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배 4월 모임에서는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9'
《병풍 속의 호랑이》(권정생 이현주 엮음, 사계절, 1991)를 읽었다.
이 책에는 남쪽 이야기 13편, 북쪽 이야기 17편이 실렸다.
3월 모임에서 《부채 귀신 잡은 이야기》를 읽고 토론을 한 다음
그 중에서 이야기 한 자락을 골라 글을 썼다.
나는 며느리 이야기 두 편(꾀꼬리 이야기 / 가짜 시아버지)을
골라 썼는데 〈꾀꼬리 이야기〉는 이야기 내용을 보고
권정생이 쓴 거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남북 어린이가 함께 읽는 전래동화 시리즈가
권정생 이현주 공동 엮음이라 누가 어떤 이야기를 고른 건지 알 수 없었다.
짐작으로 남쪽 이야기는 권정생이, 북쪽 이야기는 이현주가 엮었는가 보다 했는데
이번에 〈학돌 바윗돌 이야기〉 육필원고로 짐작이 아니라 증거를 찾은 것이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에 〈학돌 바윗돌 이야기〉 권정생 육필원고 사진이 있었다.
이것으로 남쪽 이야기는 권정생이, 북쪽 이야기는 이현주가 엮은 뿐만 아니라
옛 이야기를 새로 썼다는 사실도 확인한 셈이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읽는데 남쪽 이야기 13편에서는
문장이나 이야기 곳곳에서 권정생이 보이는 것 같다.
우선 권정생 육필 원고가 있는 〈학돌 바윗돌 이야기〉 이야기를 먼저 올리고
앞으로 좀더 공부하고 준비해서 권정생은 왜 이 옛이야기들을 골라 썼을까 생각해보기로 한다.
〈학돌 바윗돌 이야기〉는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와 비슷한 이야기다.
(남쪽 옛이야기)
학돌 바윗돌 이야기
옛날 옛날 한 옛날, 어떤 집에 하도 자손이 귀해서 어떻게 해야 아기를 낳으면 오래오래 살게 할까 걱정을 했거든. 그 집은 벌써 5대째 외동으로 이어져 왔는데, 아기를 낳으면 자꾸 죽어서 걱정이 태산 같았대.
그래서 이번에 낳은 아기 이름을 짓는데 할아버지가 ‘학’이라고 했거든. 왜냐하면 학은 천 년을 산다니까 아기도 학처럼 오래 살라는 뜻이었지. 그러자 할머니가 학은 오래 살지만 아무래도 약해 보이니까, 돌멩이처럼 딴딴하라고 ‘돌’이라고 짓자 했단다.
“그럼 학하고 돌하고 붙여서 ‘학돌’이라 하면 되잖소?”
할아버지가 그러니까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지.
“그게 좋겠구먼. 그럼 손자 이름은 학돌이 되겠구먼.”
이래서 아기 이름을 ‘학돌’이라 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이러는 거야.
“학돌보다 바윗돌이 더 크고 우람하니 ‘바윗돌’이라고 하지요.”
“그것도 좋지만 학돌도 좋으니 더 오래 살고 야무지고 우람하게 ‘학돌 바윗돌’이라 하지, 뭐.”
할아버지가 세 가지를 모두 모아서 부르자고 했거든.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나섰어.
“아니에요. 제가 다듬이를 할 때 대추나무 방망이로 두들기는데 그것보다 더 야무진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이름은 ‘대추나무 방망이’라고 해요.”
이래서 아기 이름을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라 부르기로 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외할아버지가 와서 말했어.
“아무리 오래 산다지만 학도 천 년이면 죽고, 바위도 부서지고, 방망이도 닳아 없어지지만, 문고리는 둥그렇게 끝이 없잖소? 그러니 아기 이름을 ‘문고리’라 합시다.”
이래 아기 이름은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가 되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외할머니가 또 와서 말했지.
“문고리 한 개는 아무래도 모자라니 한 개 더 붙여 부릅시다.”
마침내 아기 이름은 자꾸길어져서 마지막으로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가 되었단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부르기 힘들었지만,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는 이 기다란 이름 덕택인지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대.
동무들이 와서,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야, 놀러 가자.”
하면,
“그래, 놀러 가자.”
하고 따라 나서곤 했지.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는 서당에 가서 글 공부도 잘 하고, 집에서 심부름도 잘 했어.
그런데 어느 날,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가 강물에 멱을 감다가 깊은 곳에 빠져 버렸어.
동무들이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네 집으로 달려가서 큰 소리로 외쳤지.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가 강물에 빠졌어요.”
그러자 안에서 식구들이 쫓아 나오면서,
“뭐야! 우리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가 강물에 빠졌다고?”
하고는 강으로 몰려갔지.
“얘야,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야…….”
식구들이 부르면서 물 속을 보니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는 벌써 죽어 버렸어.
“세상에, 오래오래 살라고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라고 이름을 지었는데도 이렇게 죽다니……. 우리 학돌 바윗돌 대추나무 방망이 문고리 고리야!”
온 식구가 이렇게 부르면서 통곡을 했대.
《병풍 속의 호랑이》 권정생 이현주 엮음, 사계절,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