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일색냉청송(日色冷靑松)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기를 원한다.'
Aristoteles의 「형이상학」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우리가 왜 배우면서 삶을 살아가는 가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
形而上學(형이상학)의 문제는 存在(존재)의 문제인데 Aristoteles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탐구되고 곤란을 느끼게 한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라고 말하였다.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즉 배움의 문제이다.
배움은 진리의 認識(인식)에 있는데 眞理(진리)라고 하는 것은 ‘숨겨져 있지 않은 것,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누구나 제일 먼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自我(자아)라는 존재이다.
힘든 수련 속에 자아를 인식하고 자기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소중한 내가 배움을 통하여 세상과의 조화로움을 이루어 나갈 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솔의 푸르름이 한 여름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시원하게 만들어 먼 길 가는 피곤한 나그네의 땀을 식혀주듯 서로를 위해주는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태권도를 통하여 솔의 푸르름 같은 향기를 가져야 한다.
태권도 수련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태권도 수련을 통한 푸르름은 미래의 희망이다.
1994년 초여름!
중학교 동창인 기수가 차를 한잔 하자고 하여 그가 운영하는 삼성문구사로 가니 기수는 " 땅이 좋은 데가 있는데 한번 봐. 내가 문구사를 할려고 찾아 다니다 발견했는데...갑자기 자네가 생각나더군. 여기에 도장을 지으면 좋겠어."하고 말한다.
지적도를 보니 청전초등학교가 하소동으로 이전하여 제천을 굽어보는 용두산의 지명을 딴 용두초등학교로 改稱(개칭)되고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조성 되는 곳 이였다.
다음날 주택공사에 들러 확인하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늘 많은 힘이 되 주었던 광석이 삼촌에게 상의하니 한 필지로는 너무 작고 두 필지를 구입하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3억 이상 되는 비용이 문제였다.
결혼 후 사람이 변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덕분에 몇 년 동안 열심히 저축하여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았는데....그것으로는 대지의 계약금 밖에 치를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심각히 생각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묻는다.
" 무슨 생각을 하세요. "
그런 아내를 말없이 바라보다.
" 당신 생각을 하고 있어요 " 하고 말하니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해 맑은 미소가 소리없이 나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와의 첫 약속은 단종의 슬픔이 어려있는 장릉 가기 전인 소나기재에서 '자기를 많이 사랑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목숨 바쳐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였었는데....
부모님께서는 결혼 후 새벽같이 어둠 속에 일어나 힘든 시집살이를 말없이 하는 것이 대견스러웠는지 3년이 지나자 며느리에게 주는 것이라며 당신들이 갖고 계신 유일한 전답 1697평을 주셨다.
아내는 그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땅을 살 수 있다며....그러나 계약금을 주고 난 후 은행으로 찾아가니 상속이나 증여 받은 땅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대출조건이 된다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정이 급하게 되어 사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갑자기 중도금을 구하기 힘든 가운데 중도금의 만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안타깝지만 포기를 해야 했다.
차를 마시며 안타까움을 달래는데 명기가 들렸다.
나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는지" 사범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나는 " 아니다. 별일 없단다. 차 한 잔 들어라. 지도할 시간이구나" 하며 일어서 수련장으로 나갔다.
다음날!
가슴 아프지만 해약하러 가자고 하자 아내는 돈이 준비 되었다며 중도금을 치르자고 말한다. 그래서 중도금을 치루고 나서 궁금해 하는 나에게 사실은 명기가 어제 무슨 일이냐고 자꾸 물어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니 말없이 듣고 나가더니 잠시 후에 수표를 가지고 와서 이것으로 중도금을 치르시라고 하였다고 한다.
나의 자존심을 알고 있는 아내가 안 받으려고 하니 명기는 "사범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하여 받았노라 고백한다.
명기는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겠다고 인천으로 떠난지 2년 만에 약간의 돈을 모아 제천으로 돌아와 경양식집인 <프라도>가 경영란에 헐값으로 나와서 인수해 호프집을 하겠다고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상의를 하러 왔었다. 그리고 <프라도>를 어렵게 인수한 명기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며 번 돈으로 제일 먼저 고생하신 어머님께 아파트를 사드리고 어렵게 생활하던 생각이 나서 아무도 모르게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명기가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는데....
약관이 조금 넘은 나이에 나의 자존심까지도 생각할 정도로 성숙되어 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숨죽이며 말없이 지켜보던 아내가 나의 눈물을 보고 손수건을 내민다.
아내의 손을 바라보았다.
고왔던 손이 어느 덧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손등을 나의 볼로 가져갔다.
그러자 아내는 " 제자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요."하고 말한다.
파도처럼 지난날들이 스쳐간다.
건물을 짓다 보니 생각한 예산 외에 많은 경비가 들어갔다.
힘겹게 도장을 짓고 있는 어느 날, 고암태권도장의 최석기 관장이 찾아왔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다 최석기 사범은 " 사범님! 어렵게 도장을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꼭 멋있게 도장을 지으셔서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 하고 말한다.
많은 어려움 속에 태권도장이 완공되고 개관하던 날! 동생처럼 따르던 충주의 김영업 사범이 도장을 하루 휴관하고 와서 많은 일을 해주는 정성 속에 개관식을 성대히 마치고 어둠이 깔린 도장 한 복판에서 나는 누웠다 일어났다 굴렀다 앉았다 하며 뒹굴다 문득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하던 모든 일들이 나를 진정 강하고 성숙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생각과 이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태권도장을 왜 세웠는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라는 두려움 속에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았다.
달과 수많은 별들....
나는 다짐했다.
진정 나는 수련을 멈추지 않으리라.
멈추지 않는 수련 속에 미래의 희망을 키워 나가리라.
수련을 위한 나의 기도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듯
한 방울의 땀들이 모여
나의 배움을 이루게 하소서
하루하루의 수련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진리를 향한 마음 변치 않게 하소서
태양의 뜨거움도
솔의 푸르름으로 시원해지듯
나의 고통이 솔 잎되어
햇빛을 가리 울 수 있도록
멈추지 않는 수련의 정열을 주소서
「日色冷靑松 솔의 푸르름에 햇빛이 차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