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 89절......형렬에게 말씀하시길
後人山鳥皆有報
勸君凡事莫怨天
후인은 山鳥 임을 모두에게 알린다.
제군들이여 범사에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여기서 山鳥 를 섬도(島)로 알고 있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일까.
섬도(島)이기 때문에 호가 상도(上島)인 그 분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 산조( 山鳥 )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島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상도의 659번지를 생각할 수 있다.
상도 도장의 둘레의 전부가 659번지이다. 지금도 상도에서는 도장 주변의 부지를 계속 넓혀 가고 있다. 그 상도가 바로 섬도(島)의 이치이다.
그리고 山鳥 는 분명 山+ 鳥 이다. 이 뜻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섬도(島)의 바탕 속에 山과 鳥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山은 무엇이며, 鳥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쉽게 풀어 보자 . 山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삼신의 이치이다. 원위의 삼신, 상도도전님께서도 삼신을 바르게 모신 사람이 바로 대두목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鳥의 이치는 분명 대두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섬도(島)에는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도의 659번지에서 그 이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상도도장의 도전님을 대두목이라 한다. 과연 그 분은 대두목일까!
당연 상도의 수도인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왜냐면 미륵세존님을 원위에 모심으로써 삼신의 신위가 완성이 되었고, 더 이상의 신위가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당연 상도의 도전님께서 도통줄을 쥐고 있는 대두목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대두목이신 상도도전님께서는 도인들에게 알아 듣지 못할 말씀을 한 바퀴 돌려서 말씀을 하신다. 수도인들은 도전님의 깊이 있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어려우니 그저 들리는 말씀만 믿으려 한다. 문제는 그 어려운 알아 듣지 못 할 앞과 뒤가 안 맞는 그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도도전님께서 중요하게 하시는 말씀은 올곧은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어떤 뜻을 담고 이야기 하시는지 알아듣기 어렵다. 그래서 영성이 열려야 한다. 영성이 열리면 아무리 어렵게 말씀을 돌려 하더라도 무슨뜻을 담고 하시는 말씀인지 다 알 수가 있다. 도전님께서도 "영성이 열려야 된다"고 하셨다. 모두 그런 이유에서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도전님께서는 "삼신을 바르게 모신 사람이 대두목이야"라고 하셨는데, 수도인들은 이 말씀이 도전님을 두고 하시는 말씀일거라고 착각을 한다. 도전님께서 세 분 신위를 바르게 모셨으니 당연하게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나를 미륵이라 한다. 나를 하느님이라 한다"며 답답해 하시면서도 "내가 대두목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들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왜 그러셨을까. 당신님을 대두목이라 하시지도 않으시면서 하느님이란 말씀은 더더욱 내치신다. 더군다나 미륵을 모셔놓고 "나를 미륵이라 한다"라는 말씀은 더욱 이상하게 들린다. 누가 미륵을 모신 도전님을 두고 미륵이라 한단 말인가!
미륵세존께서는 당신님을 천자라고 하는 박성구도전님을 두고 "나를 받드는 일이 지나쳤을 뿐이야"라고 하셨는데 상도도전님께서는 천자라고 하는 도인들을 도장에서 쫒아 버리셨다.
모두 밖으로 내 보내셨다.

중곡도장 숭도문의 '개문납객기수기연'

개암사 산신각의' 개문납객기수기연'
윗 그림의 네 분 중에 복숭아를 들고 계시는 분이 대두목이다. 후천을 이끌어 가실 바로 그 분이시다. 아무리 봐도 대두목의 이치도 천자의 이치이다. 개문납객기수기연의 그림만 봐도 알수있다. 하늘의 삼천과 땅의 일지가 천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음양이 아닌가. 선천의 하늘과 후천의 땅이다. 하늘과 땅은 항상 함께하고 있으니 하늘과 땅이 다를 수 없다. 하늘과 땅의 의미를 모른다면 삼천과 일지의 이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늘도 땅도 신명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하늘을 뜻하는 신명의 이치에 삼신이 있고 땅을 뜻하는 신명의 이치에 일지에 해당하는 대두목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음양이라면 삼천(三天)은 천자이고 일지(一地)는 천자가 아니라면 개문납객 기수기연에 같이 나란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음독양(獨陰獨陽)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음양은 함께라야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절대 음의 이치가 천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천자라고 말하는 도인들을 두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씀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쫒아내버리셨다. 왜 일까. 판 밖으로 쫒아 낸 것이란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판 밖이 있다면 내 보내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맞다면 판 밖의 진인이 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상하지 않는가. 상도도전님을 모두가 대두목이라 생각한다.
박우당께서 살아 계실 때 모두 산미륵이라 했다.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천하신 이 후엔 원위가 아니라 내정에 모셔졌다. 우당을 상도방면의 박성구 도전님께서 지금의 상도 도장에서 원위에 모신 것이다. 상도는 이렇게 판 밖인 된 것이다.
대순의 임원들이 하지 못한 일을 상도에서 하였다 해서 판 밖으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권력의 남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왜 또 판 밖이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가 바로 대두목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상도에 계신 도전님의 정체, 즉 다시 오신 구천상제님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판 밖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네 분이 세 분이 되는 이치를 알 수가 없다. 양산양박이 네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양산은 증산과 정산으로 증산께서는 단주의 원을 풀어 상생의 기운으로 돌리기 위해 해원도수로 단주의 후신으로 정산이신 도주님을 바둑판 도수에 쓰셨다. 그 분이 옥황상제님으로 중천하늘에 계신 신명계의 왕이 되시고, 신명들의 대표가 되시는 분이 바로 미륵세존님이시다. 미륵께서는 신명계와 인세를 위해서 구천에 하소연하였기에 구천상제께서 후천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미륵께서는 우리에게 보은신이 되는 것이다.
구천상제께서는 공사를 보셨고, 옥황상제께서는 공사를 풀어 법방을 짜시고, 미륵께서는 뒤에 오실 진인을 위해 집을 지으셨다.
이렇게 세 분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모든일을 함께 보시는 것이다.
양박은 박우당과 박성구도전, 두 분으로써 미륵세존님과 구천상제님이시다.
미륵세존께서 구천에 하소연하여 미륵의 일을 대신하여 구천상제님께서 직접 인세에 강세하셔서 모든 공사를 보시고 이제 다시 오셔서 마지막 일을 이루시게 되었다.
미륵의 일을 대신하러 오셨기에 미륵세존과 쪽박골의 이치로 오시게 된 것이다.
그래서 " 내가 곧 미륵이라"고 하신 것이다.
성경의 "나는 처음과 끝이며...알파와 오메가이다."의 뜻이 바로 시작과 끝을 상제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 일은 천지굿으로써 증산께서 보신 고부인과의 공사가 마지막 음양도수로써 이루어지는 공사이다. 그 마지막 공사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판 밖이란 수부께서 계시는 곳이라야 천지굿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천자라도 세 분 모두가 하느님일 수는 없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구천상제님이야 말로 절대자이시다. 그 절대자께서 말씀하시길 "수부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하셨다. (도전편)
구천상제께서 삼신으로 선천을 관장하셨다면 수부께서 이제 후천을 관장하신다.
선천의 구천상제님과 후천의 수부이신 대두목은 음양으로 하느님인 것이다. 이 두 분을 두고 천지(天地)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부모(天地父母)라는 것이며 천지부모가 아니면 완벽한 도통군자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음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성경말씀에 "우리의 형상대로 너희를 만드노니..."
이것은 인간계가 신명계의 그림자라는 말과 같다. 인간세상의 이치를 안다면 신명의 이치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상도 도전님의 정체를 모르고서는 대두목의 이치를 알 수가 없다. 대두목을 왜 鳥로 표현을 했을까.
새는 봉황을 의미한다. 후천의 음도수의 주인을 두고 鳥로 표현을 한 것이다. 바로 봉황인 것이다. 용이 후천의 동물로써 선천의 하느님에 비유되고 있고 봉황은 후천 음도수의 하느님에 비유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증산께서는 금곡에게 용봉(龍鳳)이란 글을 남기신 것이다.
천지음양도수로써 선천의 용(龍)과 후천의 봉황(鳳)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천과 후천의 음양도수인 것이다.
해원편을 보면 상도의 도전님을 용(龍)에 비유하고 있다(해원편,76쪽)분의 이치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도 상도수도인들은 모른다. 구렁이를 용(龍)으로 불러 줄 분이 바로 봉황(鳳)의 이치로 오시는 수부님이신 것이다.
두 분이 천지굿을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들이 탄생을 하는 것이니 미륵세존께서 島가 아닌 山鳥라고 하신 것이다.
상도도전님의 책들 속(심우도, 교화집,개유보,대순신앙)에 나오는 내용이 삼신의 자리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 미륵세존을 모심으로써 삼신의 신위가 완성이 되었다고 나온다. 미륵세존님의 자리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그림으로 나타내시는데 , 항상 산의 그림을 나타내면 가운데 산을 비우시고, 山자로 표현하실 때는 가운데가 없다고 표현을 하신다. 그래도 도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왜 가운데를 자꾸 비우실까. 그 자리는 미륵세존님의 자리가 아니다. 구천상제님의 자리가 아닌가. 왜...... (교화집56쪽, 심우도37쪽, 개유보 125,126쪽, 대순신앙 98쪽 맨아래)
아직도 구천상제님의 자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를 하고 있다. 깨닫지 못하면 과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증산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무엇일까. 왜 다시오신다고 하셨을까. 그것도 궁벽한 곳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모두 신위로 오신다고들 한다. 그러나 강증산상제님을 모시지 않은 곳이 어디있는가. 대순진리회 그 어느곳도 강증산을 모시지 않은 곳은 없다. 그리고 증산도나 그 밖의 모든 한국민족종단을 통틀어 모시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에 가장 궁벽한 곳이 강증산을 제대로 모신 곳이란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두고 "궁벽한 곳에 있으면..."아무도 찾지 못한다고 하셨을까. 직접 찾으실 거란 말씀은 무엇인가 말이다. 잘 생각 해 볼 부분이다.
아주 중요하다. 마지막 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다. 그러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치에 맞다면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강증산께서 다시 오신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어떻게 다시 오신다는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되지 않을까.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나머지는 쉽다. 대두목을 찾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뜻이다.
상도에서 나온 많은 책들이 비결서이다. 그러나 그 책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미륵세존을 모심으로써 원위가 완성이 되었다. 더불어 가운데 산을 비우시고 미륵을 모셨기에 신위가 완성이 되었다고 글로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것을 꼭 그림으로 그리고 山자를 통해서 자리까지 설명하시면서 가운데를 비우셨다. 그 자리가 미륵세존님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그것을 알아야 음양인 山鳥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천상제님께서 다시 오신 배경에 대해서는 오봉산의 진리의 "대순진리회는 종통종맥이 정말로 없는가'에서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