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구간 1999년 3월 1일(일)맑음
정맥능선: 570능선-656봉-669봉-690봉-입봉-주화산
산 행: 신궁저수지-570능선(30분)-669봉(55분)-690봉(120 분)-
입봉(80분)-주화산(70분)-모래재휴게소(25분)
약 13.4Km 6시간 20분소요
오늘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79년이 되는 날이다. 이런 뜻 깊은 날에 민족정기를 이어가는 금남정맥 종주를 하게 되니 특별히 보람 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금남정맥도 일제의 조선 강점에 의하여 사라졌다. 그때부터 우리 고유의 산줄기인 백두대간, 장백정간, 13정맥은 없어지고 태백산맥, 차령산맥 등이 생겨나 지금까지도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있으니 이 기막힌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살이 뛰고 피가 끓는 울분을 어찌해야 좋겠다는 말인가!
캄캄한 밤을 달리던 차는 새벽이 돼 어둠이 걷힌 주천면을 지나고 지난번 산행 때 고맙게 차를 탔던 곳을 지나 모래재 휴게소로 향한다.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린 넓은 도로를 달려 이름 모를 재를 넘고 나니 눈앞에 펼쳐진 경관은 산 아래 길게 떠있는 운해로 인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산 아래 경치에 취해있을 때 눈에 띈 이정표엔 완주군이란 표시가 돼있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지도를 살펴봐도 도무지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지나간 도로가 지도에는 비포장도로로 돼있는데 편도 2차선 도로로 말끔히 포장돼 있어 그런 착오가 생긴 것이었다. 동네 주민께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아 대략 이해하고 부귀면 농협에서 개인택시를 불러 신궁저수지로 간다.
8시 35분부터 지난번 하산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길을 따라 30분쯤 올라가 금남정맥 570능선에 이른다.(9:05) 이제 금남정맥이 시작되는 주화산을 향해 정맥 길을 밟아 10분쯤 올라가 656봉에 닿는다.(9:15) 정맥 능선 길은 잡목으로 이어지고 있고 곧이어 나타난 널찍한 길을 지나 언덕길 위에서 바라본 운장산은 서봉과 정상에 서리가 내려 한층 멋있는 모습으로 웅장하게 펼쳐진다. 또 연석산 부터 이곳까지 금남정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669봉에 올라(10:15) 뒤돌아본 운장산과 연석산의 풍광은 산수화처럼 아름답고 장중하게 늘어선 모습이 탄성을 자아낸다. 669봉에서 바로 앞에 있는 700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길도 없고 낮은 능선으로 이어지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나중에 종주할 산객을 위해 주의 지점 정맥 길에 리본을 단다.
669봉서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려니 무척 힘이 든다. 그리고 정상이겠지 생각하고 올라간 봉우리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쉬지 않고 걸어서 밋밋한 700봉우리에 올라선다. 700봉을 뒤로하고 정맥종주를 계속하여 여러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데 똑같은 조릿대 숲이 반복돼 같은 지점을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75봉에 닿았지만 지도에 표시돼 있는 삼각점은 찾을 수 없었다. 669봉서 2시간쯤 소요돼 도착한 690봉은(12:25) 능선 분기점이고 길게 평탄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690봉도 독도에 주의하지 않으면 정맥 종주를 실패하기 십상이다. 정진관 대원은 멋진 지팡이를 얻었고 나도 지팡이를 구하기 위해 진행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시간은 지연되었지만 한 번도 실패 없이 정확한 정맥 능선 길로 진행하여 넓은 공터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12:55-13:40)
식사 후 가파른 내리막 정맥 길로 또다시 산 밑바닥까지 내려가 정맥이 훼손된 보룡고개로 내려선다. 그 고개가 아침에 길을 몰라 차를 몰고 지나간 곳이었다. 보룡고개를 신속히 통과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철망이 능선을 따라 설치돼 있다. 완만한 정맥 길로 올라가고 내려선 다음 경사가 급해져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걸음 두 걸음 뚜벅뚜벅 올라가 입봉에 닿는다.(14:45) 입봉은 헬기장으로 돼있고 삼각점(진안 309, 84년 재설)도 있다.
전망을 하니 우람한 운장산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고 발품을 팔았던 구불구불 들쭉날쭉한 정맥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또 앞으로 가야할 정맥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15분 정도 쉰 다음 주화산을 향해 내리막 능선을 타고 나아간다. 이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정맥 길이 반복되다가 주화산 직전에서 잘못 내려가 다시 올라가 진행을 한다. 이곳은 차 회전 방향으로 정맥이 이어지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침내 금남정맥이 시작되는 첫 산 주화산에 도착한다.(16:10) 주화산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주화산 분기점 세 갈래 길에 입을 맞추고 벅찬 감격을 누린다. 얼마나 보고 싶고 오고 싶었던 곳이던가! 이곳을 목표로 가장 힘들다는 겨울에 숱한 땀을 흘리며 모든 어려움을 꾹 참고 끝까지 침착하게 전진하지 않았던가!
금남정맥 종주는 오늘로서 마쳤다. 부여 부소산부터 이곳 진안 주화산까지 도상거리 123Km, 실질거리 약 148Km, 산행거리 190.5Km 를 한 번도 우회하지 않고 정확한 금남정맥 능선 길로 성공적인 진행을 했다. 그 무수한 잡목을 뚫고나가는 산행! 참으로 힘들고 지겨웠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모든 것이 그립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주화산서 여러 형태의 사진도 찍고 충분한 휴식을 한다. 이곳부터 앞으로 가야할 영취산까지는 금남호남정맥이다. 오늘 산행에서는 별로 힘이 들지 않아 이 정도의 산행이 알맞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주화산에서 내려오니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널찍한 길이 나온다. 산행을 마치고 모래재 휴게소로 내려와(16:55) 아침에 탔던 택시를 불러 부귀면 농협에 돌아온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참 산행을 하고 있을 텐데 차는 벌써 금산읍에 도착하고 있고 아직도 밖은 어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