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공부에 지쳐있는 학생들에게 필자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위안이 됐던 르네상스 음악을 추천하려 이 글을 쓴다.
필자의 대학 시절에는 곳곳에 클래식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서울 신촌에도 세 곳의 클래식음악 카페가 있었는데 특히 신촌 지하철역에서 연세대학교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있던 ‘핑키’라는 카페가 떠오른다. 핑키는 비교적 비싼 카페였다. 라면이 300원 하던 시절, 이곳의 커피 값은 500원이었다. 그래도 자주 간 이유는 당시 구하기 힘들던 LP 원판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면 친구들끼리 같은 음악을 연주자별로 비교해가며 감상한 후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등수를 매기곤 했다. 가장 기억나는 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라빈스키, 슈이트너, 카라얀, 크라이버, 칼 뵘 등 여러 지휘자가 지휘한 음악을 감상했다. 당시 ‘꼴찌에 등극한’ 지휘자는 뜻밖에 카라얀이었다. 1등은 무라빈스키와 오트만 슈이트너가 차지했는데, 두 지휘자는 당시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동안 르네상스시대 음악에 빠져있었던 필자가 작곡가 팔레스티나를 처음 알게 된 것도 핑키 카페에서였다. 3학년 음악사 시간에 팔레스티나, 버드, 죠스캥 등의 이름이 나왔을 때 마치 친한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유학 와 학교에 적응하던 시기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그 무렵 마음에 위안이 돼 준 것이 르네상스 음악이다.
당시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듣기 좋아 감상했는데, 요즘 대학에서 16세기 대위법을 가르치다보니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16세기 이전 음악은 하느님의 말씀을 회중에게 전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사 전달이 중요했다. 복잡한 기교는 가사 전달에 방해를 주는 탓에 허락되지 않았다. 음악적 불협화음 또한 허용되지 않았다.
수업시간 르네상스시대 음악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음악이 어떻게 들렸는지 질문을 던져보면 생소하다, 지루하다, 편안하다, 신비스럽다 등의 답이 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듣는 음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보니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르네상스 음악은 기본 음계가 다르고, 대부분 성악곡으로 한정된 음역대를 가지고 작곡됐다. 또한 다양한 리듬의 변화도 없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만들어졌다. 음식에 비유하면 MSG 같은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순수한 맛이라 하겠다. 온갖 조미료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맛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자연 그대로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대학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공부에 지쳐있는 학생들에게 르네상스 음악을 들려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수업전이나 후 영어, 수학 자습을 시킬게 아니라 남은 시간이라도 학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어떨까? 잠자기 전 영어 단어하나를 외우기보다 음악을 들으면서 잠들면 어떨까? 그러면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목표로 공부해온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정신적 휴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요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르네상스 음악을 자주 듣는다.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어느덧 풀리고, 상처나 고통도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 음악이지만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과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추천음악은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로를 위한 미사곡’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