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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는 마음, 지켜보는 마음 (우 떼자니야 사야도)
"[사야도] 마음을 대상으로 볼 때에는 아는 마음을 대상으로 보라는 뜻입니다. 대상을 잡을 때에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아는 마음을 보십시오. 육문 중에서 일어나는 대상이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여섯 가지 중에 다섯 가지는 물질이고 한 가지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의식(마노)의 대상이 되므로]. 그렇기 때문에 대상은 물질도 되고, 마음도 됩니다. ☸☸☸예를 들면은 생각도, 생각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그《 아는 마음》을 봐야 합니다.
🦋🦋🦋그 아는 마음을 뒤에서 다시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봐야 할 것이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아는 마음》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는 마음이 바로 대상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들은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 처음 시작해서 보는 사람들은 그냥 아는 마음을 볼 수가 있지, 그걸 뒤에서 다시 보는 마음은 볼 수가 없습니다. 💥💥💥
☸☸☸앎을 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대상입니다. 즉,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대상입니다. 💥💥💥
☸☸☸그런데 처음 시작해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는 마음을 보기는 아직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해서 그 아는 마음을 보라는 소리를 하지는 않습니다.
✅✅✅뭐와 같은가 하면, 앞에 두 사람이 있는 걸 본다면은, 보는 사람과 합치면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세 사람이 보인다면 네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네 사람을 볼 수 있다면은 다섯 사람이 있기 떄문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지혜의 힘이 좋아지면 그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상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 그래서 마음쪽에 더 신경을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는 마음을 보면서 그다음에 다른 마음들도 같이 차츰 차츰 볼 수 있게 됩니다. 봐야 할 다른 마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데 그것은 아직까지는 [아는 마음을 보라고 할 때까지는] 그 뒤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수행자들이] 그걸 아직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수행자들이 아직 단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것을 말해주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먼저 알았던 그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아는 마음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일어났던 [아는]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일어난 마음을 다시 또 보고, 또 그게 사라지고 다시 일어난 마음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뒤로 뒤로 물러나면서 그 마음을 보고 보고 또 보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2개 정도만 일어난 마음을 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마음을 보면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대상과 아는 마음, 그리고 지켜보는 마음,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대상을 아는 마음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 대상을 알고, 저 대상을 알고 많은 대상들을 압니다. ☸☸☸그렇게 아는 마음은 여러 개가 있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한 마음입니다. 💎💎💎대상이 다섯 가지가 있다면 아는 마음도 5개가 있습니다. 💎💎💎사띠가 계속 이어지면 지켜보는 마음이 계속해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행자] 컴퓨터의 멀티태스킹이라고 하는 기능이 있는데, 멀티태스킹은 컴퓨터를 통해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컴퓨터는 그러한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순서적으로 한 번에 하나씩밖에 처리를 못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라고 볼 수 있는 건지.
[사야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한꺼번에 동시에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따로 따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한 마음, 한 마음씩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로 따로, 하나 끝나고 하나 아는 것이지만 우리가 따로 따로 하나씩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수행자가] 조금 전에 아는 마음을 보는 것에 대해 물었는데, 대상을 아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을 말합니까? 아니면 대상을 아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을 다시 아는 것을 말합니까?
[수행자] 계속해서 이어짐을 말합니다.
[사야도] 지켜보는 마음을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계속 뒤로 물러가면서 또 그다음 마음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너무 계속해서 마음만 유의해서 보면, 마음만 보이고 물질은 보지 못하게 됩니다.
💎💎💎처음에 조금 이해가 될 때에는, 대상과 아는 마음 이렇게 따로 따로 구분해서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아는] 힘이 좋아지면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오게 됩니다.
💎💎💎아직 능숙하게 볼 수 없을 때와 능숙하게 볼 수 있을 때는 시야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대상은 대상이고, 아는 마음은 아는 마음이고, 지켜보는 마음은 지켜보는 마음이고, 이렇게 대상과 아는 마음과 지켜보는 마음, 이 세 가지가 따로 따로 보입니다.
☸☸☸나중에 그걸 아주 능숙하게 볼 수 있을 때 보게 되면, 그냥 《지켜보는 마음》만 보고 있으면 그냥 전체적으로 다 보이게 됩니다. ⚘⚘⚘⭕⭕‼
☸☸☸이게 뭐다, 뭐다,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이 전체가 다 보이게 됩니다.💎💎💎
[수행자] 잘 알겠습니다. ●●●사야도께서는 집중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집중 또는 가볍게 봄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야도께서는 생각, 느낌, 몸 등의 대상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경전에 보면 분명히 알아차리고, 꿰뚫어 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 지켜본다, 알아차린다라는 것은 아마 대상을 안다, 지켜본다, 알아차린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 대상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계속 일어나는가를 관찰해서 이해하려고 하면은, 또는 분명히 대상을 알아차리고 꿰뚫어 알려면은 대상을 가볍게, 집중하지 않고 봐서 그렇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사야도] 가능합니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앎이] 이어지는 것은 사띠의 힘이 좋아지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그렇게 해서 대상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까?
[사야도] 대상의 성품은 지혜로써만 볼 수 있습니다.⚘⚘⚘
☸☸☸ 그것은 그냥 집중을 해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집중을 하면은 대상의 성품을 아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인 것[빤냐띠]만 알게 됩니다.
☸☸☸집중을 하면 ●《대상》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모양을 생각하고, 크기를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개념적인 것[빤냐띠]만 보게 됩니다. 💥💥💥💣💣💣
☸☸☸빠라맛타[실재]의 특성은 장소도 없고, 모양도 없고, 크기도 없고, 빛도 없고, 색깔도 없고, 방향도 없고, 그런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집중을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그 특성만 있을 뿐입니다. 장소가 없는데 어디에서 집중하겠습니까? 모양이 없는데 어디다가 집중하겠습니까?
☸☸☸빠라맛타[실재]는 그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써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꿰뚫어 안다는 것은 개념[빤냐띠]을 넘어서서 지혜가 그것을 이해할 때에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대상은 '알아야 할 것'[알아지는 특성이 있음]이라고 하는데, 그 '알아야 할 것'이라는 [대상의] 특성을 어디에 가서 보겠습니까?
☸☸⚘ [지혜가 있으면] 따뜻하고, 차갑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것. 이런 특성들만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봐야 합니다. 근데 그것은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고, 느껴서 아는 것입니다.⚘⚘⚘ 뜨거운 것을 아는 것과 뜨거운 것을 대상이라고 아는 것은 다릅니다. [대상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 이것은 그냥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해로써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집중을 하게 되면 개념적인 것만 알 수 있지, 빠라맛타의 실제 특성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빠라맛타의 특성은 뜨겁다, 차갑다, 딱딱하다, 부드럽다, 이런 느낌들인데 이런 것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장소도 없고, 계속 변화하는 것입니다.
☸☸☸집중을 하면 마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집중을 하면 그냥 나타나는 대상들, 내가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 대상들만 볼 수 있지, 그냥 마음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수행자] 그러면 표현을 좀 달리 해서, ☸☸☸집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자세히 또는 분명히 안다는 표현을 쓰면 어떻습니까?
[사야도]☸☸☸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자세하게 알고, 분명하게 안다라고 하면 그것은 꿰뚫어 아는 것, 지혜가 하는 일입니다. ☸☸☸지혜가 생기지 않고서는 자세하게, 분명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냥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무조건 자꾸 집중만 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집중을 하게 되면 자세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하게 보는 것은 지혜로써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집중을 하지 않았을 때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집중만 해서 자세하게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켜보라고 이야기하는데,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면 지켜보는 힘이 좋아집니다. 그렇게 보는 힘이 좋아지면 저절로 [지혜가 나면] 꿰뚫어 알 수 있고, 볼 수 있고,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집중을 한다고 하면, 힘으로써 한 군데 딱 몰입하는 것. 한쪽에 딱 몰입하기 위해 하는 것을 집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켜본다고 하는 것은 지혜로써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집중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무조건 한 군데에 힘 써서 집중하는 것, 그것만 알지 지켜보면서 하는 집중은 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들이 수행을 한다 하면은 벌써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옛날부터 항상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하고 아주 가깝게 느낍니다. 그래서 그것만 알고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사람들이 사마디를 너무 많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켜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켜본다는 데 대해서 많이 자꾸 얘기를 해줘야만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힘을 써서 집중하는 법보다는 그 대신 지혜로써 지켜봐야 합니다. 집중을 풀어줬을 때 지혜를 써먹을 수가 있게 됩니다.
[수행자] 집중이라는 표현이 용어가 서로 혼동이 될 수가 있는데, 대상의 성품을 분명히, 자세히 알아차리려고 하는 열의를 가지고 긴장하지 않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라는 그런 이야기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사야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긴장하지 않고 자세하게 볼 수 있다면 됩니다.
[수행자] 탐심이 있는 경우 통상 긴장을 수반한 집중이 있게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야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수행자] 대상을 이해하려는, 알려는 열의를 가지고 자세히 분명히 보려고 하는 경우는 오히려 온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서 편안하게 해야만 더 자세히, 더 분명히 보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사야도] 그것도 맞습니다. 그렇지만 알고자 하는 그 마음에는 잘못하면 로바[탐심]가 생기기 쉽습니다. 그것을 잘 제어해야 합니다. 그냥 보통으로, 단지 알고자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로바[탐심]가 들어 있으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그냥 단지 알면 됩니다. 그냥 단지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 위의 법문에서는 아는 마음 이후에 다시 아는 마음들은 통칭해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다. 때로는 아는 마음-다시 아는 마음-지켜보는 마음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 아래 링크의 법문 동영상을 타이핑하였다.
https://www.facebook.com/100001779428467/videos/1469565476714940/
https://www.youtube.com/channel/UCqV9aDux7qJSfGE2VBSzKYQ

우떼자니야 사야도 법문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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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도께서는
☸ 1. 대상이 있고
☸그것을 2. 아는 마음이 있으며
☸대상과 아는 마음을 3. 함께 지켜보는 마음이 있으며 ☸지켜보는 마음을 4. 또 지켜보는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1234를 모두 지켜보는 마음 5단계의 마음이 또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3단계 지켜보는 마음은 이미 관념과 실재, 대상과 마음을 모두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있으므로 ☸☸☸3단계 지켜보는 마음이면 수행에 충분하며 💎💎💎4단계 지켜보는 마음이 있으면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
그동안 지켜보는 마음을 또 지켜보는 마음이 층층이 무한히 많다는 생각은 했지만 체험은 할 수 없어서 답답한 면이 있었는데 ☸☸☸4단계 지켜보는 마음까지 알아차리면 된다는 사야도 말씀은 참 현실적이어서 만족감을 가져왔다.
대상은 알아지는 모든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4단계 지켜보는 마음에서 대상⚘과 아는 마음⚘ 그리고 지켜보는 마음⚘도 대상이 되므로 결국은 마음을 보는 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다." ⚘⚘⚘- 삼마사띠님
https://blog.naver.com/sati578/222468092104

대상과 아는 마음 그리고 지켜보는 마음 (ft. 사야도 법문)
요즘은 페이스북보다는 블로그에 글쓰기 중심으로 SNS를 이용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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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 짓는 것도 알고,
그것에 지혜를 써주는 것도 알고,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 어떻게-왜 그렇게 되는 건지도 알고,
알고, 이해하고..
글쎄 ‘대상과 마음’의 구조, 원리, 방향, 이치에 대해서
요모조모 법을 조사하는 것처럼 유용한 게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양쪽을 다 이해하게 되니
관찰은 쉬워지고 아주 재밌게 감상할 수 있기까지 하니
경극 영화나 BTS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르랴.
🦋🦋🦋쉐우민 사야도께서도
💎💎💎두 마음(watching mind knowing mind보는마음 아는마음) 이
함께 해야 만이 “참”이라고 하셨지.
지혜는 어느 한 쪽, 한 가지만을 알게 하지 않고
양쪽을 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동시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있지.
그래야 완전하다지?" - 우 사사나 스님
https://blog.naver.com/k3a3n3g3/222434943211

두 마음이 함께해야 참이다 (우 사사나 스님)
https://m.cafe.daum.net/paramita2841/BYKQ/178?svc=cafeapp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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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뚠은 1959년 11월 7일부터 9계[역주: 포살 8계에 자애심을 더하는 계]를 지키며, 마을에 있는 승원의 시마홀[역주: 비구들이 모여서 포살의식, 비구계 수계 등을 하는 법당]에 머물며 명상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순룬 사야도처럼 그도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를 수행했는데, 💎💎💎숨이 콧구멍에 닿는 감각과 💎💎💎닿는 감각에 대한 앎 둘 다에 마음챙기려고 노력했다(tried to be mindful of both the touch of the breath at the
entrance to the nostrils and the awareness of the touch of breath)."⚘⚘⚘
https://blog.naver.com/k3a3n3g3/222444089912

떼인구 사야도 일대기와 명상법 번역 (2)
(이미지 출처: https://insightmyanmar.org/burmadhammablog/2015/08/thae-inn-gu-sayadaw-and-meditation....
blog.naver.com
"☸☸☸끊임없이 수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을 관찰했다. 통증의 일어남을 주의 기울여 알아차렸다42).
☸☸☸ 닿음과 닿음에 대한 앎43)이 생겨날 때마다 마음챙겼다.
☸☸☸그러자 그는 매순간 알아차림을 지니게 되었다. 이야기를 할 때면, 앎에 마음챙기는 것44), 즉, 담마45)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에게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