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
사적 공간에 대한 인식 차이
한국인에게 소속 집단이 많은 현상은 중국인에 비해 한국인이 자신의 사적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더 쉽게 열어주는 습관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다.
중국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은 “길이 멀어야 말이 힘이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시간이 오래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라든가, “바람이 세야 어떤 풀이 센 풀인지를 알 수 있고, 곤경에 빠져봐야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疾風知勁草, 患難見眞心)”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표현들은 중국 사람들의 사람 사귀는 방식을 잘 나타내준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특히 어려움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라야 친구로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마음을 빨리 여는 편이다. 동갑이라고 하면 친구로 여기며 술자리 몇 번 같이 하고 나면 스스럼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바로 한국 사람이다.
다음은 중국인 필자가 한국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경험담이다. 친구의 친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냥 약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며칠 후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나는 그 사람 이름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나를 자신의 친구로 간주하여 두 번째 만날 때부터 자기 성격이 어떻고 집안이 어떻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거북했지만 장단을 맞추기 위해 내 얘기도 대충 꺼냈다. 잠시 후에는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까지 했는데, 겨우 두 번째 만난 나로서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친구의 얘기가 끝난 다음에 드디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났다. 내게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나는 그렇게 빨리 친해지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기 애인을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중국 학생들은 자기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욕구가 강한 편이다. 중국의 대학교 기숙사에 가면 여대생들이 항상 천으로 자기의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무얼 하러 가는지 친구에게 항상 말을 하고 다니는 한국 학생들과는 너무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타인이 자신의 사적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용해 주는 한국 사람과 비교할 때 중국 사람은 개인주의 성향이 훨씬 더 강한 편이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관계
한국인의 집단은 위아래가 분명한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고개를 숙이고, 학생이 교수에게, 교수가 총장에게 고개를 숙인다. 직장에서는 대리가 과장에게, 과장이 부장에게, 부장이 임원에게 고개를 숙인다. 나이와 경험이 비슷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입학 연도와 나이에 따라 선후배 관계가 정해진다.
더욱이 이런 수직적 관계가 준 가족의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한두 살 차이만 나도 ‘형’이 되고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형이나 언니라 불리는 사람은 동생들에 대해 어느 정도 권력을 행사하며 그와 동시에 아랫사람을 보살피는 책임도 안게 된다. 회사에서는 사장이 부모와 비슷한 존재가 된다. 이런 상하 관계는 단지 일과 관련해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까지 확장된다. 평등한 동료로서가 아니라 형과 아우의 관계로 일을 함께 하기 때문에 내 일과 네 일의 구별이 약하며 일을 먼저 끝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인정이라고 여긴다. 먼저 입사한 사람은 선배이고 형이기 때문에 먼저 승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중국의 집단에서는 분명한 상하 관계의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때 문화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 회사에는 수직적 관계 구조와 준 가족적 온정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인에게는 회사가 경쟁의 장소로 인식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내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중국 직원들은 2, 3년에 한 번씩 있는 인사 이동, 시간이 흐르면 거의 다 승진할 수 있는 인사 제도에 대해서 큰 불만을 갖는다. 한국 대기업은 “경쟁이 약하고 안전한 국영기업과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줄서기식 승진제도에 불만을 품은 중국 직원들의 이직이 많이 나타난다.2)
물론 중국 사회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존경은 강조되며 회사에서 부하 직원이 어느 정도 상사를 어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집단처럼 엄격한 수직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필자가 두 나라 대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서로 친구로서 사귈 수 있는 연령의 범위를 질문한 바 있다. “귀하의 친구들 중에서 나이 차이가 제일 많이 나는 사람은 귀하와 몇 살 차이가 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두 살이라고 대답한 중국 학생의 비율은 14%를 조금 넘은 반면, 한국 학생의 경우는 53%나 되었다. 중국 학생들의 경우, 세 살에서 다섯 살이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약 33%, 여섯 살에서 열 살이 21%, 열한 살에서 스무 살이 10%, 그리고 스무 살 이상이라는 대답도 거의 20%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한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각각 23%, 14%, 5%, 0%였다. 여기서 친구 사이를 평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이라고 해석한다면,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평등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연령의 범위가 더 넓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중국보다 수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동일한 설문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던졌다.
상황 1 : 길에서 교수님이 지나갈 때 어떤 학생이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학생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황 2 : 길에서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직원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황 3 : 부하 직원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상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직원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사 결과를 보면 교수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에 대해 중국 학생들은 60% 정도가 “좋은 예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했다. 이에 비해 한국 학생의 경우에는 “당연한 일이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거의 83%를 차지했다. 상사에게 고개 숙이는 것에 대해서 중국 학생들 가운데 약 54%는 “좋은 예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26% 정도는 “아부하는 행동”이라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한국 학생들은 거의 70% 정도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이 어린 상사에게 고개 숙이는 것에 대해서 중국 학생들은 47% 정도가 “좋은 예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고, “아부하는 행동”과 “자존심 없는 행동”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한 사람이 모두 43%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한 것이 13%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볼 때 우리는 중국보다 한국의 상하 서열 구조가 더 엄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엄격한 상하 관계의 구조는 유교의 가부장제 문화에서 비롯된다. 유교 사상에서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은 ‘정명(正名)’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윗사람이 윗사람답게, 아랫사람이 아랫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은 집단 안의 권위―복종 관계를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상하 서열 구조가 유교 문화의 일부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중국과 한국에서 유교 문화가 차지하는 위상은 크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동질적인 문화 전통’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한국 기업의 문화에 대해 친근감보다는 오히려 장벽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중국 직원 대다수는 한국인의 등급 문화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답답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과 한국 두 나라 모두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나라 사람들의 집단주의적 성향과 집단 내 인간관계의 방식을 좀더 치밀하게 들여다보면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국의 교류가 점차 넓어지고 깊어지는 오늘날, 우리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적지 않은 문화 차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충돌을 좀더 세심하고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서로 간에 공존하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욱 진전된 교류와 소통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담차이나 중국전문잡지 <중국의 窓>中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