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시스 잠(1868-1938)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나귀와 함께 천국으로 가기 위한 기도 나는 당나귀가 좋아 삶의 기쁨 식당 집은 장미로 꿀벌로
나는 당나귀가 좋아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우물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을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말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 했다 그런데 내 소녀야,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많은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아 먹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테지
그러니 말해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보고 이렇게 전해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 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꽃 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귀와 함께 천국으로 가기 위한 기도 하나님, 당신의 나라에 가게 되는 날은 마을마다 축제로 먼지가 보얗게 낀 날이게 해 주십시오 천국에 가는데도 나는 이 세상에서와 같이 마음에 드는 길을 선택하고 싶은 것입니다 천국에는 낮에도 별이 반짝이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큰 길을 걷겠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인 나귀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프란시스 잠, 나는 천국에 가나니 선하신 하나님의 나라에는 지옥이 없단다 또한 나는 말하겠습니다. 따라 오너라, 푸른 하늘의 착한 친구 귀를 쫑긋거리며 탐욕스러운 파리와 귀잖은 등에와 꿀벌을 쫓고 있는 귀잖고 불쌍한 짐승들아 원컨대, 이 짐승들에게 둘러싸여 내가 당신에게 가게 하십시오. 나는 나귀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 짐승들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연민의 정을 느낄 만큼 그 작은 다리를 바짝 붙이며 서는 것입니다 나는 수천 개의 귀를 거느리고 가겠습니다 배에 바구니를 운반하고 있던 나귀와 서커스 수레를 끌고 있던 나귀와 마포나 깡통을 실은 짐수레를 끌고 있던 나귀들과 찌그러진 깡통들과 발을 삔, 새끼를 밴 나귀를 진 나귀들과 끈질긴 파리에게 애먹지 않도록 작은 바지를 입은 나귀들을 거느리고서 나는 가겠습니다 하나님, 이 나귀들과 함께 당신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천국의 안식 속에서, 천사들이 숲 속을 흐르고 있는 시내 쪽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하십시오, 거기에는 소녀들의 미소 짓는 살결처럼 부드러운 버찌가 떨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휴식소의 당신의 거룩한 흐름에 몸을 굽힌 내가 나귀들을 닮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 엄숙하면서 행복한 가난을 깨끗하고 영원한 사랑에 반영시키고 있는 나귀를 닮게 하십시오
믿음의 명시(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1984년) 프란시스 잠의 대표작인 <14편의 기도 노래> 중 제 8편이다 유대 소녀 마모르와 이별하고 지은 시
당나귀 조병화 아이야 그렇게 미워하질 마십시오 그렇게 마구 때리질 마십시오 낙엽이 솔솔 내리는 긴 숲길을 아무런 미움이 없이 나도 같이 갑시다 어쩌다가 멋 모르고 태어난 당나귀 나 한 마리 살고 싶은 죄밖엔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는 죄밖엔 없습니다 외로움이 죄라면 하는 수 없는 죄인이올시다 낙엽이 솔솔 내리는 저문 이 길을 보십시오 나도 함께 소리 없이 끼여 갑시다
당나귀와 나는 김광렬 당나귀와 나는 같다 늙어 게슴츠레해질 눈과 눈곱과 몽당빗자루 같은 꼬리와
등에 잔뜩 인생을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과 절뚝거리는 마음과
무엇인가 하소연하는 듯 주인을 바라보는 눈초리와 깊은 체념과 젖어 있는 쓸쓸한 희망과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내게는 고통만 있습니다 그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은 내게 충실했었고, 지금 또한 충실합니다 어찌 고통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내 가슴이 심장 아래가 뜨끔거리며 아플 때면 고통은 언제나 내 곁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아 고통이여 나는 끝내 너를 존경하게 되었다 너는 절대로 내게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연민에 잠긴 내 마음 속에서 결코 떠나가지 않았던 사람들을 닮았다 고통이여, 너는 가장 사랑하는 여인보다 정이 많다 나는 알고 있나니 ㅡ 내가 죽음이 자리에 드는 날 오오 고통이여, 나는 저리 속에 나와 함께 있으리라,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오기 위하여
프란시스 잠은 평생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선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 속의 두메산골에서 살면서 파리에는 두어번 나들이 갔던 일 밖에 없었다
피레네 산맥
삶의 기쁨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든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식당 우리집 식당에는 윤기가 거의 바랜 찻장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 목소리도 들었다 그들의 추억을 충실히 간직하고 있는 찬장이다 그것이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니까
또 나무로 된 뻐꾹 시계도 있다 어째서 이제 소리가 나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그에게 묻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부서진 모양이다 태엽 속에 있던 그 목소리도 돌아가신 어른들의 목소리처럼 정말이지 그럴게다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밀납냄새, 잼냄새 고기냄새, 빵냄새, 잘 익은 배냄새가 난다 그건 우리에게서 아무 것도 훔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충실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들은 이런 하잖은 영혼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문객이 "안녕하시오, 잠 선생?" 하고 들어서며 나 혼자만 거기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습다
집은 장미과 꿀벌로 집은 장미와 꿀벌로 가득하리라 오후엔 저녁기도의 종소리 들리고 투명한 보석 빛깔 포도알이 느린 그늘 아래 햇살을 받으며 잠든 듯 하리라 아 그곳에서 그대를 마음껏 사랑하리! 나는 그대에게 바치리 온통 스물 네 살의 마음을, 그리고 내 조소적인 정신과 자존심과 하얀 장미의 나의 시를 하지만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하고, 그대는 존재치 않는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대가 살아 있다면 그대가 나처럼 목장 속 깊이 있다면, 황금빛 꿀벌 아래 웃으며 우리 입맞추리라는 것 시원한 시냇물가에서, 무성한 잎사귀 아래서 귀에 들리는 건 오직 태양의 열뿐 그대의 귀엔 개암나무 그늘이 지리라 그러면 우리는 웃기를 그치고 우리들의 입술을 입맞추리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발견하리라, 그대 입술의 루즈에서 황금빛 포도와 빨간 장미와 꿀벌의 맛을 프란시스 잠
|
)
)
)
출처: 동해물과 백두산이 원문보기 글쓴이: 아침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