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묵과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을 비판한다.
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을 만들고 법무부에 제출했을 때, 트랜스젠더/성전환자와 관련한 조항은 상당히 모호했다. “법안 4조 정의”에서 차별금지조항 20항목 중 성별을 “1항. "성별"이라 함은 여성, 남성 기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성을 말한다”고 정의하며, 인권위는 이것이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과 관련한 조항이라고 말했지만,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은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은 사각지대로 남겨질 수 있어 상당히 우려했다.
그런데 인권위가 제출한 20개의 항목(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나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 중, 법무부에서 7개의 항목(성적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이 제외했다. 또한 차별금지법이 실효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구제조치인 입증책임의 전환, 징벌적 손해배상, 시정명령과 강제이행금이 삭제되어 껍데기뿐인 선언적인 법을 만들었다. 이에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빠진 7개 항목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차별이다. 최근 잇달아 보도된 “학력 위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학력차별의 심각성,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을 향한 (직간접적) 혐오발화를 비롯한 차별들, 이주노동자나 새터민들을 향한 차별, 한부모가족 등을 향한 편견을 비롯한 차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출신지역이나 성별이 아니라 학력을 이유로, 혼인여부가 아니라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을 이유로, 용모 등 신체조건이 아니라 성적 지향, 병력, 혹은 트랜스젠더의 젠더 표현 방식을 이유로 차별할 수도 있다. 즉, 실질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바꿔 말하며 얼마든지 차별을 계속할 수 있고, 실제 이러함에도,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이런 현실을 전혀 무시한 것이다.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의 입법예고를 하며,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법무부 공고 제2007-106)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7개 조항을 삭제한 이유가, 소수의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와 교수들, 기업인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때, 법무부가 얘기하는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의 기여는 누구를 위한 사회통합이고 국가발전인지 의심스럽다. 차별금지법안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차별을 공공연히 자행하는 이들을 위해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인권보호와 행복추구권을 위해 만드는 법이다. 법무부의 이번 차별금지법안이 차별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거나 방치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번 7개 항목 삭제 결정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우리들은 이번 법무부의 결정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11월 2일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