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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표지
회
화
작
품
으
로
만
나
는
산
성
마
을
들어가는 말
전주한옥마을 오목교를 지나 국립무형 유산원 옆 전주천으로 유입되는 첫 번째 하천인 지방하천 산성천을
따라 걷다 보면 조용한 자연의 성역 산성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맑은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돌반흙반 이라해서 이 지역을 옛 지명 반석(半石)리 라고 불렸다고 한다. 햇볕도 종일 들어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도…….
늘 새로운 감동과 감각을 살찌게 해준다.
그리고 오늘은 공기마저 신선함으로 와 닿는다.
어제 작업실에서 땀 흘리게 늘어 논 작품이 오늘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는 설렘은 전시장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인위적인 설치보다는 화실의 무질서한 작품 들은 작업과정과 작품 탄생 배경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작업실 가는 이 길에서의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나의 상상 도서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900년 전주를 후백제 도읍으로 정하고 이 산성을 축조하여 원대한 백제 왕업을 꿈꾸었던 견훤, 기울어져가는 고려 왕조를 붙들고자 했던 정몽주의 충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만경대, 억 가지의 경치가 보이는 억경대.
그리고 북. 서쪽으로 135미터 정도가면 옛 흔적이 남아있는 북장대, 관우장군의 제를 지내는 관성묘 그리고성벽따라 두어 시간 걷다보면 고덕산 까지 경치는 훌륭한 등산코스다.
임진왜란(1592)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자 한 이 정란 장군의 의기의 흔적 충격사, 1894동학 농민군이 점령한 전주성, 그 농민군의 손에 들린 남고 산성의 죽창은 둘레 3km의 남고 산성의 역사의 숨결로 오늘도 한줄기 대 바람 소리에 실려 그 천년을 버티어 내고 있다ᆞ.
전주의 주산인 완산칠봉을 억경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감동의 여운이 사라 질쯤 조금씩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한옥마을의 기와지붕 밑 역광 그리고 천주교 성지의 불빛을 따라 기린 봉을 바라본다.
병인박해 때 순교했던 수많은 천주교들의 승암산(치명자산) 이러한 풍광을 이야기 있는 작품으로 남겨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워야 하는 일환으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책을 쓰고 작품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근간은 책이 완성될 수 있도록 조언과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신 이 종근 선생님이다. 마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응원해 주고, 챙겨준 아내…….나 역시 앞으로 당신의 못 다한 꿈들을 지지하며 살겠습니다.
2021
이 택구
목차
1. 서암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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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물, 공기 숲이 좋은 삼경사’
- .자연과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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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성마을 동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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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학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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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우산 공장 과 화실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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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피루스의 근원 그리고 종이(한지)와의 인연
- .20여 년 동안 한옥마을연작
- .전주 한옥마을 유래
- .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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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산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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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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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저자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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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이의 글
전주 산성마을 햇살은 비단결처럼 포근하고 수정처럼 맑습니다. 두루미 두어 마리가 반겨 주는 듯 활개를 칩니다. 하루살이 떼가 눈앞을 스쳤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무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 마을에서는 말입니다. 청량한 바람은 맑고 청아해서 꿈길을 걷는 듯 행복한 새벽길을 펼쳐놓습니다. 하룻밤 한 치 두 치의 꼼꼼한 계산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생의 심연으로 가득합니다. 하얀 꿈 하얗게 사위어가면서 깊고 푸른 꿈 이곳에서 영글어갑니다. 불어난 산성천 계곡물은 가람을 에두르고 물이끼는 돌의 이마에서 한층 짙푸릅니다. 계곡의 청량한 바람은 맑고 청아해서 꿈길을 걷는 듯 행복한 새벽길을 펼쳐놓습니다. 그대 행여! 시린 마음 달래려거든 산성마을로 오세요. 허름한 가슴은 희뿌연 물안개에 보듬어 달라 하고, 상심일랑 정한 계곡 물 속에 그대로 묻어두세요. 시나브로, 꽃향기에 취한 발걸음 다독이며 조심스레 다가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예쁜 얼굴을 보려거든 우물로 가고, 우리네 본디 모습 보려거든 산성마을에 닿을 일입니다. 금빛 햇살이 어찌나 유혹하는지 자연의 향기 따라, 이름 모를 들꽃 향기 따라 촉촉이 상념에 젖어봅니다. 어느 센가, 지붕 같은 하늘 채에는 흰 구름이 윤무하고 침실 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남고산성 하늘 밑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산하가 천년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야생화들이 무리지어 앞 다투어 쑥쑥 커 가면서 해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산성마을의 자연은 그렇게 봄의 싱그러움,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넉넉함, 겨울의 순결한 눈꽃을 통해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는 오늘에서는. 그대여! 오늘, 당신 닮은 옥색 한지를 샀습니다. 내 맘 가득 담은 종이 위에 물길 트이고 소슬한 바람도 살랑살랑, ‘고향의 골목’ 고샅이 사라진 지금 삶이 소살거리는 이곳에 마실 을 나왔습니다. 어느 집 작은 안마당 장독대에 석양빛 서서히 내리고 있습니다. 붉은 햇살은 처마에 걸터앉았다가 한 나절 잘 쉬었다 간다고 인사를 합니다. 이곳도 반딧불이가 산성천에 무리지어 서식합니다. 관찰하기 좋은 시간은 기온이 19~20도로 떨어지는 오후11시 30분~다음날 12시 30분경까지 많이 출몰합니다. 관찰 구간은 관 성묘에서부터 삼경사 입구까지입니다. 산성마을은 남고 사에서 전주부중으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는 전원적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라 하여 ‘남고모종(南固暮鐘)’으로 일컬어지며 ‘완산8경’의 하나로 꼽혔습니다. 또 이 일대는 동문지, 북장 대, 억경대, 만경대, 남고진사적비, 남고사, 삼경사 등 문화유산이 기라성처럼 많습니다. 남고산성 성벽을 가다보면 만나는 만경대 바위에는 고려 말 정몽주의 '천길 바위머리 돌고 돌아'로 시작하는 우국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덤으로, 산책로를 따라가면 삼국지의 관운장을 모신 관성묘(關聖廟, 전북 문화재자료 제5호)를 만날 수 있으며, 바로 인근엔 '묵로 이용우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택구작가가 낫으로 가늘고 긴 낭창낭창한 왕죽을 한 움큼 베어 왔습니다.한지에 돌 하나 올리고, 별 하나 얹고, 바람 하나 얹고, 시 한 편 얹고, 그 위에 인고의 땀방울을 떨어 뜨려 소망의 돌탑 하나를 촘촘하게 쌓아 당신에게 ‘진경산수 편지’를 띄웁니다. 작가는 회화 작품으로 만나는 산성마을’입니다. 작가는 이를 진경산수라고 합니다. 자연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한 가운데 개발한 조형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진경산수화를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서암문지에서 전주시가 보이는 정경은 50호 크기를 자랑하면서 이 전시의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입니다. 작품은 탄 화목에 조각칼 등 각종 도구로 형상을 파내는 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어 우레탄을 부어 모형을 뜬 후, 전주한지 죽에 물풀을 섞어 건조해 각각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때문에 탄 화목 바로 그 자체도 작품이거니와 한지 죽으로 만든 것도 또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싱그러운 온 고을 쥘 부채 하나 손에 쥐고 고샅 어귀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오늘입니다. 그래서 전주는 예나 지금이나 ‘온(ON)고을’입니다. 도도한 물결에 이 조그만 종이 조각배를 살포시 접어 이곳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살 듯 한 정을 오롯이 담아 슬로시티(slow city) 편지를 보내는 오늘. 작가의 도도한 흐름, 그 길은 넓고 길숩니다. 디뎌온 길도 디뎌갈 길도 단단합니다. 느릿하고 느긋합니다. 온 고을 ‘전주’의 간판과 편액, 먹물과 만나는 오늘, 이 조그만 조각배 서신에 살 듯한 정을 담아 보냅니다.
/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장
1. 서암문지
작품1
작품제목: 비밀 문
작품규격: 21 x 29
2. ‘물, 공기 숲이 좋은 삼경사’
- .자연과 재현
전주 산성마을 입구에 절이 바로 삼경사(三景寺)의 창건 연대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三景寺'란 이름은 초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이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이곳에 와 보니 ‘물, 공기 그리고 숲’이 좋아서 삼경사라 했다고 전합니다.
작품2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0 x 61
작가노트: 아늑한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삶은 산과물 그리고 숲을 함께 동경 해왔다 ᆞ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전쟁 자연 훼손 삶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만 결국
자연을 동경하다가 자연으로 간다ᆞ는 표현을 해본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과 작품 속 이미지 사이의 관계(닮음)을 내포할 뿐 아니라 또한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들과 맺는 관계를 함축한다. 재현은 필연적으로 서사(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에게도 회화의 표현에 있어서 구상적인 것을 피하는 두 가지 방식중 하나도 재현이다.
얼핏 보면 페인팅으로 착각할 것 같은 회화성을 보여주는 표현들은 나무를 판각한 결과물(무늬)이다. 나뭇결의 색, 질감을 회화적 감각을 추가시킴으로써 목 조각을 회화적 영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 나무와 간헐적 페인팅 작업을 한다. 나의 작업실 가는 산책길 일상에서 나무의 소리와 냄새, 시간과 공간, 장소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후 이를 최소의 색 선택으로 나무 판 위에 재현함으로써 독특한 회화의 표현적 장점을 살리기 위함이다.
나무와의 인연은 나에게 있어 잠깐의 목수생활에서 느꼈던 잔상의 기억을 포함한다.
가령 복잡한 나무의 외향을 점점 연마시켜 또 다른 느낌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등장 시킨다.
작품3
작품제목: 세상을 새로 비추다
작품재질: 조선 육송 위에 파서 옻칠
작품규격: 188 x 30
- 작품일기:
2021 신 축년 (흰 소의 해) 다른 표현으로 새로 짓거나 신의 축복도 될 법한 ‘신축’ 그 말뜻처럼 이 세상을 새로 짓거나 신의 축복을 가득 내려 코로나19 물리치고, 새로운 2021년을 맞이한다는 소망담긴 태양의 일출이다ᆞ.
작품5 소 드로잉
작품제목: 소
작품규격: 21 x 29
나의 성급함 때문에 작품을 거의 완성해놓고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ᆞ.
이제는 긴 시간의 숙성을 통해
사려 깊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원년이 되게 하소서ᆢ
3. 산성마을 동구나무
둥구나무 - 동네의 어귀에 서 있는 나무를 동구나무라고 하고, 둥구나무는
마을에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고 정자나무 또는 둥구나무라고 합니다.
둥구나무는 즉 정자가 만들어져 있지 않아도
마을에 크고 오래된 나무가 있어 아이들이 모여 놀거나
마을 분들이 그곳에 모여서 놀기도 하고, 쉬면서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ᆞ.
봄에는 신선한 공기를 선사하고ᆢ, 여름에는 그늘아래서 쉼을 주고,
가을에는 중후한 색깔을 통해 우리의 시신경에 낭만을 주었고 ,겨울에는 하얀 눈과의 조화를
통해 든든함 주었던 나무를 둥구나무라고 합니다ᆞ
작품5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0 x 60
동구나무(느티) 고압에 쪄서~나무 무늬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끌로 파고(각종도구),오브제, 옻칠한 작품입니다ᆞ
작품6
작품제목: 산성마을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2 x 100
작가노트:
장대비와 태풍이 지나고ᆢ 무더위가 얼마가지 못할 것 같은 2020년 9월이 시작되는 새벽~~ 산성제일교회, 동네슈퍼, 백학교회, 산성벽화마을을 지나 서암문지를 시작으로, 남고 사, 억경대, 북장대, 만경대, 삼경 사까지 어둠이 짙어진 남고산성을 걸으면서 전주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ᆞ
그리고
높은 하늘로 올라가 봅니다.
4. 황학의 전설
전주 한옥마을과 마주한 전주천 너머 서학 동에도 예술가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고 ,국립무형 유산원,
산성 마을 일대는 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귀중한 통로이다.
작품7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165 x 61
작품제목: 황학 길
작품규격: 21 x 29
5. 지우산 공장 과 화실둥지
삼경 사에서 200미터 산성마을 입구1960년대 전주 지우산 공장 35곳…….그중 하나 자리한 곳에
이택구(사대문 예술문화원 대표) 화실둥지 입니다.
애초엔 전주시 방문자센터로 널리 활용되기를 희망했지만, 현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에 이택구가
7년 에 걸쳐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꾸민 공간으로, 풀 한 포기에까지 손 안 미친 곳이 없습니다.
지금은 회원들의 작품 보관으로도 쓰고 있으며, 머지않아 1층에 갤러리를 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자리는 전주 지우산 공장이 자리한 곳으로 3동의 건물이 있었고, 바로 위로 올라가면 약5000여평 남짓한 곳에 대나무가 남아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주에서는 1960년대만 해도 35곳에 달하는 공장에서 수많은 장인들의 분업으로 한 달에 수천 개의 지우산 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값싼 비닐우산의 보급과 천우산, 중국 수입 산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누구는 이곳의 대나무가 동학농민군들이 죽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하며 어느 누구는 전주 부채를 만들 때 썼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곳을 오고가다가 한 잔의 차가 생각난다면 전혀 부담을 느끼지 마시고 발걸음을 옮겨 희망과 용기를 북돋 아 주신다면, 먼 훗날 화선지에, 캔버스에 쓱싹쓱싹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아 화답해 드릴 것이라 믿어 의 심치 않습니다.
도도한 물결에 이 조그만 종이 조각배를 살포시 접어 산성마을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살 듯한 정을 오 롯이 담아 슬로시티(slow city) 편지를 보내는 오늘.
애써 서두르지 않고 한 뼘의 여유를 지닌 채 세상의 파고를 무사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님 오시는 길목에 나지막한 화초담 하나 쌓으며 ‘다운 시프트’(Down Shift)로, 앙증맞은 굴뚝 하나 곁에 둔 채 삼백예순다섯 날,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작품8
작품제목: 대나무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0 x 60
대나무는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나 되고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있는데 대나무 종류마다 대체적으로 다르게 쓰인다. 2차 대전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서 유일하게 생존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번식은 지하경에 붙은 모죽으로 하는데 번식력이 뛰어나고 5월 중순 경에는 죽순이 하루가 다르게 큰다.
대나무 중에서 굵은 것은 직경 20cm까지 크는 것이 맹종죽인데, 죽순을 먹을 수 있고 하루 동안에 1m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유관속식물이지만 형성층이 없어 초여름 성장이 끝나고 나면 몇 년이 되어도 비대생장이나 수고생장은 하지 않고 부지런히 땅속줄기에 양분을 모두 보내 다음 세대 양성에 힘쓰는 것이 보통 나무와 대나무가 다른 점이다.
이 길목 일대에서 죽재(竹材)가 170톤, 들기름 500관, 한지가 1,000괴가 소비됐다고 한다. 1괴는 전지 2,000장을 의미하며, 한지 1괴에 400개의 우산을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이곳에서 연간 40만개의 우산을 만들었다.
작품제목: 지우산
작품규격: 210 x 297
오방색의 한지에 햇빛이 비춰들면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배꽃처럼 아름다운 색이다. 그 전통의 미감을 만들어내는 지우산의 아름다움이 전주에서 대물림되기 바란다ᆞ.
6. 파피루스의 근원 그리고 종이(한지)와의 인연
- .20여 년 동안 한옥마을연작
최근작품 제작과정
1. 나무 고르기(작품완성을 상상하면서 나무무늬를 관찰한다.
2.먼저 탄 화목에 판각(끌. 각종도구)을 한다.
3. 나무작품 완성 후 천연안료로 코팅
4. 한옥마을 작품 완성
5. 완성된 나무판위에 비닐을 깔고 우레탄을 붙고 굳게 한다. 우레탄 위에 한지죽을 붙고 양지에서 1주일 이상 건조시킨다.
6. 종이죽에 물풀을 붓고 반죽한다.
7. 손으로 요철이 없도록 평평하게 다듬는다.
8. 골고루 붓질한다.
9. 완성된 한옥마을 한지종이를 둥글게 오린다.
10.종이작품(한옥마을)을 아교 등(천연 재료)으로 나무판 위에 끼워 넣는다.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재질: 조선육송
작품규격: 180 x 85
작품9
해외에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종이와 비슷한 매체로, 같은 이름의 갈 대과의 식물의 잎으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나일 강 삼각주에는 이 식물이 풍성하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최소한 초대 왕조 이전에 발명했고. 이 파피루스를 매개로 한 고대의 문서로 책의 이전 형태인 코덱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대의 문서들도 파피루스라 부른다. Papyrus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paper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조선은 나무껍질 속의 섬유를 뽑아내 창호지를 만드는데 이 창호지를 얻기 위해 닥나무를 심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로 저화라는 돈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서양보다 빠르게 종이를 생활 속에서 사용했다.
중국채륜에 의한 제지술 개량은 서적 출판과 교육, 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과거 제지술이 개량되기 전보다 손쉽게 필기 재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서예와 회화의 발달을 촉진했고. 서예, 회화의 발달은 다시 종이의 품질 개선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런 순환을 통해 학문과 문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당나라 시대 문인들의 활발한 저술 활동은 종이 사용량을 증가시켰는데, 이 역시 종이의 생산과 품질 개선을 자극했다. 또한 서적 필사가 크게 발전하고, 출판되는 책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쇄술이 발명됐다.
작품10
작품제목:피난 성-100채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0 x 60
1.한지위에 한옥을 표현하다.
- 20여 년 동안 한옥마을연작
< 전주 한옥마을 안에 역사가 숨 쉬는 문화재, 막힘없이 흐르는 물길과 고샅을 애정 어린 눈과 섬세한 손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갈무리했습니다.
그림으로 마름질한 세상, 그 속에서 조금은 괴로운 현실을 잊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오히려 더 강하게 이를 깨부수고픈 욕구를 다져보게 됩니다.
화가란, ‘이끼 낀 섬돌에도 꽃을 피우게 하고, 천년된 나무의 잎에도 새싹을 틔우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지 특히, 장지 위에 먹과 혼합재료를 사용, 황금빛 논, 나지막한 한옥마을의 기와집, 오솔길, 아담한 전주의 산야,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 등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통적 소재를 선택해 수평적 구도로 서정적인 ‘풍경 연작’을 20여 년 동안 제작 해 왔습니다.
화면 위에 잔잔하게 흐르는 고요함, 소박함, 같은 풍겨 나오는 첫 번째 이미지하며, 굵은 마티에르 효과는 한옥마을을 꼭 빼다 닮았군요.
소박하면서도 세련미와 조형미를 갖춘 그의 고요한 ‘풍경 연작’은 옛 선비들의 수묵 산수화에서 느껴지는 ‘자연미’마저 풍겨 나옵니다.) -파리 소르본 4대학에서 DEA과정을 거쳐, 현재 EHESS(사회과학고등연구원)-
한옥마을이나 생활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등장시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복고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말합니다.
작품11
작품제목: 한옥마을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100 x 40
한옥마을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길 위에서
길이 시작되고
길이 또 끝이 나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요,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요.(중략)
또 다시 뚜벅뚜벅, 한옥마을을 다시 걸어갑니다.
짙게 드러워진 겨울 밤, 황금빛 태양을 잔뜩 머금은 전주천 등 작품마다 오롯이 솟구치는 세월의 파편들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치열하게 살고 있는 오늘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시나브로, 자그만 전주천이 총총한 별에 의지하고 살붙이 생명들이 별빛을 배고 수초 아래서 곤히 잠을
잡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세상에, 누군가에게 하늘을 닮은 사람, 그 사람 가운데서도 하늘의 기운을 듬뿍 담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늘 닮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어느 새 하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늘담은 물빛 아래로 하늘 닮은 당신의 모습이 햇살처럼 떠오르고, 그 눈빛이 별빛처럼 달빛처럼 빛납니다.
하늘 닮은 사람은 곁에 있어도 늘 그립게 맘들이고, 그리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해질 무렵, 전주천의 징검다리와 섶다리 위로 부서지던 햇살이 작가의 그림 속에 그대로 멈춰버린듯 황홀한 바로 오늘입니다.
‘어디 하늘에만 별이 뜨는가요? 별 없이도 바다는 별빛, 별천지입니다.
함께 흘러 주어서 고마워요
함께 건너 주어서 행복해요
함께 견뎌 주어서 감사해요
다가교의 윤슬처럼 담담하게 살면서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아니 다가서고 싶은 지금, '온 고을' 전주가 도란도란 말을 걸고 있습니다.> /이 종근님 한옥마을 글에서 발췌
- .전주 한옥마을 유래
을사늑약(1905년) 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 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 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주~군산 가도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었고, 1911년 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는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 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 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 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 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태조 로에서 보면 경기 전이 속해있는 방면의 한옥들은 일식가옥에 기와를 얹어놓은 느낌이 강하고, 전동성당이 속해있는 방면의 한옥들은 흔히 알고 있는 한옥 느낌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의 태조로가 전주부성 성벽이었고 경기 전 방면은 성벽 내부, 전동성당 방면은 성벽 외부였음을 생각하고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현재 오목 대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곳에는 마구간과 기마경찰대가 있는데 이곳이 옛날 일본군 기마대가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 역시 성 내부 방면에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기 전 동문방향에 위치한 경성 숙박업소 역시 일제 경찰 관사를 리모델링한 건물이고, 골목길엔 아직 미처 새 단장이 되지 않았거나 기와만 얹은 일식 가옥들도 제법 보인다. 사실 일본식 가옥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건물들은 대부분 향교길 방면에 위치해 있다.
- .달 이야기
작품드로잉12
달빛여행 작품 이야기 전주 곤 지산엔 흡월대(吸月臺)가 있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전주시립도서관을 오르는 왼쪽 수도골목 정상을 말함이다. 흡월대는 여섯 개의 달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첫 번째 달은 하늘에 떠 있는 실경 달이고,
두 번째 달은 전주천 물살을 희롱하는 멋의 달이다. 세 번째 달은 술잔 속의 담겨있는 맛의 달이다.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30 x 47
작품드로잉13 세 번째 달은 술잔 속의 담겨있는 맛의 달이다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21 x 29
작품드로잉14
네 번째 달은 동기(童妓) 눈동자 속 느낌의 달이며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21 x 29
다섯 번째 달은 마음을 누르는 절제의 달이다.
작품드로잉15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21 x 29
여섯 번째 달은 12줄 가야금 선율로 따 낸 산수 간의 풍류 달이다.
작품드로잉16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21 x 29
최명희와 전주, 그리고 한가위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고향예찬’생가하며 작품을 제작 했다.
‘기억은 저마다 한 채씩의 집을 짓는다. 기린 봉 푸른 밤하늘에 시리도록 흰 달이 걸리면, 두렷하게 드러난 능선을 타고 달빛이 흘러 온 전주가 옥색 물소리에 흥건히 잠기던 충만의 감동. 멀리서 그 달빛을 두드리던 가을 다듬이 소리. 주황의 창호지 불빛. 아아,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은 풍경보다 더욱 그리운 집을 한 채씩 견고하게 내 속에다 짓고 있었다(하략).
작품드로잉17
작품제목: 행복한 집
작품규격: 21 x 29
작품드로잉18
작품제목: 산성마을 달
작품규격: 21 x 29
작품19
작품제목: 풍류(風流)달
작품규격: 133 x 33
작품명제: 한가위 달빛
명절, 그것은 어미의 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살이가 고되고 서러워 온 몸이 다 떨어진 남루가 될수록 어디에서도 위로 받지 못하는 육신을 끌고 와 울음으로 부려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명절이었습니다.
한여름에 물들인 봉숭아의 붉은 꽃물이 손톱 끝으로 조금씩 밀려나가 반달이 되고 있을 때, 백로(白露)를 넘긴 달빛은 이슬에 씻긴 듯 차고 맑게 넘치면서 점점 둥글어져, 어린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달력을 들여다보며 날짜를 짚어보고, 다시 손가락을 꼬부려 꼽아보면서, 몇 밤을 자고나도 또 몇 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애가 타던 명절, 추석.'
최명희의 수필 '한가위 언저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가위 즈음이면, 집집마다 명일을 쇠려고 부지런히 빨래를 하는 통에 낮에는 간짓대로 받쳐놓은 빨랫줄에 눈부신 빨래가 나부끼고, 밤에는 그것들을 손질하여 다듬는 다듬이 소리들이 달빛 아래 낭랑했을 겁니다.
'“간 치내(鵲川) 작은 아부지 오시네요.” 큰집 마당에 아직 들어서기도 전에, 사촌 언니의 반가운 목소리가 고삿으로 울려오는 것이, 아마 아까부터 길목을 내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목소리에 탐스럽게 익어 벌어진 밤송이의 아람이 후드득 쏟아졌다. 그리고 연지(嚥脂)같이 물든 대추나무 대추들이 저녁 햇살에 수줍게 빛났다. 객지로 나간 아우들과 오랜만에 만난 큰아버지는 날렵한 칼로 밤을 치면서, 며칠 전에 선산에 벌초한 이야기며, 올 농사는 어디 논의 것이 제일 낫게 되었다는 말씀들을 나누셨다. 그리고 뒤꼍에서는 감․밤․대추․배․사과 같은 햇과일들을 정갈하게 챙기고, 토란을 뽑고, 햇벼를 찧어서, 선영에 처음으로 바칠 음식을 빚느라고 눈부시게 하얀 쌀을 씻고 있었다. 아아, 그 빚어도 빚어도 끝이 없던 송편, 그리고 전을 부치는 흥겨운 기름소리'.('한가위 언저리' 중)
소슬한 바람이 전주향교 담장너머로 일렁일 무렵,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을 서로 붙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흥겨운 춤사위를 자랑합니다.
시나브로, 코발트색 하늘에 쟁반 같은 달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내 마음도 가야금산조의 선율처럼 애절합니다.
명륜당 은행나무에 걸린 보름달아! 은은한 종소리처럼 세상에 골고루 빛을 밝혀다오.
7 .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산성마을
아래 지도는 1800년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지도’ 광여도(廣輿圖)로, 만경대, 천경대,
억경대 등이 선명하지요ㆍ
작품20
작품제목: 비보산수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113 x 61
작품21
작품제목: 북장대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55 x 68
작품제목: 삶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210 x 297
작품제목: 삶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x
작품22.23
작품24
작품제목: 연어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60 x 60
작품제목: 삶
작품재질: 탄 화목
작품규격: 210 x 297
작품25.26
전주의 비보풍수
풍수지리상 전주는 배역지지(背逆之地)입니다. 배산임수는 풍수지리의 근본입니다. 집이나 마을이 남향을 하듯 읍성도 남향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런데 전주는 주산이 성황산(지금은 승암 산으로 호칭)이고 좌청룡과 우백호의 지맥이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주의 물줄기는 다른 곳과 반대로 남동출북서류하고 있습니다.
배산임수 형국에서는 남동(坤)쪽이 툭 트인 자리이어야 하는데, 전주는 읍성에서 바라보면 곤지산 방향은 장막으로 앞을 가리듯 산세로 둘려있다. 읍성 구조 상 답답한 면도 있지만 오히려 읍성과 산세가 안성맞춤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주의 산세와 읍성은 천지조화와 음양 상생의 기운이 우주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처음 전주읍성을 조성할 때에 풍수좌향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풍수에서 좌향과 비보가 중요하듯이 읍성풍수에서도 좌향과 비보풍수를 중시하였던 것이다. 전주의 풍수좌향은 사신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사신(四神)은 네 마리의 신성한 영물을 가리킵니다. 사신은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가리키며 이들은 모두 상상의 동물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도 이 사신을 등장시켜 수호를 바라는 염원을 나타내기도 했었는데, 이런 현상은 비단 그림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에도 나타납니다.
전주 지명에도 사신도가 배열되어 있는데, 동쪽으로는 기린, 남쪽으로는 봉황, 서쪽으로는 용, 북쪽으로는 거북을 두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사신도에서 백호가 기린으로 대체되었을 뿐 각 방위에 따른 영물의 배치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주는 동쪽의 기린봉은 산세가 곧게 솟아났으며, 남쪽의 봉황 암은 고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봉황암 앞에는 봉황지가 있었으며 현재 효자동 근처였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전주의 서쪽은 완산칠봉의 용이 서쪽으로 향하여 용트림하고 있으며 용의 머리 부분이 현재의 용머리고개(龍頭峴)가 있습니다. 북쪽으로 읍성 내에 현무지(玄武池)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지리적으로 기린봉의 산세가 도솔봉으로 이어오다가 읍성 쪽으로 내려와 금암동(전 KBS방송국 전주총국)에 거북바위(龜岩)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주의 비보풍수는 진북동의 비보사찰․비보석불․비보 숲과 내외 수구막이와 덕진연못을 들수 있습니다. 진북사는 전주의 사고사찰가운데 북고사(北固寺)에 해당한다. 진북사는 전주의 진북동에 위치합니다. 진북동은 북쪽을 진호하는 풍수지리지명입니다.
4고사(四高寺)
동고사 : 전하는 말에 의하면 후백제 견훤왕조시대 이전부터 창설된 절이라고 합니다. 그 처음 위치로는 승암산 배 부분, 지금의 동고사 자리로 여겨진다. 도량 천년의 연륜을 산다는 귀목나무 머리를 짚어 유지(遺址)라고도 말합니다.
서고사 : 서산(황산·황방산)의 중턱에 있는 사찰로 유명한 ‘효자천(孝子泉)’이 있습니다.
남고사 : 남고산성 내에 위치한 절로 만경대,천경대,억경대 등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남고사 100년전 사진
북고사(진북사) : 완산칠봉 중 용두봉의 자락이 북으로 흘러내리는 유연 대 북서만 속칭 부엉바위절(호랑이 아가, 리터)라 부르는 곳(진북터널 옆)에 있습니다. 관찰사 이서구 선생의 고사가 담긴 절로 경내엔 오백년 내내 숲정이 바람 속에서 다소곳이 지키는 미륵불의 품에 선 고요가 흐릅니다.
전주 읍성의 북쪽을 진호하는 사찰인 진북사와 사면석불 가운데 북면불이 조성되어 있으며, 진북사 건너편에는 숲정이라는 비보 숲이 있었습니다. 건 허수지(乾虛藪止)에 비보 숲을 조성한 것입니다. 비보숲은 물을 흘러나가도 지기는 걸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비보 숲은 수구막이에 위치합니다. 전주에는 내수구와 외수구가 있습니다. 수구막이에 비보 숲이 조성됩니다. 수구 맥이란 풍수지리상 배산임수의 지세에서 물줄기가 마을입구로 빠져나가면서 마을이 지기가 허해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풍수장치를 말합니다. 전주의 지기가 북서쪽으로 유실되는 것을 방어하고자 진북동에 비보 숲을 조성합니다.
전주의 수구막이는 외수구와 내수구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내수 구는 기린 봉에서 내려오는 검암천과 전주천이 합수되는 곳이며, 외수 구는 다시 전주천과 오봉산에서 발원하는 삼천천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추천대가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합니다.
비보 숲은 요즘 코어텍스와 같은 섬유질을 말합니다. 진북동은 전주 읍성의 풍수비보상 가장 중요한 지역입니다. 진북사는 화산의 암애 측벽에 위치하였으나 아파트 증축으로 폐허되었다가 다시 그곳에 복원되고 있습니다. 청룡 맥이 질주하다가 전주천을 만나자 멈추어 선 것이다. 산(남성)이 수(여자)를 만나면 모든 게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린 맥은 읍성을 품고 북서쪽으로 질주하다가 물을 만나 지맥이 멈춰 선 곳이 건 지산입니다.
건 지산(乾止山)은 건방위에 멈추어 선산의 지명입니다. 건 지산 맞은편에 가련 산(可連山)이 있습니다. 건지산과 가련 산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덕진연못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덕진연못은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연못이 아니라 제방을 쌓음으로서 물이 고여 만들어진 연못입니다.
전주의 북서쪽 허결하여 전주의 지덕이 누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주의 풍수 비보는 조선 후기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중앙대 송화섭교수는 “전주 읍성과 풍수체계가 파손 유린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침략기이다. 경기전에 소학교를 세우고 오목 대와 이목대를 절단 냈으며 용머리고개로 길을 내고 심지어는 동헌을 없애고 길을 내었다.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의 풍수지리 구도를 훼손시켜 조선왕조의 국혼을 파멸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었음을 밝힌다.고 했습니다.
산성마을 일대 문화재 4점 보유
이곳에는 모두 4점의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294호 전주 남고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 남고사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호 관성묘, 전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2호 남고진사적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적 제294호 전주 남고산성
사적 제294호 전주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입니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습니다. 이 성은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입니다.
순조 13년에 보수공사가 있을 때 성 안에는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곳을 지나가다보면 우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문은 동·서에 있었으며 각기 3칸, 6칸 규모의 누각형 문이 있었습니다. 서쪽에 비밀 문이 하나 있었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포루가 설치되어 있고, 관청, 창고, 화약고, 무기고를 비롯한 각종 건물이 즐비하게 있었다. 지휘소인 장대는 남·북에 각각 설치되었으며, ‘남고사’란 절이 있습니다. 현재 성의 둘레는 약 5.3㎞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성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남고진사적비’가 산성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011년 7월 28일 남고산성이 전주 남고산성으로 명칭이 변경됐습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 남고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 남고사지는 신라 문무왕 8년(668)에 명덕(明德) 스님이 세웠다고 하는 남고연국사(南固燕國寺)가 있던 자리입니다. 「연국(燕國)」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산성 지역에 자리 잡은 절에 많이 사용되던 명칭입니다. 조선 후기부터는 남고사로 불리었는데, 이 절의 승려들이 「남고산성」을 지키는데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옛 남고사 터는 현재의 남고사 대웅전 서쪽 전방의 건물이 있는 곳이다. 현재 남고사 건물은 약 100여 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9년에 대웅전 등을 다시 지어 지금의 절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호 관성묘(關聖廟)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호 관성묘(關聖廟)는 사당으로, 「삼국지」로 우리에게 낯익은 관우 장군을 무신(武神)으로 받들어 제사 지내는 곳으로, 「주왕묘(周王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관우를 신봉하는 신당이 널리 전파된 것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진인이 서울의 남묘에 관우를 조각한 신상을 안치한 데서 비롯됩니다. 전주의 관성묘는 고종 32년(1895)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과 남고산성을 책임지던 무관 이 신문이 제안해 각 지역 유지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습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상이 있고, 그 양쪽 벽에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있었습니다. 관우의 신성을 믿는 사람들은 매년 초 이곳을 찾아 한 해의 행운을 점치기도 합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관성묘의 주련을 통해 이곳이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또 이곳을 관우의 혼령이 지키고 있음을 한눈에 알게 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소장하고 있던 석지 채용신의 도둑맞은 ‘삼국지연의도’를 찾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전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 남고진사적비(南固鎭史跡碑)
남고진사적비(南固鎭史跡碑)는 동서학동 산228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적비입니다. 2009년 10월 30일 전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됐습니다. 이 비석은 남고산성의 축성경위와 남고 진 설치에 관한 기록으로 1846년(헌종 12)에 세웠습니다. 남고산성 성터 안에 자리한 이 비석은 최영일(崔英一)이 찬(撰)하고, 창암 이삼만(李三晩)이 썼습니다.
남고산성 성벽을 가다보면 만나는 만경대 바위에는 고려 말 정몽주의 '천길 바위머리 돌고 돌아'로 시작하는 우국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주 남고산성에는 산성의 능선을 따라 억경대. 만경대, 천경대 등 세봉우리가 있어 고려 말(高麗末)의 충신 정몽주가 지은 우국시(憂國詩)가 새겨져 있는 벼랑이 있습니다.
정몽주는 서기 1380년(우왕6년) 당시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노략질을 하던 왜적을 토벌하러온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 이성계(李成桂)장군의 종사관으로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운봉전투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개선하는 길에 선조들의 고향인 전주 오목 대에 들려 종친들을 모아 크게 연회를 베풀면서 장차 새나라를 세울 야망이 담긴 노래를 부르자 듣고 있던 정몽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홀로 이곳 만경대에 올라 멀리 북쪽 하늘을 쳐다보며 기울어져가는 고려의 국운을 한탄하는 우국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우국시를 남긴지 꼭 12년 만에 선죽교에서 선혈을 뿌리고 순사했고 고려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만경대 암각서, '萬景臺'라는 글자와 함께 정몽주가 지었다는 우국시(憂國詩, 아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千仞岡頭石逕橫 登臨使我不勝情 천길 산등성이머리 돌길 돌고 돌아 홀로 다다르니 나의 시름 이길 수 없네.
靑山隱約扶餘國 黃葉繽紛百濟城 푸른 산 뚜렷이 알지 못하니 부여국이요 누른 잎이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네.
九月高風愁客子 百年豪氣誤書生 9월 소슬바람이 나그네 시름 깊고 백년 호탕한 기상을 서생은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矯首無由望玉京 하늘가 해는 기울고 뜬구름 모이는데 하염없이 고개 들어 개경만 바라보네.
오목 대에 걸려 있는 대풍가 시판(詩板)
태조 이성계가 오목 대 잔치에서 읊었던 '유방의 대풍가(大風歌)' 편액은 오목 대 안에 걸려 있으며 2004년에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 1924~2008) 선생이 글씨를 썼습니다.
大風起兮雲飛楊 (대풍기혜운비양) 큰 바람 일어나니 구름이 나는도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가하내혜귀고향) 위엄을 해내에 떨치고 고향에 돌아왔도다.
安得猛士兮守四方 (안득맹사혜수사방) 어떻게 하면 용맹스런 군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 수 있을까
남원 황산대첩을 대승으로 이끌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이성계는 전주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목 대에서 연희를 베풀면서 한나라를 창업했던 유방이 불렀던 "대풍가"를 읊어서 자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비추었습니다.
이서구시 쓴 시도 보이는 바, 1820년 그가 전라관찰사로 두 번째 부임해 그해 가을 만경대에 올라 정몽주의 시와 관찰사 권적이 차운(次韻)한 시를 보고 그 옆 암벽에 새겼다고 합니다.
萬家霜樹擁重城 만가상수옹중성 집집마다 서리 맞은 나무 겹겹이 성을 둘렀네.
西風浙瀝秋聲至 서풍절력추성지 서풍이 비를 뿌리니 가을이 이르고
落日滄茫海氣生 낙일창망해기생 수평선에 해가 지니 바다기운 돋아나네.
爲是圃翁昑眺地 위시포옹금조지 여기는 포은이 시를 읊던 곳
天崖獨自望神京 천애독자망신경 하늘가에서 홀로 서울을 바라보네.
남고산성의 7개 송덕비
뿐만 아니라 남고산성에는 모두 7개의 송덕비가 있습니다. 그 중 6개는 서암문지에, 1개는 구 남고 진 별장청 입구 도로변에 있습니다. 관찰사 서상경(1870년), 판관 강준수(미상), 별장 최영우(1869년), 이신문(1886년), 송동욱(1856년) 김0서(1858년), 장00(미상)의 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남고산성 송덕비
관성묘 하마비, 1891년 건립
예전에 세워진 사찰의 일주문이나 천왕문 앞에서 종종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라는’는 의미의 ‘하마비(下馬碑)’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마비가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곳이므로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로 세워 두었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 있습니다.
전주에는 전주향교와 경기전, 조경묘, 조경단, 관성묘 등 모두 5개의 하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주 관성묘 입구엔 앞쪽에 대소인원개하마라 쓰여 있고, 옆면엔 광서17년(1891) 신묘5월립이 라고 쓰인 하마비가 있습니다. 전주의 하마비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전주향교의 것으로 뒷면에 ‘정덕기묘구월일입(正悳己卯九月日立)’이라 새겼으니 중종 14년(1519년)에 해당되며, 가장 시기가 늦은 것은 관성묘의 것입니다.
바로 인근엔 '묵로 이용우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911년 경성서화 미술원 1기생으로 입학한 묵로 이용우 묘비의 글은 작촌 조병희, 글씨는 강암 송성용이 썼씁니다.
우당 조중태 (又堂 趙重泰, 1902-1975)는 부안 출신으로 전주에서 활동한 서화가입니다. 그는 정읍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이사해 그곳에서 활동했습니다. 초기에는 추당 박호병(秋堂 朴好秉, 1978-1942)에게 배우고, 이후에는 묵로 이용우(墨鷺 李用雨, 1902-1953)가 6.25 전쟁으로 인해 전주에 기거하는 동안 그에게 그림을 지도 받았습니다. 벽천 나상목도 그의 제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전주에서 쉽게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는 전주 산성마을을 통과하는 ‘시나브로 길’은 이처럼 숱한 사연을 보듬고 있는 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그려진 남고산성 일대(조수삼, 서거정)
오늘날의 전주팔경을 이야기한 인물로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1762~1849)을 꼽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조수삼은 말년(74세경,1835년)에 전라도 관찰사로 2년 동안 호남지방에 머물렀다. 그 당시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시들 가운데 현재의 전주팔경과 부합하는 작품들이 그의 문집인 추재집 3권과 4권에 들어 있습니다.
남고모종(南固暮鍾)
城郭鍾聲何處聞 성곽의 종소리 어디에서 들리나
上方斜日下方曛 상방에 석양이 드니, 문턱이 따뜻하네.
回頭更欲尋初地 머리 돌려 다시 초지를 찾으려니
惟見空山多白雲 텅 빈 산에는 흰 구름만 보이네.
남고모종은 남고 산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의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이어진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산성입니다. 이 산성의 안쪽에 남고사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종을 치는 이유는 모든 중생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생겨나 악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상방(上方)은 관아의 우두머리가 거처하던 방을 이르던 말이고, 하방(下方)은 벽의 맨 아래쪽 기둥사이를 가로지른 나무를 이릅니다. 초지(初地)는 십지(十地)의 처음 단계로, 번뇌를 끊고 마음속에 환희를 일으키는 경지로서 환희지(歡喜地) 라고도 합니다. 저녁에 해가 지면서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듣고 초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산에는 무심히 흰 구름만 보이고,찾고 싶은 초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화자가 찾으려는 ‘환희지’는 ‘남고사’를 의미한다.전주 시내에서 바라보는 남고사는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이런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전주 지역의 승경과 관련한 용어로는 ‘패향십영’ ‘전주팔경(혹은 완산팔경), 전주십경, 완산32경’등이 있다. 이중 문헌 속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조선 초 서거정이 전주부의 승경을 노래한 패향십영(沛鄕十詠)입니다.
경기전(慶基殿)
手提金尺靖東韓 손수 금척을 쥐고 동한을 평정하셨기에
閟殿眞容爲奉安 깊고 그윽한 신전에 진용을 봉안하였네.
好是龍興根本地 훌륭하다 예가 바로 용흥의 근거지이니
千秋蕉荔謹黃丹 노란 파초 붉은 여지를 천추에 올리리다.
견훤도(甄萱都)
猾賊當時事險微 교활한 적은 당시에 음험을 일삼았는데
蕭墻奇禍不堪譏 뜻밖의 집안 재앙은 가소롭기 그지없네.
可憐四十年間業 가련도 하여라 사십 년 동안 벌인 사업이
城郭依稀鶴語非 성곽마저 희미해 학의 말대로는 아니로세.
만경대(萬景臺)
臺高千仞倚靑空 천 길이나 높은 대가 창공에 솟아 있어
俛仰乾坤萬里通 위아래 천지 사이에 만 리가 탁 트였네.
莫說甄郞興廢事 견훤의 흥망에 관한 일을 말하지 마소
靑山黙黙鳥飛中 청산은 말이 없고 새만 높이 나는구나.
기린봉(麒麟峯)
山河磅礴瑞輪囷 산하의 충만한 기세에 상서가 우뚝해라
仙李盤根弈葉春 선리가 뿌리를 내려 대대로 봄이로다.
豐鎬由來形勢異 풍호는 예로부터 형세가 유독 달랐거니
請君來此看麒麟 그대는 이곳에 와서 기린봉을 보게나.
봉황암(鳳凰巖)
甄家兩顆不才兒 견훤의 집 두어 자식은 못나기 그지없어
梟獍爲心豚犬姿 효경 같은 심술에 돈견 같은 자질이었네
當日鳳凰去何處 그 당시엔 봉황이 어느 곳으로 갔던고
如今覽德自來儀 지금은 덕을 보고 스스로 내려왔는걸.
건지산(乾止山)
虎擲龍疲一霎空 용과 범의 싸움이 한순간에 끝나버리고
江山依舊雨昏濛 강산은 예전대로 비만 자욱이 내리누나.
傷心莫問濟羅事 상심되거니 백제 신라의 일은 묻지 마소
多少峯巒露碧䓗 하 많은 산봉우리만 우뚝우뚝 푸르구려.
덕진연(德津淵)
以德名津語不空 덕으로 이름 지은 그 말이 헛되지 않았도다.
澤民曾有濟時功 백성에게 은택 입혀 세상 구제한 공이 있네.
誰知泓臥龍行□ 그 누가 알리오. 깊은 못에 용이 누워서
十雨時能又五風 때로 능히 십우와 오풍을 행사하는지
공북정(拱北亭)
北望神州稽首欽 북으로 대궐 향해 경건히 머리 조아릴 제
華山高聳碧抽簪 우뚝 솟은 화산은 흡사 벽옥잠 같아라.
南州冠蓋多於織 남쪽 고을 관리들은 유독 많기도 한데
戀闕思君只此心 대궐과 임금 사모하는 그 마음뿐이었네
제남정(濟南亭)
濟南佳麗惱人多 제남정 화려한 경치는 퍽 사람 들뜨게 하여
憶昔瞢騰盡醉過 내 옛날 잔뜩 취해서 곤드레가 된 적 있네.
爲問今時老□□ 묻노라 지금은 ―-(이하 원문 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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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심정(快心亭)
畫棟朱甍對碧岑 단청 화려한 정자가 푸른 산 마주했는데
竹林蒼翠轉深深 푸른 대나무 숲 돌아서 깊숙이 들어가네.
何時賢尹一樽酒 어느 때나 어진 부윤과 술자리를 열어서
快盡平生未快心 평소 울적한 마음을 유쾌히 다 풀어볼꼬
서거정은 한상 이봉(李封)이 보내준 시에 차운하여 전주의 풍경으로 열 가지(패향십영)를 노래합니다. 성화(成化) 계묘년(1483)에 이봉은 전주부윤으로서 전주부 객관 동북쪽에 매월 정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봉과 서거정은 자주 시문을 주고받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로 위의 시는 서거정이 당시 전주
부윤이던 이봉에게 보낸 것입니다.
서거정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발상지라는 의미에서 전주를 ‘패향(沛鄕)또는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합니다.
이는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이 패군(沛郡)풍읍(豐邑)이었던 데서 전하여 제왕(帝王)의 발상지(發祥地)임을 가리킵니다. 서거정이 꼽은 전주의 열 가지 경치는 경기전(慶基殿), 견훤도(甄萱都), 만경대(萬景臺), 기린봉(麒麟峯), 봉황암(鳳凰巖), 건지산(乾止山), 덕진연(德津淵), 공북정(拱北亭), 제남정(濟南亭), 쾌심정(快心亭)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현재의 전주팔경과 겹치는 것은 ‘기린봉(麒麟峯), 덕진연(德津淵), 건지산(乾止山)’정도입니다. 서거정이 노래한 공북정, 제남정, 쾌심정 등은 후대에 이르러 누정이 사라지면서 팔경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 작가노트-
작가, 문화운동 (사대문예술문화원) 국제전등, 문화 게릴라로 변신도하면서 아티스트와 이웃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10여년을 살다보니 유쾌한 에너지가 솟아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팍팍하고 녹슬어간다면 작업실에 올 때마다 좋다. 숲이 있고 맑은 공기와 지하수 물로 끓인 식수 그리고 예술이 있고, 철학이 있는 삶이 느껴지기 때문이다ᆞ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지만 짧은 인생, 예술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코로나가 세상을 삼키고 빠르게 진화하는 속에서 우리는 도태되며 또 어떤 이들은 삶의 의미와 희망을 상실하게 되는 날들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며, 삶은 불가해한 것. 그 사이 우리는 종종 허무의 바다에 표류되어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기도 하고, 각자가 지켜왔던 신념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의 사유들이 작품으로 우러나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 보련다ᆞ.
앞서간 선인들 중 청백리 욕심 없이 의로운 길을 걷다가
절개를 지키고자
난세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더 강렬한 빛과 색으로 자신을 연마하였거늘
자본주의 의 풍성함에 빠져 부족함이 때론 소중한 것이 된다는 진리를 외면한 체
주ㆍ정객이 전도 되어 한마디 외침도 없이
자존을 버리고 교환가치 돈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하며 …….
자연을 벗 삼아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살다가
하늘에 부름을 다 한때 까지
묵직한 소처럼
사명의식으로 나의길 을 걸어가기를 다짐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지심 (謙讓地心)과 이기적인 마음보다 관용의 측은지심 (惻隱地心)으로
이웃의 아픔도 보듬는 아련한 깊은 마음을 지향 하며, 담소도 나뉘며…….
딱딱한 이성보단 감성의소유자로 장거리여행 하듯 사심 없는 마음으로 혼이 담긴 작품을 꿈꾸며
나의길 을 향해 걸어가기를 다짐 해본다.
8. 참고 문헌
효봉스님의 글 발췌
최명희의 소설 ‘혼불 ‘고향예찬 발췌
이종근님 글 발췌
이 택구
1964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식천370번지에서 아버지(이복래) 어머니(채규예)의
삼남 삼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남
1978 성산초등학교 졸업
1981 군산중학교 졸업
1984 군산고등학교 졸업
199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학위
2002 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석사학위
-현대미술에나 타난 마티에르연구(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9 저자 연보
소개
SUD OUEST(JEUDI 4 MAI2006프랑스),
Ia gazette Du gers 5 MAI2006프랑스)
주요 개인전경력 (12회)
2021 4월 이택구 개인전 (회화작품으로 만나는 산성마을)―전주
2018 10월 코엑스(탄소 페스티벌) 탄소 소재의 작품-서울(2인전)
2014 10월 아시아 수채화 연맹 발리전 2014, -발리 인도네시아(단체전)
2011 5월 ‘삶 life’ 갤러리아이 초대 개인전 –서울
2011 5월 스위스 제네바 “General Regulations of Art by Genéve International Art Fair”개인 -부스전-
2009 5월 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이야기(안중근. 이순신편)삽화초대전, 희오갤러리, 전주(2009.2010)연2회
2008, 9월 이택구초대전, 국회전시홀-서울
2007. 1월 이택구초대전, 수갤러리- 전주
2006. 10월 이택구초대전, 수갤러리-서울
2006. 5월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 기획 개인전-프랑스오슈
2004. 6월 이택구초대전 전주우체국 전시실- 전주
2002. 5월 이택구개인전, 전북예술회관-전주
1996. 11월 이택구개인전, 얼 화랑- 전주
작품소장: 국립과천 현대미술관.전북도청 기타 등등
도 서 : 큰 작가 조정래 인물이야기 –이 순신.안 중근 그림 삽화 <문학 동네>
돌고 도는 돌 이야기, 개똥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현 : 한국미협, 전북미협, 햇살회, (사)사대문 예술문화원 대표(사대문 국제전9회)
발 행 │2021년 4월 2일
발 행 인│이 택구
글자문인│이 종근
그 림│이 택구
디 자 인│이 택구
펴 낸 곳│신아출판사
* 이 책자에 실린 모든 기사와 사진은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하며 이를 어길 시저 작권 법에 저촉됩니다.
이러한 풍광을 이야기 있는 작품으로 남겨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워야 하는 일환으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작가 이 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