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Managemnet’s New Paradigms)
현대 경영학 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 중 하나인 “이 글의 필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이론들이 아주 틀렸거나 심각할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 졌다고 말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지식 경제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기본 가정부터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경험있는 중역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어떤 정책도 20년- 30년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운 법이며 경제나 사업이나 테크놀로지에 관한 어떤 가정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물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경영, 테크놀로지, 조직에 관한 가정들이 적어도 50년은 되었으니 수명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우리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적용해 온 정책들이 점점 더 현실과 맞지 않게 되고 그래서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에세이는 이들 가설과 적용을 다시 조사하려는 시도에서 쓰여졌다. 현실에 대한 가설들은 귀찮은 예외정도로 무시되었던 것들을 해결해 준다. 가설이 틀리면 그 뒤의 모든 것이 틀리게 되는 법이다.
경영과 같은 사회적 규율에 있어서는 가설이라는 것이 자연과학에서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자연과학에서 라면 패러다임 -널리 퍼져있는 일반적인 이론– 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든 실제 지구와 태양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영 같은 사회과학은 사람의 행동양식과 인간의 직관을 다룬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처럼 확고하지가 않아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것은 곧 어제까지 유효했던 가설이 금방 유효하지 않아지고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경영의 규범에서 우리가 현재 처한 위치이다.
그렇다면 경영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가설들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오늘날 정설의 근본은 조직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모든 경영 이론가와 실무자들이 고수해 왔던 기본 가설이다. 즉 1890년부터 프랑스의 Henri Fayol과 독일의 Walter Rathenau에게서 비롯되어 조직에 있어서 어떤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했던 생각이다
Fayol은 모든 제조업체에는 하나의 옳은 구조가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기능적 부문을 엔지니어링, 생산, 영업, 재무, 인사로 각각 나누고 각 부문은 분리하여 관리되어야 하며 최고 경영자 수준에서만 통합되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에 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기본 가설 7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비지니스의 조직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
@경영의 원칙은 비지니스 조직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을 관리하는 데는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한다. 옛날에는 Top-down방식(중앙집권, Centralization) 통제가 정답이었으나 나중에는 분산화(Decentralization)가 유행했고 오늘날에는 팀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테크롤로지와 시장과 최종 사용자는 고정되어 있고 서로 겹치는 일은 없다. 즉, 각 산업은 특정 기술과 특정 시장에 국한된다.
@경영의 범위는 조직의 자산과 직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기업 경영에서 할 업무란 기업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상관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국적이 기업과 기업경영의 생태를 정의한다.
8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첫번째 가설 외에는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에 가까왔었다. 이 에세이에서는 앞서 언급한 가설들이 왜 틀렸거나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둘다에 해당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이 가설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 급변하는 현실속에서 여러분의 기업이나 업무가 실패하게 될 것이다.
> 경영의 규칙(The Discipline of Management) <
오늘날 우리는 경영(Management)을 기업경영(Business Management)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정은 아주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1930년 이전에는 경영에 대해 생각하는 많은 저술가나 사상가들이 - 20세기 초 Frederick Taylor(1856-1915)에서 시작해서 2차 세계대전 직전의 Chester Barnard에 이르기 까지- 기업 경영은 일반적인 경영의 일부로 생각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경영이란 기업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조직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첫번째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경영이론의 적용은 사업 분야가 아니었다. 그것은 루즈벨트 내각의 육군장관이었던 Elihu Root(1845-1937)의 美 육군의 재정비였다. 첫번째 경영 회합도 기업경영자들이 아니라 당시 미국 통상부 장관이었던 Herbert Hoover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새로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Thomas Masaryk의 회담이었다.
경영을 기업경영과 동일시 하게 된 것은 대공황에서 비롯되었다. 대공황은 기업체에의 적대감과 기업경영인에 대한 경멸을 낳았다. 기업체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공공분야의 경영은 행정으로 탈바꿈하고 독자적인 대학 학과, 용어, 직업노선 등 독자 노선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후에는 -2차 세계대전 동안의 미국 기업경영의 성과 덕분으로- 다시 추세가 변하여 1950년경 "기업"이라는 단어가 다시 좋은 뜻이 되었다. 많은 비지니스 학교들이 School of Management로 이름을 바꾸고 非수익성 경영 분야에 지원이 급속하게 많이 제공되었다. 기업쪽과 非기업 양쪽의 경영자를 동시에 유치하려는 최고경영자 과정이 급하게 만들어지고 심지어는 신학교에도 목회경영(Pastoral Management)이라는 학과가 생겼다. 그러나 아직도 경영이 기업경영이라는 가설은 존재한다. 그래서 경영이 기업경영이 아니라는 주장이 중요한 것이다.
비지니스와 非비지니스 조직간의 인위적인 구별을 파괴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21세기 선진사회의 성장분야는 비지니스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비지니스는 20세기에도 성장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모든 선진국이 100년 전에 비해서 노동인구의 훨씬 작은 부분만이 비지니스에 종사하고 있다. 100년 전에는 거의 모든 노동 인구가 거의 농장일에 해당하는 경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20세기 선진국들의 성장 분야는 정부, 지적 전문직(변호사, 의사, 대학 교수 등), 의료, 교육분야등 非비지니스 분야에 놓여 있다. 21세기에는 이런 트렌드가 더욱 가속 진행될 될 것이다.
그러므로 非수익성 사회분야가 오늘날 경영이 가장 필요한 곳이고 또 체계적이고 이론화된 경영이 가장 큰 성과를 가장 빨리 낼 수 있는 분야이다. 가난, 의료, 교육, 국제분쟁 등 세계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들을 생각해 보라. 해답이 필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 조직에 있어서의 단 하나의 정답(The One Right Organizaton) <
경영과 그 연구에 대한 중요성은 큰 조직에서 갑자기 커지고 있다. 상비군 개념은 19세기 말의 사회에서나 새로운 것이었다. 비지니스와 정부관련 서비스는 동시대에 성장한 다른 조직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1세기도 더 전부터- 조직에 관한 연구는 하나의 가설에 기초하고 있었다. 바로 조직의 형태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체의 조직구조에 대한 논의는 프랑스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그와 동시에 가장 非조직적이었던 석탄회사의 최고 경영자인 Henri Fayol에 의해서 였다. 세기가 바뀔 무렵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첫 경영이론가들은 경영 실무자들로 John D. Rockefeller 경, J. P. Morgan, Andrew Carnegie 등이었다. 특히 Carnegie는 가장 오래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아직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 조금 후에는 Elihu Root가 조직 이론을 美육군에 적용했다. Root가 Carnegie의 법률고문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주 큰 사업 조직들이 막 생길 즈음이었고 경영인들은 그들만의 규율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참조할만한 교과서란 없었고 자문을 구할 컨설턴트도 없던 세상이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그들끼리 서로 배울 수 밖에 없었다.
1870년 Deutsche Bank를 창립한 Georg Siemens(1839 - 1901)는 1895년 그의 사촌인Werner von Siemens(1816-1892)가 창립했으나 창립자의 죽음으로 지도자가 없어져 침몰해 가는 기업 Siemens를 살려내는데 친구인 Fayol의 조직 개념을 도입하였다.
1차 세계대전 때문에 정형화된 조직구조의 필요성이 더욱 명백해졌다. 수천만 군인들을 관리하는 것과 군 물자의 생산이라는 전체경제에서 정형화된 조직이라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Fayol과 Carnegie의 기능조직이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고도로 중앙집중된 경영은 대형 조직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 결정권은 조직에서 아래로 더 내려와야 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처음에는 Du Pont(1870-1954)이 그 다음에는 Alfred Sloan(1875-1966)이 분산화(Decentralization)를 창안했다. 이것은 곧 경영에 있어서 하나의 정도(正道)로 받아들여졌다. 현재에는 또 최근 몇 년간 `팀 제’가 유일하게 옳은 조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쯤은 단 하나의 옳은 조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야 한다. 다만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가진 그래서 각자가 특수하게 적용될 곳을 가진 조직들만이 존재한다. 조직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 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같이 일할 때 생산적이 되도록 하는 도구일 뿐이다. 주어진 조직은 특정 상황, 특정 시간에 특정한 업무에나 들어맞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자주 듣는 "계급조직(hierarchy)의 최후"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명백하게 말이 안된다. 어떤 구조든지 통상있는 모험에서 최종결정을 내리고 이것을 따르게 하는 최종 권력자, 즉 보스는 있게 마련이다. 선박이 침몰하는 상황이라면 선장이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배를 살리려면 모든 사람은 명령을 따라야 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또 그대로 따라야 한다. 계급조직은 위기상황에서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위기상황을 다루는데 적합한 조직은 모든 업무에 적합한 조직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팀제가 정답이기도 하다. 사실 제약산업에서는 팀제가 지금처럼 유행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성공적으로 팀제를 도입해 왔다. 1950년경부터 스위스를 시작으로 그리고 미국의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개발하고 출시하는데 팀제를 이용해 왔다. 기초기술이 개발되는 대로 의학자, 생산담당자, 재무, 특허관련 전문가, 마케팅 인력이 모여서 개발 팀을 만든다. 팀은 목적이 달성되어 약이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면 해산된다. 그러나 같은 회사 내에서도 다른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기능적 조직에 의해서 수행된다. Henri Fayol은 "전형적인" 제조업 중심 기업을 가정했었는데, Alfred Sloan은 1920년대에 General Motors의 분산화된 부서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했다. GM의 거대한 조직 정비에도 똑같은 원칙이 고수되었다. 즉 작업을 조직화하는데 오직 한가지 방법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발만 전담하는 수십명의 연구원으로 이루어진 작은 조직도 수천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토스터나 냉장고를 생산하는 업체의 거대한 부서와 똑같이 조직되었다. 작은 개발 부서가 사실은 생산, 인사, 재무, 홍보 인력들의 부담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기업도 -아마 Fayol의 전형적인 제조형 기업에서조차도- 몇가지 서로 다른 조직이 동시에 존재할 필요는 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 조직의 구조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에는 원칙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조직이 투명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일하는 조직의 구조를 알고 이해해야만 한다.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주 쉽게 많은 조직에서 위반되고 이는 군대조직에서조차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美공군에서 비행기가 비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결정을 내리는 최종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정말로 이해하는 데는 20년 정도가 걸렸다. 수리병에게 명령을 내리는 육군대령이 아니라 실제로 진짜 보스는 승무원들의 장인 하사관이었다.
> 여러 가지 조직 구조(Multiple Organizational Structures) <
이미 언급하였듯이 조직에서 누군가는 위기 상황에서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직의 어떤 구성원이든지 명령을 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도 모든 종류의 조직에서 통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로마법에 나오는 격언 중에는 세 명의 주인을 가진 노예는 자유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다. 인간관계에 관한 아주 오랜 원칙 중에 충성도에 있어서 갈등을 갖게 하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명령하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이면 이러한 갈등이 생기게 된다.
소위 `Jazz Combo 팀’이라고 불리는 요즘은 흔하지만 실패하기 쉬운 조직이 있다. 예를 들면 엔지니어는 팀 리더에게도 보고를 하지만 동시에 그의 특수 기능 조직의 장에게도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재무를 담당하는 멤버도 마찬가지다. 그는 팀 리더에게 와 동시에 전체 재무담당 조직의 장에게도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조직은 층(Layer)의 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것도 옳은 조직 원칙이다. 즉, 조직이 가능하면 평면적인 것이 좋다는 것인데 정보이론의 첫번째 법칙은 우리에게 “모든 정보는 전달과정에서 노이즈는 두 배가 되고 메세지 자체는 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해준다. 이 모든 것이 각 개인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조직에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업무를 할 때에는 팀제로 일하고, 또 다른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명령하달 방식으로 일하는 것등이다. 자신의 조직에서는 보스인 사람이 다른 조직과 제휴를 할 때에는 파트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미래의 최고 경영자는 여러 가지 조직 구조들로 가득찬 공구상자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는 특정 업무에 맞는 공구들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그가 각 공구를 쓰는 방법을 배우고 어떤 공구가 어떤 업무에 가장 적합한 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의 수행에 있어서 언제 조직을 전환해야 할 것인가. 이런 분석은 아마도 현재 널리 퍼져있는 팀제에 가장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는 단 한 종류의 팀이 존재한다고 가정된다. 이것을 앞서 언급한 Jazz Combo팀이라고 부르자. 즉 각 구성원이 각자의 일을 갖고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적어도 6개 내지 12개까지의 각기 적용할 경우가 다른 팀 방식이 존재한다. 각각 한계와 단점이 있으며, 서로 다른 관리를 요구한다.
여기 팀제의 몇 가지 예가 있다. 우선 백화점에서 흔히 사용되는 오래된 기능적 팀제가 있다. 서로 다른 분야 -구매파트, 디스플레이, 광고판촉, 판매 등- 는 같이 일하지 않는다. 아주 드문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한 부서에 속한 사람은 다른 부서의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팀조직의 장점은 야구팀에서 타자와 투수, 포수가 있듯이 각 구성원이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다는데 있다. 약점이라면 경직성과 변화에 느리다는 것과 각 그룹 각자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각 부서는 전체조직의 목표달성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만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팀제는 커다란 독일회사의 최고경영의 예를 들 수 있다. 각 멤버는 보통 명백하게 정의된 그 자신이 보스인 책임 분야를 가지고 있다. 그 분야는 기능적인 것일수도, 지역적인 것일수도 있다. 보통 한 분야를 맡은 사람은 그 분야의 일을 결정할 때에는 그 동료의 자문도 구하지 않고 통고만 하면 된다. 이와 다르게 스피커(Speaker)라는 역할을 맡은 선출된 사람이 있는데 다른 멤버와 마찬가지로 특정 분야의 장을 맡는 동시에 그룹 내에 의사 불일치가 생겼을 때 결정권을 가진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이 조율을 하는 역할이지만 역시 각 멤버는 각자의 악기를 연주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팀제가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그것들을 조사하고 강점과 약점을 정의하고 어떤 경우에 잘 수행되고 어떤 경우에 그렇지 않은지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빨리 주어진 팀제에 대해 어떤 것이 적합하고 어떤 것이 적합하지 않은지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팀제도 다른 조직처럼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최고 경영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누가 최고경영 업무를 체계화할 줄 안다고 하면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사업 분야에서건 대학, 병원, 현대교회에서 건 끊임없이 팀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모든 연구가 최고경영이라는 것이 팀을 필요로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슈퍼맨 최고경영자의 인격숭배가 존재한다. Bill Gates, Jack Welch, Lou Gerstner 등 유명 인사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들이 어떻게 선출되었고 누가 이들의 뒤를 이을 것이며 어떤 프로세스에 의해서일까? 후임자가 그 일을 하기에 적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시킬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후임을 고르고 인계하는 프로세스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은 그것이 좋은 경영의 아주 확실한 테스트 방법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측면에서 非비지니스 조직에서는 훨씬 잘 해오고 있다. 첫번째의 의식적인 후임계승문제를 다룬 시도는 美헌법 입안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인간 역사에서 합법적인 계승 -왕족의 계승에서 계속되어온 살인, 독살, 음모나 쿠데타 없이- 을 보장하는 방법을 해결하였다. 그러나 기업의 후임계승에서는 라이벌을 숙청해버린 예도 알려진 바 없지만 성공적인 후임계승을 보장하는 어떤 성공적인 시스템도 알려져 있지 않다. 헌법은 옛날의 황태자가 그러했듯이 현직에서 위협받지 않고 옆에서 기다리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최고경영자 후임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회장이 임기 중에 죽었을 때 계승하는 부회장은 그 직무에 맞을 수 도 있지만 최상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합법성이나 권위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 하나의 正道(Only One Right Way)? <
Douglas McGregor의 책 “기업의 인간적인 면(The Human Side of Enterprise)”은 경영이란 단 두가지의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서 골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X이론과 Y이론이다. X이론은 사람은 일하기를 싫어하므로 강압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며, Y이론은 사람은 정말로 일을 하기를 원하므로 오직 필요한 것은 적절한 동기유발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McGregor는 Y이론만이 유일하게 옳은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 조금 먼저 나도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1954년도 저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한 적이 있다. 사람이 제어되어야 한다는 다른 한 방식도 우세한 관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그러나 몇년 후에 Abraham Maslow(1908-1970)는 그의 저서 “Eupsychian Management에서 왜 McGregor나 내가 틀렸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그의 견해에 제시한 증거에 압도당해 나는 즉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다른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람을 다루는 데는 하나의 옳은 방식만 존재한다는 기본적으로 틀린 가정하에 사람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다른 가정들이 존재해 왔다. 이들 가정 중 하나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풀타임 근로자이고 생계를 그 조직에만 의존한다는 가정이다. 또 다른 가정 중 하나는 조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종속적이어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만을 해야 하며 그 외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70년전 이런 가정들이 생겨났던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이러한 생각이 유효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현실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생각들 하나하나가 적합하지 않아졌다. 아주 크고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는 소수파의 노동인구는 이제 더 이상 풀타임 근로자가 아니다. 청소 용역이 됐든 데이터 프로세싱이 됐든 아웃소싱 계약자를 위해 일한다. 대형 차나 트럭 제조업자들은 점점 부품을 공급자로부터 공급받아 제품을 제조하고 결과적으로 제품에 드는 노동력은 직접적으로 제조업자를 위해 일하지는 않는 사람들로부터 제공된다. 조직 노동력의 또 다른 멤버는 특정 기간동안만 일하는 개별 계약직이다. 이는 특히 지식이 있고 가치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또 풀타임으로 고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낮은 레벨의 직업에서조차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종속적이 된다. 지식 노동자(Knowledge Workers)가 많아지고 지식 노동자는 종속자로 다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제휴나 협업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차이점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크다. 도제 단계가 일단 지나면 지식 노동자는 그들의 직업에 대해서 그들의 보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게 된다. 지식 노동자의 정의가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조직 내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대 고객서비스를 하는 엔지니어는 어쩌면 엔지니어링 매니저보다는 제품에 대해서 덜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객에 대해서라면 매니저보다 더 많이 알며, 이는 제품 자체에 대한 지식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마케팅 부사장이 판매경로를 개척했고 영업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시장조사, 가격책정, 포장, 서비스, 판매예측 등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종속자가 아니라 동료인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같다. 지휘자는 어쩌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방법조차 모를 수도 있으며 그의 성공 여부는 동료들의 기량에 의존한다. 아무리 훌륭한 지휘자라고 할지라도 특히 독재적일 경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거부할 수 있듯이 지식 조직에서도 아무리 유능한 상급자에 대해서라도 거부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풀타임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자원봉사자처럼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전형적인 기업들도 구세군이나 카톨릭 교단에서 배울 것이 많다.
노동자 - 특히 지식노동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자원 봉사자에게 동기를 주는 것과 같다. 자원봉사자는 보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유급직원들 보다 일에서 더 큰만족을 얻는다. 결국 그들은 도전이 필요하다. 그들은 조직의 사명을 알고 믿으며, 끊임없는 훈련을 필요로 하고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 내제된 것은 고용인이 명목상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동료나 파트너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트너쉽의 정의는 각 파트너가 평등하다는 것이고 파트너는 명령받지 않는다. 오히려 설득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다루는 것은 점점 더 마케팅 업무가 되고 있다. 마케팅에서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성과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X이론도 Y이론도 다른 어떤 특정 이론도 아니다. 이것들을 훨씬 뛰어넘어 직원의 목표를 조직의 목표에 조율하거나 반대로 조직의 목표를 직원의 목표에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다루는 것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점점 중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희망할 수 있는 경쟁적 우위는 지식 노동자 층의 생산성에 있기 때문이다. 지적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직도 낮다. 이는 지난 100-200 년간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결과이다. 누구도 생산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생산성에 대한 노력은 육체적 노동자의 생산성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경영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정의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즉, 이전에 가정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사람을 “관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업무 수행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은 그들을 강제로 어떤 틀에 끼워넣기 보다는 그들의 강점과 지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Ø 테크놀로지의 경계 없애기(The Erasing of Technological Boundaries) <
직조 산업이 처음으로 개발되었던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에는 직조 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가정되었고 이는 탄광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생겨난 다른 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기술이라는 것은 별로 겹치는 것이 없었다. 독일인인 Werner von Siemens는 이를 이해함으로써 첫번째 대형 산업 조직을 만들었다. 산업기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그는 1869년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한 과학자를 고용해서 현대식 연구소를 열었다. 이 연구소에서 독일의 전기, 화학 산업이 발전했고 최상의 테크놀로지를 개발해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적인 리더쉽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주요 선진 기업들이 산업 특정분야 연구에 대한 이해로부터 성장했었다. 자동차, 전화, 나중에는 제약,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걸쳐 해당 분야 바깥의 기술은 그 분야에는 아주 작은 영향만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왔다.
해당기술을 알아야 번창하는 것이고 철강 기술자는 우주항공학이나 인쇄기술의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이런 산업특성은 지난 100년간 어쩌면 가장 성공한 연구소들의 기초가 되었다. 1920년대 초반 AT&T의 일부로 설립된 Bell Labs는1960년대까지 실제로 전화 산업이 필요로 하는 모든 기술과 지식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다른 산업에는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Bell Labs와 모기업인 AT& T는 나중에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 Bell Labs의 가장 뛰어난 과학적 성과는 트랜지스터의 개발이었다. 그러나 트랜지스터의 주요 용도가 전화시스템 외부에 있었고, 연구소의 경영진은 전화시스템 외에는 관심도 없었고 아는 바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Bell Labs의 위대한 발명품은 겨우 2만5천 달러에 팔렸을 뿐이었다. 트랜지스터에 기반한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Sony, Intel, Compaq 등 거대한 회사들은 그러므로 상당부분 Bell Labs의 근시안 때문에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Bell은 세상이 변해가고 산업 간의 기술 장벽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늘날 성공하고 싶다면 오래된 Siemens社에게서 배운 영감 따위는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 우리의 기본 가설은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술은 해당 산업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화시스템을 혁신시킨 것들 -디지탈 신호전달, 광섬유 등- 은 Bell Labs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은 전화회사와는 전혀 관련없는 부문으로부터 나왔다. 19세기와는 달리 과학기술은 더 이상 분리된 트랙을 평행하게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교차한다. 기술이 서로 교차하면서 그동안 명확하게 정의되어왔던 산업분야의 구분이 흔들리게 되었다. 전에는 기업들이 해당 산업 내에서만 경쟁했지만 이제는 산업이 다른 산업과 경쟁한다. 철강이 알루미늄과 경쟁할 뿐 아니라 석유화학회사에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과 경쟁하며 컴퓨터 업체들은 오늘날 AT&T와 같은 통신 기업의 많은 부분을 맡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어떤 기술의 사용처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국한되지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고 이는 철강과 유리에 속했던 세력권을 플라스틱이 침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드디어 소비자의 요구는 특별할 수 있지만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영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1920년대 후반까지 뉴스라는 것은 18세기에 발명되어 20세기 초에 보편적인 탈문맹과 신속한 인쇄기술에 힘입어 전성기를 구가했던 신문의 독점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뉴스에 대한 요구는 신문만이 아니라 TV, 라디오, 인터넷으로도 충족이 된다. Wall Street Journal이 매일 배달되는 신문 형태의 시장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어떤 누구도 이 신문이 비지니스 뉴스를 독점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경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정보는 특정 산업이나 특정 사업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하나의 특정목적을 갖고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특정 용도가 특정 정보를 필요로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중 하나는 非고객이 고객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시장의 3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업체는 드물다. 다른 말로 하면 非고객이 잠재적 시장의 적어도 70%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업체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非고객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업체도 드물고 非고객이 누구인지는커녕 非고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들이 왜 고객이 아닌지는 더더욱 모를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미국 백화점 업계의 급속한 붕괴는 그들의 고객층 때문이 아니었다. 주고객층인 미국 가정주부층의 30%는 여전히 백화점의 충실한 고객이었지만 새로 등장한 일하는 교육받은 여성들은 백화점에는 맞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이 없었고, 애시당초 백화점의 고객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화점이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들이 중산층의 영향력있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는 백화점 측이 그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에는 너무 늦어있었다.
모든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고객은 공급자가 파는 것을 사는 것은 아니다. 고객에게 제공되는 가치는 언제나 공급자에게 의미있는 가치나 품질과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80년대부터 미국에서 급속히 성장하여 지난 3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회현상 중 하나가 된 거대교회의 예를 보자. 기존 교회가 꾸준히 쇠퇴하고 있는 동안 이들 거대교회는 팽창해서 현재 2만여개에 이른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그들이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기존 교회들이 제공하지 못했던 정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거대교회에 출석하는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수천만명의 신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배가 아니라 영적 체험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는 시장에 대한 이해가 소비자들이 자신의 가처분 소득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벌써 100년 동안이나 말해온 것이다. 1950년대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 1952년 뉴욕에서의 연설에서 일본 선진 전자회사의 한 중역이 “일본은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텔레비전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텔레비젼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년후 텔레비젼은 미국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본에 침투하였다. 5년 후에는 일본의 모든 가구가 -아무리 가난해도- 텔레비젼을 갖게 되었다. 여유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텔레비전을 사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텔레비젼은 그저 새로운 제품이 아니었다. 텔레비젼은 몇세기 동안이나 고립되어 있었던 일본인들에게 세계로 통하는 길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을 텔레비젼의 구매에 돌렸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활 방식이었다.
Fax는 미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다. 오늘날에도 Fax를 만드는 모든 제조회사들이 미국의원래 발명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한다. 그러나 정작 Fax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일본회사들이다. 미국의 제조업자들은 텔레비젼의 유용성이 일본인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아주 많은 시장 조사를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이 단지 우표값을 아끼기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Fax를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텔레비젼의 경험을 기억한 일본인들은 소비자가 다른 곳에 쓸 돈을 돌려서라도 그들의 가처분 소득을 무선통신의 구매로 돌릴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들은 Fax를 시장에 내놓았고 Fax는 경제 역사상 가장 빠르게 받아들여져서 보편화된 제품 중 하나가 되었다.
경영정책에서 기본이 되는 교훈은 테크놀로지도 아니고 기술의 용도도 아니다. 기본은 어떠한 기능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여야만 한다. 위의 예에서 가치는 느린 기존 우편제도에 대한 Fax의 선호도였다.
Ø 명령과 통제의 끝(The End of Command and Control) <
경영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개별 법인체 -일반 기업, 병원, 대학 또는 자선단체 등- 를 다룬다.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경영은 명령과 통제에 기반하고 있었고 그것은 합법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 주교구의 주교, 병원의 병원장 등 각 기관은 합법적으로 명령과 통제가 미치는 범위를 지정해 놓고 있다. General Motors의 회장은 수십만명의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GM외부인에게는 명령할 수가 없다. 거의 100년 전에 주요 기업을 경영하는데 적합한 법적 정의가 명확해졌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기 위해서 경영자는 전체 생산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경제활동 프로세스를 모두 조직해야 했다. 그 조직의 법적 범위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키레쯔(Keiretsu)의 개념을 발명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공급자들이 그들의 주고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기획, 제품개발, 비용조절 등을 함께하는 경영 개념이다. Toyota의 경영진이 범퍼 제조업자에 대해서 법적인 권한은 없을지 몰라도 그들은 긴밀하게 협동하여 생산, 비용절감, 연구개발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키레쯔는 미국에서 더 오래전에 개발된 개념이다. 이는 1910년 자동차가 주요 산업이 될 잠재력을 가졌음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William C. Durant(1861-1947)로 거슬러 올라간다. Durant는 규모는 작지만 성공적인 여러 자동차 제조업체들 -Buick같은- 을 사들여서 통합함으로써 General Motors라는 하나의 거대한 자동차 업체를 만든 사람이다. 몇년후 Durant은 주요 공급업체들을 기업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그는 1920년 미국 최대 자동차 차체 제조업체인 Fisher Body社에 이르기까지 부품과 부속품 제조업체를 인수 합병하기 시작했다. 이 인수합병으로 GM은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70%를 독자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어 여태껏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통합기업이 되었다. 그 후로 약 20년간 GM은 Ford나 Chrysler와 같은 경쟁 업체에 비해서 30%의 비용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Durant의 키레쯔는 공급자들을 GM의 법적 체제안으로 끌어들임으로서 명령과 통제 구역 안으로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Durant은 GM이 소유한 부속품 공급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 생산품의 50%를 GM 바깥(즉 경쟁업체)에서 팔아야 하도록 - Fisher Body만 빼고 – 주의깊게 기획했었다. 생산품의 반을 경쟁업체에 팔기 위해서 GM의 부서들은 항상 비용과 품질에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 후 많은 경쟁업체들이 도산했고 그와 함께 GM의 부속품 부서들의 경쟁력 견제도 사라졌다. 그 후 1936년과 37년 사이에 노동조합운동으로 GM 부속품 부문에는 더 높은 임금 부담이 지워졌고, 노동조합이 없는 독립 공급자들에 비해 오히려 가격면에서 불리해졌다. Durant의 실수는 그의 공급자를 명령과 통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 다음 -그리고 아마 여태껏 가장 성공적인- 키레쯔 실행은 영국의 Marks & Spencer였다. 1930년대 초에 시작하여 모든 공급자들을 경영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되 합병해서 소유권을 갖는게 아니라 계약을 통해서였다. 일본인들이 1960년대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모방한 것은 Marks &Spencer의 모델이었다.
키레쯔는 일본, 미국, 영국 어디서나 권력에 기초한다. Sears, Roebuck, Marks &Spencer, Toyota는 모두 압도적인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키레쯔는 평등의 파트너쉽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고리는 점점 더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를 결속시킨다. 제약회사와 주요 연구대학의 생물학 교수진 사이의 파트너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산업이 일본을 지배하게 된 벤쳐기업들의 연대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아주 작은 회사라도 거대기업과 종속관계가 아닌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화학, 제약 회사와 유전학, 분자 생물학, 또는 의료전자 회사들간의 파트너쉽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들 회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갖고 있지만 아주 규모도 작고 흔히 자본이 부족하다. 그러나 독립된 기술을 갖고 있어서 큰 회사와도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기술에 관해서는 더 큰 파트너가 되어 훨씬 큰 제약이나 화학회사들과도 누구와 제휴할지를 결정할 선택권을 가진다. 이것은 정보기술이나 금융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파트너가 될 때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에 대해 지배와 통제를 가지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경영범위의 재정의이다. 경영은 프로세스 전체를 포함해야 한다. 기업에게 이것은 모든 경제활동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전체 프로세스에 대한 경영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온 분야는 미국의 의료계이다. 건강유지 기관(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은 전체 의료 프로세스를 파트너쉽 경영으로 가져오려는 - 처음있는 시도이고 아직까지는 실험적이어서 별로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시도였다. 기관이 의사나 병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아주 큰 의미에서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개개 구성요소로 본다. HMO가 의료시술 측면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 다국적 기업에서 국적 찾기(Taking The National Out Of Multinational) <
국적이 `사업이 운영되는 환경을 정의한다’는 것은 아직도 일반적으로 경영원칙과 실제 경영에서 아주 당연시된다. 이 가정은 기존의 “다국적”기업에서조차 깔려 있다. 다국적 기업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공산품 생산과 금융서비스 등 많은 부분이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다국적이었다. 1913년 제조나 금융면에서 산업의 주도회사들은 나라 안에서 파는 만큼의 매출을 나라 밖에서 올릴 수 있었다. 실제 세계에서 바뀐 것은 정치적 경계가 더 이상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의 다국적 기업을 살펴보자. 여태껏 다국적 기업이 자기 나라 바깥에서 생산을 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국경 “안”에서 생산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다른 나라에 회사를 하나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 군대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가장 큰 공급업체는 젊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Turin에 위치한 Fiat라고 불리는 회사였다. Fiat는 이탈리아 군대가 요구하는 자동차와 트럭을 제조하였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의 가장 큰 군수물자 공급업체는 역시 Fiat라고 불리는 -Vienna에 위치한- 회사였다. Fiat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이 요구하는 자동차와 트럭을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Fiat는 이탈리아 Fiat의 자회사였다. 모든 제품은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지고 팔렸으며 모든 직원은 최고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서로 적대국이 되었을 때 오스트리아 Fiat가 취해야 했던 조치는 단지 은행계좌를 바꾸는 것 뿐이었다. 그 외에는 이전처럼 일하면 되었다. 실질적으로 독립된 회사였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은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최근까지 GM의 두 유럽 자회사, 독일의 Opel社와 영국의 Vauxhall社는 독립회사들이다. 현재 GM은 전 유럽의 디자인, 생산, 영업을 맡고 유럽지사들을 운영하는 유럽 회사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 유럽GM은 남미와 아시아에서의 생산과 미국내 판매도 맡는다. 또한 미국GM은 브라질 GM 등을 위해서 더 많은 디자인과 생산을 하고 있다. 엔진이 어느 한 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차체와 전자제품은 각기 또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오늘날 자동차 자체가 -자동차 회사 뿐 아니라- 다국적이다. 세계적인 보험회사들은 -오늘날 그중 첫째는 독일회사인 Allianz 이다- 점점 더 많은 주요활동들을 - 클레임 처리, 투자 등 - 어디가 되었든 그룹의 일 모두를 처리하는 중앙기구로 옮기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산업들 -제약회사, 정보산업 등- 은 GM이나 Allianz 등이 하는 식의 국내/해외로 구분되어 조직되어있지 않다. 그들은 연구, 디자인, 엔지니어링, 개발, 테스트,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부분의 제조와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개개업무가 초국적(Transnational)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 새로운 현실의 프레임워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초국적기업의 국적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는 점점 더 대학들에게도 문제가 되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특히 미국의 경우- 유럽이나 아시아의 대학들과 파트너쉽을 맺거나 분교를 세우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유럽이나 아시아 -주로 일본- 대학들도 미국에 분교를 만들거나 파트너쉽을 맺어서 여러 분야에서 함께 일한다.
투자와 세금, 자산 등에 관련해서는 현실적이고도 새로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전쟁의 경우 이들은 외국기관의 처우에 관련된 거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연구소는 아군편에 있고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적군 편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경영자측에도 새로운 현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당면하게 한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큰 기업 뿐만은 아니다- 지리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에 따라 조직을 하고 있다. 이들 서로 다른 단위들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각각의 관할권은 무엇인가? 이들 사이에 분쟁이 생길 경우 조정은 누가 하는가? 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실질적인 답은 아직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알고 있다. 경영과 국가경계는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의 범위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
>세계를 조직 안으로 끌어들이기(Bringing The World Into The Organization)<
여태껏 논의했던 기존의 모든 가설들은 더 큰 가정 위에 근거한다. 경영의 범위는 회사 안에 있으며 경영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역시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경영과 기업가정신 사이에 불가해한 구분을 만들 것이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경영기능과 혁신기능 사이의 구분을 만든다. 이런 분리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사업체든 다른 기관이 되었든 혁신하지 않고 기업가 정신이 없는 기업은 오래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도 적용되는 진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일반적으로 가장 보수적이고 급속한 변화가 없음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조차 세계와 함께 자주 혁신되고 변화되어왔다. 5세기 야만족이 로마제국을 무너뜨렸을 때 베네딕토회를 탄생시켰으며 700년후 중세에 도시들이 다시 생겨났을 때에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를, 또 종교개혁 운동에 대응해서는 예수회를 탄생시켰다. 이 모든 것들이 경영에 대해 의미하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조직에 대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힘은 조직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온다는 것이다. 새로운 카톨릭의 질서는 자신이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사건들이 요구했기 때문이었고, 개신교에서 18세기 중반에 일어난 감리교 운동은 영국과 미국 빈민층에서 일어난 사회변이 때문이었다. 짧게 말하면 이들 종교는 그들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혁신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기업경영과 기업가정신은 같은 업무의 서로 다른 두 차원일 뿐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기업가는 오래 살아 남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혁신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영자도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단체가 매일매일의 경영활동에 평행으로 수행되는 4가지 기업가활동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최적 자원분배가 아닌 제품, 서비스, 프로세스, 시장, 유통채널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첫번째 기업가 정신의 원칙이다. 그 다음으로는 모든 기관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개선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일본인은 이를 카이젠이라 부른다. 그 다음으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개척(성공으로의)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검증된 오늘 위에 다른 내일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계적인 혁신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즉, 오늘날 어떤 조직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라도 구식이 되고 많은 부분 대체되어 버릴 다른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네가지 원칙은 단지 “바람직”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들은 오늘날 살아남기 위한 생존조건들이다. 우리가 처음에는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안한 도구들이 경영자로 하여금 외부조건을 무시해도 되도록 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더 나쁘게는 경영자로 하여금 외부세계를 조정하고 조직의 목적을 위해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마케팅의 예를 들어보자. 이 용어는50년전 사업의 목적과 성과가 전적으로 기업 외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마케팅은 외부 -사회와 경제와 고객- 로부터의 이해를 얻어내어 전략과 정책의 기초로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마케팅은 이제 이 중대한 임무를 거의 수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마케팅은 영업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고객은 누구인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건을 팔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로 시작하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물건을 살 사람을 모으는데 목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거꾸로 되었다. 미국은 Fax 산업을 이런 식으로 잃었었다. 질문은 “어떻게 하면 고객이 사고 싶어할 물건을 만들어 낼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경영의 내부로의 집중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완화된 것이 아니라 더욱 가중되었다. 정보기술이 여태까지 경영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던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정보기술이라는 것은 전혀 틀린 분야의 부가적인 정보를 가져오는데 너무나도 능하기 때문이다. 내부 데이터를 기록하고 보고하기 위해서 고안된 700년이나 된 회계시스템에 기반해서 정보기술은 내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생성하였다. 실질적으로 정보에 대한 모든 협의는 전적으로 어떻게 더 많은 내부 데이터를 입수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외부정보는 무엇이며 어떻게 입수할 수 있을까?”류의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기만 해도 흥분할 것이다. 경영자는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정보가 필요없다. 오히려 기업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여태껏 의미있는 외부정보를 어떻게 체계적인 형태로 입수할 것인가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 외부정보에 관해서는 우리는 아직 한낱 이야기거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의미있는 외부정보의 체계적인 공급은 다음 30년간 정보기술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Ø 외부向 경영의 역할(The Role Of An Outward-Directed Management) <
경영진의 첫번째 임무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이다. 이것은 이 일에 종사했던 누구라도 증명할 수 있듯이 가장 어렵고 가장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조직의 자원을 조직외부의 성과를 위해 체계화하는 것도 경영의 특수한 기능이다.
원칙과 실제 양쪽에서 경영자가 참고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음은 경영자가 기업이 달성하기를 기대하는 성과를 정의하고, 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원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물의 개발에 있어서 세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 기업 Kyocera社는 `성과를 혁신속에서의 리더쉽’이라고 정의한다. 그 바로 뒤를 쫓는 독일 기업 Metallgesellschaft社는 `성과를 일차적으로 시장에서의 순위’라고 정의한다. 양쪽 다 이성적인 정의이긴 하지만 아주 다른 정책을 생성할 것이다.
> 경영이 중요한 이유(Why Management Matters) <
이 에세이에서 아주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지만 의도적으로 답은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 문제들에는 아주 간단하고 명백한 영감이 깔려있다. 현대 사회, 경제와 공동체의 중심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며 정보도 아니고 생산성도 아니다. 현대 사회의 중심은 경영되어지는 기관(Institution)들이다. 그리고 이들 기관들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일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경영이라는 것은 기관들로 하여금 성과를 만들어 내게 하는 특수한 도구, 특수한 기능, 특수한 장비이다.
The institution, in short, does not simply exist within, and react to, society. It exists to produce results on and in society. 짧게 말하면 그들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반응”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