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차별받아 억울해 했던 때의
드라마 속의 키요시에게는 어두운 안개가 덮이고,
사신같은 지저분한 지옥령이 다가와,
키요시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로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이, 그 사신을 내쫓았다. 그때였다.
“키요시.
어린 시절에 학우로부터 박해받았을 때에,
왜 네가 어둡게 되었는지 알고 있느냐”
라고 수호령의 목소리가 돔 속에서 들려왔다.
키요시는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아직 모르느냐.
너는 타인의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독을 먹은 것이다.
그 독이 마음속에 검은 구름을 만들고,
신의 광명을 차단한 것이다.
자기보존이 너는 강한 것이다.
마음의 독을 타인에게 받아 먹어서는 안된다.
독설의 말은 오른쪽 귀로 들어서 왼쪽 귀로 내보내라.
마음속에 남기지 마라”
아아 예전에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다--.
라고 키요시는 생각했다.
“그말 대로다.
생각한 것도 행동한 것도,
자기중심이 되면 어두운 먹구름을 만들어 내어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수호령은 이해하기 쉽게 키요시의 마음에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키요시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큰 의문이 있었다.
엄마같은 마음 착한 사람이 왜 빨리 죽고,
나쁜 사람들은 오래 사는가.
왜 신이 있다면, 구해주지 않는가. 키요시는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또 큰 소리로 수호령이 말했다.
“그 이유를 모르느냐.
레이카는 혼과 육체의 관계를 모른 것이다.
육체가 파괴되는 한계를 몰랐던 것이다.
감사라고 하는 마음을 다하기 위해서,
몸을 버리고 보은의 행위를 했던 것이다.
감사도 보은도 윤회하고 있는 것이다.
키요시. 너의 아버지도 너의 어머니를 맞이하러 왔던 것이다.
빛의 세계로부터. 마음과 육체가 조화되지 않아서는, 갈 수 없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라도 오래 살지만
살면서 만족하는 것을 잊고 어두운 먹구름에 둘러싸여,
생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세계에 돌아가서부터,
어두운 지옥계에서 혹독한 환경을 체험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한다.
악의 씨앗을 거둘 때까지,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 알았느냐”
라고 상세하게 돔 속의 키요시에게, 수호령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전개되어 갔다.
1945년 전쟁은 끝나고
키요시는 일본으로 돌아가도 친척도 집도 없기 때문에
대만의 레이카의 친정으로 복원하는 것을 신청했지만,
일본 군인이라는 것으로 민족 감정이 나쁘고,
키요시는 1946년 3월 10일 일본으로 돌아왔다.
군마로 돌아갔지만 오오다 사장의 회사는 없어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오오다 주인도 전사했다.
그리고 주거는 타인이 오오다 사장의 친척으로부터 사서
공장 속에는 쓸쓸하게 기계가 늘어서 있다.
키요시에게는 복원의 퇴직금과 이제까지의 예금이 약 5천엔 있었다.
이미 학교에 가도 방법이 없기때문에 도쿄의 불탄 자리의 하숙에 가서,
그 장소에 판잣집을 지어서 전후(戰後) 생활을 시작했다.
키요시는 23세였다.
전시 중의 일본경제는 군수 제품이 우선이어서
생활필수품은 엄격한 통제에 의해 배급되어,
특히 의식에 관해서는 내핍을 피할 수 없었다.
1억 국민총동원으로 전쟁 완숭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대도시와 그 근교는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종전(終戰) 직전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신형폭탄이 떨어져
주민을 비롯해서 전 도시가 일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마침내 패전--.
자유, 자유라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싹이
살기 위한 자기보존으로 변하고, 혼란한 사회로 변해 갔다.
외지로부터는 복원군인이나 거류민이 들어왔다.
부족한 의식주는 점점 사회생활의 혼란을 부추기고,
법의 눈을 피해서 암거래라고 하는 새로운 장사가 생겨났다.
그것은 통제물자의 부정유출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와 같은 코스를 밟아서 복귀한
키요시의 전도에는 어떤 밝은 전망도 없었다.
그것은 의식주를 잃은 고아, 미타무라 키요시의
험난한 인생의 수행장이 전개되어 가는 것이었다.
키요시는 군복을 입은 채로 이후의 살아갈 길을 생각했다.
어머니와 괴로웠던 때도 돈, 지금도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키요시는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군마 방면에서 쌀이나 다른 식량품을 도꾜에 운반하는 돈벌이를 하려고,
5천엔의 자본으로 생산지에서 직접 쌀, 채소 등 식료품을 가져다가 파는 가게를 했다.
식료품, 의류를 닥치는 대로 사들여도
그때는 도꾜에서는 날개 단 듯이 팔렸다.
키요시는 1만엔 가까이 현금을 가졌다.
당시는 2만엔으로 훌륭한 집과 대지를 살 수 있는 시대였다.
또 점령군 미군에게 여자를 시중 들게 하고 여자로부터 돈을 받아 장사에 몰두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키요시의 마음은 거칠어져서 악마처럼 변해갔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의 마음은 잊고,
돈의 힘으로 약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우려먹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도꾜도 오오다구의 고급지에 집과 대지를 사서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미타무라 상사 주식회사, 라고 하는 금융과 부동산 회사를 만들어,
사업이 시작됐다.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절대 이자를 붙이지 않으면 한 푼도 내보내지 않았다.
종업원은 키요시가 하숙집 자리에 판자집을 지을 당시,
서로 안 아랫마을의 아가씨 다무라 게이코와 암거래 중간상인 야마구치 3명이었다.
키요시는 5만엔의 자본으로 점령군 미군과 접촉해서,
학생시대에 배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서,
부족한 가솔린을 드럼통으로 30개나
기지에서 미군에게 운반시켜서 방공호에 숨겨서,
시가의 5배, 10배로 계약한 사람들의 장소로 보내서 폭리를 취했다.
또 미군에게 여자를 시중들게 해서 식량품의 통조림 종류를 손에 넣어,
그것을 쌀과 교환해서 식당에 유통시켜,
금방 백만엔 가까이 돈을 모아버렸다.
엔화가 화폐개혁하는 것을 알고는 돈을 물자로 바꿔서 보존하고,
그것이 수백만엔의 자금으로 바뀌어 갔다.
게이코는 20세, 키요시와 부부관계를 맺고 있으나
생활비는 그날에 필요한 만큼밖에 주지 않았다.
“키요시.
나를 당신의 호적에 올려, 정식으로 결혼해 주세요.
저 언제까지나 이런 관계는 싫어요.”
라고 게이코는 키요시에게 부탁했지만 키요시는 듣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엄마가 대만인이라는 신분이,
확실히 호적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알려지면, 게이코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키요시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게이코, 입적하지 않아도,
나는 너 이외에는 누구도 없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런 것은 문제가 안되잖아.
그렇게 싫으면 언제라도 떠나가버려.”
라고, 최후는 정신적 협박이었다.
그리고 매일 생활비만을 받는 게이코는
“키요시씨,
생활비를 1개월 통합해서 주지 않으면 계획이 서지 않으니까,
통합해서 주세요.”
라고, 괴로운 생활을 견디며 키요시에게 청구하는 것이었으나,
“무슨 소리야. 1개월을 통합해서 주면 그 돈을 갖고 달아나기 십상이다.
오늘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만큼만 지불하고, 뭐가 나빠?
너는 야마구치와 사이좋게 지내니까 둘이서 무엇을 저지를지 모른다.
돈은 필요한 때에 있으면, 그것으로 됀다.”
라고 말하며 키요시는 남을 믿지 않았다.
게이코는 이제와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키요시가 말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었다.
야마구치에 대한 지불도 똑같이
오늘 일한 일급은 내일 지불한다는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야마구치도 불평을 할 수 없다.
어느 날의 일.
“야마구치, 너는 교통비로 돈을 버니?
교통비의 전표는 장원에서 중정. 중정에서 대정까지인데,
5엔이나 교통비가 틀리잖아.
그런 마음가짐은 안된다. 이 5엔은 내일의 급료에서 뺀다.”
라고 말하며, 언제나, 일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어버려,
타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정말로 전표 그대로입니다.”
라고, 작은 일급에서 5엔을 차감되면, 야마구치도 큰일이었다.
“너는 지도를 갖고 있지. 왜 걷지 않니?
너는 심부름을 갈 때도, 한 푼도 벌지 않는구나.
조금 생각해서 하루의 행동을 하는거야.”
라고 아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야마구치는 가족도 있고 달리 이직할 수도 없어서
키요시의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야마구치는 전쟁이 끝나는 해의 3월 3일에 공습받을 때,
폭탄의 파편에 오른손을 잃어, 부자유한 몸이었지만,
어린 아이가 있어서, 어떤 것도 참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게이코는 항상 야마구치를 동정하고 있다.
야마구치는 키요시와 동갑이지만, 도꾜의 중학교를 나와서,
전쟁 중에는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주로 사무 관계에 종사하고 있다.
오른손이 불편해도,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키요시는 변함없이 군복 한 벌이 그의 재산으로, 입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신분이면서, 절대로 사는 것을 하지 않는다.
게이코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었다.
식사도 배급쌀의 부족분은,
고구마 죽이나 찐고구마라든가,
고구마의 덩굴을 건조시킨 것을 바싹 졸여서 맛을 낸 것이라든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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