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느낀 경주
우리나라 사람치고 경주를 모르는 사람도 없고, 한번쯤 와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것이다. 그런데 경주를 보고 무엇을 느끼고 갔을까.
70,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문화유적지는 갔다오면 되는 것이지 무엇을 알고 느낄 필요도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고 세상도 바뀌었다. 갔는데 무엇을 어떻게 보았고 느꼈느냐, 그리고 가슴 깊이 울림이 왔으며 감동을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도 어른들은 보문단지에 숙소를 정해놓고 골프 한 번 치고 목욕 한 번 하고 가버리거나 기껏 불국사, 석굴암, 천마총의 대능원이나 안압지 정도 둘러보고는 경주를 다 보았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시시해 한다. 남산도 등상 겸해 한 코스 오르고는 무엇이 얼마나 있는줄도 모르고 그냥 500m 안되는 산으로만 생각한다. 학생들도 학교에서 정해 주는 위와 비슷한 코스를 우르르 몰려가 보고는 시시해 한다. 정말 경주가 그럴까.
인류 역사이래 흥망 성쇠를 거듭한 국가는 수천개에 달한다. 그 많은 국가 중 천년을 지탱한 나라는 오직 신라와 로마뿐이다. 동 로마를 뺀 서로마까지 치면 정확하게 1229년(BC753 ~ AD476)의 로마라면 992년(BC57 ~ AD 935)이나 존재한 나라가 신라다. 예술, 철학, 사상, 종교, 정치 등등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혁신과 개혁이 필요했고 정신적 깊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신라의 수많은 유물은 전란과 유교가 불교를 배타적 수용의 한계로 파괴하고, 문화유물을 한낱 돌 덩어리로 여기고 허물어 버려 제자리를 잃은 유물들을 방치와 무관심이 숙명처럼 되어 버렸다. 거기에다 수 없는 외세침입, 그 중에서 몽고침입, 임진왜란 등으로 처참한 파괴가 있었지만 불과 230여년(1767년) 전의 글을 보면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당주 박종(1735년 ~ 1793년)이 1767년에 경주에 와서 쓴 고탑(古塔)이란 글을 보자.
"경주부의 5,6리 주변에는 수 많은 불탑들이 황량한 들판 가운데 여기저기 서 있다. 주민들의 말이 이전에는 실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나 다 헐어서 성 쌓는데로 들어갔으니 지금 남은 것은 100분의 1밖에 안된다" 했다.
일연 스님(1206 ~ 1289년)의 표현대로 절과 절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과 탑은 기러기 날아가는 만큼 많다(寺寺星張, 塔塔雁行)고 했던 것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탑들만 온전하게 남아있었더라도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적인 유적지가 되었을 것이고 로마에 세계인들이 몰리듯이 경주에는 수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굴뚝없는 산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고 우리 경제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 넣었을 것이다. 그대로 아직 경주를 잘 가꾸고 지키면 무한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수 없는 징검다리 건너서 한나절을 계곡길 걸어 가야 볼 수 있는 깊은 골짜기 무장사지, 나그네 울림되어 산을 넘든지 돌아서 가면 깊숙한 산골짝을 하염없이 걸어가야 나오는 금곡사지,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두대리 마애불 등은 얼마나 아름다움을 안겨주는가. 경주 시내에 누워 있는 왕릉들 외에 신라의 여운을 안고 비산비야 산모퉁이에 쓸쓸히 누워있는 희강왕릉, 민애왕릉, 화려한 불국사를 만들었던 아름다운 경덕왕릉, 신라왕릉 중 가장 아름다운 흥덕왕릉의 굽이치는 소나무의 울림을 보지 않고는 어찌 아름다움을 보았다 하겠는가.
장쾌한 감은사지 보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울림을 주는 장항리 절터,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하동쌍계사 철감선사비,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비, 경주 대숭복사비) 중 유일하게 경주에 있는 대숭복사지의 쓸쓸한 석탑들, 또 원원사지의 깊은 맛은 무엇에 비길까.
신라이래 아직까지 여왕도 없는 한심한 우리나라에 최초의 여왕이던 선덕왕릉과 진덕여왕이 누워있는 아름다움을 어찌 할 것인가. 신라 56명의 왕중에서 가장 춤 잘추고 풍류를 아는 헌강왕, 그가 누워있는 왕릉을 달밤에 찾으면 흡사 수풀 속에 하얀 젖무덤 같이 솟아나 있는 것 같다. 진평왕릉의 앞에 펼쳐진 보문벌판의 눈맛과 효공왕릉의 한적한 여유, 우리나라 전통민속 마을 중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양동민속마을의 정겨움, 답답함과 동시에 완벽성도 던져 주는 옥산서원, 자연과 어울어진 독락당, 정혜사지,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용담정 계곡의 음산한 맛, 하늘 아래 극락세계 천룡사지, 그리고 남산의 수 많은 절터와 탑과 불상들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守吾齋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守吾齋는 평생을 걸고 자연과 문화, 인간을 사랑하면서 받은 감동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1995년 경주에 정착한 기행 작가 이재호가 전국의 사라지는고택들을 해체하여 경주에 옮겨 복원해놓은 집이다.
신라 석탈해는 반월성터가 탐이 나서 숯을 묻는 속임수로 차지했다면 나는 여러 조건을 감안하여 여기에 비싼 댓가를 치르고 정착했다. 실학자 이중환(1690~1760)은 '택리지'에서 살고 있는 곳에 산수(山水)의 아름다움이 없으면 사람의 성질이 야비해 진다 했다. 그러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은 살아갈 경제적 바탕이 되지 않아 살기 힘들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을 가진 지세가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면서 10리 밖, 혹은 반나절 거리쯤에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된다 했다.
나는 어떤 조건으로 이 마을을 택하여 守吾齋라 했는가.
인근에 문화유적이 있어야되고 앞으로도 영원히 개발이 안되는곳, 차 소음을 피할 곳,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는 곳, 여기에 걸어서 1분거리의 효공왕릉 덕분에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고 바람에 나폴거리는 잔디와 뒷동산 푸른 소나무 밭이 일품이라, 지금의 동네에 평생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맑은 영혼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키겠다고 守吾齋라 했다.
걸으면 5분 거리에 큰 국도인데 차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은 저 만큼에서 야트막한 산 언덕이 살짝 가려주어 그리움만 잉태하고 소리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한옥 5채로된 守吾齋는 사철 푸른 대나무가 둘러싸 맑은 바람을 보내고, 흰 눈이 내리고 차디찬 북풍이 휘몰아 치면 온몸으로 울어대는 솔바람과 대바람은 온갖 인간사 삶의 질곡을 토해내어 가슴을 찡하게 후벼판다. 툇마루에 앉으면 명활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려져있고, 멀리는 토함산이 아스라이 가고 있으며, 우측에는 동남산이 적당한 거리에서 길게 펼쳐져 누워있다.
마당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세월을 머금고 서있고, 고목의 회화나무 기품을 품어내며, 향기나는 매화는 비록 얼어죽을지언정 향기는 팔지않고 맑은 영혼의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고상한 벽오동 나무는 언젠가 앉을 봉황새를 위하여 푸른향기를 품고 ,그 사이사이에 모과나무, 앵두나무, 치자나무, 개나리 ,산수유, 들국화 ,백일홍 나무들이 제철에 각각 향기를 풍긴다. 백옥같은 살결의 배꽃도 부끄러움에 떨도 있고, 맑은 연두빛 사과꽃 산천을 울리면 붉은 도화꽃은 사나이 가슴을 눈물나게 한다. 덤성덤성 바위틈에 온갖 야생화 저마다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질새라 기와담장 흙담장 위에는 푸른 나팔꽃과 주황색 능소화가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앞산에는 뻐꾸기 맑게 울고 뒷동산에는 소쩍새 슬피울때 온갖 새들도 천국을 이루어 아침잠을 새들이 꺠워준다. 집뒤의 보문벌판은 온갖 사연을 안고 일렁거리고, 여기저기 절터가 옛 흔적을 말해주고, 진평왕이 저 만큼, 황복사지 준수한 석탑이 말없이 기품을 풍기고 있다. 달뜨면 守吾齋 달님방에서는 달이 들어와 떠날줄을 모르고, 시냇물 방에서는 물소리 밤낮으로 울린다. 하얀 회벽에는 달빛받은 대나무가 살아서 일렁이고 있다. 세상 어느 화가가 이런 기운생동의 대나무 그림을 그리겠는가. 하늘에 둥근달 뜨면 월명스님의 피리소리에 달이 멈추었다는 5분거리의 사천왕사지를 찾아 피리를 불면 정말 달이 멈추고 있었다. 도리천 위에서 듣고 있던 선덕여왕도 우아한 자태로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간혹 동네 경운기가 정적을 깨면 놀만 소들이 음-매 울면 동내 개들도 멍-멍 정겹게 짖어댄다. 솔밭 사이로 붉게 넘어가는 지는 해를 슬프한 서산 하늘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노을이 되어 눈물나는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다. 아, 지금도 하늘은 붉게 물들었는데 온갖 새들은 하염없이 울어댄다. 영광과 상처의 신라 잔영이 남아있는 아! 진정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곳에 守吾齋가 있다.
첫댓글 예전에는 경주는 그냥 첨성대 및 불국사 그리고 석굴암 등 대표적 고적사지에 대해서 알았지만, 요즘들어 식견을 갖고 경주에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서 좀더 이해하려고 한답니다. 차디찬 바람에 수천년을 견뎌온 석탑을 보니, 가끔을 눈을 감고 생각하니, 온몸이 스산하게 느껴온답니다. 다시한번 경주에 대한 내면에 대한 고찰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사시는 집이자 마을을 정경을 정말 사람냄새 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진 집을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하는 글솜씨가 예술입니다. 작은 것에 낮은 것에 폐사지에 더 사랑과 관심을 갖는 선생님만의 철학과 노력이 눈물겹도록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