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부처님께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던 질문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침묵은 어떤 의미였나요? 어떤 스님들께서는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이미 침묵으로 대답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면 왜 대답할 필요가 없는지, 그리고 언어의 세계를 넘어선 것이라면 어째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지, 침묵으로 대답하셨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삼계대도사이신 부처님께서 대답하지 못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깨우친 제자도 있다고 하니까요. 부디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십시오.
① 세계의 시간적 지속에 관한 것(세계는 상주하는가, 무상한가?)
② 세계의 공간적 넓이에 관한 것(한계가 있는가, 없는가[유변, 무변]?)
③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것(영혼과 육체가 같은가, 다른가?)
④ 정신의 존속에 관한 것(사후에 정신은 존속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답변. 사무기(四無記)
불경은 진실을 밝히는 말씀이므로 진실을 왜곡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데 쓰여 져야 한다. 진실(眞實)이란 실제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증명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므로 그것에 얽매인다는 것은 사라진 추억이나 상상을 보배와 바꾸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실제적 상황이란 ‘당장(當場)’이며 ‘지금(只今)’을 말하는 것이니 이 찰나야말로 진정한 보배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든 것은 찰나에 사라지므로 사실상 지금이란 정신에서 느끼는 과거일 뿐이다. 번개가 쳤다고 느낄 때 과연 번개는 계속 존재하는가. 타인에게 욕을 먹었다면 그 욕은 과연 그의 혀를 떠나서 얼마나 허공에 존재하는가. 모두가 이미 찰나에 사라지고 기억만이 남았으며 기억은 과거이니 중생의 집착은 과거에 있으며 걱정은 미래에 있는 것이다. 즉 가장 진실한 ‘지금’을 잃어버리고‘보배’를 허망한 과거나 미래에서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께서는 바로 이 자리인 ‘지금’, ‘당장’을 확연하게 드러내놓으시고 모든 것이 이미 과거이며 실제로 있을 수 없는 미래임을 깨닫게 하시어 실답고 보배로운 ‘지금’의 주인공을 성립시키게 함으로서 참다운 ‘나’, 영원한 ‘지금’을 발견토록 안내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온 우주의 주인공이며 ‘진정한 나’이다. 내가 없다면 세상과의 인연으로 생겨나는 고통도 없고 세상도 있을 수 없으며 ‘지금’도 없다. 정신이 없다면 ‘지금’을 느낄 수 없으므로 ‘지금’과 ‘나’와 ‘세상’, ‘정신’은 모두 같은 경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세상과 나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으며 그로 하여금 집착하지만, 본래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니 항상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괴로움을 갖게 되고 이것으로 윤회의 근본을 삼게 된다.
세상은 육진(六塵 = 色색, 聲소리, 香냄새, 味맛, 觸감촉, 法뜻)을 제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므로 육진이 곧 세상인 것이나 이 육진은 마치 꿈처럼 이름만이 존재할 뿐 그 실체(自性)는 없다. 첫째로 모든 것은 찰나이상을 견디지 못한다. 번개가 연속되어도 그 번개는 사실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얻을 수 없다. 둘째, 모두가 화합상(化合相)이므로 자성이 없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화합한 것이나 수소는 허공이고 산소도 허공이므로 물에서 그 두 허공을 빼고 나면 실제적 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합해서 만들어진 만유(萬有)는 모두가 이름뿐이다. 셋째, 육진은 감각이 없이는 확인할 수 없는 허망한 것이다. 장님에게는 색깔을 설명할 방법이 없고 귀머거리에게는 소리를 알려줄 수 없으므로 마치 잠을 자는 자에게만 꿈이 보이듯 대상이라는 것은 오직 감각에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을 보았을 때 세상은 확연히 꿈과 같은 환상이며, 정신에 의해 드러난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간 곳이 없듯 방금 전의 세상 또한 감추어진 자리도 없고 쌓여있는 자리도 없는 허깨비다.
나아가 이렇게 환상적 유위법(有爲法)에 속아있는 중생들에게는 자연히 더 큰 병(病)이 있게 된다. 바로 두 번 속은 병이다. 모든 것을 실제로 있다고 믿어버림으로서 한 번 속은 것이고, 그것을 모른 채 사랑과 미움을 가슴에 갖게 되니 두 번 속은 병이며 더 큰 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께서는 중생의 고통이 감각을 원인으로 하고 있었으니 감각의 진실만을 말하면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무작정 말리는 것보다 오해였음을 알려주어 분노의 근원을 없애 주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이듯, 중생이 두 번 속아‘의미’를 들고 다툴 때도 역시 첫 번째 속은 것을 알려주어 근원을 치료하면 두 번째 어리석음은 치료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언제나 두 번 속은 어리석음으로서 질문을 한다. 사후세계, 시간, 공간, 영혼 등의 질문은 첫 번째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감각을 실제로 믿고 의심하지 않은 채, 두 번째 망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이며 상상 속의 일이고 지어낸 말들이니 세상에는 없는 것이므로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을 다시 없다고 말함으로서 오히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낳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은 근원적인 이유를 파헤침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이라는 근원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도망을 가야하나, 저것을 어떻게 무찔러야하나.’하는 고민은 이미 해결된 것이니 해탈이 눈앞에, 코앞에, 아니 모든 감각의 끝에 있으며 감각의 끝이 이 세상이니 온 천지가 해탈의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네이버 '불교카페 혜안'
이각스님 서술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혜로우심에 통쾌합니다. 두 번째 망상이란 걸 놓치고 있었네요. 합장.
지금을 자꾸놓치게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나무석가모니불 합장..
좋은글 감사히잘보고 갑니다 진정한 주인공 내자신을찯을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고 또 읽고 늘 배워서, 나를 놓을때까지 내려놓고 ....고맙습니다
부처님게서 침묵으로 충분한 대답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관념적인 질문은 실제의 자신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경험하였습니다. 독화살을 빨리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 독화살의 재료가 무엇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당장에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 떠 오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소롯이 존재할 수 있다면 모든 이야기는 끝난다는 말씀을 항상 되뇌입니다.
두번 속는다는 그 말씀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처님께서 두번째 화살은 피하라 하신 말씀도 있으신데 같은 의미이겠지요..육진을 제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육진이 곧 세상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오온이 공하니 육진도 공하며 육식이 공하다는 반야심경이 떠오릅니다. 결국 모든 고통은 모든 것에 '의미'를 찾고자 하는 관념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우리들이 흔이 알고있는 모든것 다 과거의 연속인거죠 지금여기 에 현존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마음은 우주를 넘나듬니다
이각스님은 참 논리적이고 세상의 이치와 마음이라는것을 알았을것이라 생각
합니다.마음이 영원은 하나 그 마음이란것도 육진 육근 육색이 존재하는 현실
이 존재하여야 번뇌하며 고통스러워하며 평혼함을느끼며 허공과 같은 마음을
느끼는것 아니겠습니까?
얼마전 도서관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몸이불편하여 휠체어에 못 않으시는것을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사람이 볼까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상반되게 우쭐하는 마
음이 일더군요. 이러한 마음이 나의 몸과 정신과 세상이 일으킨 나의 마음이
라는 생각이 드는순간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무름이 없음이 마음과같더군요.
너무 현실과 괴리되어 현실 생활에 혼돈이 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 좋아하는 일, 좋아하던 정치인, 즐겨 읽는 신문 , 그리고 진짜 좋아하는 돈! 이모든 헛거를 좇꼬 있었나!
내용은 이해하나 부처님께서 질문에 답하지 않으신 것에는 다시 의문이 듭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_()_
찰나의 지나감.. 기억? 감사합니다..()()()
첫번째 속은거에 대한 근원을 치료하는 과정을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감각의 끝에 ...감각의 끝...
고맙습니다
저도 부처님께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신것에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주는 유한한가,무한한가.석가께서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외람되나마 어릴때부터 우주는 유한한가,무한한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한없이 팽창하다가(팽창:시간이 흐름)어느 시점에 다시 수축(이또한 시간이 흐름.꺼꾸로 흐르는 지는 몰라도)하다 또 다시 팽창을 반복하는게 아닌가(우주와 시공간의 윤회)
하고...그런데 얼마전 불교방송에 있는 천문학 강의를 보다가 거의 졸도할뻔 했습니다.아함경인가 어딘가 부처님께서 우주에 대해 말씀하신 구절이 있었습니다."수행승들아.우주는 한없이 팽창하다가 어느때인가 다시 수축한다"그 교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 구절을 만약 아인슈타인
이 봤더라면 아마 기절초풍했을 것이다"라고.다시 한번 감탄하지만 그게 진실이든 뭐든 그 당시로썬 말도 안되는 그런 생소한 이론을 2,500년전에 설하셨다니 이건 소위 깨치지 않고는 도대체가 알수 없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깨침이란 뭔가" 아는 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저절로 나옵니다."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모든것은 찰나이상을 견디지 못하니...지금 이순간순간도 사라져 버리고마는 것이니 진실로 살아가라
이번생의 삶은 전생의 업에따라 살아가는것!
인생이 부처님의 뜻을 헤아릴수 있다는것이 합당치 않으나 !
이번생에 이치와 원리를 받아 드리는것 또한 전생의 업에 따라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는것!
또한 이루 말할수 없는 축복중에 축복이요!행복중에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진리를 깨닫는것 사람이 육신으로 쉽게 깨달아질수 없는것 깨달수 있는것은 부처님의 공덕이요! 인연중에 인연이요! 사람으로 어찌할수없으나!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