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방문이 처음인 외국인을 데리고 숯불구이 한식당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이 분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숯불을 직원이 직접 들고 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인 것.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한식 문화가 제법 알려졌을 법도 한데, 이 분은 이런 광경을 난생 처음 본 모양이다.
"이 식당엔 주방이 없냐", "왜 여기에서 고기를 굽느냐", "위험하진 않느냐?" 등등 한국인이라면 실소를 터뜨릴 만한 우문(愚問)을 쏟아냈다. 생각해보니 손님이 앉은 테이블 위에 시뻘건 숯불을 피우고 손님이 직접 생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분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같은 식사 스타일이 어떤 이에게는 '생소한 차원'을 떠나,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불판이나 숯불 자체는 언제나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갖고 있고,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캐한 연기와 냄새는 청결을 중요시하는 손님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짓집을 보면 연기를 빼는 환풍기를 설치한 정도가 고작이다. 세월이 변하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연기와 냄새가 요동치는 불판에 고기를 굽는 숯불구이의 전형(典型)은 변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결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 이 난제를 최근 한 젊은 기업인이 해 냈다. 그것도 요리와는 상관 없는, 연예기획사 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이 말이다.
쇠 그릴보다 3배 빨리 구위지고 연기는 '제로'
'수정 불판', 직접 고안‥상표·디자인 특허 출원
발상의 전환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다. 연예기획사 JYP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는 가수 박진영은 얼마 전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크리스털 구이판'. 보통 쇠나 돌로 만들어진 불판과는 달리 이 불판은 반투명색의 수정으로 제작됐다. 특히, 고기를 구울 때 발생하는 연기가 아래로 빠진다는 게 이 불판의 가장 큰 특징이다.
2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 인근 36가에서 '한식당 오픈'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박진영은 "지금껏 고기를 구워먹을 때마다 불판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며 "그래서 '차라리 내가 만들어 먹자'는 생각에 기존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불판을 새로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한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익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름이 잘 빠지지 않는 불판도 문제지만, 다 먹고 나면 고기냄새가 옷에 밴다는 단점이 제일 컸습니다. 그래서 제가 3개월 동안 연구해 기름이 잘 빠지고 연기가 전혀 나지 않는 수정그릴판을 만들게 된거죠."
박진영은 자신이 만든 크리스털 구이판은 "쇠 그릴보다 고기가 3배 가까이 빨리 구위지고, 기름과 연기는 아래 틈새로 다 빠진다"고 설명했다.
"이 불판은 연기가 위로 올라오기 전에 아래쪽에서 다 빨아들여요. 그래서 손님 옷에 냄새가 밸 염려가 거의 없죠. 불판이 볼록해 기름도 잘 빠지구요. 원적외선을 잘 통과시키는 수정으로 만들어져 고기가 신속하게 익는 장점이 있죠."
박진영은 이미 자신이 만든 불판의 디자인과 상표권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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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안나는' 불판 개발에 3천만원 쏟아부어"
"원산지보다 어떻게 요리하고 먹느냐가 더 중요"
수정 불판 개발에만 총 3,000만원을 쏟아부었다는 박진영은 자신의 '발명품'을 장착한 한식당 '크리스털 벨리(Kristalbelli)'를 세계 주요 도시에 낼 계획이다.
"미국에서 현지 친구들을 만나면 마땅히 함께 갈 만한 한식당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밥도 함께 먹고 한류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레스토랑을 직접 열기로 한 거죠. 또 중국인 친구가 운영하는 고급 중식당에서도 영감을 받았어요. '크리스털 벨리' 역시 남보다 차별화 된 고급 레스토랑을 표방할 겁니다. 한국 음식도 얼마든지 고급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인에게 보여줄 계획이에요."
한편 박진영은 일각에서 '포대화상'을 닮은 수정 그릴 디자인과, 메뉴에 와규(和牛)가 등장한다는 점을 지적,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데 대해 "'크리스털 벨리'는 분명히 한식당"이라고 못박았다.
"수정 불판을 감싸는 디자인은 단순히 재미를 주고자 마음씨 좋은 배불뚝이 아저씨를 형상화 한 것입니다. 음식에 남의 나라 식재료가 들어간 것보다,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먹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크리스털 벨리'는 지극히 한국적인 방법으로 요리하는 한식당입니다."
사실 '크리스털 벨리'가 한식당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박진영은 홈페이지(http://www.kristalbelli.com)에 "고품질의 한식을 전 세계 트랜드 세터(trend setters)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설립 취지를 밝힌 바 있으며 블로거 'kosmose7'이 공개한 '크리스털 벨리'의 메뉴만 살펴봐도 해물파전, 감자전, 생선구이, 찌개 등 한국 음식들이 수두룩하다.
아래 사진은 블로거 'kosmose7'이 '크리스털 벨리'를 방문해 직접 촬영한 조리 장면. "크리스털에 구워도 철판구이 같은 '불맛'이 난다"는 평가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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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발로, LA-도쿄-베이징 등 주요 도시 런칭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리더간 '교류 장소'로 활용"
박진영의 원대한 구상은 조금씩 구체화 되고 있다. 2년 전 자회사 JYP푸드를 설립한 JYP엔터테인먼트는 '1호점' 뉴욕을 시발로, LA, 도쿄, 베이징, 상하이, 서울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 차례로 '크리스털 벨리'를 선보인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박진영은 '크리스털 벨리'를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리더들의 사교 장소로 만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실제로 뉴욕점은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민 식당(1층)과 바(2층)로 이뤄져 여타 고깃집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진영의 진짜 속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추상적인 한류를 보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끌어들여 형상화 하는 것. 한국 문화를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진영은 화장실 앞에 K-팝을 즐길 수 있는 음향 장비를 비치,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박진영의 느닷없는 '식당 개업'은 평소 사용하던 헤드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예 새로운 헤드폰(Diamond Tears)을 개발한 최근의 '파격 행보'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을 내던지고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앞세워 가수가 된 그는 춤꾼에서 가수로, 가수에서 작곡가로, 작곡가에서 사업가로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해 왔다.
한류 초기 과감히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유럽식 테크노 사운드가 대세일 당시 복고풍 음악을 들고 나온 것도 박진영이었다.
어찌보면 곡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뮤지션보다 프론티어 색깔이 강한 '벤처 사업가'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만큼 그가 데뷔 이래 선보인 행동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음악이라는 범주 벗어나 '한식 세계화' 꿈꾸는 괴짜
"크리스털 불판에 직접 고기 구우며 주주들 설득"
재미있는 점은 그가 처음 선보일 때만해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뚜렷한 조류(潮流)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벌인 행동들이 항상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노출 패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자사 가수들의 지지부진한 미국 진출 행보는 팬들의 원망을 자초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크리스털 벨리'를 런칭할 때에도 JYP엔터 주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직접 개발한 수정 불판을 들고 실제로 고기를 굽는 시연을 보이면서 주주들의 마음을 돌이켰다.
이같은 뚝심과 추진력이 오늘날의 박진영을 만든 요소가 아닌가 싶다. 때론 실패의 쓴잔을 들이키기도 하지만 결국엔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박진영은 지독한 '행운아'이자 '노력파'다. 그가 거머쥔 행운들은 강인한 '도전 정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반세기만에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바뀐 대한민국의 압축된 모습이 그에게서 나타난다면 지나친 과찬일까?
음악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한식, 한류의 세계화를 꿈꾸는 박진영이 그의 바람대로 세계인의 입맛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글 :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kosmose7/90138232868
크리스털 벨리 홈페이지(http://www.kristalbell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