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어제 하동의 평사리와 토지 문학제가 진행 중인 악양의 최참판댁을 다녀왔습니다.
☆.. 08 05월의 풍경 : 토지의 무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 다녀오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혼자 하동으로 가는 길은 처음이었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집의 차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하여 부산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오전 8시 54분에 부산 사상터미널의 매표소 앞에 서니 하동행은 매 시간 1회 운행이어 오전 9시 차가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진해와 남해 행은 같은 입구이기에 낯이 익지만, 하동행은 처음이라 입구부터 두리번 거려야 했는데, 다행스럽게 금방 찾아 차를 확인하고 승차를 하였습니다.(안심)
자리를 잡고 서울에서 오셔서 하동에 계시는 옹달샘 언니와 문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버스는 정확히 오전 9시에 출발을 하였으며,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 곤양을 경유하였으며, 문산 휴게소에서 15분의 휴식을 주더군요. 자동판매기 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11시 9분에 하동 터미널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잠시 하동 읍내를 걸었습니다. 아주 큰 상설재래시장이 있었지만,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마치 익은 여자 한 분이 태평양 가운데 섬의 휴양지에서 잘 어울릴 듯한 모자를 쓰고 걸어 오더군요. 모르는 척 다가가 웃고 손을 잡았습니다.
옹달샘 언니와는 다섯번째 만남입니다. 서울에서 두 번, 수원, 마산, 하동 이렇게요.
마지막 만남이 지난 정월 대보름날 마산에서의 만남이었는 데, 우리는 각자의 거주지가 아닌 객지에서 수원에 이어 다시 만났으며, 하동재첩국을 박스 채 들고 오셨더군요. 그날 터미널의 물품 보관함에 재첩국 박스를 보관하고 어시장으로 이동을 하여 생선회를 먹었으며, 정월대보름 행사 촬영으로 일찍 헤어져야 했습니다.
다음 주에 서울의 사촌 혼사가 있기에 서울행이 예정되었다가 가정사로 서울행이 취소가 되는 바람에 옹달샘 언니에게 죄송하였는데, 이렇게 만나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동 읍내를 걸어 밥집에서 참게탕을 먹고 섬진강변을 걸어 전각전시회를 관람하고 평사리로 갔습니다. 악양으로 가는 평사리 들판이 황금색으로 빛나더군요. 온갖색과 모양의 허수아비들이 토지 문학제 나들이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 토지 문학제 자세히 보기 : 토지문학제
토지문학제는 위의 링크를 참고하시고 저는 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막 평사리에 닿으니 전남 석곡의 규화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늦어도 오후 5시에는 최참판댁에 도착할 수 있다고요.
규화 언니와는 10월 3일의 약속이 무산되었기에 평사리로 간다고 하였더니 연락이 온 것입니다.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한 송이 꽃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떨어지는 잎새에도 사연을 만들고 싶은 계절입니다.
사진으로 만나는 평사리와 악양
감나무 잎이 물이 들고 염색한 천이나 옷가지들이 평사리 들판 위로 힘차게 펄럭였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몇 분의 할머니들께서 직접 수확한 채소와 곡식, 과일 등을 판매하고 계셨습니다. 그 중에 조롱박입니다. 조롱박 속에서 씨앗이 짤랑거렸습니다. 박을 삶아 말린 건데요, 악기 소리 같아 신기하여 옹달샘 언니가 흥정중입니다.
흥정? 박 한개에 천원인데, 차나무 열매와 조롱박 씨앗을 더 받았거든요. 시장의 재미는 흥정 아니겠습니까?
언니가 두개를 구입하여 한개는 제게 주었습니다. 집에 와서 또 흔들어 보았습니다.
어제 언니가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가방 안에 별 게 없었지만, 카메라질에 무거울거라면서 가방을 언니가 메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이 가방안에 있어서 잠시 헤어졌을 때 통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를 하니 가방 안에서 소리가 나더라나요.
어제 차림은 주머니가 없었습니다.^^
혼자 다녔습니다.
용이 아저씨네 댁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후 햇살에 담쟁이가 곱게 빛났으며, 곳곳에서 밤이 말려지고 있더군요.
용이 아저씨네의 주인과 봄에 이어 다시 인사를 나누고 제법 많은 풍경을 담았습니다.
과꽃이 많이 피어있었습니다.
올 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혼자 막 흥얼거렸습니다. 마당 가득 과꽃이 피었습니다~♪~
사진은 부분이지만, 대문부터 마당 가득 과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조가 나들이객들이 많아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무슨 요조숙녀라고.^^
나들이객들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때로는 증명사진을 찍듯이 담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디카의 파격적인 보급으로 많은 이들이 모델보다 더 모델다운 포스를 잡습니다.
토지 문학제 행사 마무리를 하시는 분에게 제 모습도 담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 어두워(햇살이 강하여) 이쁜 여자를 제대로 감상 할 수가 없군요.^^
마을 입구부터 청사초롱이 걸렸으며, 시화전이 곳곳에서 진행중이었습니다. 진짜 가을이었습니다.
▲ 토지의 무대인 마을의 통용 화폐입니다. 이 돈으로 물건을 구입한다고 하더군요. 개당 5,000원의 값어치를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 소녀들이 누름꽃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누와 접시 등이 마음에 닿았지만, 짐이 될 것 같아 구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헤어졌던 언니와 만났습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참게탕 덕분에 물이 켰기에 캔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점방이 멀었기에 행사장의 요깃집으로 가서 동동주와 파전을 먹었습니다.
계산은 물론 언니가 하였지요.
장부에 적습니다.
점심 : 참게탕 - 밥 한 공기 반.
새참 : 동동주와 파전 - 동동주 한 잔 반.
파전 접시로 보아 중국음식점에서 잡채밥 내지 볶음밥을 배달시켜 드시고 접시를 드리지 않았네요. 어쩌면 이 댁이 예전에 중국음식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언니와 김정욱 화백의 야생화 그림 전시회에 갔습니다. 훈장님 댁의 안쪽으로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으며, 전시회 중이더군요. 그동안 사진으로 담았던 많은 들꽃을 그림으로 만났습니다. 그림의 제목을 확인않고도 꽃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수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입니다. 깊은 가을 같지 않나요?
대문 밖에서 까치발로 담았는데, 개 두마리가 크게 짖어 혼났습니다.
그 위쪽의 들로 가는 길목에 고양이가 가만 바라보더군요. 모델이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나도 담아 줘~^^
이제 최참판댁으로 가 보겠습니다.
평사리 들판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마을 입구부터 시작 된 시화전은 최참판댁까지 이어졌으며, 자연스레 김달진 문학제를 비교하였습니다.
지난 봄 작약이 핀 반대 편 벽에 옥수수가 걸려 있습니다.
곳곳에서 만나는 맨드라미와 소국이 정겨움을 한껏 묻히더군요. 가을이 맞았습니다.
누가 그린 벽화일까요?
담쟁이가 이쁘게 물이 들고 있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기에는 이른 계절이지만 생각이 났습니다.
가뭄으로 흙이 폴폴하였지만, 잎새들은 저마다 어울리는 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습니다.
색색으로 한 잎씩 똑똑 따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최참판 댁 입구에는 누름꽃 체험 등과 함께 부채에 글씨를 써 줍니다. 부채값만 지불하면 서각을 하시는 정대병 님과 다른 한 분이 잘 어울리는 글귀 등을 적어 주었는 데, 옹달샘 언니가 우리 큰늠 이름까지 적게 하여 부채를 주시더군요.
서각을 하시는 분은 옹달샘 언니의 친구 남편분이었기에 많은 부채를 부채값도 지불않고 가지고 왔습니다.
밥입니다. 그 옛날 도시락 밥.
손자들이 밥을 먹지않아 애가 탄 할머니께서 도시락을 준비하여 오셔서 아기들에게 먹이고 계셨는 데, 멸치 볶음이 댕기기에 집어 먹고, 젓가락이 놀고 있기에 밥을 먹었습니다.
멸치볶음과 갈치구이, 김치의 맛이 찰밥과 잘 어울렸습니다.
다니다보면 이것저것 고플 때가 많은 데, 앞에 상이 펼쳐져 있으면 자리를 막론하고 슬쩍 엉덩이를 앉혀 일행처럼 행동합니다.
보기와 딴 판인 저입니다.
다닐 때는 결코 깔끔쟁이가 아닙니다.^^
규화 언니가 누리와 수인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평사리를 떠나 참게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딜가나 항상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제 해는 다른 날 보다 더 짧더군요.
해는 고향에 더 오래 머무는 줄 알았는데.
섬진강 풍경과 함께 한 식사 풍경은 후에 따로 올리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문자와 전화로 안녕을 물어 주신 두 분 언니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그리움은 아직 완전 해갈되지 않았다는 것…….
산다는 것 /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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