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의 중창 미수 허목선생
미수 허목 선생은 과연 누구인가?
“미수(眉叟) 허목(許穆)”하면 흔히들 조선 중기시대 “남인의 영수”라던가 동양 제일의 “전서체의 대가” 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그분이 도학사상의 대학자이며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음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미수(眉叟)선생은 조선 중기의 도학자로서 당시 유교의 성리학이 성행하여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서 조정은 사대주의가 만연하여 민족의 주체성과 정신이 상실되었던 시기에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으로 이어지는 민족정신과 민족의 정통성과 위대하였던 문화유산을 주장하시었다.
또한 도학자로서 지금에 말하는 초과학을 실천함으로써 수많은 일화를 남기셨고 백성을 중히 여기는 정치가이기도 하였다.
허목(許穆) 미수(眉叟)선생은 1595년 생으로 1682에 88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으며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시호 문정(文正). 현감 교(喬)의 아들이며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사위이다. 경기도 연천이 향리이고 서울에서 성장하였지만 영남 남인의 거두 정구(鄭逑)에게 배웠다.
미수공은 88세까지 생존하였지만 정작 관직을 받은 것은 56세에 참봉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공이 승낙해서 받은 관직은 63세 때에 처음으로 지평에 임명되어 사은으로 입시하니 환갑이 넘은 나이에 관계로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관직을 사양하고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의 구거(舊居)로 내려가 오로지 학문과 저술연구에만 몰두하였다.
나라에서 관직을 받아 임지로 부임한 것은 삼척부사가 유일하였으며 이때에 저 유명한 “척주동해송(陟州東海頌)”을 세우게 된다.
미수퇴조비(眉叟退潮碑)라고도 하는 이 비문은 동해송(東海頌)이라고도 불려진다.
이후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거쳐 우의정에까지 이르지만 연이어 관직을 사양하였고 왕은 승지를 보내 만류하기를 반복하였으나 끝까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임금이 지어 하사한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소재 “은거당”에 칩거하면서 지인들이 청해오는 묘비문이나 비문 등을 써주고 시와 글을 쓰며 말년을 보냈다.
이때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십팔훈(十八訓)을 걸어놓고 수신제가의 수범을 보였으며 이 십팔훈은 현재까지 후손들에게 전해지며 교훈이 되고 있다.
1. 미수공의 출생설화
미수공의 출생설화에는 여러 가지가 전해오며 다음과 같다.
허목의 선조는 본래 경기도 연천에 본거를 두었고 허목 자신도 출생지는 서울이었지만 연천이 주생활 근거지이었다.
여염집에서도 자식을 낳을 무렵이면 태몽 꿈을 꾸게 되고 이를 소중하게 여겼고 곁들인 일화 또한 적지 않은데 허목 역시 태몽과 관련된 허다한 출생설화가 전해 오고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 일화를 소개 하고자 한다.
출생설화 (1)
갑오년 경칩(驚蟄) 무렵, 백호 임제의 집에는 얼마 전에 시집 간 딸이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혼인을 하고서도 3년 간 친정집에 머무른 후에 시댁으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이 무렵 따사로운 햇살이 사랑방 문살을 뚫고 비추고 있는 어느 날 책을 읽다 노곤하던 참에 깜박 잠이 든 사이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시뻘건 불덩어리의 해가 비추더니 쏜살같이 그의 옷섶으로 기어드는 것이었다.
놀라 잠을 깬 백호는 꿈이 하도 이상해서 나름대로 해몽을 해 보았다.
결론은 길몽이라 판단됨에 자세를 바로 하고 헛기침을 한후, 안채를 향해 며느리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계속해 불러댐에 나타난 것은 며느리가 아닌 딸이었다.
"아버님,무슨일이세요?" 하고 여쭈니 대꾸도 않고 "언니를 어서 나오라고 해라!" 하고 재촉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딸이 대답하기를 언니는 머리를 감는 중이라 나올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말에 백호는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말로 "쯧쯧, 내 자식이라야 되는데.... 우리 집 핏줄이어야 하는데....." 라고 되 뇌이며 입맛을 다시고는 거듭 말하기를 "며느리가 이 꿈을 받아야 하는데.... 할 수 없구나! 너에게 줄 수밖에..." 라고 하면서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딸에게 주고 꿈 얘기를 해주었다.
저녁때가 되어 사위가 돌아오자 딸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사위 또한 몹시 기뻐하였다.
얼마 후 딸에게 태기가 있어 태어난 아기가 바로 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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