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제2차 반도체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 이 글은 바이오코드 전법도량 서산 약선사 주지 혜월 스님의 원고를 내 시각과 감각으로 다듬은 것이다. 유명 드라마작가이던 혜월 스님은 제1차 반도체대전 때 미국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반도체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오늘날 오만하고 교만해진 한국 정치인들(특히 삼성전자 망하라고 염원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죽이려 들지 않는지 지켜봐야 한다. * 바이오코드 공부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절을 볼 뿐만 아니라 시대까지 보는 눈을 뜨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이 기사부터 읽어보자. "한국은 전 세계 제조업 5위, 반도체·배터리 생산 1~2위, 대규모 군대와 방위산업을 가진 국가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고 첨단기술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전략 목표를 실현하려면 한국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런 한국의 역량을 최대한 지렛대로 삼아 동맹에 쓴소리도 하고 치열하게 협상하고 주고받아야만 한국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굴복하면, 그 나라들이 알아서 호응해줄 것’이라는 환상으로 외교 협상 원칙과 역량을 허물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훼손하면서, “나만 미래지향적”이라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박민희 한계레 기자가 「윤대통령의 ‘그랜드 퍼주기’와 ‘외교 사유화」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다. 얼핏 읽어보면 흠잡을 데가 없는 훌륭한 논설 같지만, 우리의 기술 수준을 한껏 치켜세운 이면에는 필자가 노리는 망국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3971.html)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정말 반도체 원천특허와 기술을 가진 미국 일본에게 쓴소리를 해도 될 만큼 실력을 갖춘 나라일까? 우리 반도체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것을 쓴소리나 훈수를 두는 지렛대로 쓴다면 몰라도, 그렇다고 반도체를 우리 무기로 삼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한겨레 논설위원의 글이고, 윤석열(1260) 정부를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반정권 기사들 무덤에 파묻힌 글이니 그러려니 하고 말 수도 있지만, 이런 주장을 듣는 문빠, 명빠, 개딸들이 혹시나 '반도체 전쟁터'에 또 문재인(0405)이처럼 죽창 들고 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 이 그림만 보면 동학농민군의 기세는 대단하다. 2만 명이 죽창 들고 싸우자, 나가자 하니 어떤 적이라도 물리칠 듯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 사진을 보라. 관군 3200명과 일본군 200명이 개틀링기관총가 신식 소총을 겨누면서 우금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죽창 든 농민들 앞에는 분당 400~1,000발 발사되는 개틀링기관총이 있었다. 그러고도 관군 1500명은 신식 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우금치에서 전봉준 일당은 개틀링기관총과 신식 소총이 불을 뿜는 관군을 향해, 죽창 든 농민 2만 명에게 무조건 돌진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부적 달면 총알이 피해간다고 거짓말하면서 돌진 명령을 50번이나 되풀이해서 농민들을 몰살당하게 만들었다. 생존자는 겨우 3천 명이었다. - 가진 건 죽창 뿐인 농민군. 상대는 개틀링기관총과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관군 1500명과 일본군 200명이다. 그런데도 관군과 일본군은 저 우금치 마루에서 아래를 겨누고 있고, 전봉준 이 바보는 밀집대형으로 밀고 올라가라고 시켰다. 그러니 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이라면 그렇다 치지만, 전봉준은 1대가 몰살되면 2대를 보내고, 2대가 몰살되면 3대를 보내고, 그러기를 50번이나 했다. 무능한 지도자는 적보다 더 무섭다. - 어리석은 지도자, 무능한 지도자는 자기만 죽이는 게 아니라 동료, 친구, 가족까지 몰살시킨다. 사실 한겨레식 죽창 논조는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이런 논조는 1980년대의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벌써 거품 물고 주장하던 것들이다. 2023년도 한국의 진보 논객을 자처하는 사람이 1980년대 일본의 극우세력들과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40년 전으로 되돌리려고 악쓰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마쓰시타(현 파나소닉) 등 일본 5대 기업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세계 D램 시장 일본기업 점유율이 80%에 이르렀다. 이때가 일본 경제의 최절정기였다. 2차대전 끝에 원자탄 두 발로 폭망하면서 쪽박을 찼던 일본이 빛나는 경제 도약을 하자, 일본에는 수레 앞에서 두 발을 치켜든 채 싸우자고 대드는 사마귀(螳螂拒轍) 같은 극우세력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일본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웠다. 소니의 창업주 모리타 아키오(0805)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올바른 경영 기법’에 대한 훈수를 두고, 소설가이자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0845)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으로 미국에 삿대질을 했다. 이시하라는 OPEC 회원국들이 석유 수출 통제로 무기 삼듯, 일본은 반도체를 무기 삼아 미국을 상대로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다며 날뛰었다. 그는 “중거리 핵무기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건, 그런 무기의 정밀성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아주 작고 고도로 정밀한 컴퓨터에 의해 판가름 난다. 만일 일본제 반도체가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 정확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며 일본 없이 첨단 무기를 만들 수 없으니 미국도 일본에 무릎을 꿇거나, 적어도 눈치를 보라는 명령이었다. 이시하라는 첨단 반도체는 “군사력의 핵심이며 따라서 일본 힘의 핵심이다.”며 목청을 높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 D램 하나 가지고 이랬다. 반도체가 어찌 D램 뿐이던가. 한겨레신문이, 한국의 기술력이 대단한 것처럼 추겨 올리면서 굴욕 외교를 지양하고 당당한 외교를 펴야 한다는 주장은 표현의 작은 차이가 있을 뿐 과거 일본 극우들의 논리와 거의 비슷하다. 일본 극우들의 주장대로 당시 일본이 정말 당당하게 NO를 외쳐도 될 만큼의 경제 대국이었을까? 원자탄 두 발을 떨어뜨려 일본을 폭삭 망하게 했던 그 미국을 상대로? 반도체 역사를 살펴보면 그 답은 분명해진다. 반도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12월, 미국 동부 뉴저지주 머레이힐에 위치한 AT&T의 연구소인 '벨연구소'에서 윌리엄 쇼클리(1010) 등에 의해 처음 발명되었다. 미국 동부에서 싹이 튼 반도체 산업은 이후 서부로 옮겨갔고,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만 인근 실리콘밸리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용인에는 용인이 반도체 메카라는 현수막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시장 주도 홍보전이 이따위로 이뤄지고 있다.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게 극우다) 그 반도체 기술이 처음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우리가 육이오전쟁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그리고 전쟁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던 1950년 대의 일이다. 이때부터 1990년대까지 40여 년 동안 일본 반도체와 반도체를 쓰는 전자업계는 미국의 반도체 원천 기술 제공 덕분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한편, 때맞춰 일어난 육이오전쟁은 일본 경제를 비상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한국의 도시와 산업시설을 부수고 들판을 피로 물들이며, 수많은 인명 살상과 엄청난 재산 손실을 불러온 육이오전쟁은, 비록 우리에게는 재앙이지만 일본에게는 하늘이 내린 부흥의 기회였다. 미국은 육이오전쟁 중 미군과 연합군이 쓸 군수물품을 가까운 일본에서 생산했다. 일본 경제는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수탈한 물자로 기반을 다지고, 한국이 피 흘리고 싸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을 때 우리가 흘린 피를 그대로 자양분으로 빨아마시며, 고속성장의 페달을 밟은 것이다. 육이오전쟁은, 결과적으로 일본에 36억 달러라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1965년 한일수교 때 일본이 우리에게 식민지 배상금조로 준 돈이 겨우 3억 달러였다) 일본은 1950년대의 육이오전쟁 특수, 그리고 1980년대의 반도체 특수까지 겹쳐 미국에 맞먹는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다시 일장기를 펄럭이며, 사마귀처럼 고개를 쳐들고 어깨에 힘을 준 일본 극우들은 남의 불행에서 이득을 취한데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이 미국에 덤비고 한국을 얕잡아보았다. 특히 육이오전쟁이 나자 "우리는 살았다"고 외쳤다는 요시다 시게루(0245) 총리는, 한국에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전후의 혼란을 틈타 비수를 깊숙이 들이밀었다. 1954년 11월 21일 아침, 독도수비대 홍순칠(0405 1929년 1월 23일) 대장이 독도를 점령하려고 상륙 시도 중인 1천톤급 일본함정 PS 9, 10, 16함 총 3척의 함정과 이들을 공중지원하는 항공기를 발견했다. 독도수비대는 즉시 사격을 하면서 한일 사이에 전투가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16명의 사상자를 내고 달아났다.(독도영유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일본의 교만은, 미국이 토쿄에 살포한 2400만 톤의 네이팜탄으로 수십만 명이 시뻘건 불에 타죽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뜨린 원자탄으로 역시 수십만 명의 처참한 죽음으로도 고칠 수가 없다. 1980년대까지 일본은 그런 수치와 모멸과 죽음을 준 미국에게는 꼬리를 치며 굽실거렸지만, 온갖 모멸과 학대로 인간존엄이 짓밟힌 피해자 한국에는 고개 빳빳이 쳐들고 멋대로 모욕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경제부흥에 성공한 일본은 자기들이 반도체대국이 된 줄 착각하고(반도체 관련 모든 특허는 미국이 갖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대놓고 미국에 덤비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독사대가리'처럼 머리 쳐들고 악쓰는 일본 우익들을 향해 '제2의 진주만 기습'이라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핵전쟁으로 폭삭 망한 일본을 일으켜세운 반도체 산업, 누가 왜 만들어준 것인지 막상 일본 극우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서 외면했다. 반도체 전쟁사를 보면, 미국이 싹을 틔운 반도체 기술을 일본에게 넘겨준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1945년 8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한 후, 패전국 일본의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을 쏟던 미군정은, 전후복구비용으로 미국 국민의 세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자 자신들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 자립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이건 한국, 서독에도 마찬가지다). 바로 자립정책 지원의 일환으로 막 시작된 반도체 기술의 특허를 미국이 일본에게 제공하게 된 것이었다. 패전국 일본의 손에 반도체가 쥐어지면서 일본 전자산업이 싹을 틔우고, 그 토양 위에서 일본 경제는 사상 유례가 없는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은 특히 중국과 소련(현 러시아) 등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일본이 필요했다. 그런 미국의 지원 아래 패전국 일본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때쯤 일본에는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자축파티를 벌이는 극우세력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일본이 미국 경제도 뛰어넘었다, 마침내 무조건항복이라는 패배를 잊고 기어이 미국을 이겼다는 착각을 함으로써 한껏 자존심을 높이며 날뛰고 날마다 샴페인을 터뜨렸다. 일본의 고질적인 침략자 본성이 또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1947년 반도체 발명 이후 1980년대 이전까지 미국 기업이 장악했던 반도체 시장은 어느새 '일본천하'가 됐다. 일본인들은 수출호황으로 벌어들인 달러뭉치를 들고 세계명승지를 돌아다니며 물 쓰듯 뿌리고 다녔다. 당시 일본 남자들은 서울, 뉴욕, 방콕, 심지어 파리의 뒷골목까지 진출하여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 국가의 왕세자들보다도 더 많은 돈을 뿌리고, 현지처를 두고, 일본 여자 중에서도 근육질을 자랑하는 하와이의 남자들을 돈으로 사서 데리고 논다는 소문이 돌았다. 1981년부터 시작된 레이건(1110) 행정부는 당시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 10위내 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이라는 데 큰 위기감을 느꼈다. 레이건은 마침내 일본 반도체 기업의 덤핑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도 박자를 맞춰, 일본 반도체 기업의 저가 공세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하며 미국 정부의 일본 압박에 힘을 실어줬다. 인텔이 D램 사업을 포기한 직후인 1985년 6월 14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을 지원한 반도체산업정책이 불공정하다는 제소를 했다. 이어 6월 24일 미국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이 일본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줄줄이 제소하는 것으로서, 반도체 전쟁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레이건 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과 함께 서방 5개국 재무장관(G5)회의를 개최하였다. 미국은 이 회담을 통해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를 고평가하여 달러의 저평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환율조작을 압박하였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인 플라자합의는 일본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여기에 더해 1986년, 미국 정부와 일본 반도체 기업 간의 서스펜션 협정과 미 정부와 일 정부 간의 반도체 무역에 관한 협정이 다시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생산 원가공개와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이게 되어 있었다. 이 협정은 이후 5년간 유지됐으며, 이를 1차 미·일반도체협정이라고 한다. 미국은 일본 정부가 미일 반도체협정을 지키지 않는다며 1987년엔 슈퍼301조(통상법 301조)를 통해 무역보복을 시작하였다. 이 보복을 통해 1996년까지 이어지는 제2차 미·일반도체협정을 맺었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간 미국의 환율 정책과 무역보복으로 일본 반도체는 생산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속속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가 벌떡 일어나게 되었는데, 배경이 이러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에서 이병철, 이건희 두 분의 지혜와 노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물이 들어와야 배가 뜰 수 있다>는 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끝내 물이 안들어와 실패한 '항공모함급' 천재는 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이 항공모함처럼 뜰 수 있도록 '물을 보내준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 반도체 전쟁의 결과 1997년 인텔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되찾고, 그 이후 현재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다. 당시 인텔의 뒤를 이어 모토로라, TI 등 미국 기업들이 다시 상위권에 랭크되고, 막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도 그해 반도체 매출 7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1세기가 되면서부터는 전 세계 반도체 매출 톱10 순위에서 일본기업들은 모두 퇴출이 되고 아예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일본기업들의 자리에는 인텔을 비롯해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TI 등 6개 미국 기업이 앉았다. 1980년대에 순위표에 보이지 않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과 대만의 TSMC가 신흥 강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후공정'을 맡으며 출발되었다. 페어차일드와 모토로라의 후공정 생산설비를 맡던 한국 기업들은 1983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D램 사업에 진출하고, 3년 후인 1986년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협정이 맺어지면서 일본의 위기를 틈타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견제를 별로 받지 않고 고속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가 일본과 싸우는데 전력을 소진한 이유도 있지만, 중국 반도체 성장을 저지할 대항마로써 한국과 대만 기업이 필요하다고 본 미국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일본은 한때 로열티를 받아먹는 재미에 취해있던 미국 기업들을 무서운 속도로 추월하며 고속성장을 이룩했는데, 그 비슷한 피죽 지세의 성장을 거듭한 것이 한국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세계 반도체 1, 2위를 인텔과 다투고, SK하이닉스가 3, 4위권을 오가고 있으니, '생산 기술 대국'이 된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다만 생산기술대국이 된 것이지 반도체기술대국이 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 1990년 현재 반도체 업체 매출 순위. 거의 일본 천하 통일 수준이다. 그러나 2020년 도표를 보라. 일본 기업? 싹 없어졌다. 이 순위는 반도체 원천 저작권을 갖고 있는 미국, 그리고 엄청난 국방력을 갖고 있는 미국 마음대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사상 유례가 없는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오늘 당장 무너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일본 견제를 위해 한국 반도체 성장을 눈감아준 것이고,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할 대항마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를 육성한 것인데, 미국은 언제 다시 일본을 두드려팼던 그 규제들을 한국에다 들이밀지 모른다. 자만에 빠져 자멸을 부추겼던 일본 우익들의 과오가 오늘 한겨레신문에 나타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자국의 자동차와 IT 산업의 안정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반도체 헤게모니'를 반드시 쥐고 가다는 결심을 했다. 그 결과 미국은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의 고삐를 틀어쥐기 시작했다. 갈수록 미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면서도, 반도체 강국이 된 한국과 대만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외교적 계산이 필요하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 극우가 저지른 교만한 아우성을 따라해서는 안 되고, 미국이 일본에게 했던 일본 반도체 기업의 해체 요구를 우리에게 다시 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인류가 진화하기 위해 반도체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소재다. 반도체가 전략무기인 이유다. A.I가 인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것으로 기대하는 만큼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우방들의 통신망을 장악해 가는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막음으로써 세력 확장을 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화웨이가 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전세계 통신업체들에게 공급하게 된다는 것은, 미국에겐 큰 위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우방들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한편, 매년 화웨이 장비를 쓰는 기업들에게 "언제까지 쓸거냐?"며 압박을 가한 것도 이런 위협감 때문이었다. 또 미국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에게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은 것도 반도체가 미국의 미래전략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까지 장악할 경우 힘이 더욱 커져 미국의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고 본다. 결국 중국의 칭화유니가 파산에 접어든 것도 미국의 압박 때문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 미국 내 생산시설 건설 요구와 기업정보 제공이라는 무지막지한 청구서를 들이미는 이유는, 두 나라의 안보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요구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북한과의 군사 대치에 따른 힘의 균형을 유지시켜준 데 따른 청구서이고,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안정을 유지해주는데 따른 청구서다.(물론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지키는 방파제다. 우리 앞에는 미국과 일본의 적 중국, 러시아, 북한이 있으며, 우리는 저절로 미국의 창끝이 되고 있다. 이 점이 우리의 지정학적 위기이자 호기다. 언제 내밀더라도 우리는 이 청구서를 굳게 쥐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코로나19 직후 미국 산업의 근간인 자동차 산업에 차량용 반도체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을 겪으면서 깜짝 놀라 본격적인 반도체 군기잡기에 나섰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TI, 퀄컴, 엔비디아(Nvdia) 등등이 TSMC나 삼성전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점에 걸려 있다는 걸 미국정부가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 등이 자국 기업처럼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미국 영토 내에 생산시설을 두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자국 중심적인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대는 미국의 요구를, 윤석열 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하여 외교에 반영해야 하지만, 반도체를 지렛대로 활용하여 미국의 압박을 지혜롭게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일본 우익이 범한 전철을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에 매우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 반도체 기슬은 미국의 지원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실리콘밸리가 축적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한국으로 넘어올 때 워싱턴 정가에서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인텔은 기술력이 부족했던 삼성의 메모리칩에 인텔 브랜드를 붙여서 팔 수 있도록 했고,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은 삼성에 64K D램의 설계를 제공하고 라이선스 생산을 허용했다. 교만해진 일본을 누르기 위해 우리를 키운 것이다. 일본은 비록 반도체 생산 기반은 무너졌지만 현재도 반도체의 소재, 부품, 생산 장비 분야에서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문재인이 일본 반도체 소부장에 죽창을 휘들렀지만 결국 실패했다. 전봉준이처럼 5년 내내 그랬다. 또한 지금도 잔당들에게 그러라고 시킨다) 지금도 미국이 제3국의 반도체 생산을 막으려면 반도체 소부장에 강한 일본의 협력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 일본조차 미국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려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반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본 극우세력들의 교만과 만용이 불러온 핵폭탄급 재앙이다. 이후 일본인들은 납작 엎드려 미국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 오고 있다. 아베 신조가 한국에는 마음껏 성질을 부려대다가도 미국만 가면 꼬리를 살살치던 게 기억날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진보가 20세기 일본 극우가 팠던 함정으로 나라의 진로를 몰고 가려고 한다. 무능한 정치지도자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전봉준은 지금도 국회에, 언론에, 시민단체에, 정당에 숨어서 죽창 들고 나아가 싸우라고 꼬드긴다. |
|
첫댓글 반도체를 중심으로 세계의 정치 경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전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