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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 金 法 -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 사람으로 태어남의 의미
인간의 영혼(=자성自性)은 대우주 본래 자리인 큰 별이 운용 중에 기운의 미세한 오차가 생기게 되면 그 질량이 무거워져서 빛의 속도로 추락하게 됩니다. (예:이런 현상은 별똥별에 비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추락하는 과정에서 물질은 타서 없어지고 영(靈)만 남게 되는데 이 영(靈)이 주파수가 맞는 환경과 조건을 만나면 자연법의 원리인 땅의 기운 물질 혹은 육(肉)7에 영(靈)3의 비율로 계합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음.양의 합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100일이 지나면 사람의 모양이 갖춰집니다. 이럴 때에 주파수가 맞는 영(靈)이 내려오게 되는데, 영(靈)과 계합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태어나서 첫울음 ‘응애’ 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때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물질의 집합체인 육체와 영혼이 합을 이루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 파장이 생기게 되므로 큰 소리로 울게 되는 것 입니다. 울음소리가 우렁차다면 기운의 에너지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과 영혼(=자성自性)이 계합하면 제3의 ‘마음’이 만들어 집니다.
마음에너지가 생성 될 때에 정신에너지와 생각에너지가 함께 생겨나 마음, 정신, 생각의 3합으로 기운으로 운용되어 돌아갑니다. 인간이 마음에 각인된 것을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면 바로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색과 모양이 없지만 무엇이든지 도장 찍듯 흡수합니다.
누구라도 갓 태어났을 때 마음은 백지 상태와도 같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이 수억 년 동안 지구에 윤회를 거듭하면서 저마다에게 쌓인 습(習)과 한(恨)이 마음에 함께 각인됩니다.
예를 들면 사람마다 저마다 얼굴과 소질이 다르듯이 어떤 아이는 배우지 않고도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납니다. 이를 천재라던가 신동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흔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도 지지리도 없지, 나는 왜 이런 집안에 이런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전생에 내가 뭘 잘 못 했길래 이렇게 태어났나..?’등등
내가 태어난 환경과 조건은 누구를 탓해서도 누군가의 잘못도 아닌 제자신의 업(業)과 습(習) 혹은 한(恨)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어놓은 대로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주파수가 맞아 강렬하게 이끌렸기 때문이지요.
이 ‘마음’이라는 것은 태어난 환경에 따라 자라게 되고 분별이 생겨나 각기 다른 성품으로 그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가령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면 성품이 긍정적이고 온화하며 밝은 사람이 되고,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억압과 무시당하며 자란 사람은 반사회적인 인성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 자신의 어려움을 발판으로 크게 성공하는 경우, 도 있습니다만 이는 영적 급수가 높아 마장(魔)을 이겨내어 업그레이드되는 극소수의 경우라 하겠습니다.)
인간이 마음을 바르게 써야 사람이 되고, 참사람이 되어야 성현도 되고 부처도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음을 바로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공(空)덕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공(空)덕행이란 돌려받겠다는 마음 없이, 복을 쌓겠다는 마음 없이 말 그대로 철저히 빈 마음으로 덕행을 실천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한자를 功(공공)이 아닌 空(빌공)을 쓴 이유입니다. 공(空)덕행을 실천할 때에 비로소 참사람으로 빛이 나는 삶을 살게 되고, 이것이 사회의 긍정적 에너지로 이어져 나라가 달라지고 지구촌 인류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수행의 도장인 지구를 오래 영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긍정적 빛의 에너지는 다시 인연 따라 혹은 맡은바 역할을 다하는 개개인에게 다시 회향이 되어 더 큰 빛에너지로 돌아와 각자의 자성을 맑고 가벼워지게 합니다.
마치 던지면 되돌아오는 부메랑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러면 맑고 가벼워진 만큼 대우주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차원계의 큰 별로 돌아가 영원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 날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며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습니다.
무언가 가지고 태어나 죽을 때 다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현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쌓으며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을 회향하고 그만 잊고. 놓고 쉬라는 것입니다.
대기업의 재벌을 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해도 부와 명예는 죽을 때 가져 갈 수 없는 것이며
이를 욕심으로 꽉 움켜쥐고 놓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까지 나쁜 습(習)과 기운으로 악영향을 주게 되고 점점 구제 될 수 없는 캄캄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윤회의 이치로 보면 영(靈)은 여러 모양의 물질과 계합하는데 수행을 통해 자성을 맑혀 본래의 자리로 돌아 갈 수 있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 몸 받았을 때만 가능 합니다.
업과 습이 많고 탐.진.치(貪.瞋.癡)에 이끌려 살아 자신을 밝히지 못하면 업이 무거워져 집착과 한으로 우리는 우주 밖은커녕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랜 시간을 지구 안에서 떠돌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받으면 천만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업식이 이끄는 대로 동식물 혹은 바위나 돌에도 붙어버려 이 또한 구제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자연법의 이치가 이러한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촛불이 밝은 빛을 내며 타들어가 제 모양을 불사르듯이 우리 모두는 참사람이 되어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나는 삶을 살아 자신을 불사르고 맑고 가벼워진 영(靈)이 되어 윤회의 고苦에서 벗어나 대우주의 자유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남의 이치를 바로 알고 자신을 철저히 성찰하여 수행(덕행)을 통해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참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참사람으로 거듭나는 수행
식물이 자라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색과 향내를 풍겨 제 역할을 다하듯 인간도 대 자연법에 공존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 한 바 참사람은 촛불과 같이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발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선천시대(先天時代) 3.4차원 신과 인간이 공존한 성장시대가 끝나고, 후천시대(後天時代)는 인간이 신의 영역(예: 현재는 과학문명의 눈부신 발전으로 신의 영역인 우주를 탐험하고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초과학적 시대를 맞이함)을 누리는 인용시대(人用時代)를 맞이한 인류는 그동안 쌓은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보살도(덕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후천시대에는 모든 성장이 끝났기 때문에, 사도(詐道)로 신(神)을 팔아 부를 축적한 종교는 모두 그 힘을 잃게 되고,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은 모두 빠져나가게 됩니다. 바르게 알고 살지 않으면 스스로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최근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도지사도 혹은 재벌회장도 그 힘을 가지고 갑질을 하거나 돈으로 죄를 지으면 제 자리에 서있을 수 없고, 사회의 지탄을 받습니다. 일반인들도 돈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욕심만 내다가 놓지 못하고 죽으면 그것이 자손 까지 원수로 만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듯 후천시대에는 덕행으로 빛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연이 몰락하게 되는 시대에 들어 서 있다는 점을 새기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선천시대: ~2012년 까지. 신과 인간이 공존한 시대로 모든 것이 성장하던 시대를 일컬으며 성장이 목적이라 여러 모순이 있어 잘못된 성장이라도 하늘에서 응답해 주었습니다.
*후천시대: 2013년부터(현재는 후천7년차임) 인용시대, 인간이 모든 것을 운용함, 그동안 잘못된 성장에 대한 모든 것이 바르게 평정 되는 시대.
‘마장(魔障)을 이겨내야 도(道)를 이룬 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에는 중력이 있어 모든 에너지를 끌어당기는데 여기에 탐.진.치(貪.瞋.癡)라는 삼독도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도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한 탐.진.치(貪.瞋.癡)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탐.진.치(貪.瞋.癡)라는 마장(魔障)에 끌려가지 않고 이겨내면 이것이 곧 해탈의 길입니다.
이것은 악(惡)이 있어야 선(善)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육신도 없고 영(靈)만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극복하고 어떻게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내 앞에 닥친 모든 어려움은 인간관계 속에서 그들을 스승삼아 자신을 성찰하여 자성을 밝혀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게 주어진 어떤 인연이든지 그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수행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할 부분은 늘 강조했듯이 지구촌은 수행의 도장이며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는 지금보다 영적으로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수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수행을 하여 자성을 보아 깨닫게 되면 맹인이 눈을 뜨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맹인이 눈을 뜨면 그 세상이 얼마나 경이롭고 밝게 빛나겠습니까.
이는 ‘불자 육행도’의 첫 번째인 ‘내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에 해당되는 것으로 내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더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고 내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 나아가서 인류를 위해 덕행을 실천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도록 수행을 통해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다양하게 들어와 공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수용력을 가지고 넓게 포용할 줄 아는 민족이며 정신적 중심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민족이라는 반증입니다.
종교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지 않고 신을 위한 종교는 모두 정(正)이 아닌 사(詐)입니다.
이제 종교가 더 이상 신을 팔아 제 몸집을 부풀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아셔야 할 점은 내가 ‘전지전능(全知全能) 하다’라고 말하는 종교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거짓입니다. 인간은 작던 크던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사람의 몸을 받는 순간 전지전능(全知全能)은 없습니다. 다만 각자 갖추어진 역량에 따른 역할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요.
이 점을 바로 알고 종교를 받아들이고 배워나가야 무리가 없으며, 사상적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각자의 종교에서 나름의 부처님, 선지자, 메시아 등이 가르치는 진리는 인종과 문화, 표현이 달라도 그 맥은 같다고 했으니 여러분의 근기에 따라 (다만, 정(正)과 사(詐)를 분명히 알고)바르게 수행하시면 되겠습니다.
선천시대의 수행은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산속 토굴을 찾아 도(道)를 닦는 수련을 통해 각자가 이루어 낸 만큼 세상에 지혜를 전했고, 그 지식들이 쌓여 이제는 모든 것이 완성이 되었으며, 지금은 (인간이 모든 것을 운용하는 )후천시대이므로, 깊은 산중으로 출가해 가만히 앉아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은둔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고속 통신망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사회의 기본 보장제도나 기본 의무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삶속에서 각자의 삶을 통해 수없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으며 자성을 맑혀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것을 ‘생활도(生活道)’라 하겠습니다.
개개인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 시대의 수행법은 바로 ‘자기성찰’입니다. ‘자기성찰’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의 모순을 발견하고 바르게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 하는 매 순간과 인연을 배척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내 생각’과 ‘내 말’을 하지 않는 것 입니다. ‘내 생’각 ‘내 말’을 하게 되면 내 안의 마음 에너지가 흐트러져 약해지므로 내면(=內佛)의 빛을 발현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진정한 묵언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주장이 옳다고 상대에게 펼치거나 불필요한 잡담을 하지 않는 것 입니다. 상대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면 되는 것이고, 잘못 된 것이 있으면 상대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늘 자신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돌이켜 보며 참회하고 내 고집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물위에 도장 찍 듯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것입니다. 물위에 도장을 찍으면 어떻겠습니까?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이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꺼둘리고 집착하지 말고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나쁠까? 혹은 이러면 이익이 될까? 안 될까?’를 계산하지도 말 것 이며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다 보면 어느새 내 자신이 달라지고 지혜가 열리게 됩니다.
마음공부를 하게 되어 더 이상 탐.진.치에 이끌리지 않고 잡념이 들어오지 않아 생각의 파장이 잔잔해지면 정신이 고요해지고 결국에는 고요해진 마음자리가 투명해져 대자연에서 온 영혼과 계합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깨우치다’ 혹은 ‘도통하게 되다’라고 표현 하며 ‘견성(見性)’하게 됩니다. 즉, 깨달음이 있어야 영혼(=자성自性)과 일체가 됩니다.
견성을 하게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겉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세상을 보는 각도가 달라지고 득실을 따지지 않고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아 마음의 끝자리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참사람이 되어 스스로가 제 할 일을 알아 덕행을 실천하는 보살이 되는데, 진정한 보살도는 나의 빛을 찾아 나를 갖추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덕행과 복을 짓는 것을 구분 해 본다면, 복을 짓는 것은 무언가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어떤 식으로든 돌려받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람은 되돌려 받는다는 생각 없이 '오른손이 한 일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는 것처럼 바라는 것 없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이것이 큰 빛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덕행(보살도)의 실천임을 명심하시고 이제는 모두 ‘자기성찰’을 열심히 하여 빛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인간불사의 척도입니다.
-소백산인 寂圓 합장-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