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학을 정복하기 위한 첫 단추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구조와 유기화학의 학문적 위치를
알고 이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이 “태도”의 문제는 교재는 무엇을
사용하고, 요약과 정리는 어떻게 하고 복습 방법이니 문제풀이 방법 등등에 관한 논의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에게
유용한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문제는 현상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데 있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무척 어렵다. 예컨대, “1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공이 지면에 도달할 때의
속도”는 교과서에서만 계산 가능한 수치일 뿐 실제 상황에서 그 값을 100%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그 계산 값의 유용함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일정 범위” (오차)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간단한 물리 현상의 예에서도 현실과 이론의 차이가 발생한다.
하물며 학문의 복잡도가 증가하면 이 같은 차이는 더욱 확대된다. 예컨대 일반화학에서 논하는
이상기체 방정식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 실제기체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렇다면 이상기체
방정식은 쓸모없는 이론에 불과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상기체 방정식은 실제기체를
다루는 훌륭한 기초적 근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암모니아라는 물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중학교 과학 이후로 대학에서 일반화학을
다 뗄 때 까지도 암모니아는 염기성 물질이라고 가르치고 배운다. 이는 “실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일정 범위” 내에서는 암모니아의 행동이 염기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기화학에서는 암모니아가 염기가 아닌 산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해당 유기 반응에 관한 내용을 전혀 이해 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이 극히 드문 하나의 “예외”로 치부되고 몇 가지 예외를 ‘묻지마 암기’를 통해서
커버하는 것으로 유기화학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기화학에서
다루는 “실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일정 범위”는 일반화학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그렇다고 유기화학이 일반화학과 완전 별개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상기체와 실제기체 만큼의
차이가 일반화학과 유기화학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뿐이다.
유기화학을 처음 배우는 초심자들이 정신줄을 놓는 시점이 바로 여기다. 이 순간부터
초심자들에게 유기화학은 모조리 예외뿐이고 암기해야하는 학문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 같은 공부법이 적어도 현행 MEET/DEET/PEET 시험에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는 데 있다.
요컨대, 우리는 지금 반드시 실제기체를 다루어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1) 이상기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제기체를 다룬다.
(2) 이상기체만 이해하고 있고 실제기체에 대한 적용법을 모른다.
이들 두 경우 중 어느 방법도 실제기체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래도
어떻게든 실제기체를 다루어야만 한다면 이들 두 경우 중에는 (1)의 경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부분의 유기 초심자들이 갖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이다.
더 안타까운 경우는 다음과 같다.
(3) 이상기체 방정식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실제기체와의 연관성을 알지 못하며, 실제기체에
관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고 있다.
유기를 공부한 내력이 상당한 학생들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 불행하게도
이는 (1)의 경우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아는 것을 다 쓰시오’ 식의 학부시험에서는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적어도 MEET/DEET 시험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유기라는 학문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체계로는 설명될 수 없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 맞는 태도와 공부법을 택해야한다.
결국 유기화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1) 일반화학을 먼저 확실히 이해하되 여기서 그치지 말고
(2) 일반화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인지하며,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도구와 논리를 갖추어야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공부법은 다음과 같다.
1. 첫발을 내딛을 때 주의한다.
한번 암기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암기해야하고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일반 물리와 일반 화학의 기초 개념 원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2.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집요하게 캐묻고 확인하고 넘어간다.
학부 유기화학의 수준에서 웬만큼 단순화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별로 없다.
다 이유가 있고 원리가 있다. 가랑비에 온몸이 흠뻑 젖듯이 원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그 원리가 어느새 내 것이 된다.
3. 암기할건 철저하게 암기한다.
기본 개념 용어와 단어는 알고 있어야 소통이 된다. 구조식이나 분자 구조의 표현법이나
각종 용어와 화합물 이름 등에 소홀하면 서적을 읽는 것조차도 힘들어진다.
단, 반응과 메커니즘은 암기할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암기하면 곤란하다.
처음부터 암기해 버릇하면 이해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원리를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반응이 머릿속에 제 발로 걸어서 들어온다.
4. 요약 정리는 스스로 한다.
공부 후에 이해가 끝난 부분은 요약 정리를 하되, 자기 방식대로 스스로한다. 남이 해둔
요약 정리는 아무리 봐도 암기자료밖에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남’은 교과서도 포함이다.
참고자료 정도로만 활용한다. 다만 형식적인 부분은 참고하는 것도 좋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따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책을 뒤지거나 질문을 통해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간다.
스스로 정리해 버릇해야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진단할 수 있게 되고 수시로 궤도수정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5. 강의를 들은 후 하루 이틀 내에 복습한다.
유기화학의 추론법에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생소하기 때문에 망각
속도가 훨씬 빠르다. 강의를 듣고 있다면 가급적 강의를 들은 당일 복습한다. 하루 이틀
사이에 기억에 남는 시간 차이가 4배까지 벌어진다. 공부한 직후 24시간이 지나면
읽은 것의 46%를 잊어버린다. 14일이 지나면 79%를, 28일이 지나면 81%를 잊어버린다.
하루나 이틀 사이에 일단 한번 복습하고 장기 플랜을 세워 한 두번쯤 다시 반복하는 것이 좋다.
6. 함께 공부하라.
유기는 독학이 매우 어려운 학문이다. 학교든, 학원이든 적절한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듣거나
하다못해 비슷한 수준의 친구하고라도 함께 공부하는 것이 낫다. 함께 공부하다 보면 당장
생겨난 의문을 뜻밖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이 안되면
지체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7.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그려본다.
유기반응은 전자의 움직임이다. 전자의 움직임에는 다 이유가 있다. 원리적으로 다가가면
전자의 움직임이 보인다. 반응은 3차원에서 입체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바라보는 시각도
입체적이어야 하며, 전자의 움직임을 직접 손으로 그려보아야 한다. 어떻게든 전자를 움직이게
했으면 스스로의 판단에 논리를 세우는 버릇을 들인다. 인지 과정과 기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몸으로 직접 해본 것의 90%가 기억에 남는다.
입밖으로 소리내서 표현 해본 것의 70%가 기억에 남는다.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은 사건의
50%가 기억에 남는다. 눈으로 직접 본 사건의 30% 가 기억에 남는다. 귀로 듣기만 한 내용의
20% 가 기억에 남는다. 눈으로 읽은 책의 내용은 10%가 기억에 남는다.
8. 문제풀이를 적극 활용한다.
유기화학은 수준에 따라 매우 다양한 문제들을 제시할 수 있다. 심지어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서
정답이 다른 경우도 생긴다. 이 역시 얼마만큼 단순화가 적용되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기에서는 적절한 단순화가 중요한 이슈인 만큼 문제 수준에도 이런 부분이 여지없이 적용된다.
따라서 수준에 맞는 적절한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풀이를 많이 하다보면 문제가 요구하는
주요 쟁점을 파악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이는 실전에의 적응력으로 이어진다
이상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유기화학에 한걸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짧은 글을 마친다.
2009년 10월 신진욱
메가엠디 유기화학 대표강사
첫댓글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잘 가르치시는 거 같아요 ㅎㅎ 지금 4강 듣고 있는 중이지만 딱딱 잘 짚어주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