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포스팅에서 A Path with a Heart 라는 제목을 글을 썼다. 이 표현은 사실 좀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길이란 것은 원래 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없는데 이 Heart를 가진 길을 간다는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리(mind)로 생각하고 내 머리가 이끄는대로만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명리적으로는 재성이 이끄는 대로만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 배움의 과정 없이 비견이 재성을 보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이 동시에 따른다고 본다. 물론 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팔자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하면 내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만하니까 그렇게 행동하였겠지 라고 생각하고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사람이 머리로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이 갈구하는 방향으로 길을 가고 있는지는 바깥에 있는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말은 네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 단계는 교과서적인 말이다. 배운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두번째 단계는 교과서적인 진리에 위배되는 증거를 체험하게 되면서 정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단계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번째 단계는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일상적 실재와 비일상적 실재의 연결 고리를 깨달은 단계의 생각이다.
네번째 단계는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입장을 가지게 된다. 우주의 진리를 가장 열린 태도로 끌어안고 그 질서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다.
아마도 우리 과학명리 도반들이 가는 길도 이러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변화의 이치를 깨우치면 산과 물이 다름이 없다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을까?
돈환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Don Juan) 을 쓴 Carlos Castaneda는 원래 UCLA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대학원생이었다. 그가 쓴 이 책은 그의 스승 Don Juan과의 5년간의 만남을 통해 과학으로서의 일상적 세계관을 보완해 주는 비일상적 체험을 경험의 언어(language of experience)로 서술한 책이다. 그가 진정으로 마음이 동(動)하여 A Path with a Heart를 걸었기에 과학과 신학과 철학(신비적 체험)의 세 길을 하나로 보고 우주와 세계를 보는 보충적이고 상보적인 관점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첫번째 세상의 인식만을 하는 사람의 행위와 네번째 세상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행위가 겉으로 보기에 같지만 실제로는 천냥지차가 아닌가?
꾸준한 노력으로 높은 차원의 깨달음 속에서 음양의 춤을 추고 싶다.
경신월 병인일 갑오시
비겁 시간에
산과 물의 불이를 보며!
불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