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십자가입니다.
내가 왜 십자가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십자가가 되었을까요?
몇년 전에 목수의 아들이
나를 깎고 다듬을 때
정성되이 만드는 모습을 보고
저는 제가 임금님의 의자,
왕좌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형틀이라니요.
내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저 앞의 예수라는 이가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사형이 선고됩니다.
저 이가 나와 함께 죽게되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도 저처럼 억울하게 보입니다.
모든 이의 말도 안되는 모함,
횡설수설하는 고발에 저처럼 억울할텐데
항변하지 않습니다.
침묵합니다.
저 이는 왜 저럴까요?
저와 닮은 이가
저를 짊어지고 가게 생겼습니다.
2.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나를 짊어집니다.
이 사람이 나를 만지는 손길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만든 이 입니다.
목수의 아들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나를 만든 이가
나에게서 죽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창조한 이가 왜 피조물에게서 죽습니까...
예수가 나를 짊어지고 가는 손길에서 느낍니다.
"반갑다고... 오랜만이라고..."
저를 안고 가듯이 가는데
누가 누구를 짊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예수를 지고 갑니까,
예수가 나를 지고 갑니까...
어떻게 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약한 몸으로,
상처투성이 몸으로
어떻게 이 길의 끝까지 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어떻게든
이 길에서 예수는 나와 함께 갑니다.
3.
나는 십자가입니다.
나는 넘어집니다.
누구 때문에 넘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넘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분노하는 돌팔매질과
의도적으로 넘어뜨리려 밀쳐대는 사람들로 인하여 넘어진 것인데
왜 저는 예수가 원망스럽습니까...
나를 쓰러뜨린 것은 이 사람이 아닌데
왜 나는 이 사람이 원망스럽습니까?
왜 나는 이 넘어짐에 하느님 당신이 원망스럽습니까...
그런데 예수는 나를 다시 안습니다.
부여잡고 끌어안고 기꺼이, 기필코 같이 가려고 합니다.
왜 이 사람은 다시 일어섭니까...
왜 다시 나를 끌어안고 짊어지고 가려합니까...
제가 이 길을 끝까지 가야합니까?
나도 더럽혀지고 침뱉어지고 상처투성인데
왜 나를 끌어안습니까...
왜 나입니까...
4.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웁니다.
나도 눈물이 납니다.
나에게도 나를 위해 울어줄 이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마저도 없다는 생각에 더 서러워지는 이 길입니다.
왜 나는 이토록 내가 불쌍합니까...
왜 나는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우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저에게 위안이 됩니다.
나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닌데
저를 위해 울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치욕과 설움의 길에
기도해주는 것만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왜 이렇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겁니까...
나는 아픈데, 서러움에 잠식하고 싶은데
왜 저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내 마음을 달래어 주는 겁니까...
5.
나는 십자가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길에
어느새 나는 다른 이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키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이가 나를 들고 있습니다.
예수가 더이상 가지 못하는 듯하여
병사들이 여행하는 이에게 저를 들게 했습니다.
저 사람도 억울하게 보입니다.
그냥 지나가던 이가
억지로 하는 도움의 손길에도
저는 이끌려 가게 됩니다.
저런 사람까지 필요로 하는 이 길입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가야하는 길입니까...
키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나를 들고 있는데
이 사람이 왜 예수와 닮아 보입니까...
단순히 도움을 받아서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를 짊어지는 이 손길도
예수와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이가 저를 거칠고 함부로 대해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 손길은
억지로 한다해도 어느새 예수와 닮아 있습니다.
왜 저 사람마저 예수와,
나와... 닮아 있는 것입니까...
왜 고톰을 담은 이 처지가 같아 보입니까...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왜 서로 닮아져 갑니까...
6.
나는 십자가입니다.
생나무였다면 예수는 나를 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온 몸에 수분이 다 날라간 나처럼
예수도 피와 땀이 말라가는게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까지 진을 빼어 가야하는 길입니까...
피골이 상접하여 점점 더 생기가 없어지는 죽음이 느껴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죽어가는데
왜 이렇게 죽이지 못해 안달입니까...
애초에 왜 죽게 되도록 만드셨습니까...
죽음이 가져다 주는 의미도 큰데
왜 고통스러운 죽음이어야 합니까...
한 여인이 수건을 들고 옵니다.
나를 짊어진 땀과 상처로 피투성이된
만신창이 예수의 얼굴을 닦습니다.
피와 땀을 닦아가는데
피와 땀이 솟는 듯 예수가 기운을 냅니다.
저 여인도 예수의 피땀 적신 수건을 부여잡고 눈물을 보태는데 기운을 북돋워줍니다.
고통스러운 죽음의 길에
어찌 이런 기운을 낼 수 있습니까...
어찌 바라보는 눈으로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까...
그 예수의 눈이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다시 짊어집니다.
7.
나는 십자가입니다.
나는 또다시 예수와 함께 넘어집니다.
넘어져서 아픈 게 아니라
넘어진 나를 또다시 밟고 집어 던지는 사람들 때문에 더 상처받습니다.
왜 사람들은 고통을 줍니까...
자기들도 맞고 내쳐지고 상처 나면 아프다는 것을 알텐데
왜 서로 고통을 주고 받습니까...
넘어지게 한 것도 모자라
짓밟고 내치고 함부로 대하는 이 사람들의
이해 못할 행동에 더 분노하게 되고 참기 힘듭니다.
그런데
왜 예수는 침묵합니까
주변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 권능으로 왜 가만히 있습니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치유해 줬다는데
왜 자기의 억울한 고통은 참아 받습니까...
예수가 나를 또 짊어집니다.
나는 이 사람의 지팡이가 아니라
나 또한 고통을 주고 죽음까지 주는 십자가인데
나를 또 끌어 안습니다.
내 아픔도 안아주듯이
또 나를 안고 갑니다.
8.
나는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저주하고
질색하면서 바라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이를 받아들이게 됐고
절망과 우울의 늪에서 빠진 채로 있었습니다.
나는 저주받은 십자가로
늘 외면당하고 소외되어 있습니다.
예수도 이와 같은 신세를 받아들이고
절망과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여인들을 위로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을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합니다.
위로를 받아야 할 이가 위로하고
저주받은 자가 축복을 하는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나처럼 절망과 우울의 늪에 빠져야 할 사람이
왜 나까지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겁니까...
9.
나는 십자가입니다.
나는 또다시 예수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이번엔 누가 넘어뜨린 것도 아니고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힘이 다해 넘어졌습니다.
기력이 다하고 한계에 치달았습니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상태로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고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왜 예수는 또 일어납니까...
나로 인해 더 고통스러울텐데
왜 또 나를 업고 갑니까...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한을 바라보는 것입니까...
놓고 말면 그만인 것을...
죽고 말면 그만인 것을...
왜 죽음을 넘고자 합니까...
왜 고통과 죽음이 끝이 아닌 것처럼
끝까지 고통받으며 죽기를 다하는 것입니까...
10.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발가벗겨집니다.
저 살이 묻어나는 고통을 저도 압니다.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 생살이 찢겨나가는 고통
그리고 까 벗겨지는 수모...
나의 저주도 그리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수치스러운 부분은 올리브 입사귀로 가리면서
왜 이 사람은 벗기는 겁니까...
하느님 당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아시는 당신이 벌하실까봐
하느님 당신을 벗기고 싶어하는 거 아닙니까...
헐벗겨진 예수의 몸이 내 몸에 닿습니다.
아픈 살이 만났습니다.
더 아플 줄 알았는데
예수의 온기가 나를 덮어줍니다.
뜨거운 피를 흘려
시체처럼 차가울 줄 알았는데
왜 그 남은 온기를 나에게 줍니까...
나 또한 당신을 죽이는 십자가인데...
죄를 지은 태초의 인간이
하느님 당신의 부름에 나무 뒤로 피했던 것처럼
저도 예수를 숨겨주고 싶지만
오히려 깡그리 보여지게 하고
고통과 수모를 주는 십자가인데...
11.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나에게 못 박힙니다.
저도 함께 못 박힙니다.
뚫어진 손과 발의 피가 저에게 스며듭니다.
내 몸에 예수의 생명이 배어듭니다.
어쩌자고 예수는 나에게 깊이 새겨지고 스며들고 배어듭니까...
어쩌자고 이 못난 나와 하나가 되었습니까...
왜 죽음의 상처로 저와 하나가 되었습니까...
태어날 때는 별 볼일 없는 구유와 하나 되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참혹한 저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음엔 또 누구와 하나가 되시렵니까...
배고픈 이에게 빵을 떼어주고
아픈 이게 손을 얹어주고
마귀를 내쫓던 하느님의 손길은 이제 못 박혔고
적대자들 사이에서도 유유히 가실 길 가시던 그 발,
복음을 전하고 물 위를 걷던 그 발도 이제 못 박혔습니다.
이제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왜 이젠 더 이상 가시지 않아도 될 것처럼
저주받은 나와 한 몸이 되셨습니까...
12.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나와 함께 매달려 죽어갑니다.
저와 같이 하느님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그런데 저와 달리 절망과 원망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죽음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에게 서로를 맡기는 말에 믿음이 깔려있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하면서 받아주시리라는 마음으로 봉헌을 합니다.
옆에 죄수에게도 "낙원에 갈 것이다"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고 죽이는 이들에게 대신 용서를 청하고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마르다" 하면서 하느님 당신의 목마른 사랑을 대신 갈구합니다.
"다 이루었다" 하면서 마침내 숨을 거두고 예수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어가는 이가 믿음을 드러내고 희망을 나타내며 사랑을 자아냅니까...
어쩌자고 저까지 하느님 당신을 이 지경까지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하십니까...
13.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의 시신이 저에게서 내려집니다.
예수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그의 피와 땀, 생명과 고통, 죽음이 제 몸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 몸인 것 같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도 저처럼 아들의 생명, 고통, 죽음을 새기려 꼭 끌어안습니다.
그런데 저 어머니는
아들의 품에 있는 작은 빛도 함께 껴안은 듯 합니다.
내가 그의 고통에 전적으로 함께 했기에
저는 그 빛이 부활과 구원이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나에게 새겨진 상처와 함께
저 어머니처럼 빛을 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인 나를 죽음으로 보겠지만
죽음 저 너머 부활의 빛을 받아안은 나는
그 빛을 발산할 것입니다.
이제는 "왜" 라는 질문을 더 이상 않겠습니다.
예수의 고통과 죽음은
저 부활의 빛으로 인해
나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4.
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가 나에게 멀어져 돌무덤으로 향합니다.
나무인 나처럼 돌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들은 시체가 썩는 어두운 무덤이 아니라
예수가 부활하는 빛의 모태가 되겠기에
더 이상 저주받은 자연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나는 십자가입니다.
더 이상 예수를 죽인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와 수난을 함께하고 함께 죽은 십자가로서
부활의 상징이 되는 십자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렵니다.
저는 더 이상 저주받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축복받은 십자가입니다.
에덴동산 한가운데 선악과와 함께 심겨진...
저는 생명나무입니다.
첫댓글 저도 십자가이기를... 저도 생명나무이기를... 아멘...
아하~십자나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니... 동화책 을 보는 것 처럼 14처의 십자나무의 마음을 느꼈던 십자가의길 이였습니다.
예수님의 피와.뼈와 체온을 온전히 느낀 십자나무의 거칠은 속성안에 온유함을 가슴에 다아봅니다.
아멘!
신선함과 울림이 있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수난감실 성체조배를 새벽 3시에 한 다음
새벽 4시부터 아침 10시 넘어서까지
묵상하고 작성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물론 한 달 전부터
"나는 십자가입니다"로 십자가의 길 기도문을 작성하려고
생각과 상상과 묵상은 계속 해 왔었습니다.
묵상글을 작성하면서 울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저 나름대로도 주님의 십자가 측면에서
주님과 하나될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지만
보다 많은 분들이
주님 수난에 동참하는 은총을 받고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1처
나는 십자가입니다.. .
나를 정성스레 깎을때 나는 임금의 의자라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형틀이라니요?
다시 또
"나는 십자가입니다"를 읽어보고싶어서 다시 들어와봅니다.
새삼 다시 읽어보고 생각할 수 있는기회가 될수있게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세상에 입맞춤하노라~" 는 문구
처럼 문뜩문뜩생각이 납니다.
"예수가 나를 짊어집니다
...나를 만지는 손길에 알게되었습니다."
.
.
나를 만든이가 나에게서 죽게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