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전기 통훈대부(정3품 당하관)의 품계를 받으시고 삭주부사(정3품 지방관)를 지내신 인인경이란 분의 묘비명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공의 이름은 인경이시며 별호는 아천이시니 태종때 진사에 삭주부사를 지내셨으니 인당공(첨의평리사사 석성부원군)의 4세손이시고 인원보공(익대공신 형조판서 함산군)의 아드님 이시다.
공께서 일찌기 벼슬을 하시매 집안일과 같이 하셨고 백성을 사랑하시기를 아들과 같이 하사
덕의 교화가 고루 베풀어져 온 고을이 모두 칭송하였다. 그러나 공의 평소 뜻이 겸손하고 공경하며 검소하여 영화와 명예로써 오래하시고져 않으신고로 결연히 온양 동산리로 은퇴하시었다.
낮에는 들에 나아가 밭갈이 하시고 밤에는 돌아와 글을 읽으시면서 항상 자제들에게는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선비가 몸을 닦아 장차 남을 다스리고져 할진대 오직 평화시대에는 마땅히 물러나 사양함으로써 의를 삼고 만약 국가가 여려움이 있을때는 마땅히 나아가 의를 지킬 것"이라고 하셨다.
후세의 사람들이 다만 공의 벼슬이 낮았던 것만을 논하고 공의 원대한 경륜을 몰라주니 이는 소위 귀로 듣는 것만 귀히 여기고 안목은 낮고 천함이라 하겠어서 잘 인품을 알지 못함이라 하겠으니 더구나 어찌 돌에 새겨서 그 정신을 길이 전함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불행이도 세상이 여러번이나 변천하고 자손들이 적고 나타나지 못하여 비석이 있었음을 알지 못하게 되서 땅에 묻혀 지금에 이르기 이미 5백여년이나 되었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글을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제가 번역한 것은 아니구요. 족보에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인인경
자는 성직 호는 아천
조선 태종 (기 1401년에서 1418년 사이) 통훈대부 삭주부사(삭주는 평북지방임)를 지내셨음.
묘소는 아산군 탕정면 동산리
배위는 선산김씨 이시며 공조판서 겸의 따님이시다.
이 분의 아드님으로는 통훈대부 강서현령과 공조정랑을 지내신 인 근공과 통훈대부 사헌부지평을 지내신 인 침공, 어모장군 행 용양위부장을 지내신 인 구공이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