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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떤 나라인가?_고녕가야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22년 3월 1일(火)]
지금까지 앉을 자리가 없어 떠돌아 다녔던 고녕가야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식민강단사학에서 상주에 존재했던 수많은 고녕가야의 고분군을 도굴된 채로 발굴하지 않고 스르르 지워버렸다.
{한국에서 삭제된 고녕가야}
https://youtu.be/buJXpLOEOI8
https://www.youtube.com/watch?v=4oL7NLOo6_U&t=4s
필자도 이 사실을 모르고
다만 삼국유사 오가야조에 고녕가야는 가리현이라 하였고
또 상주에는 고분군이 존재하지 않고 왕관이나 이런 유물들이 보고되지 않아
일연스님의 오기로 판단하고 함녕의 고녕가야를 인정할 수 없었다.
대신 고분군이 많은 대구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삼국유사 일연스님의 후예스님의 노력으로 함녕군에서 고분군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지금 상주 사벌면에 있었던 사량벌국이 254년경에 신라에 귀속되었다.
고녕가야는 함창과 문경일대에 있었던 나라다.
그러니 이때 고녕가야도 신라에 복속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가 사량벌국을 복속시키고 첨해왕沾解王 10년十年 257년 사민徙民정책에 의해 유민을 영해쪽으로 보냈다는 기록에서 함녕김씨의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254년에 신라에 귀속된 것으로 일단은 추정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세기 이때는 백제와 신라가 백두대간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한 것으로 보아도
이 사이에 다른 독립된 국가가 존재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후에 다시 이곳에 독립된 나라가 있었다면
그것은 김씨왕조에 반한 석씨왕조 추종자들이 다스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여하튼
고녕가야의 실체가 확연히 들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추정한 대구지역은
대가야의 일원으로 보아야 하겠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역사의 실마리가 더 잘 풀린다.
필자는 대가야라는 국명에 대해 항상 2%가 부족한 뭔가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기나라를 이름 앞에 대大자를 붙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가가 이름 앞에 대자를 붙이는 것은 흔치않다.
우리역사로 보아
앞에 대자를 붙이려면 좌현왕·우현왕을 거느리는 즉 삼한일통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호에 대大자가 합당하게 들어가는 진정한 최초의 국호는 대부여다.
삼한관경제의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조 국호이다.
그렇다면 대가야 역시 삼한관경제의 형식을 취했으리라 생각한다.
대가야는 합천에 우현왕을 대구에 좌현왕을 거느린 명실공히 삼한일통의 대가야였던 것이다.
참고로
국호 앞에 대大자를 붙이는 나라에 대화大和가 있다.
BCE 300년 단군조선의 마한이 망하고
영산강유역의 대화大和가 마한의 주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의 김해지방에 변진구야국이 들어서고 경주중심의 진한 육촌이 형성된 것이다.
BCE 194년 월지에 탁장군이 오면서 마한의 종통이 월지국으로 바뀌고
그리고 대화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야마토大和는 한반도 영산강유역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우리나라 국호 대한大韓은 단군조선 북삼한의 맥을 이어 생긴 국호이다.
그리고
지금 대가야에 비해 작을 소자를 쓴 소가야 이야기를 하는데
고성의 소가야는 본래 쇠가야이다.
자기 나라 이름에 작을 소小자를 붙이는 이상한 왕王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고성은 본래 이름이 쇠가 많이 난다해서 철성이다.
[2022년 3월 21일(月)]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왜곡된 내용이 참으로 많다.
그중 의심되는 하나가 가야가 출발한 흉노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禹는 단군왕검께서 부루태자를 통해 전수하신 오행치수법으로
황하 9년 대홍수 해결하면서
치국治國의 도道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수받고
또 단군왕검께서 천하天河로 떠내려 보내신 거북등껍질에 그려진 낙서 또한 전수받는다.
그리하여 우禹가 중원에 그들의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禹는 흉노의 주류를 이룬 은나라 족속의 거북의 달님신앙 상징성을 가로채고
서토西土에서 최초로 동방 천자의 나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史記 匈奴列傳 第五十에
匈奴 其先祖 夏后氏之苗裔也 曰淳維
흉노匈奴의 선조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로 순유淳維라고 한다.
중국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는 소호금천의 후예가 아니다.
게다가 삼신三神상제를 모시지 않았던 인물이다.
흉노匈奴는 철저히 삼신상제님을 신앙한 족속이었다.
삼신상제님을 모르는 이가 어찌 흉노 선조의 조상이 되나?
우禹왕조는 망하고 남쪽인 남소南巢(안휘성)로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禹는 전혀 흉노와는 상관없다.
실제 순유라는 인물이 흉노족이면 혈통을 억지로 연결시킨 것이다.
사마천이 왜곡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달신신앙과 거북신앙을 연결시킨 고리 우임금의 거북등에 그려진 낙서도
결국은 단군왕검의 작품이다.
서토西土에서의 거북신앙은
태호복희의 황후인 여와女媧로부터 시작한다.
그게 소호씨로 연결되는 것이다.
소호少昊가 태호太昊의 법을 이었다는 환桓으로도 여와의 거북으로도 연결된다.
사마천은
우를 흉노 선조의 조상으로 만들어 거북신앙이 우禹로 연결되도록 역사를 조작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의 본문에서는 역사왜곡의 이 부분을 고치지 않았다.
역사왜곡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인물에 대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가슴에 각인시키고 싶은 생각에서 고치지 않았다.
우禹의 달신신앙 가로채기는
‘제3부 야마토와 龜旨峰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에
‘소호少昊의 정통 후예들은 어디로 갔나?’ 란을 마련하여 상세히 다루었다.
4355.3.1. 수정 3.21. 성기영(010-9534-7766 jsdri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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