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목적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을 가질 때에는 목적이 분명히 있다. 목적 없는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이고 무의미하므로 신앙이라 할 수 없다.
신앙의 개인적인 목적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난관을 믿음을 통하여 극복하고 미래에는 보다 나은 삶을 영위코자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에 오늘은 속고, 실패하고, 어려운 난관이 닥쳐와도 좌절하지 않는 것은 현실보다는 미래가 있기에 그 미래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생에 밝은 미래가 약속되지 않는다면 현실의 삶은 방향을 잃게 되고 인생은 좌절되어 타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인간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어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의 인간은 성인(聖人)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인세에 가르칠 때 그 전하는 말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성인(聖人)들이란 보통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을 뛰어 넘어 먼 미래까지 정확히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고, 그들은 또 그 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인생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여 왔다.
이러한 성인(聖人)은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않고 여합부절(如合符節)이라 사람들은 성인의 말씀을 인생의 길로 삼고 신앙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 공자, 예수와 같은 성인들이 와서 제시한 길은 이미 3000년, 혹은 2000여 년을 경과하여 그 운로(運路)가 끝에 다다랐다. 그래서 오늘날은 성인들이 예언한 대로 ‘말법(末法)’, ‘말세(末世)’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어처럼 떠돌고 있는 시기이다.
즉 도(道)의 근원이 끊어진 오늘날 인류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사상들과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세계를 살아가면서 단 한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켜 방황과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기성 종교는 각 파로 나뉘어 서로 주장을 달리하면서 자기 종교, 종파가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종맥(宗脈)이 끊어져 운(運)이 다하고, 오늘날 현실에 적응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에 빠져 있는 기성 종교들이 인류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여 신앙의 목적을 세워 준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뿐이다.
말법(末法)이란 법이 끝났다는 말이지만 새로운 법이 나옴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말세(末世)란 세상의 멸망을 말함이 아니라 기존의 세상은 끝이 나고 새 세상이 도래됨을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하고 있는 기존 종교의 성인들은 ‘새로운 법’이 나오고, ‘새 세상’이 온다는 것을 예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임무는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고, 그 ‘새로운 법이 나오고, 새 세상이 열릴’ 때까지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기존 종교의 성인들 외에도 많은 성현들이 ‘새 세상을 열어 주시고, 새 법(法)을 내놓으시는 분을 찾아라’라고 하였고, ‘새로운 스승을 만나 미래의 목표를 제시받아라’라고 하였다.
이렇듯 선대(先代)의 성인(聖人)과 성현(聖賢)들이 말법시대, 말세에 찾으라고 한 그 분들이 바로 하느님으로서 인세에 강림하신 ‘강증산(姜甑山) 성사(聖師) •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 도전(都典) 박우당(朴牛堂)’이시다.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새 세상의 도(道)를 창도(創道)하신 도주 조정산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셨는데 그 분께서 내놓으신 「포유문」(布喩文)을 보면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 해 -놓으셨고, 한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해 주셨다.
『전경』「교운」2장 41절에 있는 「포유문(布喩文)」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께서 무진년(戊辰年, 1928년)에 선포(宣布)하신 글이다.
포유문(布喩文)
曰人生處世惟何所欲惟名惟榮曰名曰榮人所共欲而求之難得
왈인생처세유하소욕유명유영왈명왈영인소공욕이구지난득
是何故也都是無他未如捷徑捷徑非他求也吾之所求有無量至
시하고야도시무타미여첩경첩경비타구야오지소구유무량지
寶至寶卽吾之心靈也心靈通則鬼神可與酬酌萬物可與俱序惟
보지보즉오지심령야심령통즉귀신가여수작만물가여구서유
吾至寶之心靈無路可通汨沒無形之中一世虛過幸於此世有無
오지보지심령무로가통골몰무형지중일세허과행어차세유무
量之大道正吾之心氣立吾之義理求吾之心靈任上帝之任意洋
량지대도정오지심기입오지의리구오지심령임상재지임의양
洋上帝在上浩浩道主奉命明明度數無私至公引導乎無量極樂
양상제재상호호도주봉명명명도수무사지공인도호무량극락
五萬年淸華之世肅我道友嚴我道友極誠極敬至信至德難求之
오만년청화지세숙아도우엄아도우극성극경지신지덕난구지
欲虛過一世至寃之于斯而豈不解寃哉喜吾道友勖哉勉哉
욕허과일세지원지우사이기불해원재희오도우욱재면재
인간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오직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명예(名)와 영화(榮)로다.
명예와 영화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구하고자 하는 바이나 그것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름길을 알지 못함이라. 지름길을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오로지 구하는 바에 무량하고 지극한 보배가 있으니, 지극한 보배는 나의 심령이로다.
심령을 통하면 귀신과도 가히 수작할 수 있고, 만물과도 가히 질서를 함께 할 수 있으되, 오직 나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을 통할 길이 없어 무형한 가운데 골몰하여 한 세상을 헛되이 보냈도다.
다행히도 이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의 뜻에 맡길지어다.
상제께서는 한없이 넓게 위에 계시고, 도주는 광대하게 명을 받들었으니, 도수는 밝고 밝아서 사사로움 없이 지극히 공정하게 무량극락 오만년의 깨끗하고 번성한 세계로 인도하는도다.
엄숙하라, 나의 도우들이여. 정성과 공경을 다하고 지극한 믿음과 지극한 덕을 갖추어라. 구하고자 하였으나 구하기 어려워 한 세상을 헛되이 보낸 그 원(寃)을 여기에 이르러 어찌 해원하지 못하겠는가? 기뻐하라, 나의 도우여. 힘쓰고 힘쓸지어다.
그리고 신앙의 목적에는 개인적인 목적과 창시자에 의한 신앙적인 목적이 있다. 즉 창시자에 의한 신앙의 목적 속에 개인의 작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작은 개인의 목적이 이룩되기 위해서는 창시자에 의한 신앙의 근본적인 목적이 이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대순신앙의 목적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하고,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을 위하여 인간개조(人間改造)를 하고, 세계개벽(世界開闢)을 하여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을 이룩하는 데 있다. 이것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신앙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신앙의 목적은 세계(世界)가 개벽(開闢)됨으로써 이 지상에 천국이 건설되고,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이 지상(地上)에서 신선(神仙)을 실현(實現)시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얻는 것이고, 정신을 개벽(開闢)하는 것인데, 정신을 개벽(開闢)하려면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정신개벽이란 정신이 완전히 열려 이치(理致)와 경위(經緯)가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써 이렇게 되려면 무자기(無自欺), 즉 자기가 타고난 본래의 양심(良心)을 찾아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것을 근본으로 삼아 수도(修道)하여야 신앙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수도(修道)란 신앙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가는 것이며, 수도(修道)하는 것은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 없이는 신앙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目的)이 있다면 목적지(目的地)가 있는 것이다. 이 목적지는 모든 인류가 바라던 희망이요, 이상향(Utopia)이다. 목적지까지 도달했을 때 수도(修道)는 성공하는 것이다.
이 목적지를 이름하여 불교에서는 용화세계(龍華世界)라 하였고, 유교는 대동세계(大同世界)라 하였으며, 천주교 • 기독교에서는 천년왕국(千年王國)이라 표현하였는데, 그런 표현들은 모두 대순신앙의 목적지인 선경세계(仙境世界)을 말하는 것들이다.
모든 인류가 바라고, 모든 종교에서 목적지로 제시하여 신앙하여 왔던 그 이상세계를 대순진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건설하여 이룩하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신선(神仙), 선녀(仙女)가 되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며, 상서(祥瑞)가 무르녹는 지상선경(地上仙境)이 건설되어 무궁한 복록을 누리는 세상이 금세기(今世紀)가 가기 전에 이룩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목적을 똑바로 알고 노력하여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