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명한 책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책들이 그렇듯이..읽지 않고도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기실, 책 내용을 알고보면 읽지 않고 읽은 척 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만화로 영화로 그리스 신화로 널리 알려지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만큼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고전강독>팀에서 읽기로 작심한 이유는..
서양 문학과 철학의 본류라 일컬어지는 <그리스>를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지락에서 읽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여운이 꽤나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방대한 대서사시를 읽고 뭘 정리하기는 무리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또 아쉬운지라..
<단상>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맘가는 대로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한마디로 꼴리는 대로 적어본다.
1. 너거 아부지 머하시노??
참 유명한 <영화속> 대사다.
우리나라 일선 교욱현장에서만 너거 아부지의 직업과 그 직업이 갖는 계급적 속성과 사회적 위치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 국가들의 전투현장.. 피비린내 생생한 살육의 현장에서
갑옷과 투구와 방패로 무장한 <장수>들은 상대방 <장수>들의 <너거 아부지>가 궁금하다.
아가멤논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 없이는 등장하지 못하고..
<리카온의 아들> 판타로스는 그 이름도 둘다 낯설어서 미안하고..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는 30명 넘는 아들들이 있어서 그 이름도 외기 힘들다.
창을 겨누고 마주한 전투에서 두 장수가 서로 <너거 아부지>의 신상을 공개하다가..
알고보니 가차운 집안이라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 이름도 용맹무쌍한 아킬레우스는 아부지 이름보다 어머니의 이름과 족보가 더 강조되기도 하는데..다름아닌 여신 <테티스>를 엄마로 뒀기 때문이다.
아부지 족보가 아무리 훌륭해도 여신은 넘사벽인 것이다.
2. 신들의 전쟁
웬 놈의 신들이 이렇게 많나. 게다가 족보까지 디따 복잡하다.
내가 그래도 소싯적에 만화와 동화와 기타 버젼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쫌 봐놨으니,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헤라, 포세이돈, 아폴론, 크로노스, 아프로디테, 테티스, 헤르메스, 하데스, 그리고 제우스 헥헥..등등이 나와도 그 캐릭터가 대충 파악은 되고..그래서 이 온갖 신들이 인간을 상대로 벌이는 별 희안한 작당들이 그럭저럭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들이 제각각 편을 먹고 인간들의 전쟁에 못끼어들어 안달인지 그건 책을 읽는 내내 못내 궁금했는데..
호메로스라는 한 인간이 쓴 글이니 결국 당시 인간의 마음과 욕망과 시기와 질투가 신들에게 투사된게 아닌가 싶다.
<트로이>라는 이름의 기름지고 풍요로운 지역 <일리아스>는.. 먹고살기 척박한 그리스 여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덩이에 사는 사람들을 대놓고 시기 질투하여 싸움 걸기 민망하니 <절세미녀 납치극>이라는 치정에 얽힌 사연 하나 만들어 놓은 지도.
그니깐 결국 신의 이름을 빌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실현하는 지도.
어쨌든 <신의 이름>을 빌어 행해지는 악행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하다.
3. 운명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빵 하나에 얽힌 사연과 닭 한마리에 얽힌 사연>은 다 다르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나름의 한서린 사연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친구 <파트로클라스>의 죽음앞에서 거의 이성을 잃어버리고 잔악무도한 살인마로 변해버리는 아킬레우스를 보며..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말그대로 < 행간을 읽으면서> 친구 이상의 사랑하는 동성연인의 관계를 의심해보기도 했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에 불과하다만.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할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은..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나름의 사연과 살아야 할 절박한 이유를 가진 <인간들>이
신들의 장난질과 조작질로 생사가 엇갈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지어진 운명.
인간의 가없는 노력과 간절한 기도가..단지 신들의 장난과 순간의 치기로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면서
무기력함이랄까 답답함이 몰려왔다.
고전문학이든 구전문학이든 현대문학이든 성경이든
신들이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되는 온갖 작품의 영향으로
어쩌면 인간들은 <신적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십자가든 불상이든 이순신 영정이든..죽어서 불사의 존재가 된 무수한 <신>앞에서 일단 수구리고 조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각자 나름의 사연을 담아서 말이다.
4.. 사족 - 퓨리오사는 없었다.
이 책에서 여신을 뺀 나머지 여자 등장인물들은..
< 베를 잘 짜는 > < 볼이 예쁜> < 팔이 하얀> < 깊은 주름이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한 쪽 팔이 없는 여전사의 모습을 보여준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는 없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의 여성들은 어떤 여자들인가..나는 어떤 여자인가.
첫댓글 베를 잘 짜는 여인의 상품 가치가 황소 4마리, 세발 달린 무쇠솥의 가치가 황소 12마리.
쇠붙이보다 가치가 떨어지던 당대 여인들에게 전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듯.
설사 퓨리오사가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역사 속에 기록되기는 무리였으리라 생각해 봄.
그러나, 어떤 인간도 여자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인간은 하나도 없으니,
그 미안함이 아테나나 아르테미스 같은 여신들에게 투영되어 여신들 만큼은
권능을 인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한 사족으로 한번 생각해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페리클레스의 장례연설..
그 명문장의 초고를 쓴 여자, <아스파시아>는 방대한 전쟁사에 이름 한번 언급이 안되죠.
여자와 아이는 전쟁노획물 쯤으로 여겨졌으니 아테네 민주정은 <누구를 위한 민주정>이란 말입니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