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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근
남부행정고시학원
"자신의 기본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라"
외무고시와 행정고시, 사법시험 1차시험 합격. 영어는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는 명제 아래 고등고시 영어 수험계 평정. 놀라운 이력만큼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면모를 기대하며 성기근 선생을 만났다. 그런데 선생은 난데없이 “무조건 낙관하라. 근거가 없어도 낙관하라.”는 다소 ‘대책 없이’ 들리는 조언이 수험생들에게, 인생의 후배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이 ‘대책 없는 낙관주의’야 말로 지금까지의 선생의 행보와 영어와 강의에 대한 넘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선생의 이 ‘무대책의 조언’은 모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편집자>
꿈
학창시절의 꿈에 대해, 앞으로 10년 후의 모습에 대해 얘기한다면.
“20대까지의 꿈은 정치였다. 고등고시 3관왕이 되면 국회의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고시를 준비했다. 외무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행자부에서 근무하던 중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린다면 글쎄… 지금은 강의하는 것이 재밌고 가족들 모두 평안하게 잘 지내는 것 이외에 크게 바라는 것은 없다. 다만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으로 5년 안에 영어연구소를 세워 지금까지의 강의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좀더 깊이 연구해 영어교수법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사법시험에 다시 도전했다는데.
“그렇지 않아도 계속 도전할 거냐고 주위에서 많이들 물어보는데 … 그냥 회갑기념으로 남겨두자고 했다. 내겐 희망이었고, 18년 간 묻어 뒀던 걸 다시 시작했던 거였다. 일단은 쉬고 있다.”
영어, 영어, 영어
학창시절, 수험생 시절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외무고시를 준비할 때는 6개월 만에 영어를 끝내기도 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 수업을 받은 것 이외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 그냥 남들 보는 책으로 남들처럼만 공부했다. 굳이 다른 점이 있었다면 원리를 생각하면서 이해 위주로 공부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사고방식에 바탕을 둔 표현에 대해 왜 그럴까, 왜 우리말과 다를까 생각해 보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수험생들은 보통 영어공부를 하면서 합격이라는 목표만을 생각하고 정작 공부하는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영어적인 표현방식, 영어의 우수한 점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조급한 마음에 암기에만 의존하다 보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영어 표현상의 특징을 몇 가지만 들자면 우리말과 달리 분화가 심하고, 주체와 객체의 개념이 분명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영어의 특징과 맞닥뜨렸을 때 무조건 암기의 대상으로만 취급해 버리면 우리말과 다른 점이 낯설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서 영어의 언어 감각적인 측면까지 이해하고 나면 암기할 필요도 없고 응용력도 높아진다.
영어 공부는 여행과도 같아서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과정을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영어공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관용표현도 암기해서 알아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 표현도 익히고 시험에서 응용력도 발휘할 수 있으며 영어 전반을 관통하는 원리와 언어 감각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관용표현을 포함한 영어 전반의 지식을 암기만 했기 때문에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인터뷰 도중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이야기의 끝은 항상 같은 지점에 닿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수험 영어에 접근할 것인가. 이 대목에만 가면 선생의 눈은 빛나고 목소리에도 한층 힘이 들어갔다. 영어교수법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녀의 영어교육 문제로 넘어갔다.
내 인생의 햇살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 교육만큼은 직접 하실 것 같은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잔소리를 하지 말자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아이들 시험기간이 되면 혹시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게 될까봐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간다. 아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바쁜 일정 때문에 가뜩이나 아이들 보는 시간이 짧은데 얼굴 보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웃는 얼굴로 서로를 대하자는 생각이다.
가능하면 아이들에겐 푸근한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는 몰라도 ‘편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고는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아이들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 집에는 가훈이 없다. 아내는 선악을 명확히 구분하고 착하게 살라고 얘기하는 편인데 나는 늘 단정적인 부모가 되지 말자고 얘기한다. 우리 세대의 가치관이 아이들 세대에도 맞을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선입견을 갖지 않고 심리적인 균형감, 평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에게 강박관념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부부싸움도 피하고, 술 먹은 모습도 안 보이려고 한다.
굳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면 성실해라 정도? 그런데 이것도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한다. 형제 중에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인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을 봐도 그렇고 살아오면서 만난 또다른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열심히, 성실히가 과연 정답인지 잘 모르겠더라. 즐겁게만 지내도 잘 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게 다라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강의로 바쁜 중에도 두 아들의 목욕과 이발은 항상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해 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니까 목욕도 같이 안 가겠다고 하더라. 어릴 때보다는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나는 또 굳이 아이들과 친한 척하지 않으려 한다. 혼자 겪어내는 사춘기의 아픔과 고민도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풀어주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빛이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즐거움이고 낙이었다. 사람이 사는데 언제나 좋기만 했겠는가.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보며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꼭 필요하지만 참 갖기 어려울 것 같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믿음도 선생의 낙관주의가 가져다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교감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고시 쪽에서 수업을 할 때 강의를 듣고 나서 주례를 부탁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강의 중에 다른 얘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가끔씩 했던 한 마디에서 삶의 철학을 배웠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내 나이도 있고 해서 주례는 결국 사양했지만 보람을 느꼈다. 또 공무원 강의를 맡으면서 만났던 한 수험생이 있다. 지난해 8월이었던 것 같은데 찾아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청했다. 소방직 9급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하다가 7급에 합격할 자신이 있어 9급을 그만두고 7급 공부를 시작했는데 5년 동안 합격을 못했고 결국 연령제한 때문에 올해 남은 기간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경험에 비추어 시험에 꼭 합격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합격이라는 목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동안 지켜보았더니 참 성실하더라. 성실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게 되어있다. 남은 기간 동안 지금까지처럼 성실히 해서 합격하지 못하면 그 때 또 다른 길을 찾아 성실히 해나가면 된다.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야겠다는 강박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보니 얼굴에 합격이라고 씌어 있다.’고, 그렇게 격려를 해서 보냈는데 한 달 뒤에 선물을 하나 전달받았다. 어떤 학생이 맡겨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함께 들어있던 편지를 보니 지난번에 상담을 받았던 그 수험생이었다. 상담이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력 때문인지 수험경험과 법과목 공부방법, 그리고 고시 공부방법론 등에 대해 상담을 청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영어 왕초보는 없다
고시 영어와 공무원 영어 교수법의 차이점은.
“수험생들의 문제는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영어를 공부해 온 시간과 영어 공부에 투자해 온 교육비로 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그러니 영어의 왕초보라고 스스로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 영어에 대한 지식과 기본기는 이미 충분하다. 단지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핵을 짚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리를 이해하고 복습만 한다면 누구나 80~90점을 맞을 수 있다.
수험생들의 기본을 인정하는 강의, 자신감을 주는 강의가 필요하다. 요즘은 자신감 북돋는 것이 일이다. 나는 강의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강의 도중에도 자신감을 북돋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험생들의 눈빛을 보면 이런 교수법을 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시 쪽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있어 가르치는 일이 재밌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풀어서 설명해 줄까하고 고민하다 보면 지금까지도 몰랐던 새로운 원리들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보통 중학교에 처음 입학하면 영어의 어순이 다르다는 특징으로 겁을 주고 부담을 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같은 특징을 놓고 영어적인 표현의 장점으로 접근하면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It is good for~’ 구문을 놓고 보면 뒤에 오는 말을 보지 않아도 이 말이 화자의 판단을 나타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화자의 의도에 보다 빨리 접근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I think that~’이라고 했을 때에도 뒤에 오는 말을 듣기 전에 다음에 올 내용은 이 사람의 생각이구나라는 것을 먼저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말의 경우 말하고 있는 내용이 그 사람의 생각인지 사실인지,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를 문장 맨 끝에 가서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즉 내용을 앞세우기 때문에 말실수가 많고 다툼의 소지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나?
이런 영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나면 그때부터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특히 가주어, 가목적어 등을 쓰는 구문처럼 우리말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구문을 대할 때 왜 저렇게 표현할까를 생각하면서 접근하면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아쉬움
강의를 해오면서 아쉬웠던 점은.
“그간 독해에 주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어휘 학습법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했다. 앞으로는 어휘 학습법을 따로 다뤄 보고 싶다.
어휘 공부도 수험을 위한 공부 방법은 따로 있다. ‘영어에서는 짝짓기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영어 단어 하나에 우리말 뜻 5~6개씩을 외는 것은 효율적인 방법이 못 된다. 어휘력 향상을 위한 교재를 볼 때에도 단어 하나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뜻 하나만 알고 넘어가면 족하다. 대신 빠른 속도로 같은 교재를 10회독 이상해서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10회독 이상은 한 후에 문제를 풀어야 효과가 있다. 이후에는 독해를 통해서 문맥상 의미를 파악하면서 익혀 나가면 된다. 그리고 단어 공부할 때 쓰면서 공부하지 말고 접두사와 접미사만을 끊어서 파악해 두면 된다. 9급 수험 기간은 길어야 2년이다. 그 기간 동안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교재를 보면 너무 많은 걸 수험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3줄씩 되는 예문을 다 볼 시간이 없는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수험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하고 이해력, 분석력을 향상시키는 시간으로 만들어라. 요새는 노점을 차리더라도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를 즐겨라. 합격해서 공직생활을 하더라도 승진을 위해서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자기를 신뢰하라. 회의가 들 때가 있더라도 자신의 기본을 믿어라. 나는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근거 없이도 낙관하라고. 나 자신도 그렇다. 조만간 공무원 시험에도 PSAT나 대체시험이 도입되고 시험제도가 크게 변할 것이라며 옆에서 걱정을 해주는데 나는 아무 걱정 없다고 말한다. 대입도 있고, 영어연구소도 세울 거고 할 일이 많으니까. 그리고 시험제도가 바뀌려면 최소 5~6년은 있어야 할 텐데 그만큼만 더 강의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특별히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짐만이라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을 가져라. 나도 지금 돌이켜보면 잘 한다고 했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와중에도 어려운 일은 알리지 않고 혼자 극복해 왔던 것이 그나마 잘해 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고시저널 2006년 1월 26일
첫댓글 자신감과 오만 방자의 개념을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명치끝에 맺혀있던 것이 내려갑니다. 감사 합니다. 교수님! 교수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라는 확실한 근거로 해석이 됩니다. 내가 나를 못 믿으면 아무것도 안되는데 그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합격해서 찾아뵙겠습니다.- 달구벌 직장인 수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