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념으로 뒤덮인 사람들을,
제천선신(諸天善神)은 지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이 지구가 수도장임과 동시에,
인간에게는 개(個=각각)의 생명으로서의 존엄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생활을 하는 인간이, 마음의 가치를 알고,
서로의 신뢰와 자애의 행위에 의해, 밝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빙의(憑依)하고 있는 지옥령들에게,
이 이상, 신의 자식으로서 범해서는 안 되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죄임을 가르쳐,
떨어져 나가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항시, 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지옥령들에게, 마음가짐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중도의 생활이,
일상 속에서 행위로 되어 나타났을 때,
자기 자신을 원위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부조화한 신앙등에 깊이 빠지면,
점점 그들 지옥령들의, 무자비한 행위가 더욱 기세를 부린다. 이야말로
‘긁어 부스럼 일으킨다.’
라는 속담 그대로이다.
자신의 마음이 둥글고, 크고, 자애로 풍부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와 같은 정신적인 병으로 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마음속에서 생기는 마(魔)를,
제천선신(諸天善神)이 지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상계에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빛의 천사들은,
변함없는 신의 마음인 길(正道),
즉 정법의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
정법의 꽃을 피우게 하여, 대조화에의 길에 광명을 준다.
그러나 인도의 고타마 붓다나 예수 그리스도, 모세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험난한 것이었다.
빛의 대지도령들이 지상에 내려오는 시기는,
이미 정법의 힘이 없는, 말법(末法)의 혼란기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잃고,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과 사명을 잊어버렸을 때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물질문명의 노예로 타락시키고,
부조화한 종교가 난립하며,
마음을 마왕이나 동물령에게 팔아넘긴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이다.
투쟁이나 파괴가 일상의 다반사로 되어 아주 변해버린 세상을,
말법의 시대라고 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 재해나 천변지이(天變地異)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가정은 헝클어져, 어버이와 자식의 마음이 단절된다.
교육자는 중도의 교육을 잊고, 사상적으로 편협된 교육을 한다.
정치가는 사리사욕, 당리당략에 내달으며,
사상이라기보다는 자기주장의 난립, 거리에서의 사고사(事故死)...
등등 열거한다면, 끝도 없는 부조화한 세상이다.
이것을 구하는 길은....
정치가도, 법률가도, 교육자도, 문화인도, 종교가도,
모두가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적인 판단을 기본으로 하는 길밖에 없다 하겠다.
남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만'
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이기주의자로서, 스스로 조화에의 길을 폐쇄하여 고독한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애를 남에게 주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애의 표현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사회인류의 행복에 연결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참된 보시(布施)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동 봉사, 경제적 봉사. 정신적 봉사의 행동이,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룩해 간다.
그것이 각자의 자발적인 행위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행위는, 강제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길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빛의 대지도령들도,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이,
양친을 선택하고 가장 깨닫기 쉬운 환경을 가려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도, 모세도, 고타마 싯달다도
대지도령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아가샤계 그룹의 빛의 대지도령들이다.
고타마 붓다는 자비의 마음을 45년간이나,
당시의 인도의 중생에게 설법했다.
그리고 불국토를 짓는 목적을 갖고,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설법했다.
당시의 바라문교의 화석화한 베다나, 우파니샤드,
그것들의 때와 먼지를 닦아 제거하고,
올바른 법의 빛으로 많은 중생의 마음에 인생의 살아가는 기쁨을 설(設)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정하여,
이스라엘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다.
그래서 로마의 지배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중,
화석화된 유태교,
사람들의 지(知)와 의(意)의 먼지에 싸인 모세의 올바른 법의 마음가짐을,
사랑이라고 하는 표현을 갖고 구제해 갔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는, 악마들에 의해서 멸망했지만,
부활의 현상으로서 제자들의 결속을 다지고,
정법의 토대를 쌓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지상계에 신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타난 빛의 대지도령은, 몸소 인생의 의문에 부딪치면서,
‘이것으로 좋은 것인가’
하며, 그 해명을 스스로 하고,
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의 협력을 얻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 갔던 것이다.
그 신리는 불변의 것으로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정법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그의 제자들이나 학자들에 의해서, 학문적으로 어렵게 되어,
개인의 견해로 변해버려 화석화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역사 속에서 권력자나 지도자들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종교를 이용한다.
그러는 사이에 정법이 왜곡되어 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화석화된 "법(法)"의 수정을 위한,
사명을 띤 지도령들이 태어나는데,
구래(舊來)의 광신자나 맹신자들의 박해를 받고,
학자나 권력자들의 저해(沮害)를 당하여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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