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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에, 해남 윤씨였던 어떤 홈리스 형제가 술에 취해,
내게 던지곤 하던 질문이 있습니다.
"사는 게 도대체 뭐요?"
내가 그 때마다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당신님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시 내가 했던 대답은 이 글의 맨 뒤에 나옵니다.)
부모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나를 왜 태어나게 했어요?! 나를 왜 낳았냐고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겁니다.
이런 외침은, 실은 하나님께 던져야 합니다.
당신님은 혹시 환한 보름달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달빛은 어디서 오죠? 네, 태양빛을 반사하는 거죠.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도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나를 달처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태양이 자신의 빛(영광)을 달에게 줍니다. 그럼 달은 그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그럼 태양이 그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태양이 자기가 달에게 영광을 먼저 주고 다시 되돌려 받는 거죠.
이해되었죠?
태양이 달에 빛을 주듯, 주님은 주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서 나에게 주시기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32, 요한일서 3:16.
둘째로, 성령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자신의 성령(자신의 영광)을 우리 심령에 주셨으므로, 이 성령을 통해 우리 심령은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됩니다.
"오직 여호와가 영영한 네 빛이 되신다." 이사야 60:19,20.
이 빛은, 물질계의 태양빛과 흡사한 영계의 빛이며(요한계시록 21:23-24),
또한 영적인 빛으로서,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의 빛을 의미합니다.고린도후서 4:4,6.
성령의 빛이 우리 심령에 임할 때, 우리는 그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사야 60:21, 61:3.
그리하여 주님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로마서 8:29.
이 일, 즉 우리가 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일은,
바로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고린도후서 3:18.
"주의 영광을 보매":
주의 영광이 햇빛처럼 우리에게 비쳐올 때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빛나는 보름달의 모습이, 빛나는 태양의 모습과 닮아 보이는 것은,
달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주의 빛이 우리 심령에 비치어 우리가 이를 반사할 때, 우리도 주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아포 독세스 에이스 독산) :
주의 영광으로 인해 주의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영광은 주의 영광이면서 동시의 우리의 영광이 됩니다. 달빛은 햇빛의 반사이지만, 또한 달빛이기도 하죠.
"이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받아 주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은, 우리 안에 오신 주의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주님의 영광, 주님의 형상을 반사하면, 자연히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겠죠?
결국은 주님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결론이 도출되죠?
간단히 말해 주님 자신을 위해 나를 지으셨다는 겁니다.
주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을 한 구절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
여기서, “주시기”라는 단어를 괄호 안에 넣은 이유를 아시겠죠?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입니다.
자신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위해.
달과 태양의 비유로 설명했듯이, 주님 자신을 주심으로써, 자신을 위하게 되는 거죠.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신약으로 가면,
골로새서 1:16, 에베소서 1:5-6, 에베소서 1:11-12 등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목숨까지 주신 애끓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므로
자신을 나에게 더욱 풍성하게 주시고 싶어 안달이 나셨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주님은 지금도 자신을 우리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얻어 누리기를 주님이 심히도 목마르게 원하십니다.
2.
자, 그렇다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즉 주님을 찾거나 부르지 않아도,
주님이 자신을 주시기를 너무 원하시므로,
그냥 저절로 주님을 더 많이 얻어서 누리게 되고,
주님의 빛을 반사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까요?
달은 가만히 있어도 태양빛을 받아 반사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반사할 수 있을까요?
두세 가지를 말씀 드립니다.
첫째로, 앞에서 난 주님이 자신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목숨까지 주신 그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은혜의 복음을 마음껏 누리며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 자체가 주를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사야 43:21.
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경험하고 누려야 할 은총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의 기쁨, 은혜의 복음이 주는 감격,
죄사함 받은 기쁨과 평안은,
예수 믿고 반드시 가장 먼저 누려야 할 보화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계속해서,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신앙연조가 길어질수록
둘째로,
주님을 우리의 인생 목적으로 삼고서,
우리가 주를 추구할 때, 즉 주를 얻고자 할 때, 그래서 주를 더 많이 얻고 누릴 때,
자연히 우리는 주님을 반사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주를 더 많이 얻으면 얻을수록, 즉 성령으로 더욱 충만해지고 주의 인격을 더욱 닮을수록, 우리가 주의 영광을 더 드러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주가 나를 창조하시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내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자신을 우리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서 추구하고 더 얻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시므로, 주님 자신의 그 소원을 성경에 넣어 놓으셨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 어디에 나오나요?
시편 23:6, 27:4, 마태복음 6:33, 빌립보서 3:8-14 등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저절로 얻게 되고(마태복음 6:33),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다는 바울의 말은(빌립보서 3:8-14),
성령께서 우리더러 그 목적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에 넣어놓은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얻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다 주시고, 성령(하나님 자신)을 주셨는데,
만일 우리가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욱 사랑하고 추구하고 사모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나는 내 목숨을 다 주었는데,
네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것들보다 내 목숨이 더 하찮은 거란 말이냐?
성령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를 얻고 싶어,
아예 나를 너에게 다 주어 네 안에 너와 함께 있는데,
너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엇을 그리도 염려하고 추구하느냐?
셋째로, 글이 자꾸 길어져서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려다가 추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추구하다가 실수하고 넘어짐으로써,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주님께 누가 되는 짓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우리는 회개하며 주를 더욱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외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 밖에는 나의 의(義)가 없기 때문에 더욱 주를 사모하고 주님 얻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3.
놀라운 점은,
우리가 주님을 추구하고 얻어서 반사하는 영광, 즉 주님께 드린 영광이,
천국에서 모두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6:13과 로마서 8:16-17 등을 읽어보세요.
물론, 그것은 엄밀히 말해 우리 본연의 것이 아닙니다.
달빛이 달 본연의 것이 아니라, 태양 빛의 반사이듯이,
주님이 우리에게 하사하신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을 목적 삼아 더욱 많이 얻을 때,
우리는 더욱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주님을 목적 삼아 추구하면 할수록 주님을 더 얻게 되고,
주님을 더 얻을수록 주의 영광을 더 많이 드러내게 되며,
주의 영광을 더 많이 드러낼수록
나는 천국에서 그만큼 영광을 더 누리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41-42.
그러므로 주를 위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며,
주를 얻는 것이 참으로 나를 얻는 길이고,
주를 기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이제는 갈 길을 찾지 못해 잠시 방황한다 하더라도,
욥처럼 극한 고통 중에, 내가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하더라도,
주님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주님을 더 얻고자 추구한다면,
당신님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삶이 힘들지라도,
때로는 방황할지라도,
이제 더 이상,
적어도,
내가 왜 태어났는가는 묻지 않을 것이며,
서두에서 말한 해남 윤씨 형제처럼
산다는 게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간단명료해질 것입니다.
자기 삶의 목적, 직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렷이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환희와 평안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태양빛과 달빛의 비유를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뭘 어쩌잔 말인가요?
은혜의 복음과 구원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며 기뻐합시다.
또, 당신님에게 이런저런 목표와 소망과 비전과 꿈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이것을 둡시다.
그리스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그리스도를 더 얻고자 추구합시다.
다른 모든 꿈과 비전과 목표들은, 이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혹시 제 말이,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는 이상향의 노래인가요?
당신님은, 당신님의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간절히 얻고 싶은가요?
꿈과 비전의 성취? 경제적 안정? 사회적 성공?
취업? 합격? 학업성취?
교회부흥? 사업성공? 노후안정? 예수님?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세요.
배고파도, 실직해도,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과 낭떠러지에 도달해도,
예수님이 먼저란 말인가?
나는 지금까지 배부른 소리를 했는가?
아닙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가난하고 슬프고 서럽고, 배고프고 외롭고 힘들었지만,
생존의 기로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예수님을 더욱 추구해왔습니다.
나는 해남 윤씨 형제의 그 질문에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사는 게 예수 믿는 것이고, 예수 믿는 것이 바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살아서, 예수님을 목적 삼아 추구함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풍성히 얻어, 지금부터 영원히 누립시다.
아멘, 아멘.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단 두 개만 꼽으라면, 무어죠?
은혜의 복음으로 기뻐합시다.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추구하십시오.
샬롬.
2018. 2. 19. 김설애.
첫댓글 태양이 달에 빛을 주듯,
주님은 주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둘째로, 성령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고, 자신의 성령(자신의 영광)을 우리 심령에 주셨으므로,
이 성령을 통해 우리 심령은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됩니다.
내가 주님의 영광, 주님의 형상을 반사하면, 자연히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겠죠?
결국은 주님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
나를 지으시고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결론이 도출되죠?
간단히 말해 주님 자신을 위해 나를 지으셨다는 겁니다.
주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을 한 구절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