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 金 法 - 가족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선천시대와 후천시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자면, 둘 다 대자연의 운용법칙에 따라 시기적으로 구분한 명칭입니다.
선천시대는 성장시대라고도 표현하며, 이때는 문명이나 과학, 지식이 완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성장시키기 위해 대자연의 기운이 움직였음으로, 많은 사회적 모순도 함께 성장 되어 왔습니다.
가령, 부정과 부패한 방법으로도 명예를 얻고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며,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갑질이 당연시 되는 시대였고, 또한 무식한 인간들을 위해 신(神)들이 개입하여 관장하였습니다. 수많은 종단과 종파에서도 신(神)들에게 빌고 소원을 구하면 잘 이루어 졌으며, 신통력이나 신통술등을 가지고 종교가 큰 부와 세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시대를 말합니다.
이런 선천시대는 2012년까지로 봅니다. 왜 2012년까지인가 하면, 고대 마야의예언의 달력도 2012년 까지만 표기 된 자료가 많이 있고, 그 후엔 지구종말 이라는 예언들이 쏟아져 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노스트라다무스의 2012년 ‘지구멸망 예언’이라던가 성경에서 나온 ‘휴거’라던가 심지어 지구종말을 다룬 영화라던가 등등 무수히 많은 멸망에 대한 이슈들이 난무했고 실제로 공포스러운 종말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미리 자살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잘못된 신앙으로 모든 재산을 사이비종교에 갖다 바치고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무리들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지구가 갑자기 자연재해 즉, 물 또는 불바다가 되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런 물리적 종말이 아니라 대 자연의 운용법칙이 180도 달라진다는 의미의 종말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숫자를 셀 때1.2.3.....10이 끝나면 다시 11.12,13...으로 연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2013년부터는 후천시대라 칭하는데 후천시대를 인용시대(人用時代)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성장이 끝난 시대이기 때문에 이때부터 신(神)들은 모두 관망하게 되었고, 인간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운용하는 시대란 의미입니다.
이 시대는 앞으로 모든 사회의 부조리함들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평등하게 운용되어 질 것입니다. 지금도 차츰 지난 과거의 부조리와 모순들이 정리 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갑질을 일삼던 재벌들이 행태가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소위 사회의 지도층이라 불리었던 사람들의 부정과 부패가 까발려져 전 국민이 알게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性)적으로 억압받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알리기도 하고, 악질 범죄자들은 방송을 통해 얼굴이 전 국민에게 알려지는 등 무수히 많은 변화의 사례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신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하는 것 입니다. 이제는 사람이 신처럼 모든 것을 보고 관장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용시대(人用時代)입니다.
모든 성장이 끝나 꽃을 피우게 되면 그 꽃은 향기를 내고 아름다운 색을 발산하다가 머지않아 시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장이 끝난 후천시대를 꽃에 비유한다면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수행법도 달라져야 하고, 종교도 달라져야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으로부터 나와 운용되므로 인간관계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어져나가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이치입니다.
* 진정한 가족
-부모의 역할-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 중 가정(家庭)은 음과 양이 결합하여 소우주를 창조하는 것으로 삼합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출산함으로 하나의 가정이 생성 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서로가 평등함을 알고, 존중받고 존중해 줄 때 이 사회의 튼튼한 뿌리가 되는 가정이 되고, 가족으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어머니들은 태아를 임신했을 때 태교를 위해 음식도 가려 먹고, 나쁜 것은 피하며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 노력했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로 태교음악, 태아교육, 태교음식, 등등 뱃속에 생명이 들어서면서부터 아기에게 좋은 기운과 영향을 주려고 많이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 부모들이 집을 잘 만들어 두어 영적 급수가 높은 영혼과 인연 맺기를 바라는 것이며, 과실나무에 거름을 많이 주어 환경을 잘 만들어 놓으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이렇게 인연과 영적 주파수가 잘 맞는 아이가 태어나면 6세까지는 부모의 역할을 100퍼센트 다해서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해야 하고, 7세부터는 70퍼센트는 부모가 30퍼센트는 아이가 스스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느덧 사춘기가 시작되는 14세가 되면 부모의 역할이 30퍼센트 자녀가 70퍼센트 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그저 자녀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표명하며,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망해야 합니다. 종종 많은 부모들이 이점을 간과하고 지나친 애착으로 간섭과 제제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것은 오히려 자녀들의 독립심을 길러주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평생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체성이 결여된 인간으로 퇴보하는 길이 됩니다. 특히 자녀가 21세 성인이 되면, 이제는 완전하게 독립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합니다.
이때는 부모보다는 무엇이든지 사회에서 배워가며 깨우쳐 살아 나가야 합니다.
요즘 사회는 부모 역할의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습니다. 대부분 결혼도 부모가 알아서 시키고, 살 집도 부모가 당연히 마련해 주고, 손주 손녀까지 돌봐주다가 자신의 삶은 없고, 송두리째 자식에게 헌신하고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딸 가진 어머니는 싱크대위에서 엎드려 죽고, 아들가진 어머니는 객사 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법(자연법)으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두 지나친 집착과 애착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집착한 만큼 영적 무게가 무거워져 주변을 맴돌다 다시 추락하게 되므로, 지나친 집착과 애착은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됩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됐던 자식이 됐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가 놓아 줄 때가 되면 놓아 주어야 합니다. 인연법으로 보면 부모와 자식은 빚을 주고받은 관계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많아 부모 자식 또는 형제, 자매들로 만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혈육은 인연이 많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 혈육 관계라고 모두 가족의 개념이 될 수는 없는 것 입니다. 모든 인연이 마찬가지이지만 한생(一生)은 아침이슬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쪽으로 치우쳐 매달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내 자성의 내불(內佛)을 밝혀 덕행을 실천하며 빛나는 삶을 살아 자신을 불사를 때 영(자성)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가벼워 진 만큼 해탈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간으로 태어난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종종 우리 사회에서 재산문제로 서로 물고 뜯는 형제, 자매들, 부모를 죽이는 자식, 자식을 죽이는 부모들, 아내와 남편을 죽이는 부부들, 이런 극단적인 사례의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런 사례들이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현재의 가족구성원들은 극과극의 양극화를 달리며 핵가족화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가족은 이념이 같고 추구하는 목적지가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로 소통과 공감할 수 있고 영적 차원의 교감이 이루어져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념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진리를 따르는 자연법이자 곧부처님의 정법을 말합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정법을 수호하겠다는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홍익인간으로서 역할을 해나가며 더불어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인간들이 신의 영역이상으로 진화 되었기에 타에 의존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처라는 것을 바로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자육행도의 두번째는 ‘내가 가족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였습니다.
나의 가족을 위해 빛나는 삶이 되는 덕행의 실천으로는, 먼저 나 자신을 늘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늘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되 상대에게 권위적으로 내 의견과 사상을 주입시키거나 피력해서는 안 됩니다.
무한한 관심을 표현하되 간섭을 하게 되면 상호관계의 성장이 어렵게 되고,
특히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관심과 간섭은 어떻게 다릅니까.
간섭은 ‘내 생각이 옳다’라는 가정 하에 내주장을 관철시켜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이고, 관심은 부드러운 대화로 서로 상의하여 상대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호관계에 긍정적 에너지가 생겨나 서로존중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구성원들이 되어 삶이 즐거워지게 됩니다.
이들이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이세계가 하나의 공동체 운명으로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빛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은 내 주변에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작은 덕행의 실천들이 쌓이면,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내가 바르게 달라지면 나비효과처럼 가족 이웃 사회를 국가 인류를 변화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겁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십시오. 작은 일이란 내 앞에 주어진 인연들의 말을 잘 들어 주고, 이해해주고, 대화로 풀어나가며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흡수한 모든 것들에 대한 자기성찰을 철저히 하시고, 나의 모순을 찾아내어 반성하십시오. 그러면 스스로가 빛나게 됩니다.
1만 가지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가족의 의미는 달라져야 합니다. 내 혈육만이 유일한 가족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큰 눈과 지혜로 세상을 대해야합니다.
따라서 대자연법 안에서 희노애락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지구촌 인류는 모두 가족입니다. 긴 시간 동안 서로가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있어 왔고, 경쟁으로 치달아 가는 구조가 형성 되었는데, 이는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성장만을 초래한 결과입니다. 근본적으로 같은 하나의 이념(자연법)을 두고, 서로 다른 문화와 이해관계의 득실을 놓고 달리 해석해 온 어리석은 역사의 산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진정한 가족의 개념을 이해하셨다면, 크게 보면 가족은 내 가정(家庭)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와 이념을 같이하는 내 이웃, 지구촌 인류 전체를 가족구성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좁은 식견에서 벗어나 가족의 의미를 되찾으십시오.
-소백산인 寂圓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