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4] ■ 2.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 제안문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사업을 제안하며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의 제정은 3ㆍ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을 재건하면서 국민들이 서로 맺은 신성한 약속이었다. 분단을 극복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제헌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세력이 꿈꾸었던 해방된 새 나라의 미래상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은 제헌헌법이 제시했던 새 나라의 모습에 부합되는가?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제헌헌법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자던 당연한 다짐을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을 넘어 회사에서 이익이 발생할 때 그것을 나눠먹을 권리까지 누려야한다던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왜 굴뚝으로, 철탑으로, 전광판으로 내몰리고 있는가?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들먹이는 수구세력은 정작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담보하는 소중한 제헌헌법을 왜 가르치려 하지 않는가?
불행하게도 한국의 헌정사는 첫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비틀대기 시작했다. 국회프락치 사건, 반민특위의 무력화, 백범 김구의 암살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지닌 사람들이 일제 고등경찰과 헌병 출신자들에 의해 거꾸로 청산되는 과정이었다. 전쟁 발발 후 서울 시민들에게 “가만 있으라” 라고 방송한 뒤 다리 끊고 도망간 이승만 등은 서울 수복 이후 돌아와 피난 못간 시민 수십만을 부역자로 처벌했다. 친일을 반공으로 가린 일제 고등경찰과 헌병 출신자들은 조작 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독재정권 유지의 첨병이 되었다. 이들 공안마피아들이야말로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 장본인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암 관피아의 중추세력이다.
한국사회는 나름 치열한 민주화 과정을 거쳤고 민주정권 10년 동안 과거청산도 하느라고 했다. 그러나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으로 헌법 파괴를 일삼던 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법치를 내세우고 헌법을 들먹이고 있다. 몇몇 공안조작 사건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있지만, 고문과 조작의 당사자들은 사과조차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고문과 조작으로 받은 훈장을 달고 국가유공자 행세를 하다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히게 된다. 대한민국 100년을 맞으며 우리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역사 앞에서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으로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한 자들의 책임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길 것이다. 지난 시기의 과거사 정리작업은 학살 및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을 단 한 명도 감옥에 보내지 못했으며, 가해자를 적시하지도 않았다. 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의 법정에 시효란 없다. 유럽에서는 70년이 지나도 나치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한 자들이 현실의 법정은 피해 갔을지 몰라도 역사의 법정마저 피해갈 수는 없다.
해방 64년이 지난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지만, 수록대상 친일파 거의 대부분이 이미 죽은 뒤에 발간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우리들은 이 질곡의 현대사를 낳은 장본인들 중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정리하여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을 편찬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공직자 또는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일정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그 직위와 공권력을 이용하여 ▲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 반헌법 행위를 자행한 자 ▲ 반헌법 행위를 지시 또는 교사한 자 등이 주요 수록대상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반민특위 습격 사건, 민간인 학살, 진보당 사건, 인혁당 사건, 학림사건, 부림사건, 유서대필 사건, 각종 조작간첩 사건 등 주요 공안사건의 핵심 관계자들과 고문수사관, 고문을 묵인한 검사와 판사들 중 200-300명가량을 수록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오만을 피하기 위해 행위 시의 법률로도 명백히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른 자들만을 수록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이 작업을 제안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다짐하고자 한다. 첫째, 피해자들의 짓밟힌 인권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료에 기초하고 검증에 검증을 거듭할 것이다. 우리들의 작업도 언젠가는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둘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필코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상을 달리하여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의 관련자들께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니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떳떳한 자격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께
먼저 그 동안의 고통에 대해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들고 괴로우시겠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시어 가능한 한 자세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책임 있는 지식인들께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대표적인 국가폭력 가해자 200~300명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200명이 정리하도록 하려는 작업입니다. 이 무거운 역사적 짐을 같이 지는 마음으로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의 집필자로 참여해 주십시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께
현행 헌법과 제헌헌법을 꼭 읽고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헌법의 주인이고,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친일파로부터 이어져 온 반헌법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과 헌법을 되찾읍시다.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의 시민편찬위원이 되어 이 사업이 완결될 수 있도록 정신적, 물질적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2015년 7월 17일 67주년 제헌절에
고광헌 김두식 김귀옥 김명인 김민웅 김상봉 김진숙 김칠준 김형태 김희수 박노자 박인규 박태균 서해성 선대인 아임피터 오유석 오창익 이명춘 이상호 이재승 임경석 정용욱 정태인 정희진 조 국 조영선 주진우 최강욱 하종강 한상권 한홍구 홍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