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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중국 피서산장 여행시
‘신사복 모델에 참 어울릴 것 같은 분’,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 김준형 교수는 첫 인상으로는 도저히 동양 고전(古典)이나 국문학과는 안 어울리실 것 같다. 하지만 그 분의 강의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생각이 이내 바뀌게 마련이다. 2010년 이래, 김준형 교수는 부산교육대 국어교육과에 재직 중이시며, 석음서당 책임 교수이시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습니다.)
문 1. 자기소개와 함께 부산교육대에 언제, 어떤 계기로 부임하시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 선친이나 집안 분위기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 2003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가 2010년에 이 곳 부산교육대학교에 정착하였습니다.
고향은 제주도로, 그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하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 때문에 답신도 늦어졌고요. 아무튼 할아버지는 신식 학문을 하셨습니다. 그런 게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모두 아픈 상처가 되었겠죠. 비명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선친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환경 때문이었는지 선친은 제게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일을 모두 꿈꾸었나 봅니다. 그저 책만 보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그중 저는 전자를 택했으니, 선친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죠.
문 2. 제가 교수님께 느낀 첫인상으로는 신사복 모델이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국문학자라는 사실이 영~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선입견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강의를 한번 듣자마자 생각이 이내 바뀌었답니다. 어떤 계기로 이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는지 그 동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답 : 저도 제가 고전문학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시를 분석하는 것을 퍽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고전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라…. 선생님이 시켜서 한 것 같은데. 뭐 거창할 게 없습니다. 젊은 날 많이 아파했던 때에 선생님과 더불어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고전문학을 택하게 되었죠. 그 때는 참 많이 공부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렇게 공부한 때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문 3. 아시다시피 <고전의 메아리>는 부산교대 고전강독반의 사이버 카페입니다. 고전강독반인 연붕서당과 석음서당이 16년 이상 장수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고 퇴산 이신성 교수님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도 퇴산 선생님과 교류가 있었던 걸로 들은 바 있습니다. 이 기회에 퇴산 선생님과 인연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 이신성 선생님을 처음 뵌 때가 언제인지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마도 90년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합니다만. 그러고 보니 저도 참 오랜 인연이었네요. 어떤 계기였는지, 정명기 선생님이 야담 전공자들을 소개시켜주었는데, 그 때 처음 뵌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후에는 전공이 유사해서인지 자주 뵈었습니다. 제가 2003년에 학위논문을 이신성 선생님께 보내드렸더니, 당신은 ‘이면지’에 축하 편지를 써서 보내주시기도 했죠. 그 해 8월에는 항주사범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데리고 가서 발표도 시켰고요. 선생님이 책을 내거나 매체에 글을 쓰면 그것을 챙겨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가끔 술자리도 했는데, 막걸리에 맥주를 타서 마시던 모습은 아직도 경이롭습니다.
문 4. 김 교수님의 저작 중에 <조선 후기 성소화(性笑話) 선집/김준형 옮김/문학동네/ 2010>이라는 책을 알고 있습니다.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하시는 내내 스트레스가 아니라 엔돌핀이 팍팍 솟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연구에 관한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 성 소화는 제 박사논문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본래 다른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패설 자료집이 눈에 띄더군요. 당시로서는 고금소총에 묶인 11종이 패설 자료집의 전부였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그 수가 오히려 고금소총에 있는 자료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제가 본 자료들은 고금소총에서 보았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였죠. 비정상적인 성 이야기만을 담아놓은 책, 기존 윤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 소설을 지향한 책 등 조금은 특이했죠. 더구나 해방 이후 최고의 국문학자라는 김태준도 그런 책을 읽고 썼더군요. 그래서 아예 고금소총과 이 책들을 대상으로 논문을 쓰게 된 것입니다.
논문을 쓰고 번역을 하면서도 불행히 엔돌핀이 돌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이 아팠죠. 음담패설을 읽으면서 저는 엉뚱하게도 사회적 약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느끼려는 그 처절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르주 바타유의 이야기처럼 죽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성에 탐닉한다는 말도 떠올렸고요.
일화라고 한다면 음담패설에는 한국식 한자가 많아서 오히려 난처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 정도. 鳥熊을 새+곰으로 보아 ‘새콤’으로 읽어야 하는 것. ‘玄風密陽’을 ‘현풍’을 본으로 쓰는 郭과 ‘밀양’을 본으로 쓰는 朴을 합해서 ‘콱 박으면’으로 읽어야 하는 것 등등. 그리고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번역할 때 곤혹스러웠던 점 등이 모두 그랬죠. 번역을 하는 도정에서 느낀 것이지만, 성적 표현을 쓰는 한자어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죠.
문 5. 김 교수님은 신학기 들어 석음서당 부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매주 월요일 강의가 끝난 뒤, 다음 주 강의 진도에 대해서 수강생들에게 메일을 보내주십니다. 그 덕분에 최근 들어 석음서당 수강생이 무려 50명 이상으로 늘어난 걸 알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상상하시는 석음서당의 미래상에 대한 구상을 갖고 계시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 아직은 이신성 선생님이 꾸려온 석음서당을 제 식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분간은 선생님이 하셨던 방식을 준용하려 합니다. 다만 선생님처럼 수강생들께 모두 전화를 드릴 수 없으니, 저는 시대에 맞게끔 메일로 간단히 진도와 일정을 제시할 뿐이죠.
다만 바람이 있다면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으면 좋겠어요. 세대를 넘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네요.
문 6. 이산가족이시라 불편하신 점도 많겠지만 어쩌면 여가시간이 더 많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전에 신간 <쟁점으로 본 판소리 문학/유광수 엮음/민속원/2011. 3>에도 교수님 글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 강의 이외에 연구와 관련한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 : 글은 많이 쓰는 편입니다. 조만간에 한겨레출판에서 '이매창 평전'도 나올 듯하고, 현암사에서 '가려 뽑은 한국 재담'도 곧 출간될 듯합니다. 이산가족 덕에 얻은 수확이죠.
제 연구 분야는 야담과 패설, 그리고 고전소설 등과 같은 고전 산문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근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문학 연구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요.
문 7. 요즘 들어 고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20대 젊은이들은 ‘고전은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엉뚱한 오해를 하는 듯 합니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왜 고전이 필요한지, 고전공부를 하면 무슨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고전 왜 필요한가? 고전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죠. 루쉰이 희망은 길과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길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그 길을 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길이 만들어졌다고. 희망도 그러하다고. 고전은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 처음 걸었던 길을 우리가 밟아야 하는 그 자체지요. 그 길을 가는 것이 곧 나의 희망,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을 통해 인간의 미래는 읽어내기에는 고전만한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문 8. 끝으로 석음서당은 무료 한문강좌로써 한때 그 열기가 대단했으나 요즘 들어 상당히 식어가는 느낌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젊은층의 외면(?)도 크다고 여겨집니다. 교수님께서 활성화 차원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 : 단기간에 젊은 층을 이끌 수도 있음직한데, 아직은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겠지요. 그것이 석음서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변화가 오겠지요.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인데 김준형 교수님은 남들보다 서너 곱절은 더 열공(?)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역작 <이매창 평전>과 <가려뽑은 한국 재담>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제발 짬짬이 쉬어가시면서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김준형교수님 글을 읽으니 석음서당에 공부하러 가고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특히 '고전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부분이 가슴에 와 닫습니다. 이매창 평전도 몹시 궁금하구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김교수님께서 해주시는 프린트로 수업을 하는지라 죄송하기도합니다, 논어 책이 너무무거워 들고 다니지도 않고 말입니다.게으른 학이지지입니다.
생이지지, 학이지지, 곤이지지.......그래도 두번쨰 단계는 수준이 높으신 거잖아요. 저는 곤이지지랍니다. ㅋㅋ
鳥熊을 ‘새콤’, ‘玄風密陽’을 ‘콱 박으면’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이두도 아닌 것 같은데.
강의시간에 들었던 '조선 후기 성소화(性笑話) 선집'부터 봐야겠습니다.
교수님 멋져요!!
교대입구에서 김교수님을 뵈었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말입니다. 교수님 방학 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