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뿌라 차크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창고다.
감정이 상했을 때 왜 그렇게 위가 편치 않은가.
그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감정이 상할 때 마니뿌라는 즉시 그 영향을 받는다.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우리는 "나는 그 말을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구역질을 느낄 것이다
구토하고 싶을 것이다. 이 구토는 현실화된다.
그것이 바로 심리적인 구토다.
누군가에게서 메스꺼운 말을 들었을 때 그대는 도저히 그 말을 소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때 그대는 구역질을 느낄 것이고 이에 따라 대번에 구토 증세가 온다.
구토가 지난 후에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란 무엇인가?
분노, 시기, 질투 따위가 그것이다.
부정적인 이 감정들은 모두 억눌려 왔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니뿌라 차크라는 이 억눌린 감정들을 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억눌린 감정들은 에너지의 상승을 막는다.
이 억눌린 감정의 기능은 바위와 같다.
그러므로 그대 에너지의 흐름은 바위같이 굳어 버린다.
인간의 모든 기능은 부지중에 마니뿌라 차크라에 집중되어 있다.
그 억눌린 감정들은 마니뿌라에 모여서 그대의 분노를, 시기를, 질투를, 억압을, 저항을 폭발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의식의 표면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사회는 이에대해 단 한 가지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부정적인 모든 것을 억누르고 대신 모든 것에 대해 긍정적인 체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허나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위험하다.
긍정적인 체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위선에 자나지 않는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을 억누르는 것도 위험하다.
억눌린 그것들은 하나의 독소가 되어 그대의 각 기관에 독기를 내뿜고 있다.
탄트라는 말한다.
부정적인 것들을 나타내라.
그리고 긍정적인 것들을 따르라. 분노가 오면 그 분노를 억누르지 말라.
공격의 마음이 파도쳐 오면 그 마음을 억누르지 말라.
그렇다고 탄트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는 않는다. "어서 가라. 가서 그를 죽여라".
대신 억눌린 감정을 나타내는 많은 방법이 있다고 탄트라는 말한다.
분노가 치밀 때, 누군가를 쥐어박고 싶을 때는 정원에 가서 나뭇가지를 잘라 줄 수 있다.
정원사를 보라. 그들은 누구보다도 말이 없고 침착하다.
사냥꾼을 보라.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주 몹쓸 짓을 하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수렵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다.
동물들을 죽임으로 하여 그들의 분노와 침략성이 해소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저항적이라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이세상에서 가장 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오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