면 어두워져 시간상으로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설명 하였더니 진행을 포기한다.
그 분은 전주에 살고 있고 시를 쓰신다고 한다. 내가 금남정맥 종주 산행 이야기를 하니 보고서가 발간되면 보내달라는 부탁을 해서 쾌히 승낙하고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를 받는다. 그 분께서는 또 본인의 시집을 보내준다고 하기에 내 이름과 주소를 불러줬다. 운장산 서봉서 1시간 20분 만에 닿은 연석산(925m)에서는 금남정맥 산줄기가 잘 조망됐고 특히 오늘 진행한 태평봉수대 아래 작은 싸리 재 능선부터 연석산까지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다.(17:20)
사람의 힘은 무한한가 보다 내가 어떻게 저렇게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을까?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는다. 직선거리로 온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먼 길을 마치 원 둘레를 도는 것 같이 꾸불꾸불 이어진 단 하나의 능선을 타고 이곳까지 걸어온 내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기만 하다.
연석산서 조금 내려오다가 김광원 시인은 오른쪽 길로 하산한다. 나와 정진관 대원은 오늘의 최종 목표지점인 신궁저수지 위 능선을 향해 나아간다. 많이 지쳤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진행한다. 이윽고 810m 봉우리를 넘어 위험한 암릉 길을 지난다.
이어서 한동안 내리막 능선 길로 나아간 다음 잠시 오르막 능선 길이 나오고 다시 내리막길이 되더니 하산할 수 있는 좁은 길이 나타난다.(18:25) 이 길은 지도에서 본 소로가 틀림없다. 정맥 길 종주를 마치고 왼쪽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미 날은 많이 저물어 어두워졌지만 차분하게 내려가니 맑은 계곡이 나타나 계곡 물에 세수하고 손을 씻는다. 이제 앞이 캄캄해 휴대한 회중전등을 켜고 진행을 계속하여 궁항리 경운기 길에 닿아 11시간 30분의 장시간 산행을 마친다.(18:55)
마침 경운기가 오기에 그것을 타고 전주와 진안을 왕래하는 26번 도로까지 올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분도 많다. 주천에 있는 개인택시 기사하고 연결이 되지 않아 신호등에서 대기하는 화물차의 마음씨 좋은 기사를 만나 주천으로 향했다. 그 기사는 이곳에서 주천까지 약 30km 정도 된다고 한다. 너무 고맙게 주천까지 잘 올 수 있었고 안 받는다는 것을 억지로 기름을 넣으라고 돈을 주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내 차에 기름이 없는 것이었다. 주천에 있는 단 하나의 주유소는 부도가 나 영업을 하지 않고 농협에서 기름을 파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겨우 경운기가 있는 집의 학생에게 부탁하여 조금 경유를 얻어와 차 운행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정맥 종주 산행은 참 잘했다. 비록 눈이 찔리고 무릎이 터졌지만 계획을 세운 안중 가장 좋은 안을 뚜렷한 길과 장시간 산행 덕분으로 달성할 수 있어 너무 기쁘기만 하다. 5시에 집을 나섰는데 집에 오니 오후 10시가 넘었다. 무척 피곤하다. 보고서 정리를 내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