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 뒤의 중대부고
지난 토요일 저녁,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도시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였다고는 하지만 눈이 오자 많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고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 시험이 끝난 중대부고에는 더없는 축복이자 선물이었을 것이다. 한밤 중에 크기가 한 움큼은 될 법한 눈이 어둠을 밝히는 광경을 보며 1년 간 고생한 마음을 치유하고 포근함을 느꼈을 것이다.
눈은 내리면 정든 곳은 더욱 황홀하게, 밉던 곳이라도 포근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묘한 것이기에, 중대부고에 갈 것이 기대가 되었다. 중대부고 인(人)으로서 그 동안 학교에 가졌던 온갖 감정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하얗게 눈덮인 모습을 보면 모두 사르르 녹을 것이다.
중대부고가 눈에 덮인 모습은 어떨까? 밥을 거르며 점심 시간을 모두 투자해서 학교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운동장은 모두 눈뿐이다. 흰 운동장을 걸어 다니면, 신발에 굽을 단 것처럼 뽀드득 소리가 항상 따라 다닌다. 옆의 사진을 보면, 빠른 걸음으로 급하게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있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고 조심조심 한 걸음씩 옮기는 법을 눈을 통해 배운 듯하다.
이런 와중에도 사춘기의 혈기왕성함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남학생들은 축구에 열중이다. 축구도 경기장에 따라 맛이 다를까, 잔디 구장보다도 더 급이 높은 것이 있다면 눈 구장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눈은 교실에서만 있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운동장 끝에는 스탠드가 있다. 체육 대회나 축제 때에는 관람석으로 쓰이기도 하는 이 곳에도 이미 발자국이 난무한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수돗가도 눈이다. 눈이 없어질까봐 물을 틀어보는 것이 망설여진다.
운동장에서 도곡렉슬 쪽 철봉으로 가면, 낯선 기둥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저것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있었던 것일까. 살짝 기울어져 있는 이것은 나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운동장 농구 골대 주변에서 '후배 사랑' 이라는 종이가 보인다. 눈은 선후배 간의 관계까지도 좋게 만드는 것일까.
운동장에서 아래길로 쭉 내려오면 등나무가 나온다. 조금은 외진 곳에 있는 이 등나무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있어 보드랍다. 이 곳은 학교에서 가장 조용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여기에 눈이 내려 고요함이 더 깊이지고, 학생들에게는 서로 지난 1년 이야기를 나누기에게도 안성맞춤일 것이다.
중대부중과 중대부고 축구부가 사용하는 버스도 백색 모자를 썼다. 사나운 짐승을 눈으로 길들여놓은 듯이 버스는 눈 속에서 고요했다.
운동장과 등나무를 잇는 길에는 얼음이 깔려서 걷기 힘들다. 조심스럽게 가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쉬워서 여학생들은 서로 손잡고 내려가기도 한다.
아무리 걷기 힘들다지만, 학생들에게 놀이기구가 되지 못할 곳은 없나 보다. 이 길이 공짜 썰매장이 되어 버렸다. 앞에 20202 표가 붙은 의자는 최고의 썰매 대용이다.
뒤에 눈싸움을 하는 여학생들이 보인다.
눈 맞은 계단이 얼어서 위험해 보인다. 1,2 학년 뒷반 학생들이 주로 쓰는 이 계단에 많은 학생들이 미끄러지지 않았을까..
학교가 빛을 받아 아름답다. 그 햇살이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다. 오른쪽 사진에서, 1년 동안 푸른 상록수도 겨울에는 흰 옷을 입는다.
이런 눈 온 후의 기쁨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일까?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부터 방학 전까지는 학생들에게 애매한 시간이다.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영화를 보거나 카드 게임을 하면서 소일한다.
눈 온 후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길은 어떠했을까.
중대부고 학교 건물은 미로다. 저 끝은 막힌 듯하지만 왼쪽으로 꺾은 뒤 계속 앞으로 길이 이어진다. 학교를 2년을 다녀도 찾지 못하는 교실이 있으니 방문자들에게는 미로가 아닐 수 없다.
이 어지러운 미로 속에서 싫든 좋든 3년 간 지내야 한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는가는 자신의 몫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작년에 생긴 기념탑.
기념탑 뒤쪽에 써있는 건립 취지문이다. '웅비하라! 중대부고 동문들이여'
마침 이번에 배운 2학년 문학 교과서에는 계절에 맞추어 김진섭의 '백설부'가 나왔다. 김진섭은 눈이 내리는 것을 '경쾌한 윤무(輪舞)라' 하며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高空) 무용이 원거리(遠距離)에 뻗친 과감한 분란(紛亂)'이라 표현하며 눈을 예찬한다. 그리고는 그 광할한 하늘을 춤을 추며 경쾌하고 자유롭게, 마구 내리는 것을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눈 덮인 공원에서 뛰어 다니는 사슴, 성사(城舍) 안 정원에서 피어있을 외로운 꽃을 상상하고 도시를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눈을 꿈꾸지만, 결국 그는 도시 속에서 체험하는 눈은 술집에나 가서 술을 들이키는 것일 뿐이니,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도시인으로 살면서 고등학생들은 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 눈 오는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고등학생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김진섭도 탄식했듯이 도시란 삭막한 곳이고 도시인들이 눈을 경험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도시 속일지라 하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에 내린 눈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고 사막에 내린 오아시스와 같은 삶의 희망일 것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큰 보람을 얻듯이 눈의 아름다움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단 눈만이 아니라, 사람이 겪어가는 모든 일들은 위기로 다가올 수 있지만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기회로 바꾸어 갈 수도 있다. 세계의 조그만 나라의 복잡한 도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온 세상을 누비며 내리는 눈을 보며 마음을 항상 맑게 한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중대부고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 될 것이다.
중대부고 2학년 최성호 2006년 12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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