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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술이 잔뜩 취해보이는 달님이 들어온다. 방구석에 들고 나갔던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별님의 인기척을 살펴보던 달님. 조심스럽게 별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물끄러미 보고 서 있다가 입을 연다.
"넌 왜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냐. 내 누나라지만 피곤하게 사는 거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애. 차마 대놓고 너한테 말해줄 수는 없어서 그냥 비겁하게 이렇게라도 풀어놓는 건데, 우준성이란 놈은 괜찮은 거 같은데... 난 그냥 개인적으로 누나가 편하게, 평범하게 연애를 했으면 좋겠어. 나 데리고 지금 이렇게까지 이루는데도 엄청 힘들고, 고생했잖아. 근데 연애까지 그렇게 하는 거 보고 싶진 않아. 난 누나가 정말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방실방실 웃고, 행복해하면서 연애하는걸 보고 싶단 말이야.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지금 이 정도로만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을 건데... 맘이 어떻든 그 선택은 누나의 몫이니까. 그냥 내 개인적인 바람은 이렇다는 거야... 괜히 내 누나로 태어나서 고생만 하는 불쌍한 인간아."
할 말을 다 끝마쳤는지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는 전달님. 등을 보이며 누워있던 별님은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꾹꾹 참고 있던 감정을 내뱉듯 눈물을 주룩 흘린다. 자신에 대해 너무도 잘 아는 한 사람이 전달님이고, 그런 동생에게서 저런 말이 나오자 너무 마음이 아픈 별님.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정리를 해야겠단 마음을 먹는다.
매우 분주해 보이는 Sweet.B 소속사 직원들. 전화를 받고, 계약을 성사하고 출국수속을 미리 예약해 놓는 것 까지. 스케줄을 마치고 후속곡을 위한 안무연습을 위해 속속들이 들어오는 멤버들을 불러 앉히는 매니저. 하얀색 A4용지 대여섯 장을 들고 몇 차례 훑어보더니 말을 내뱉는다.
"기쁜 소식이기도 하고, 많은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성사가 됐다. 다가오는 10월부터 시작하게 될 거고."
"뭔데 그렇게 서두가 길어요?"
"설마, 그 해외진출....?! 우리도 이제 세계 한류 아이돌이 되는 거 아입니까?"
"그래, 한섭이 말이 맞다. 해외 에이전시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그 나라에서 활동을 시작할거니까. 한국에서 했던 것보다 몇 십 배로는 더 열심히 해야 돼."
"얼마나... 있다 오는 건데요?"
"짧으면 1년, 길면 3년까지 걸릴 수도 있어."
"와, 너무하네. 지금 만나는 사람 정리하란 얘기에요?!"
비밀연애중인 수현이 발끈해서 매니저에게 묻는 말에 준성도 같은 궁금증인 듯 말똥말똥 눈빛이 반짝인다. 매니저는 연애중인 수현과 준성에게 미안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지만, 침묵의 끄덕임으로 대신한다. 고개를 푹 숙이며 좌절에 빠지는 수현과 반면 멍하니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준성. 걱정스러운 듯 준성의 곁에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토닥거리는 윤준.
"뭐라고 말해야 기다려줄까?"
"아마.... 기다리기 힘들 거야. 지금도 힘들 텐데, 그 기간 동안 너만 기다리고 있어 달라 하면……."
"후... 나 탈퇴하까?"
"뭐 이 새키야?!!"
"농담이야, 농담."
장난스레 우준성의 목을 팔로 감고 조르는 윤준에게 손으로 탁탁 치면서 농담을 하는 우준성. 쉽게 탈퇴란 걸 하고, 은퇴란 걸 하려고 이 자리까지 오도록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노력한건 아니니까. 어느 하나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입장에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준성. 연승은 그런 준성이 괜스레 측은해 보인다.
"서운하게 듣지 마, 우준성."
"또 무슨 말 하려고 꼬마야."
"헤어져라."
"야!!!!"
"너로써는 그게 최선이야. 서로를 위해 그게 최선일거야."
"그거 말고는?"
"계속 만남을 이어 간다고 친다면, 둘 중 하나는 계속 중간 중간에 나라를 왔다 갔다 해야 되고, 그 비용, 그 시간... 쉽지 않을 거고. 차츰차츰 뜸해지기 시작하면 결국 끝은 헤어지는 거야."
"아... 매정한 놈……."
Sweet.B의 해외활동이 확실시됨과 동시에 동반 해외진출로 기사가 난 Lady.R. 출근길에 집어든 신문을 들고 보다가 첫 장도 넘기지 못하고 멈춰버리는 별님. 한참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서 신문을 들고 있는 별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툭툭 치이다가 정신을 차리고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신문을 백 속에 접어 넣는다.
지하철 안. 출근길이라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자리를 잡고 서서 백 속에 넣었던 신문을 다시 꺼내들어 보는 별님. 별님이 들고 있는 신문을 힐끔힐끔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함께 보며 쑥덕이기 시작한다.
"대단하네, 해외활동까지 같이 할 정도면."
"근데... HeeRa랑, 우준성이랑 계약관계란 얘기도 있던데. 실제로 사귀는 건 아닌데 양측 소속사 이득을 위한 희생양이라던데."
"어머 어머, 정말?"
더 이상 주변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듣기 싫은 듯 신문을 신경질적으로 백 속에 쑤셔 넣는 별님. 작업실에 도착해서도 온종일 넋을 놓은 사람처럼 멍하니 펜만 굴리고 있을 뿐, 가사가 써지질 않는다. 다들 기사를 본 듯 말없이 별님의 행동만 관찰하고 있는 미윤과 S.victory. 늦은 시간, 결단을 내린 듯 온종일 멍하니 자리만 지키고 있던 별님이 백을 들고 일어선다. 먼저 가보겠다며 인사를 건네고,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별님.
"어디야?"
"연습실."
"잠깐 볼래?"
"지금?"
"응."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공원으로 향하는 별님. 편의점을 가려고 소속사 건물에서 걸어 나오던 윤준이 별님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전하려 하지만 못 본 듯 그냥 지나쳐 가버리는 별님.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듯 지나쳐간 별님의 발자취를 한참동안 서서보고 있는 윤준. 때마침 준성이 건물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고개를 떨군 채 생각이 많은 듯 어두운 표정인 준성의 팔을 잡고 세우는 윤준.
"어디가?"
"잠깐.... 근처에 좀 갔다 올게."
"너... 혹시 작사가누나 만나러 가는 거야?"
"어? 뭐... 웬일로 먼저 연락해서 보자고 하네."
"근데 여자 친구 만나러 가는 놈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내가 왜?"
애써 씽긋 웃어 보이지만 슬퍼 보이는 표정의 우준성. 이별을 예감한 듯 별님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고, 그런 준성의 뒷모습을 보는 윤준의 마음이 좋지 않다.
어두컴컴한 공원놀이터. 긴장한 듯 그네를 슬쩍슬쩍 움직이면서 준성을 기다리는 별님. 그네를 타며 앉아있는 별님에게로 다가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불쑥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준성. 고개를 들어 준성을 보는 별님의 눈에는 한가득 고여 애써 참고 있는 듯 보이는 눈물. 그런 별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는 준성. 말없이 별님을 끌어안으려 팔을 뻗지만, 슬쩍 피하듯 거부하는 별님의 태도.
"우리 차에 가서 얘기할까?"
"......."
"가자."
준성의 손에 못 이기듯 이끌려 차로 옮겨가고. 참고 있던 눈물이 준성의 손길에 흘러버리자 고개를 돌려 닦아내는 별님. 별님이 어떻게 하고 있는 줄 다 알지만,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준성. 조용하기 만한 준성의 차안. 서로 어색한 듯 입을 열지 못하고, 마주보지도 못하는 준성과 별님. 동시에...
"저기."
"먼저 말해."
"아니야, 너 먼저 말해."
"할 말 있어서 만나자고 한 거 아니야?"
"어? 어……."
"그러니까 먼저 말해. 할 말이란 게 뭐야?"
애써 별님을 보며 웃어 보이고 있는 준성의 모습에 가슴이 아픈 별님.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결심한 듯 입을 연다.
"우리. 그만하자."
"......."
"헤어지자고."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
"난 어떻게 하면 기다린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날 위해 생각해 낸 게 이거야?"
"미안해."
"나 진짜 안 기다릴 거야?"
"........"
"........"
별님의 침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준성. 견디기 힘든 침묵 속에서 먼저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 별님. 팔을 잡아 당겨 조수석에 앉히고, 차에 시동을 거는 준성. 조금 긴장한 듯 보이는 별님의 표정.
"마지막은 내가 데려다 줄게."
이윽고 도착한 별님의 집 앞. 또 다시 찾아온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차 문을 열고 먼저 내려서 별님의 차 문으로 다가가는 우준성. 별님의 차 문을 열어주고, 어색하게 별님이 차에서 내리자 덤덤한 척 노력하며 별님을 안아주는 준성.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별님.
"울지 마... 이러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나 괜찮을 거야. 잘 지낼 거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마. 대신 전별님은 내가 행복해질 때까지 딴 놈 만나지마. 그건 날 차버린 별님에게 주는 대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