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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파국다존자(우波鞠多尊者)
우파국다(우波鞠多), 우파급다(우波笈多), 우파굴다(우婆掘多), 우파국제(우婆鞠提), 우파급다(우波級多) 등으로 불리웠다.
그 뜻은 근호(近護), 근밀(近密)이다. 약 기원전 3세기의 사람이며, 불교가 법장을 부여한 제 5대 선조이다. 『아육왕경(阿育王經)』권 8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시에 예언하시기를 “나의 열반 후 백년이 되면 우파국다라고 하는 비구가 불법을 계승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때가 되어 우파국다가 세상에 왔다. 그는 말토라(秣菟羅)상인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스승 상나화수(商那和修)의 가르침으로 악한 마음을 멸하고 착한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7일 낮과 7일 밤을 수련하여 악한마음이 이 없어지고 착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사성제를 해설하여 주었으며 그는 들은 즉시 도리를 깨달아서 법장을 넘겨받고 제5대 선조가 되었다. 스승을 계승하여 불법을 전하였으며 아육왕(阿育王)을 만나고 이 왕이 인도에서 불교를 널리 포교하여 우파국다를 초청하였다.
우파국다는 화씨성(華氏城)에서 석가모니의 성지를 참배하고 우류만내산(우留曼내山)에 나라발이정사(那羅跋利精舍)를 세웠다. 아육왕의 도움으로 당시 불교가 성행하였다. 불교계에서는 우파국다께서 지혜가 높고 불법의 무한한 힘과 공덕으로 불교를 발전시켰으나 단지 그의 신상이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낮은 편이지만 무상호불(无相好佛)”이라 칭하였다.
22. 승가야금존자(僧迦耶金尊者)
승가야사(僧迦耶舍)라고 하는데 그 뜻은 무리이다.
북인도 가습미라국대론사는 명리론으로 뛰어났는데,『인명입정이론후서(因明入正理論后序)』,『인명입정이론소(因明入正理論疏)』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저명한 현장법사가 불원만리(不遠万理)서행(西行)하여 도를 구할 때 가습미라국 법사였던 승가야사를 만났고 승가야사는 현장의 깊은 불학수양을 찬탄하고 동시에 인명에 대해서는 현장을 도와 그를 위해 상세히 해설하고 설명하여 줌으로 의혹과 의심을 풀어주었다.
23. 교설상주존자(敎說常住尊者)
대승불교는 스님들이 자신의 해탈을 구하는 것과 함께 반드시 자비를 베풀어서 세상의 중생들도 해탈을 얻도록 하였다. 8정도지(八正道之)의 제4수행법은 정업(正業)인데 이는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의 일체중생을 교화시키고 그들이 세속의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불교에 귀의하게하며 극락세계에 올라가게 한다는 것이다.
『법화경탐현기(法華經探玄記)권 12에 ‘설법존(說法尊)’이 있는데, 이 존자는 동정애가 많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이 세속의 근심걱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지혜로 중생들에게 불과(佛果)를 얻게 하는 원을 세웠다. 이로써 그는 늘 인간세상에 거주하면서 중생에게 불법을 해설했다. 설법존자는 교설상주존자이었다.
24. 상나화수존자(商那和修尊者)
상락가박사(商落迦縛娑),사나파사(舍那婆斯) 등이라 한다.
인도의 마돌라국(摩突羅國)인이다. 성은 비사다(毘舍多)이다. 아난제자는 선종존자의 서천 서예국 28조중 제3선조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석존이 이 나라에 온 후부터 시절이 좋아져서 푸른 수풀을 보면 가지가 무성하므로 아난에게 “내가 떠난 후 백년이 되면 비구 상나화수가 있을 것인데 이것은 지구가 도는 것과 같은 법륜의 이치이다.”라고 했다. 백년 후 아난은 열반하기 직전에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상나의 뜻은 베옷이라는 말인데 불교전설에 상나화수가 이전에 베옷을 입고 편안히 지내며 스님들에게 보시하여 이 복력(福力)으로 오백번을 태어나도 이 옷을 입었고 금세에도 이 옷을 입고 태어났다. 몸이 길며 옷도 역시 넓어야 한다. 아난이 출가한 후 그의 옷이 법복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율을 받았는데 9개 승가짐(僧伽朕)으로 변역하였다고 한다.
상나화수께서는 출가한 후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불의 용을 굴복시켜 돌아오게 하였으며 용은 거주지를 내어 절을 짓게 하였다. 정법을 넘겨주며 “법이 아닌것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이 아닌것은 법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후 계빈국 남상(南象) 백산중으로 사라졌다. 후에 우파국다를 도와서 5백 신도들의 모든 악을 제압하였으며 18번 변하여 화광삼매로 자신의 몸을 불 태웠고 우파국다는 사리를 거두어 범가라산(法迦羅山)에 묻었다
25. 달마파라존자(達摩波羅尊者)
달마는 ‘호법(護法)’이라는 뜻이다.
6세기 인도의 달라비내국 건지보라성(建志補羅城)인이며 그의 부친은 이 나라의 대신이었다. 달마는 어릴 때부터 불법을 숭배하였으며 소년시절 자기집을 떠나 수백리 밖의 절로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권 5에 의하면 당시 불교가 쇠퇴하여 국왕은 외도를 받들었는데 외도중의 유명한 자들과 스님들을 모아 변론을 하기로 하였다. 만약 외도론자가 이기면 불교의 유행을 금지시키게 하였다. 위험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는데 이때 달마파라가 그의 풍모와 재능으로 사람들 앞에서 넓고 힘있게 변론하여 단번에 승리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외도론자들은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불법을 널리 알렸다.
달마존자는 박식하고 세상을 멀리 넓게 보아 세친보살의 학설을 총력하고 유식론(唯識論을 써서 대승불교 유가행종(瑜伽行宗)의 거장이 되어 인도 불교의 10대론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일찍이 인도의 최고 저명한 절 나란타사에 있던 그의 제자인 계현(戒賢)은 중국 당대 명승인 현장의 스승이었다.
26. 가야가협존자(伽耶伽叶尊者)
갈이가협(竭吏伽叶),가야가협파(竭吏伽叶簸)라고도 한다.
가야성은 코끼리성을 뜻하며 그 위치는 니연선(尼連禪)강변인데 보리도장과 가까웠다. 『법화경(法華經)용출품(湧出品)』에 의하면 “여래께서 태자시절 석가궁전에서 나와서 가야성에 가려면 멀지 않았고, 도를 닦는 자리에 않으면 아누다라의 삼막(三藐) 삼보리를 얻었다.”하였다. 가야가협은 계속 이 성에서 도를 닦고 있었으므로 그 명성이 있었다.
불교의 전설에 의하면 원래 외도론자로서 불(火)을 숭배하였는데 5백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형님인 우루빈라(제14대 존자), 제나제가협(제16대 존자)과함께 석가모니를 해하여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불법이 방대함에 깨달아 제자를 거느리고 귀의하였다.
27. 정과덕업존자(定果德業尊者)
존자는 선정을 통하여 일체의 공덕을 얻어서 ‘정과덕업’이라고 했다.
북존자 편알제불현성(遍謁諸佛賢聖)은 선정을 배웠으며 선정을 통하여 산란한 생각을 거두어 들이고 편안하고 변치않는 마음으로 장애물을 없애고 흠없이 일을 보고 견성오도(見性吾道)하며 진일보하여 부처님의 참된 지혜를 보여주었다. 자기 마음의 지혜와 불(佛)의 참된 지혜를 융합시켜 만물을 비추니 자기의 속신(俗身)도 법신(法身)이 되고 마음대로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수양한 지혜와 신통력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무수한 공덕을 세웠다. 건립한 모든 공덕의 근원은 선정(禪定)이다 라고 하였다.
28. 장엄무우존자(莊嚴无우尊者)
장엄무우존자께서는 덕을 행하여 명성을 얻었다.
불교경전에서 장엄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아름답게 장식하고 존엄하게 단장한다는 뜻이다. 존엄을 단정하는 것은 외부의 형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내적인 품덕을 기리는 것이다.
오직 고상한 품덕을 구비하여야 비로소 진정으로 장엄한 면모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근심은 각종 걱정과 번뇌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응당 철저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론 (智度論)』권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악함이 바다에 빠지면 능히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엄무우존자는 일구심 선정의 학문을 배워 자기만 세속의 세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원력을 세워서 중생들의 마음을 근심의 바다로부터 구원해냄으로써 그의 장엄한 면모는 바로 중생이 근심 걱정을 벗어나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이치를 알게 하려는데 있었다
29. 억지인연존자(億持因緣尊者)
존자의 이름은 승호(僧護)이며 사리불의 제자이다.
『인연승호경(因緣僧護經)』의 기록에 5백 상인들이 불교를 숭배하고 믿어 바다에 나가서 무역할 때 승호를 요청하여 바다에서 항해중인 상인들을 위해 경을 설법하게 하였다.
승호의 설법에 바다의 용왕이 놀라서 용궁으로 승호를 초청하여 설법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승호는 용왕의 청에 따라 바다에 들어가서 용자(龍子)를 위해 『사아함경(四阿含經)』을 강론하여 주었다.
상선에 돌아올 때 용왕의 부자는 승호를 상선까지 호송하여 대륙까지 같이 왔다. 거의 해안에 도착할 때 승호는 5백 상인들과 헤어져 홀로 지옥속의 갖가지 모습들을 보았다. 그런 후 승호는 5백 신선이 있는 곳에 와서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그 고난에서 구해내었다.
승호는 여래가 계신 곳에 돌아와서 여래께 보고들은 것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여래께서 가르쳐준대로 인연지도(因緣之道)를 설명해 주었으며 좋은 과위를 얻으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했다. 승호는 석존의 교리를 명심하고 널리 중생들에게 해설해 주었다.
30. 가나제파존자(迦那提婆尊者)
제파보살이라고도 한다. 남천축집사자국(南天竺執師子國)인이다.
성은 비사라(毘舍羅)이다, 제파의 뜻은 하늘이며 가나의 뜻은 편목(片目) 곧 한쪽 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신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사당에 들어가 대자재천신상(大自在天神像)의 왼 눈에 구멍을 뚫고 밤이 되자 자기의 왼 눈을 뽑아 신상의 눈에 메웠다. 신은 크게 경복하여 그를 사사용수(師事龍樹)에게 가라고 일러 주었다. 용수는 그가 오는 것을 알고 물 한 그릇을 떠놓았는데 제파는 바늘을 던지고 물에 들어 갔다. 용수는 감탄하여 “물이 가득한 그릇에 바늘을 던지고 그걸 쫓아서 그 밑까지 가니 비상한 사람이다.”하고 말했다. 그와 친숙하여 정법안장을 그에게 넘겨줌으로 제파가 서천 28선조의 제15대 선조가 되었다.
제파는 사방으로 다니며 불법을 교화하였는데 바라국에 이르러 라후라다를 만나 제자로 받아들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석존이 열반전에 일찍이 라후라다를 제2기 5백년 대주교가 된다고 예언하였다.
당시 남인도에서 외도가 성행하여 제파는 외도를 규탄하고 불법을 지켰다 그는 숙위사(宿衛士)로서 남천축국왕을 감화시키고 불법을 믿게 하였으며 변론으로 상대를 이겨서 그들도 머리를 깎고 귀의하게 했다 한다.
후에 그는 라후라다에게 정법안장을 넘겨주면서 “본래 법을 전하는 사람은 해탈의 도리를 설법한다. 법은 실로 증거가 없고 끝이 없으며 또한 시작도 없다.”라고 하고 8가지의 빛을 뿜으면서 열반에 들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제자들이 탑을 만들어 그를 공양하였다
31. 파사신통존자(破邪神通尊者)
그는 사론(邪論)을 파하여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존자께서는 논법에 대해 투철하게 관통하였으며 학풍이 순박하고 계행(戒行)은 엄격하나 마음은 자비하였다.
당시 마라파국에서는 대만파라문(大慢婆羅門)이 한 명 있었는데 모든 책을 읽고 밤을 세워 각종 종교이론을 연구하며 그의 제자는 수천이 되었고 본국 국왕의 존경을 받았다. 백성들도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대만파라문이 불교를 비방하고 불교교주 석가모니의 조각상을 모욕하였다.발타라루지존자는 이 말을 듣고 먼길을 지나 대만파라문을 찾아가서 옳고 그름을 변론하였다.
마라파국왕은 논의를 중재하였는데 발타라루지는 사리에 맞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막힘없이 변론하였다 대만파라문의 어조는 높았으나 도리가 맞지 않아서 패배하였다고 한다.
국법에 의하면 변론에서 패배한 자는 머리를 잘리워야 하나 존자는 그 자비심으로 국왕에게 그 죄를 면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국왕은 죽음을 면해주었으나 명령을 내려 파라문이 당나귀를 타고 성을 돌게 하였으며 그의 패배를 인정하게 하였다. 파라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그 화로 토하였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 11의 기록에 의하면 존자가 파라문이 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서 위로하여 주었으나 파라문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소리내어 발타라루지를 욕하고 대승불교를 비방하였다. 이때 하늘과 땅이 분노하여 대지가 갈라지면서 대만파라문은 땅굴로 빠져 18층 지옥의 불에 떨어졌다.
32. 견지삼자존자 (堅持三字尊者)
삼자(三字)는 ‘아미타(阿彌陀)’인데 그 뜻은 ‘무량수(无量壽)’이다.
중국 정토종의 『무량수경』과 『아미타경』등에 의하면 아미타불이라는 명칭이 있는데 능히 정토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견지삼자존자는 정토종 시조(始祖)인 혜원(慧遠)을 말한다. 혜원은 진나라의 스님이며 속성은 ‘가(賈)’이고 안문루번(雁門樓煩)인이다.
처음에는 유가경전을 연마하였는데 21세에 출가하여 저명한 승려인 도안(道安)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승불교의 깊은 경지를 깨달았다.
당시 양명(襄明)에서 병란이 발생하여 혜원은 작별하고 멀리 인도에 가려고 하였다. 려산까지 갔는데 이곳의 맑고 고요한 풍경을 즐겨 여기에 거주하였다.
서림사의 동문승인 혜영권척사환(慧永勸刺史桓)은 동림사를 세워 혜원을 거주하게 하였다. 혜원과 123명의 스님들은 백련사(白蓮社)를 맺고 무량수불상을 세워 새로운 불교운동을 했으며 미타정토법문(彌陀淨土法門)을 창도하여 『법성론(法性論)』등의 저작을 지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혜원은 동림사에서 30여년을 거주하였는데 영산(影山)을 나오지 않고 손님을 전송해도 범골짜기(虎溪)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있는 곳까지만 전송했다고 한다. 원적(圓寂)시 나이가 83세였다.
33. 아면루타존자(阿免樓馱尊者)
아나율(阿那律), 아니율타(阿泥律馱), 아루타(阿樓馱)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무엇이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가세존의 유명한 10대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성은 석가씨이고 감로반왕의 아들이며 석가세존의 사촌 남동생 중 한사람이다.
불전의 기록에 의하면 이전에 그는 밥 한끼를 벽지불(辟支佛)에게 준 적이 있는데 이후에 50번 천상과 인간세상의 극진한 쾌락을 누리고 현재 감로반왕의 아들로 출생하여, 석가회상에서 도를 닦고 부처가 되신 후로 출가하여 불법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출가한 초기에는 여전히 세속의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많이 자고 늦게 일어나서 석존으로부터 훈도를 받았다. 훈계를 들은 후 일곱 주야를 자지 않고 정진하여 득도하여 한동안 실명을 하였다. 그후 그는 꾸준히 노력하여 시종 석존의 신변을 따라다녔고 또한 천안의 신통을 지녀 제1천안이라 불리웠고, 세상과 중생들의 생사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석가세존께서 적멸한 후 아면루타는 여러 제자들에게 슬픔을 위로하고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설을 전함에 있어 지극한 마음으로 노력하였으며 또한 석가존자의 금관을 7일 동안 보관하여 여러 천신(天神)들에게 공양하고자 하는 소원을 만족시켰다. 이 7일 동안 여러 천신들이 하늘의 꽃을 들고 허공에서 돌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덕을 크게 찬양하였다.
34.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
구마라다(矩摩羅多), 구마라다(拘摩羅多),구마라타(鳩摩羅多)라고도 하였다.
그 의미는 동수(童受), 동수(童首), 호동(豪童), 동자(童子)이다. 북인도의 달차시라국인이다.
가야사다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정법안장을 넘겨받고 선종존자 서천 28대 선조의 제19대 선조가 되었다. 아육왕이 불교를 진실하게 믿어 궁중에 불탑을 세우고 후에 자기는 궁성의 동북 모퉁이로 이사를 가고 원래의 궁전은 고쳐서 절을 지어 구마라다를 모셨다. 절의 태각(台閣)은 높고 넓었으며 불상이 위엄있어 원근에 널리 알려졌다. 후에 구마라다께서 중천축국(中天竺國)에 왔는데 도야다를 만났다. 도야다는 구마라다가 기묘한 도리를 해석한다는 말을 들었고 지혜를 좇아서 출가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구마라다께서는 그의 머리를 깎아 스님이 되게 하고 정법안장을 주면서 말하기를 법성(法性)은 본래 생멸하지 않고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법은 이미 막힘이 없으므로 유쾌함과 유쾌하지 못함을 어찌 탓하리요”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마라다존자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지혜를 구비하였으며 자라서는 꾸준히 배우고 생각하여 불교의 이치에 정통하였고 수십 부의 저작은 널리 유전되었다. 후에 소승 18부의 경량부(經量部,經部)는 구마라다학설을 종지(宗旨)로 하고, 그를 경부조사(經部祖師)로 존중하였다.
소상(塑像)은 손에 경문을 쓴 대나무 조각을 받쳐 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묵상하는 모습으로 학식이 넓고 깊이 사고하는 고승의 형상이다.
35. 독용귀의존자(毒龍歸依尊者)
소치는 이는 원한을 가지고 신령에게 꽃을 바치며 기도하기를 내세에 용왕으로 변하여 경성을 쳐부수고 국왕 및 관원과 백성들을 살해하겠다고 하였다, 기도 후, 돌에 머리를 부딪쳐 숨이 끊어져 죽었다.
얼마 후 소치는 사람은 큰 용왕으로 다시 태어나서 나게라갈성 남석령의 동굴에 있었는데 용왕이 동굴에서 나와 전생의 원한을 보복하려고 하였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미 멀리 중인도에서 독용의 악의를 알고 성종의 백성들의 재난을 불쌍히 여기고 신통력으로 동굴 앞에 왔다.
용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인하여 악독한 마음이 없어졌다. 이로부터 구파라는 불교에 귀의하여 불계를 받고 살생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석존께서 다시 신통력으로 자기의 그림자를 동굴의 석벽에 남겨놓고 구파라에게 “나의 그림자는 자비의 신력이 있어 네가 분노와 독심이 생겨날 때 이 그림자를 바라보면 자연히 소실될 것이다.”하고 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석벽의 불영(佛影)이 불교의 성지가 되고 구파라는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고 한다.
36. 동성계수존자(同聲稽首尊者)
계수는 범어로 반탄남으로 경례를 한다’ 예의인사’귀명(歸命)등의 뜻이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경례를 한다는 의미이다.
동성계수존자는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혹 세가지 업으로 죄가 생겨나고, 혹 육근(六根)을 따라서 허물이 일어나고, 혹 마음에서 스스로 사악한 마음이 일어나며, 혹 밖에서부터 더러움이 일어나므로 죄과가 많아 철저히 참회하려고 결심하고 삼보를 높이고 널리 복전을 심어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에 불호(佛號)를 읊으며 신작계수(身作稽首)하여 마침내 그 많은 죄를 없애고 나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권 1소(所)에서 말한 것처럼 부처의 깨끗함은 자비의 빛이 무궁한 것이며 이로써 계수가 세존께 귀의하였다.고 하였다
37. 비라지자존자(毘羅지子尊者)
이런 연고로 그 모친의 이름을 불렀다. 존자는 알기를 세상 중생의 일체 고락은 모두 과거 지난 세상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응보이며 만약 세상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지 않거나,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난 미래에는 고락의 구별이 없으며 지금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여 다시태어나면 미래에는 다시 고난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의 기록에 의하면 산도야는 이르기를 해탈의 방법이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우며 과거에 악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과(苦果)의 응보를 받으면 되고 8만개의 고과를 다 받으면 자연히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고행을 주장하였으며 고행은 마치 실 구슬을 높은 산꼭대기에서 돌리면서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그 실 구슬이 끝에 닿으면 돌지 않고 자연히 정지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불교신자들은 지혜의 방법을 통하여 해탈을 얻고자 하였으며 비라지자존자 역시 고행은 심신에 무익하다고 생각하고 고행을 외도라고 하였다.
38. 벌소밀다존자(伐蘇蜜多尊者)
북천축국인이다. 성은 파라타(頗羅墯)이다. 늘 깨끗한 의복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술그릇을 들고 거리에서 빈둥거리며 휘파람 소리를 내고 제멋대로 다녔다.
서천 28대 선조의 제6대 선조 미차가(彌遮迦)가 이곳까지 불법을 포교하러 왔을 때 벌소밀다는 술그릇을 들고 그 앞으로 나아가,“스승은 어디서 오십니까? 어디로가실 생각입니까?”하고 물으니 미차가는 “마음에서 오고 아무곳도 갈 생각이 없다.”고 하니 벌소밀다는 또 묻기를 “스승은 나를 아시오? 모르시오?”하여 “내가 알지 못하고 알면 내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미차가는 벌소밀다에게 이르기를 “나의 스승 제다가는 말하기를 ‘세존께서 일찍이 북인도에서 왔는데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이 나라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멸한 후 300년이면 한 성인이 있을 것인데 성은 파라다고 이름은 파수밀이며 선종선조의 제7위를 가진다.’고 했으니 세존은 너를 기억하므로 응당 출가하여야 한다.”고 했다. 벌소밀다존자는 그리하여 술그릇을 집어던지고 출가하여 사처에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며 불법을 선전하였다.
가마라국에 왔을 때 불타난제를 만나 머리를 깎고 출가시키고 법장을 그에게 넘겨주고 말한 구절이 “마음은 허공과 같고, 이것 역시 허공의 법과 같으며, 허공을 깨달으면 법에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하였다. 말을 마치면서 여러 스님들이 예를 갖추었다.
벌소밀다는 “내가 법을 얻는 것은 무슨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며 만일 불지를 알면 연고가 없었을 것이다.”고 하고 다시 삼매에 이르러 열반상이 되었다.
불타난제는 본 좌석에서 7번째 보탑에 전신을 묻었다.
39. 도제수나존자 (闍提首那尊者)
도제수나는 삼미차(三彌叉)를 편찬하여 이론의 근거로 삼았다, 삼미차의 뜻은 관찰(觀察)이고 또 25체(諦) 수련에 의하여 지혜를 얻었다.
열반경(涅槃經) 권39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존자와 도제수나는 25체와 불법의 우열을 변론하였는데 도제수나는 도리에 굴복하여 불법의 넓고 깊은 것을 두려워하여 순종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후에 귀 기울여 불(佛)의 교시를 듣고 나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40. 승법야사존자(僧法耶舍尊者)
한편 다른 기록에는 18대 선조가 승구야사라고도 한다.
마하지관(摩河止觀) 권 제1에서 법을 라후라에게 주었으나 라후나는 귀명서(鬼名書)를 알고 외도를 굴복했으며, 법을 승구난제에게 전하였으나 승구난제는 불경의 노래가사를 읊고 나한을 시험했다.
법은 승구야사에게 전하였으며 승구야사는 해견성(海見城)에서 다니면서 불경의 노래가사를 불렀는데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권 1중 하나에는 법은 승구야사에게 물려주었고 승구야사께서는 바다에 성이 하나 있는 것을 보며 먹을 것을 구하여 이르기를 “다니는 것이 제일 고생스럽고 주린 것이 첫 번째 병이며 만약 능히 법이 있음을 볼 수 있으면 열반에 이르는 길을 곧 얻는다,”라고 말하자 성의 주인이 음식을 대접하였다.
두 귀신을 보았으므로 이전에 며느리가 인색하고 탐하여 내가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가 응보를 받는 것을 본다 라고 하였다. 다시 한 성을 보니 음식을 차리고 먹은 후 그 그릇을 서로 던지니 불이 일어나 그 몸을 태웠다. 손님에게 음식을 아끼는 까닭에 이러한 고통에 이르렀다.
승구야사는 사처에 다니면서 불법의 고승을 홍포한 분이다.
41. 비찰세간존자(悲察世間尊者)
그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미륵이 나타나기 전까지 세상의 질고(疾苦)를 구하였다. 불교경전 『지장보살본원공덕경(地藏菩薩本源功德經)․속루인천품(屬累人天品)』에 의하면 불교선조께서 차디구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지금 도리천(刀利天)에서 백 천 만억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체 불교천룡 8부 대회에 참예하였다. 세상의 중생들은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하여 내가 그들을 너에게 맡기니 그들로 하여금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며, 만일 한순간이라도 지옥에 빠지면 나는 참을 수 없도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지장보살께서는 보도6도중생(普度六道衆生)이 극락세계에 도달한 후에야 부처가 되기를 원한다고 맹세하였다.
지장보살께서는 매일 아침 태양이 솟아오를 때면 항하사(恒河沙)선정의 수행을 하고 선정하는 가운데 시방(十方) 여러 불국을 관찰하여 일체 중생을 인도하고 그들을 고난 중에서 구출해 내며 그들의 염원을 만족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평안과 즐거움을 얻게 했다.
42. 헌화제기존자(獻花提記尊者)
덕을 행한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헌화, 즉 헌화좌인(獻花座印)이라 한다. 립인궤(立引軌)에 의하면 이러한 수인(手印)은 “명금강연화(名金剛蓮花)와 정혜부용(定慧芙蓉)이 합하여 수(水)․화(火)중에 흩어져서 마치 연꽃잎과 같은데, 세상의 풍조와 번뇌에 가까이 머무르며, 여러 불보살들을 섬기고 있었다.”를 뜻하며, 제기(提起), 즉 수기(授記)이며 또 중생들이 부처님께 마음을 모아 장래에 불성을 찾고 성불하기를 반드시 따로 기억해야 할 것을 말한다.
헌화제기존자께서는 불법의 신앙이 견정하였으며 매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헌화좌인의 언례(言禮)로 여러 불보살들에게 경의를 표시하였고 그 공덕으로 부처님으로 하여금 수기(授記)를 받아서 후에 부처님이 되었다.
43. 안광정력존자(眼光定力尊者)
이 존자는 눈빛이 번쩍이며 시방(十方)세계를 다 내다보았으며 그 눈빛이 닿는 곳마다 우매한 자에게 지혜가 생기고, 어리석은 자는 총명하게 되고, 세속의 근심걱정을 없애며, 번뇌와 분노 등 각종 난잡한 생각을 제거하여 선량한 중생들로 하여금 조용하고 깨끗하게 복과 덕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안관정력존자께서는 무릇 살아있는 존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또한 능히 세상의 사악(邪惡)을 제거하여 그 번쩍이는 눈으로 악마를 처 없애며 악귀를 굴복시키고 외도를 귀의하게 하였다. 그리고 악의 흔적이 뚜렷한 자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기며 크게 참회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철저히 깨우치게 하였다.
44. 가야사나존자(伽耶舍那尊者)
혹 가야사다라고도 하였다. 마제국인(摩堤國人)이며 성은 욱두란(郁頭蘭)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모친은 큰신(大神)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 꿈을 꾸고 임신한 후 7일 만에 신체는 유리알 같이 맑고 투명하였으며 저절로 향기롭고 깨끗하였다고 한다.
서천(西天) 28대 선조의 제17대 선조 승가난제는 여러 중들과 함께 이곳에 당도하였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의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하므로 승가난제는 “이 길에 덕스러운 바람이 있다. 성자(聖子)가 세상에 와서 석존의 교리를 계승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여 중생들은 산골짜기에서 찾기 시작했는데 손에 둥근 거울을 쥔 가야사다를 발견했다.
출가 후 한번은 바람결의 구리종 소리에 승가난제가 “종소리가 울린 건가? 바람소리가 들린 건가?” 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바람소리도 종소리도 아니고 내 마음의 귀가 울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마음은 또한 누구냐?”하고 물으니 “다 고요하고 적막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여 승가난제는 정법안장을 그에게 주었다,
가야사다는 또 많은 중들을 거느리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후에 구마라다를 만나서 석가세존의 예언이 헌화지인을 계승하라는 것을 알고 법장을 그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씨앗이 있으면 마음의 밭에 있으며, 인연이 있으면 능히 발명하고, 인(因)과 연(緣)이 서로 막히지 않으면 마땅히 윤회를 벗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나자 몸이 솟구쳐 허공에서 18가지 신 으로 변하면서 화광삼매(火光三昧)로 자신의 몸을 태웠다.
스님들은 사리탑을 세워 모시었다.
45. 사저필추존자(莎底苾芻尊者)
사저(莎底)는 뜻을 번역하면 길하고 상스럽다는 뜻이다.
필추(苾芻)는 비구를 뜻한다. 석가모니께서 사위국지수의 고독원에 있을 때 새로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비구 사디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원내에서 여러 스님들에게 물을 끓여 목욕하게 하였다.
『불설대금색공작왕주경(佛說大金色孔雀王咒經)』에 의하면 길상이 나무를 패고 있는데 검고 큰 뱀 한 마리가 썩은 나무구멍에서 불쑥 튀어나와 길상비구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물었다. 그러자 뱀독이 혈맥을 따라 전신사지에 놀라서 급히 석가 부처님께 살린 방법을 구하러 갔다. 아난은 이마를 땅에 대고 인사하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대공작왕주가 있는데 그 위력이 커서 일체 모든 독, 재난, 공포, 번뇌를 없애며 세상의 일체 정이 있는 중생들을 보호하고 안락을 누리게 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아난이 주문을 받아 법에 따라 길상을 구하고 치료하였으며, 길상은 살아나서 발심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불도를 닦아 마침내 정과(正果)를 얻었다
46. 파도제파존자(波도提婆尊者)
파속습박 혹은 파사이라고도 하며 본명은 난생인데 옆 비구 또는 옆 보살이라 통칭하였다.
중인도인이다. 불교전설에 의하면 파도제파는 모친의 태속에서 60년이나 있었다. 탄생 시에 그 부친이 꿈에 코끼리 등에 보좌(寶座)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명주(明珠)가 하나 있었는데 문으로 들어와 사방의 중들을 비추어서 깨어나 보니 파도제파가 막 출생하였다 한다.
서천(西天) 제28대 선조의 제9대 선조 복타밀다가 이곳에 왔을때 그의 부친은 그를 데리고 와서 사례를 하며 “이 자식은 태속에서 60살을 먹었는데 본명이 난생이고 일찍이 한 선자(仙者)가 이 아이는 비범함으로 법기(法器)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존자를 만나 출가를 시키려 합니다.”하고 말했다.
부라밀다는 즉시 파도제파의 머리를 깎여서 중이 되게 하였다. 파도제파는 스승을 따라 수행하였는데 수안을 취하지 않고 옆에 자리가 없어서 이름을 옆존자라고 불렀다.
파도제파는 신도들을 거느리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화씨국까지 와서 나무 밑에 잠시 휴식하였는데 그는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이 황금색으로 변하면 성인이 입회할 것이다.”고 했는데 과연 황금색으로 변하였고 부나야사가 와서 파도제파는 즉시 그를 머리 깎여 출가시키고 정법안장을 주면서 말하기를 “진체(眞體)는 스스로 진실하며 진실을 말하기에 도리가 있다. 참으로 진실한 법을 얻으려면 끝이 없다.”라고 하며 신으로 변하여 열반에 들어가고 그 불로 자신을 태웠는데 많은 신도들이 각각 저고리에 사리를 담아 그 곳에 탑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북에서 전해진 불교기재에 의하면 파도제파께서는 가니색가(伽尼色迦)왕 때 일찍이 오백명의 중들과 함께 가습미라에서 제4차 불경결집(結集)을 거행하였다 한다.
47. 해공무구존자(解空无垢尊者)
존자의 이름은 무구광보살 혹은 무구광동자라고 하며 밀칭(蜜稱)은 리진금강(璃塵金剛)이다.
태장계문수원(胎藏界文殊院)에 계셨으며 문수보살의 사자(使者)였다. 문수보살은 8명의 대동자(大童子)와 함께 하였는데 여러 동자들은 각각 문수보살의 한 가지 품행을 모두 구비하였다. 무구광동자는 문수보살의 공지(空智)를 나타냈으며 몸에 먼지가 전혀 묻지 않고 빛을 뿌렸다.
문수보살은 일체 불(佛)의 지혜와 덕이 동시에 무상(无相) 지혜삼매에 이르며 이 지혜삼매의 증익의 지혜는 문수보살이 소유한 특이한 것이며 따라서 문수가 여러 보살 중에서 지혜가 제일이라 불리었다.
무구광보살은 문수보살의 공지(空智)사자로서 문수의 특이한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끊어버리고 과거, 미래, 현재의 현명한 길과 법의 명문에 들어서게 인도하였다.
48. 복타밀다존자(伏陀蜜多尊者)
복대밀다(伏帶蜜多)라고도 한다. 제가국(堤伽國)사람이다.
성은 비사라이다. 불교전설에 의하면 복타밀다는 50년이 되도록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했는데 서천(西天) 28대 선조의 제8대 선조 불타난제(佛佗難提)가 신도들을 거느리고 걸어서 이곳까지 왔는데 그 집 위에 흰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집에 성인이 있는데 입으로 말하지 못하나 참으로 큰 그릇이고 큰길로 행하지 못하나 더러움을 접촉하여 알지 못함이다.”라고 했다.
복타밀다가 불타난제를 보고 일어나서 예배를 할 때 불타난제가 말하기를 “부모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누가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인가? 일체제불이 나의 도가 아니면 누가 최고의 도가 되겠는가?”라 하였다, 복타밀다가 이 말을 들은 후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
불타난제는 그의 부친에게 “이집 아들이 일찍부터 불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소원 또한 컸으나 부모의 애정이 끊어지는 것을 근심하여 말하지 않았으므로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부친은 아들더러 출가하라고 하여 불타난제는 그에게 정법안장을 넘겨주었다.
복타밀다께서는 부탁을 받고 두루 사방으로 다녔고 중인도까지 가서 옆 존자를 만나 머리를 깎이고 계율을 받게 하였으며 후에 정법안장을 주면서 말하기를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는데 이름이 진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진실 법을 얻으려면 참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은 향유와 향단 목 그릇으로 사리를 거두어 사찰을 세웠는데 나란타 절이었다.
49. 부나야사존자(富那夜舍尊者)
불교가 법장을 준 제11대 선조이다.
고인도 화씨국인이며 성은 구단이고 그 부친은 보신(寶身)이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불교를 신봉하였다. 부나야사는 부처의 영향을 받아 불교이론과 각종 계율에 익숙하였다.
어느 날 불교 제10대 선조 옆 존자가 처음 화씨국에 왔을 때 제자와 같이 한 나무 밑에서 휴식하는데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여러 제자들에게 “이 땅이 황금색으로 변하면 이곳에서 한 성인이 우리 승단에 가입함을 예시한다.”고 하자 땅이 즉시 황금색으로 변하였는데 부나야사는 합장하고 옆 존자에게 말하기를 “내 마음이 존자에게 가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여 내 마음이 안정하지 못하니 여러 부처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존자는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부나야사를 머리 깎여 출가시켰으며 가지고 다니던 법기(法器)를 부나야사에게 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본래 대법장인데 오늘 내가 너에게 넘겨주니 네가 성심으로 애호하고 꾸준히 염불을 외워 신중히 후대들에게 넘겨야 한다.”라고 했다. 법을 전수한 후 옆존자는 불로 자기 몸을 태워 부나야사가 불교 제11대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 후에 부나는 법장을 마명존자에게 넘겨주었다
50. 가야천안존자(伽耶天眼尊者)
덕을 행하고 신통(神通)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불교는 눈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육안(肉眼)으로 맨눈으로 모든 것을 봄을 일컫고, 둘째는 2천안(二天眼)인데 색계(色界) 천인(天人)이 소유한 눈이다, 사람들 중 선정한 사람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능히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혜안(慧眼)인데 2승지인(二乘之人)이다. 진공(眞空)을 비추는 무상지리(无相之理)의 지혜이다. 넷째는 법안(法眼)인데 일체법문의 지혜를 비춘다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불안(佛眼)인데 불타가 구비한 앞의 네 눈을 모두 가진 자이다.
가야존자는 선정의 수지(修持)를 통하여 천안(天眼)을 얻어 한소식을 들은 분이시다.「지도론(智度論)」권5에 따르면 “천안은 땅으로부터 지하 6도(六道)중의 모든 물건, 가깝고도 길며 굵고도 약한 모든 색을 비추지 않는게 없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가야존자는 능히 어느 시기나 어떤 물체든지 비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중생들의 생사윤회(生死輪廻)도 알고 있었다.
51. 부저세간존자(不著世間尊者)
존자의 이름은 허공무변유보금강(虛空无邊游步金剛)이다.
세상의 여러 부처님들은 장기간 수행으로 공덕을 쌓아 공덕이 가득해야 부처님이 되신다, 여러 부처님들도 처음에는 무수한 마음의 장애와 번뇌가 있는데 그분들은 강한 지혜로 번뇌를 제거하고 정각(正覺)과 도를 닦아 불(佛)의 과위를 이루었으며 여러 부처님들은 본래 각종 번뇌에서 용건보제심(勇健菩提心)으로 변하였다. 허공무변유보금강께서도 여러 부처의 용건보제심으로 변하였으므로 노하고 두려운 상(相)으로 나타냈다.
이 존자께서는 위엄과 지혜로써 일체의 굴복시키기 어려운 사악을 굴복시키고 호통소리에 삼천대천세계가 진동하였으며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면 귀신들도 두려워하여 종적을 삼추고 악마처럼 잔인한 사람들도 허리를 굽혀 굴복하였다.
존자의 화범은 주로 악한 무리를 쳐부수었으므로 세사의 선량한 중생들은 안락하고 좋은 날을 보내게 하였다.
52. 해공제일존자(解空第一尊者)
본명은 수보제(須菩提), 수부제(須浮帝), 소보저(蘇褓底) 등이며 의미는 번역하면 선현(善現), 선업(善業), 선길(善吉)이며, 공생(空生)이라고도 한다.
고인도 구살라국(拘薩羅國)의 사위성(舍衛城)인이며 파라문의 가문이다.
수보제라는 이름을 얻은 연고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가 출생할 때 집안의 창고, 상자, 그릇들이 모두 비어 좋은 점괘를 받았다는 것이다, 수보제는 불타의 생시에 저명한 10대 제자중 한분이었으며 모든법의 공상(空相)을 이해하여 해공제일이라 불리웠고 불타께서는 그에게 반야지공리(般若之空理)를 설명하게 하였다.
불경의 기록에 의하면 수보제의 공지(空智)는 어디나 밝아 석실(石室)에서도 불타의 법신(法身)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조론(肇論)』의 해설에는 『대품반야(垈品般若)』에서 『천주품(天主品)』이래 수보제는 환상으로서 반야의 무설무청(无說无聽)의 깊은 도리를 설명하였다. 수보제의 소상은 몸에 두봉(斗蓬)을 쓰고 발에는 짚신을 신고 구름처럼 사방에 떠다니며 반야공리를 강의하는 정경을 표현하였다.
53. 라도무진존자(羅度无盡尊者)
이름은 아차말저(阿差末底)라고 하며 그 의미는 끝이 없다는 말이다.
별호는 정혜금강(定慧金剛), 무진금강(无盡金剛)으로서 보살의 과위를 이루었고 현겁(賢劫) 16존자의 한분이며 동방불현국(東方不賢國)에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장엄당(寶庄嚴堂)에서 여러 보살 및 제자들에게 『대집경(大集經)』을 강의하였는데 무진의보살(无盡意菩薩)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경을 들었다. 무진의께서는 비록 보살의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불교이론에 탁월하였는데 그 내용은 문자로 기록되어 『무진의보살경』이라 불렸다.
이 경의 주요내용은 세속의 은혜와 원한을 버리고 넓고 조용한 경계에 들어가며 세속의 조작(造作)을 버리고 불교의 무위(無爲)에 따라서 열반을 구한다. 무진의 법문은 광덕무량하고 중생의 이익을 보호하고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여 온갖 더러움에서 이끌어 내었다.
54. 금강마파존자(金剛魔破尊者)
덕행법력(德行法力)으로 이름을 떨쳤다.
금강은 『삼장법수(三藏法數)』 권 5에서 이르기를 “금(金)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다.”라고 했고, 『대장법수(大藏法數)』 권41에서는 “범어로 발절라(跋折羅)이고 중국어로 금강인데, 이 보물은 금속에서 나오며 색은 자주색이고 백번을 제련해도 녹지 않으며 견고하고 예리하다.”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늘 단단하고 예리한 것을 비유해서 일체를 쳐부술 수 있는 지혜를 가리킨다. 즉 네 가지 마귀를 쳐부순다고 하는데 첫째는 번뇌마귀로 탐하고 화를 내고 불만을 품어 이 번뇌로는 심신을 손상시킨다하여 마귀라 하였다. 두 번째는 5중마귀(五衆魔鬼)로 색(色), 수(受), 상(想), 행(行),식(識)의 다섯 가지 온(蘊)은 여러 가지 고뇌를 일으키므로 마귀라고 이름하였다. 넷째는 스스로 천마(天魔)로 변하여 욕계 제6천의 마왕이 되어 사람의 선한 일을 해하는 일을 한다고 하여 마귀라고 하였다.
금강마파존자께서는 장기간 고행으로 심성과 지혜가 금강처럼 견고하고 네 가지 귀신이 침입하지 못했으며 마귀의 근원이 단절되었다.
55. 원호세간존자(愿護世間尊者)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중의 한분이다.
불교는 큰 세계 내에 포함된 무수한 작은 세계가 마치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것으로 보고 각각의 작은 세계에는 한 부처님이 주재하신다고 인식하였다. 각각의 작은 세계는 모두 수미산을 중심으로 네 주위는 바다이며 바다의 사면에는 각각 땅이 있는데, 동쪽은 동승신주(東勝身洲), 남쪽은 남섬부주(南贍部洲), 북쪽은 북구라주(北俱羅洲), 서쪽은 서우하주(西牛賀洲)라고 하였다.
수미산의 허리에 또 산이 있었는데 이름은 건타라이다. 건타라에는 네 개의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각 산봉우리에는 호세천왕이 머무르고 있었으며 각 왕은 각 28부의 한 쪽을 지키고 있었다. 만일 흉악한 악귀들의 위협을 받는 세상의 중생들이 있으면 천왕은 신병들을 거느리고 나가서 중생들을 보호하며 그들로 하여금 박해를 받지 않게 하였다.
56. 무우선정존자(无憂禪定尊者)
덕행하여 이름을 얻었다.
걱정이 없으며 근심, 걱정, 번뇌를 없앤다고 하였다. 인생은 때때로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으로 근심, 걱정, 번뇌가 생겨난다, 선정(禪定)은 즉 한곳에 머물러 망념을 털어낸다는 것이다.
불교는 네 가지 선정이 있는데 4선정이라고 한다, 초선정은 욕계의 악과선하지 아니한 법을 살피며, 둘째 선정부터는 찾고 살피는 것을 끊어버리고 내등정(內等淨)에 도달하며 정생희락(定生喜樂)을 얻는다.
정생희락은 선정하는 자신의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두 번째의 희락도 버리고 고생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행사경계(行舍境界)에 거하고 정념정여(正念正如)를 이루고 희(喜)를 떠난 묘한 낙(樂)을 생산한다는 것이며 네 번째는 선정이 청정(淸淨)을 버리고 다만 공덕을 수양함으로써 고생하지고 않고 낙도 누리지 않는 경계에 산다. 무우선정존자께서는 차례대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선정수행을 통하여 철저히 모든 걱정과 번뇌를 버리고 불고불락(不苦不樂)으로써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57. 무작혜선존자(无作慧善尊者)
신무작(身无作)은 인간세상의 일체생명을 애호해야 하며 무릇 생명에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죄악이다, 구무작(口无作)은 타인을 더럽히고 모해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심무작(心无作)은 마음이 깨끗하여 재물 및 감정의 그리움을 제거하고 타인에 대한 원망을 없애며 또 내키지 않는 일로 분노를 자아내지 못하게 한다, 신(身),구(口),심(心)으로 무작을 통하여 일체의 허물을 고치고 옳은 길로 나아가면 내세에서 고과(苦果)의 보응이 없을 것이다.
『대방광보살장문수리사근본의궤경(大方廣菩薩藏文殊利師根本儀軌經)』 권1에 무작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불교로써 무작(无作), 무용(无用), 무수(无受),무혜(无慧)의 규범으로 중생을 교화하여 한량없는 공덕사업을 했다.
무작혜선존자는 바로 무작보살이다.
58. 십겁혜선존자(拾劫慧善尊者)
겁(劫)은 아주 멀고 오랜 시간을 뜻하는데 『지도론(智度論)』 권5에서 말하기를 “40리 석산에 장 수인(長壽人)이 있었는데 매 백세가 돌아오면 비단옷으로 이 큰 돌의 먼지를 모두 털고 닦아도 이 긴 시간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며 또 40리 큰성에 겨자가 가득한 곳에 장수인이 있었는데 매 백세가 돌아오면 겨자씨를 하나씩 다 따고 이 긴 시간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였다.
‘혜(慧)’는 사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의심이 일어나는 마음을 결단하는 것이다 『구사론(俱舍論)』 권4에서 말하기를 “혜(慧)는 법을 가림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대승의장(大乘義章)』 권20에서 말하기를 “진심은 밝고 자성(自性)은 어둡지 않으니 눈은 혜안이다.”라고 하였다.
선은 악에 대하여 상대되고 『대승의장』 권12에서 말하기를 “사리에 순응하면 선하다고 하고 사리에 어긋나면 악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십겁혜선존자는 스스로 노력하여 쉬지 않고 정진하여 그 경력이 십겁이나 되며 지혜와 선이 나날이 증가하여 마지막에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59. 전단덕향존자(전檀德香尊者)
불교는 고난에 처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대덕으로 삼는다.
불교경전 『관허공장보살경(觀虛空藏菩薩經)』의 기록에 전단덕불이 계셨는데 그 덕의 향기가 마치 연꽃의 깨끗한 향기와 같다고 하여 그 이름을 전단덕향불이라 하였다.
전단덕불주는 세상의 일체 고난에 처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만약 몸에 각종 질병이 있어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전단덕불께 아뢰면 약을 먹여 질병을 신속하게 고쳤다.
세상 사람들이 만약 초인적인 지혜를 얻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손재간이 뛰어나기를 바라거나, 자녀가 건강하기를 원하거나, 타인에 대해 공덕을 쌓고자 하거나, 절에 희사하기를 원하거나, 악의가 없이 재산을 더하려고 하거나, 건강장수하려고 하거나, 가정이 원만해지고자 원한다면 오직 두손을 합십(合十)하여 성심성의로 전단덕불께 예불을 올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60. 금산각의존자(金山覺意尊者)
불타의 제자이다.
불교의 경전중에 불타께서 금산왕이라 불리웠는데 그 뜻은 금산중의 승묘자(勝妙者)라는 의미이다. 『왕생요집(往生要集)』에서 이르기를 “멀리서 미타(彌陀)를 바라봄이 금산왕과 같다”고 하였다. 어떤 경우 직접 금산을 불신(佛身)으로 비유하였는데 『법화경서품』에 이르기를 “몸의 색이 금산과 같이 단정하고 위엄 있으며 심히 기묘하였다.”고 하였다.
금산각의존자께서는 늘 불타의 신변에서 설법을 들었는데 크게 깨달아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61. 무업숙진존자(无業宿盡尊者)
당대(唐代)의 저명하고 덕망 높은 선승이었으며 법호(法號)는 무업(无業)이라 하였다.
상락(上洛)인이며 속성은 두(杜)가이다. 어렸을 때 출가하여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며 아주 빨리 화엄, 법화 등 여러 경전을 읽었고 13세에는 중생들에게 경을 설법하여 세상에서 신동이라 불리었다.
무업은 성년이 된 후 ‘해내(海內)’라고 영예롭게 불리었는데 존자는 명예를 때 묻은 것으로 보았으며 먼 곳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불도를 추구하여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는 멀리 강을 건너 강남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명승 현소(玄素)를 찾아가 법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운 후에 장안(長安)을 방문하였다. 장안의 많은 스님들은 그 이름을 우러러 받들어서 그를 ‘양가대덕(兩街大德)’승관(僧官)으로 추천하려고 하였는데 무업은 이 일을 듣고 장안을 떠나 북으로 가서 상당(上党)에 이르렀다.
상당절도사 이포진(李抱眞)은 불교의 예의로 그를 대접하였으며 불법을 듣고 마음으로 존경하여 그에게 청하여 이곳의 교무(敎務)를 맡아 줄 것을 부탁할 생각이었으나, 무업은 다시 상당을 떠나 분주(汾洲) 개원사(開元寺)에 거처하였다. 당선종은 일찍이 그를 두 번이나 요청했는데 그는 모두 거절했다.
장경(長慶) 원년(821) 당선종이 예물을 준비하고 초빙하여 사자를 보내자 무업은 더 거절할 수 없음을 알고 세상을 떠날 결정을 한 후 정토(淨土)로 솟아오르며 사자에게 웃으며 이르기를 “됐다 됐어!”라고 하였다. 그날 밤 단정히 앉아서 돌아가셨다.
목종(穆宗)은 무업이 입적(入寂)한 것을 알고 애석함을 금치 못하여 시호를 ‘대달선사(大達禪師)’라고 하였다.
62. 마하찰리존자(摩河刹利尊者)
경찰리현자(經刹利賢者)라고 한다.
『불설무량청정평등각경(佛說无量淸淨平等覺經) 권1의 기록에 의하면 불타석가모니께서는 사위국 왕사성에서 설법을 하실 때 이 존자는 일찍이 참석하여 공손히 들었다. 마하찰리존자께서는 불법에 귀의하고 집에서 꾸준히 도를 닦아 후에 드디어 대아라한이 되었다.
63. 무량본행존자(无量本行尊者)
이 존자는 아미타불의 전세신(前世身)이며 아미타불은 또 무량수불(无量壽佛)이라고 하였다.
보살이 도를 닦아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 방법을 본행(本行)이라고 하였다.
불경『무량수경』에 의하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의 생시에 한 국왕이 불법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국왕의 자리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법호를 법장(法藏)이라 하였다. 세자재왕불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 불법을 널리 선전하고 성심으로 도를 닦아 무상정과(无上正果)를 얻으며 내가 부처가 된 후 고난에 처한 중생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세자재왕불은 깊은 불교의 교리를 널리 설법하였고, 법장은 듣고 크게 깨달아 부처님 앞에서 48가지 원을 세웠다. 실현된 후 즉시 부처님이 되었다.
소원 중에서 18번째는 만약 부처의 과위를 이루면 세계 시방중생들이 모두 진정한 즐거움을 얻게 하며 출생하여 나의 불국(佛國)에 오기가 쉬우니 다섯 가지 역죄(逆罪)를 범한 사람과 불법을 비방한 사람 외에는 모두 나의 불국에 와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였다.
법장의 서원은 천지를 감동시켰고 천공에서 그를 위하여 무수한 꽃송이가 떨어졌다,. 무수한 윤회를 거듭하였고 법장의 서원이 완성되어 멀리 서방에서 부처님이 되었으며 그 이름을 무량수불이라 하였다.
64. 일념해공존자(一念解空尊者)
송대 고승인 해공존자이다.
해공존자의 이름이 훌륭하여 출가후 차계택경선사(車溪擇卿禪師)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후에 호주(湖洲)에서 혜각법사를 만나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글을 읽어 ‘세상의 문자언어가 모두 껍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송(宋)나라 고종 8년에 호덕장원(湖德藏院)을 지냈고 효종건도(孝宗乾道) 7년 가을에 요청에 응하여 선천태사(禪天台寺)로 옮겼는데 9월9일에 절로 들어가 법좌(法座)를 가리켜 이르기를 “가슴속의 한치의 재는 이미 차가워지고 머리 위의 천 가닥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노보(老步)로 평지를 가는 것이 적합하니 무슨 일인들 또 좋고 높이 올라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청중들은 누구나 기꺼이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89세에 연경조정(延慶祖庭)으로 이사를 갔으나 두해를 못 넘기고 호죽암(湖竹菴)으로 돌아와 입적하였는데 세수 91세였다.
스님이 된지는 78년이었다. 분화(焚化)하는 날 바람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았으며 연기가 나는 곳은 모두 사리(舍利)였으며 사람들은 덕장원(德藏院)에 탑을 세워 모셨다.
해공존자는 배우기를 즐기고 깊이 생각하였으며 저작으로는 『능엄보주』4권,『금강통론사원(金剛通論事苑)』』 2권, 『원각수감(圓覺手鑒)』 1권, 『란분보주(蘭盆褓注)』 1권, 『산가의원(山家意苑)』 2권 등이 있었다. 일생동안 선시(禪時)를 많이 지었으며 『중론(中論)』을 송영하기를 “『중론』인연이 법을 낳고 한 구절의 말이면 더할 말이 없다. 내가 이르노니 곧 공가중(空假中)이며 주렴(珠簾)은 서산의 비를 휩쓸어 모은다.”고 하였다.
65. 관신무상존자(觀身无常尊者)
존자는 관음보살의 변화신(變化身)이다.
관세음 대자비는 보현색신삼매(普賢色身三昧)에 들어가 33가지의 변화신으로 나타나며 중생들이 고난에 처하였을 때 그 이름을 외우면 즉시 그에 상응하는 화신이 나타나서 구해준다.
그 33가지의 몸은 불신, 벽지불신, 성문신, 범왕신, 제석신, 자재천신, 대자재천신, 천대장군신, 비사문신, 소왕신, 장자신, 거사신, 재관신, 파라문신, 비구신, 비구니신, 우파니신, 우파색신, 장자부녀신, 거사부녀신, 재관부녀신, 파라문부녀신, 동남신, 동녀신, 천신, 용신, 야차신, 건달파신, 아수라신, 가루라신, 긴나라신, 마후라가신, 집금강신신이다.
66. 천겁비원존자(千劫悲愿尊者)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겁(劫)은 아주 오랜 기간을 나타낸다.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 권하에서 이르기를 “예를 들어 1리 2리에서 10리에 이르는 돌이 있는데 아주 가벼운 천의(天衣)로 삼년에 한번 씩 스쳐서 이 돌이 다 닳는 시간을 소겁(小劫)이라 하며, 또 80리의 돌을 범천의 가벼운 옷으로 삼년에 한번 씩 스쳐서 이 돌이 다 닳는 시간을 중겁(中劫)이라 하고, 800리 돌을 정거천의 가벼운 옷으로 삼년에 한번 씩 스쳐서 이 돌이 다 닳는 시간을 대아승지겁(大阿僧祗劫)이다.”라고 했다. 비원(悲愿)은 불보살이 대자비로 서원을 맹세한 것을 가리킨다.
『유식론(唯識論)』 4권에서 이르기를 “비원은 선심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사람들이 생사의 바다에서 뗏목을 띄우는 것을 ‘비원선((悲愿船)이라고 불렀다.
천겁비원존자는 오래전부터 무상등정각으로 중생들을 동정하여 크게 맹세하기를 천겁지중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배로 중생들을 싣고 고난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게 하겠다고 했다.
67. 구라나함존자(瞿羅那含尊者)
존자의 이름은 구사라(瞿師羅), 구사라(瞿私羅),구사라(瞿史羅)이며 그 뜻은 아름다운 소리이다.
고인도의 교상미국인다. 존자는 과거에 일찍이 한번 태어나서 작은 개가 되었는데 개 짖는 소리에 주인이 비지불에게 음식을 내주었다. 이렇게 선한보답으로 다시 태어날 때마다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다.
구사라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자기 집을 석가세존께 바치고 이 원림을 구사라장자원이라 불렀다.
이 원림 중에 정자를 지어 석가세존 및 그 제자들이 거주하게 함으로 삼보(三寶)로 하여금 안착하고 경동하지 않게 하였다.
고찰한 바에 의하면 이 원림 지역은 지금 인도의 주목나(朱木那 )강변의 가상촌이라 한다.
68. 해공정공존자(解空定空尊者)
길장(吉藏) 『백론소(百論疏)』에 구마라십어(鳩摩羅什語)로 기록하기를 “진인해공의 제일은 승조(僧肇)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승조의성은 장(張)가이고 경조(京兆:지금의 서안)인이며 구마라선문 중의 사철지인(四哲之人)이다. 원래 노장을 숭배하고 믿었는데 『노자』를 읽은 후 감탄하여 말하기를 “노자의 물맛은 은근하고 그 진리는 구수한 것이다.”라고 하고 후에 『유마힐경(維摩詰經)』을 읽고 깨달아 기뻐하면서 그로부터 출가하였다.
구마라선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장(고장: 지금의 무위)에 도착하였다, 구마라선은 장안에 도착하였고 승조 역시 명을 받고 원림에서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경론을 평정하였다.
저작으로는 『반야무지론(般若无知論)』,『불진공론(佛眞空論)』,『물부천론(物不遷論)』,『열반무명론(涅槃无名論)』 등이 있다.
후진홍시(后秦弘始) 16년(진안제의희 10년)에 입적하였는데 나이 31세였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7의 기재에 의하면 승조가 후에 진나라 주요홍에게 살해되었는데 형벌을 받기 직전에 이르기에 “사대원(四大元)주인이 없으니 오음(五陰)이 본래 텅비었다. 머리에 칼날을 대었으나 마치 춘풍을 자르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69. 성취인연존자(成就因緣尊者)
불가에서는 착한 일을 한사람은 착한 보응을 받는다고 하여 성취인연이라고 하였다.
『정법화경(正法華經)』 권4에는 초도인연여래(超度因緣如來) 부처님이 전생에서는 원래 왕태자였다. 불전의 기록에 의하면 과거에 16개국의 왕태자가 모두 총명하고 지혜로왔는데 국왕이 모두 불교를 믿어 여러 태자들도 착한 일을 많이 하였으며 무수한 스님들을 부양하고 세속의 중생들에게 끝없는 착한 업을 쌓았다.
후에 그들은 함께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무상정과(无上正果)를 추구하여 부처님을 만나 불교의 깊고 오묘한 도리를 해석하여 석존의 끝없는 지혜로 해탈의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희망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법안으로 그들의 성실함과 지혜로움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불법을 설법해 주었다. 여러 태자들은 설법을 다 들은 후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하면서 계속하여 조용한 곳에서 정사한정(精思閑定)하여 끝내 해탈을 얻어 보살의 과위를 이루었다.
후에 16태자는 모두 불위를 얻고 각각 세계 8방에 살았는데 그중 초도인연여래는 서방에 거주하면서 중생들에게 법을 전수하여 세상사람 들을 구하였으며 모두 착한 인연이 되었다. 초도인연여래는 성취인연존자가 되었다.
70. 견통정진존자 (堅通精進尊者)
덕행 하여 이름을 떨쳤다. 견고하다는 것은 나무뿌리도 뽑히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며 통(通)한다는 것은 방해함이 없이 자유자재하다는 것을 말한다. 정진(精進)은 근면하고 용맹하게 도를 닦아 악을 마음에서 끊어버리는 작용을 말한다.
『유식론(唯識論)』 권6에서 이르기를 “근면한 것을 정진이라 하며 선악에 대해 수양하여 용맹함을 성품으로 하고 태만함을 다스려 선한 일을 업으로 한다.“고 하였다.
『보행(輔行)』 권2에서 또한 이르기를 “법에 있어 정교하고 정갈함을 정이라하고 생각을 깊이 탐구하는 것을 진이라 한다.“고 하였다. 견통정진존자는 불법에 대해 견정불이한 신앙을 가지고 간고한 고행을 하면서 신행을 행하고 악한 것을 제거하여 끝내 정과를 이루었다.
71. 살타파륜존자 (薩陀波侖尊者)
존자는 생명도 아끼지 않고 명예도 추구하지 않고 열심히 중생들의 유익을 구하였던 출가인 이었다.
하루는 그분이 넓은 수림석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선량한 남자여 지금 당신이 걸어서 동방을 향하여 가면 도중에 자지 못하고 못 먹고 추위와 더위를 참아야 하며 도중에 힘이 쇠약하여 피로와 고통이 따르나 오직 견지하여 나아가면 반드시 한부의『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密經)』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살타파륜은 일어나서 걸었는데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하루가 마치 7일 7야를 걷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고통 중에 참기가 어려울 때 공중에 대고 소리를 질렀는데 천공에서 그에게 이르기를 “당신이 가는 지역은 중향성이라 하는데 거리는 이곳에서 오백유순이고 경전을 주는 이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대덕담무갈보살(大德曇无竭菩薩)이며 이 경전은 고생하는 중생들을 이끌어내고 업보중생이 이 경전을 얻으면 무한한 선업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살타파륜이 천공의 말을 들은 후 피로가 사라졌고 힘을 내어 동쪽으로 향했다. 끝내 『반야바라밀경』을 얻어서 세상에 전파하였다. 살타파륜은 중생들의 해탈을 위하여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으며 보살의 과위를 이루고 현재 대뢰음불(大雷音佛)의 무상낙토(无上樂土)에 있다.
72. 건타가리존자 (乾陀가利尊者)
불교의 경전 중에 건타가리보살이 있는데 바로 이분이시다.
간타가리의 뜻은 서로 다르나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권1에서 “간타가리는 쉬지 않고 깊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처음부터 휴식이 없다.“라고 하였고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에서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교화하며 결코 쉬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아미타경의술(阿彌陀經義述)』에는 “간타가리는 적색이다.”라고하고『불설아미타경소(佛說阿彌陀經疏)』에서는 “간타가리는 번역하면 향기롭다는 뜻이다.” 하고 하였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바 건타가리존자께서는 영원히 휴식도 모르고 자아수행하고 정진하며 교화 지도한 대중의 고승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3. 해공자재존자 (解空自在尊者)
존자의 이름은 아목구발절라였는데 번역하면 불공금강(不空金剛)이며 불학의 넓고 깊은 모든 법을 다 깨닫고 의심나는 것이 없었다.
존자의 선조는 북천축이며 그 선조들은 사람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중국의 당나라에 와서 거주하였다.
존자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였고 15세에 출가하여 장안대자은사(長安大慈恩寺)의 인도명승 금강지(金剛智)를 은사로 모시고 5부 3실의 법을 모두 전수하여 당시의 명승이 되었다. 개원(開元) 29년(741) 금강지가 원적하는 그해에 해공은 금강지의 유언을 따라 광주를 출발하여 배를 타고 인도에 가서 불법의 깊은 뜻을 깊히 탐구하였다. 그는 인도의 명사를 다 돌아보고 고승들을 만나 전의 불학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으며 천보(天寶) 5년(746)에 다시 장안으로 돌아왔다.
더욱 스님들의 숭배를 받아 친히 당현종을 위해 관정의식(灌頂儀式)을 거행한 후 명을 받고 대흥선사(大興善寺)로 옮겨갔다. 안사의 난으로 장안을 잃자 흥선사에 남아있던 제자들을 북경에 파견하여 당황제에게 평안길상(평안길상)을 문의하였으며 당숙종도 때때로 밀사를 파견하여 흥선사에 보내어 불경의 어려운 점을 가르침 받았다.
안사의 난 후 존자는 시홍루경이라는 관직을 수여받았으며 번역한 70부의 불경을 조정에 바쳤다.
대종대력(代宗大歷) 9년(774)에 입적하였다.
74. 마가주나존자 (摩訶注那尊者)
마가주나라고도 한다. 불타의 제자이다.
『사분률(四分律)』권12에 의하면 “생시에 존자께서는 사위국기수(舍衛國祇樹)를 고독원(孤獨圓)에 주어 대비구 오백인과 중하(中夏)에 안거하였는데 이는 모두 지식인이다.
예를 들면 사리불, 대목건련, 존자대가섭, 존자대가전연, 존자겁빈나, 존자마가구치라, 존자마가구나...” 이로 볼 수 있는바, 마가주나는 늘 불타의 좌우를 따라다니는 큰 제자중의 한분이었으며 당시 명성이 높았고 불교를 믿는 중생들이 잘 알고 있었다.
75. 견인비등존자 (見人飛騰尊者)
당대의 명승이며 법호는 인검(仁儉)이다.
본관과 성 및 생년월일은 기록되지 않았다. 출가 후 승산에서 불도를 닦아 수년 후 도리를 깨달았으며 심신은 조용하고 청결하여 선정에 이른 후 모든 법을 통달하여 마음을 밝게 하고 의심과 후회는 영원히 끊어버려서 생사열반은 가고 온데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는 태연자약하고 넓어 구속받지 않고 거처가 없으므로 ‘등등화상(騰騰和尙)’이라고 하였다.
그가 지은 『요원가(了元歌)』는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다. 무칙천천책만세(武則天天冊萬歲, 695년)중에는 그 행종을 방문하여 궁내에 들어가 불학의 깊은 뜻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였다.
인검은 한참동안 무칙천을 보고 있다가 묻기를 “이것이 곧 불의 깊은 뜻이니 알겠습니까?”하자 무칙천이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모르겠다.”라고 하자 이르기를 “노승은 말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뜻을 이해하여야 하니 말로서 전하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 다음날 인검은 짧은 노래 19수를 바쳤다. 그 내용은 대략 불교의 전체를 설명하였는데 무칙천은 읽어본 후 크게 기뻐하여 인검을 낙양 복선사에 거처하게 하였다. 얼마 후 그는 다시 행적을 감추어 버렸다.
76. 불공불유존자 (不空不有尊者)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불교에서 ‘공(空)’과 ‘유(有)’는 서로 상대되는 개념이다. 소위 ‘공’은 인연의 법이 구경(究竟) 무실체(无實體)를 가리키는 것이니 예를 들어 물에 비친 달처럼 이름이 공이다. 그러나 공은 결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한 것은 아니어서 가유(假有)라고 한다.
『주유마경제자품』에서 이르기를 “소승은 법이 인연으로 일어나나 안에 진실함이 없고 주로 공의 뜻을 가지며 능히 공을 볼 수 있으나 공에 있어서는 버리기 어려우므로 구경이 아니다. 대승은 유와 불유에 있고 공과 불공에 있으며 그 이치가 근본에 이르지 않음이 없고 따라서 구경공의(究竟空義)라고 한다.”
불공불유존자는 장기간 선정에 들어가 공의 전제를 깨달았으며 “재유불유(在有不有), 재공불공(在空不空)”의 대승경지에 통달하였다.
77. 주리반특존자 (周利盤特尊者)
주리반특가(周利盤特加)라고도 불렀다.
뜻은 도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존자는 전생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불도에 정통하였으나 성질이 인색하고 식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임종 전에 생각하기를 내 일생을 노력하여 불교의 모든 경을 탐구하였는데 중생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였고 죽기 전에 뉘우치는 심정이 그의 깨달음을 가리웠으며 금생에 환생하여 우둔하기 그지없었다. 성년이 된 후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절에서 24년이나 살았는데 한구절도 암송을 하지 못하여 절문 밖에서 통곡하며 울었다.
석가모니는 그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가 도를 닦을 시기가 되었음을 알고 그를 불러다가 그에게 비를 하나 주면서 그에게 매일 절간을 청소할 때마다‘제구(除垢)’라는 글자를 외우라고 하고 만일 단어를 잊어버리면 빗자루를 보면 기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리반특은 매일 아침 청소할 때마다 두 글자를 끊임없이 읽었는데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이 두 글자의 전제인 ‘除(버릴 제)’가 ‘청정’이며 ‘구’는 ‘더러운 것 곧 신심을 속박하는 사념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념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도를 닦았다. 그분은 석가모니의 도움으로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78. 구사비구존자 (瞿沙比丘尊者)
구사의 뜻은 ‘미묘한 음, 아름다운 음’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사는 전생에 외기러기였는데 그는 부처를 청하여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환생하여 사람이 되었는데 그 소리가 아름다운 꾀꼬리 소리였다. 아육왕때 그는 보리수가람(菩提樹伽藍)에서 수행하였다.
아육왕의 태자 구랑나(拘浪拿)는 두눈을 실명하였으므로 구사를 요청하여 경을 외우게 하였는데 태자의 눈이 다시 밝아져 광명을 보았다.
소상의 모습은 퉁소를 손에 쥐고 바로 구사의 아름다운 소리를 상징하며 또한 각종 질병의 소리를 치료할 수 있었다.
79. 사자비구존자 (獅子比丘尊者)
불교 제24대 선조이다.
파라문의 가문으로 중인도 국왕의 아들이었는데 귀가 넓고 기억력이 좋으며 총명하기 그지없었다. 부왕은 불교를 숭배하고 사자는 어릴 적부터 불학의 가르침을 받고 감화되어 불교를 배우려고 뜻을 세웠다.
하루는 불교 제 23대 선조 학늑나(鶴勒那)가 법장을 전수하여 사자에게 준 다음 사자의 후반생의 겁수소재(劫數所在)를 예언하고 선자호지(善自護持)할 것을 부탁하였다. 법을 전수한 다음 학늑나는 멸도 하였다.
당시 계빈국에는 선정을 한 스님이 다섯 분이 있었는데 깨달음이 뛰어나고 말도 잘하고 변론도 잘하였다. 사자비구는 멀리 계빈국에 가서 다섯 스님들과 도를 논의하였는데 모두 굴복하였다. 사자는 이로 인하여 그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계빈국에 동자가 하나 있었는데 날 때부터 왼손은 주먹을 쥐고 펼 수가 없었으나 사자비구와 만난 다음부터 손이 퍼졌다. 그 손바닥에 쥐고 있던 진주 한 알을 사자에게 바쳤다. 비구는 생각하건대 동자와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법의(法衣)를 동자에게 물려주었는데 불교 제25대 선조이다.
얼마 후 다른 교에서 모해하여 사자비구는 계빈국왕에게 살해당하였다. 당시 백상산(白象山) 선인이 신력으로 사자비구의 억울함을 알아내고 부탑을 세워 장사지냈다.
80. 수행불착존자 (修行不着尊者)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수행, 즉 삼세의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는 도리와 계율을 부탁하였다. ‘저(著)‘라는 말은 ’마음이 사물에 사로잡혀 떠나지 못한다. 저를 사랑한다. 저를 붙잡는다. 저를 탐한다.‘ 등의 뜻이다.
불타는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부처가 된 이래 여러 가지 인연이 있는데 널리 설법하여 여러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여러 가지 저(著)에서 떠나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석문귀경의(釋門歸敬儀)』에서 역시 이르기를 “저(著)는 병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수행의 첫째는 저를 파괴하고 제거하며 저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수행불저존자는 계정혜(戒定慧)의 실천을 통하여 어떤 사물이든지 모두 저(著)에 집착하지 않았고 마음은 물처럼 맑았다.
81. 필릉가자존자 (畢陵伽자尊者)
한편 필란타벌차, 필릉가파차, 필릉이라고 불렀는데 석가모니의 저명한 제자였으며 비록 불교에 귀의하였으나 오만하게 남을 깔보는 나쁜 습관은 버리기 어려웠다. 그는 늘 항하(恒河) 주위에 가서 탁발을 하였는데 매번 강을 건널 때마다 항하의 신에게 "작은 종아 물을 흐르지 않게 하라. 내가 강을 건너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강의 신은 이 말을 듣고 강물을 갈라 필릉가차가 건너가게 하였다. 항하의 신은 무뢰하다고 생각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자기의 고초를 하소연하였는데 필릉가차는 두 손을 모으고 강의 신에게 “작은 종아 노여워하지 마라. 내가 너에게 경례한다.”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강의 신에게 작은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강의 신에게 “필릉가차는 오백세전에 파라문으로 태어나 오만하며 남을 멸시하는 나쁜 습관을 양성하였는데 그가 비록 불법에 귀의하였으나 그 습관은 고치기 어려우니 여러분들이 양해하여 주시오.“라고 하였다.
필릉가차는 멸도할 때까지도 남을 업신여기는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하였다.
82. 마라불동존자 (摩利不動尊者)
덕행으로 이름이 났다.
마리(摩利), 마리(摩梨), 마라야(摩羅耶), 마라연(摩羅延)이라고도 하였는데 뜻은 더러운 오물을 쓸어버린다는 말이다. 산명(山名)은 남인도 마리가라야국이다. 산에는 독특한 전단향(栴檀香)이 나왔는데 이 산에 들어온 자는 심신이 향기롭고 깨끗하여 더러운 것을 쓸어버린다고 하였다.
『지도론(智度論)』권2에서 이르기를 “전단향이 마리산에서 나오듯이 마리산은 전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다.
마리불동존자는 수행을 통하여 이미 탐하고 화내고 어리석은 독초를 제거하였고 심성이 청청하고 향기로우며 한 곳에 정함이 있으므로 산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 고락이 없는 경계에 이르러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83. 삼배감로존자 (三昧甘露尊者)
존자의 이름은 감로군나리명왕(甘露軍奈利明王)으로 5대 명왕의 한 분이다.
『인왕경(仁王經)』 봉지품(奉持品)에 이르기를 미래에 오불(五佛)이 오방(五方)을 주지하고 오불아래 각각 보살과 명왕이 있었는데 이 보살은 오불의 정법윤신(正法輪身)이며 불교정법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그 명왕은 오불의 교령윤신(敎令輪身)이며 불의 교령을 행사하여 세상 사악을 굴복시키고 쳐부수었다.
감로군나리명왕은 남방보생여래(南方寶生如來)의 교령윤신이며 능히 천수(千手)를 나타내서 손에 각종 금강방망이를 들고 일체 사람들에게 번뇌를 만들고 원망하는 흉신 및 일체의 사람을 해치는 마귀를 쳐부수고 몸이 코끼리 같은 비나야가상수마귀, 사람귀신, 용귀신, 금강야차를 굴복시키고 일체 외도및 불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압하였다.
동시에 그는 감로를 인간에게 뿌려주어 일체 불교수행자에게 복을 주었으며 중생의 지혜를 길러내고 우매한 사람들을 총명하게 하였다.
84. 해공무명존자 (解空无名尊者)
해공무명존자는 불장연수(佛藏硏修)를 통해 세상의 일체 현상은 모두 인연으로 생기고 찰라에 생멸한다고 보고 제법은 구경무소유(究景无所有)이고 모두 허환불실(虛幻不實)이며 오직 이체(理體)로 공적명정(空寂明淨)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공무’를 깨달았으나 중생들을 외면하지 않고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속에 무한한 연민과 동정으로 전력을 다하여 제도(濟度)했다.
85. 칠불난제존자 (七佛難提尊者)
불교 제 7대 선조 불타난제존자는 칠불난제라고도 하였다.
고인도 북천축국인이다. 석가존자가 생시에 제자들과 함께 북인도에 방문하였는데 당시에 제자 아난에게 말하기를 “내가 멸한 후 삼백년이 되면 이름이 불타난제(佛陀難提)라고 하는 성인이 이곳에서 출생할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크게 불법을 흉포할 것이다.“고 하였다. 때가 되어 불타난제가 출생하였는데 그는 지혜가 남보다 뛰어났으며 일체의 도리를 잘 이해하고 변론이 좋아 당시의 모든 논사들을 이겼다.
그는 능히 전생의 경력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래전에 친히 여래에게 보좌를 내어주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 내가 불법을 널리 포교하므로 뜻을 세워 출가하였다.”
하루는 불교 제 6대 신조 미차가존자께서 북천축국에 방문을 하였을 때 경성을 멀리 바라보니 상공에 황금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떠 있어 기뻐하며 경탄하고 말하기를 “상서러운 구름 아래에는 필히 대사가 있을 것이니 불법을 계승할 것이다.”고 하였다. 성에 들어온 후 불타난제를 찾아 머리를 깎고 출가를 시켰다.
불타난제는 남달리 총명했으며 한번 귀 뜸을 해주면 전부를 꿰뚫어 알았다. 이리하여 먼저 가는 법장을 불타난제에게 전수하였으며 불법을 널리 선전하라고 부탁하고 세상 사람에게 이익이 되라고 하였다. 불타난제가 불교의 제7대선조가 된 이래 단한번의 탁발을 하고 열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사리를 주어 탑을 세우고 모셨다.
86. 금강정진존자 (金剛精進尊者)
덕을 쌓아 존경받았다.
금강은 견고한 것을 가리키며 예리하여 일체를 쳐부수는 지혜를 말한다.
대장법수(大藏法數)권41에서 이르기를 백번을 제련해도 용해되지 않고 견고하고 예리하다.하였다. 정진은 용맹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공덕을 쌓고 악을 끊는 힘을 말한다.
자은상생경소(慈恩上生經疏)권하에서 정은 순수하여 뜻이 있는 곳에 곧음이 있고 진은 참 진리만 굴복한다는 뜻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화엄대소(華嚴大疏)권5에서 정진은 마음을 닦는 것의 법명이며 정심으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라고 하였다. 금강정진존자는 불법에 귀의하려는 마음이 금성명약처럼 견고하고 단단하며 심중의 모든 귀신을 없애며 모든 먼지와 오물을 털어내고 제거하여 공덕을 날로 쌓고 영원무궁한 불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87. 방편법장존자 (方便法藏尊者)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방편이라고 한다. 일체 불교의 학설을 일러 불타라고 한다.
법장존자는 불법을 널리 포교하여 많은 공덕을 쌓았고 이로써 이름을 편리 법장이라 하였다. 법장존자는 당대초의 사람이며 선조는 소주(蘇洲)사람이고 성은 제갈이고 삼국시대 오나라의 제갈근의 후손이다.
존자는 16세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며 정역사에서 덕망이 높은 스승에게 불법을 학습받아 영휘연간(696~700)에 구족계(구족계)를 받았다. 법장은 넓은 불교학문의 도리와 엄격한 계율을 잘 지켜서 이름이 온 누리에 알려졌다.
무칙천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임금령을 내려 그를 동도낙양에 거주하게 하고 교대대보선사에 불경 『무진장』을 보존하였다. 얼마 후 다시 명을 내려 그를 교화도사에 보존한 『무진장』을 검사하고 복사대덕직을 겸하게 하였다. 법장은 불교교파의 3계교의 영수이며 조정의 중용을 받아 “학행관우시(學行冠于時)”라 불리웠다.
당개원 2년(714) 법장존자가 입적하였는데 나이는 68세였으며 종남산(終南山)에 탑을 세워 사리를 묻고 모시었다.
88. 관행월윤존자 (觀行月輪尊者)
수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불교에서는 만월의 둥근 것이 보리심과 비슷하다 하여 마음을 16분의 달처럼 관찰한다.
소위 “16분의 달은 어두워지는 저녁에 해와 달이 서로 나란히 있을 때 달빛은 햇빛에 빼앗겨 전부 가리고 달과 해가 서로 일분이 지나간 다음에는 달빛이 조금 나타난다. 이 작은 부분이 합하여 그 후 보름달이 되어 밝아지며 16분이 된다.”는 것이다. 이로 볼 수 있는바 불교는 둥근달의 밝고 어두움으로 사람의 마음과 청정과 불성의 밝고 어두움을 비유하였다.
『마가반야경』에 이르기를 “진리가 있는 마음에는 일분의 깨끗함이 있으며 사람들이 모두 구비해야 하고 그것은 미묘하나 명백하여 윤회육취(輪廻六趣)도 쉽게 변하지 않아 달의 16분의 1과 같다.“무릇 그 일 푼이 밝아도 서로 합할 때 햇빛이 달빛을 빼앗아서 달빛이 가리웠다. 후에 월초부터 점점 증가하여 15일이면 원만하여 가림이 없었다. 마음의 둥근달을 바라보며 수행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비장기본(秘藏記本)』에서 이르기를 “오직 달의 둥근 것을 돌아보면 후에 둥근달이 법계를 돌고 일순간 자신과 둥근달은 잊고 무분별의 지혜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대비문에서 보니 둥근달이 들어가고 스스로의 마음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관행월윤존자는 이것에 의하여 수행하였는데 “달은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은 곧 달이며 티끌 하나 묻지 않고 망상불생에 이르렀다.”고 하는 고승의 경지에 이르렀다. 『증도가(証道歌)』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마음이 거울같이 맑아 아무 거리낌 없이 주사계(周沙界)를 옥처럼 밝게 하였다.“ 만상삼라영(万象森羅影)중에서 한 알의 둥근 빛이 안과 밖이 없었다.
89. 아나빈제존자 (阿那빈提尊者)
수달장자(須達長者), 수달아나빈제(須達阿那빈提)라고도 하는데 고인도의 사위국인이며 불교교주 부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
수달장자는 집이 부유하였으며 집에는 여종이 성실하고 부지런하였는데 그녀에게 집의 은과 돈 그리고 창고를 관할하라고 하였다.
수달장자는 불교를 수애하고 믿었으므로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있으면 그 필요한 것을 모두 바치고 인색하지 않았다. 여종은 생각하기를 수달이 우매하여 출가한 사람들의 몇 마디의 말에 현혹되어 스님들이 구걸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보고 악한 마음으로 스님들이 보이지 않기를 희망하고 그들의 이름이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사위국 파사닉(波斯匿)왕의 처 말리(末利)부인은 불교를 숭배하고 믿었는데 이 사실을 듣고 화를 내며 수달에게 명하여 여종을 내 쫓았다.
불교경전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권6에 의하면 수달은 말리부인에게 제의하기를 “불상은 태양처럼 만물을 길러내고 대악인 앙굴마라(鴦掘摩라) 천인니제(賤人尼提) 등 모두가 우리 부처님께 감화되어 제압되었는데 어찌 노종을 제압시키지 못하겠는가?”하고 하였다. 말리부인은 수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루는 왕궁에서 석가모니 및 그 제자들에게 음식을 시주하였는데 여종은 명을 받고 보배 병을 들고 흥을 돋구었다. 불의 감화를 받아서 스님들에 대한 오해를 씻었으며 수달아나빈제는 석가존자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이해한 후에 정과를 얻어 대아라한을 이루었다.
90. 불진삼매존자 (佛塵三昧尊者)
불진은 세상의 번뇌의 막을 제거하고 외부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삼매는 정한다는 것이며 마음이 한 경계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 지지 않는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삼승백법명문론충소(三乘百法明門論忠疏)에서 말하기를 경계를 관찰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이 흩어 지지 않으며 지혜로 업을 얻는다. 이것에 의해서 선택하면 지혜가 생긴다.고 하였다.
대승의장(大乘義章)권19에서 이르기를 마음이 조용하면 사람의 정신을 흩어놓는 잡념이 떠나니 삼매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불진삼매는 선종북존조사 신수가 그 학설을 불진간정(拂塵看淨)’이라 하였다.
송고승전(宋高僧傳)등의 기록에 의하면 신수의 성은 이(李)가이고 변주위씨(尉氏)인이다. 박학하고 출가 후에 기주 쌍봉산 동산사에서 흥인법사를 만나 나무를 패고 물을 길러 6년을 고생하였는데 홍인의 중시를 깊이 받아 상좌를 명하고 교수사’라고 명을 내렸다. 홍인이 입적한 다음 선수는 정주의 양산 옥천사에서 법을 전수하였는데 신도들이 매우 많았다. 90여세에 무칙천이 낙양에 초청하고 후에 장안 내도장에 초청하여 친히 법회에 참석하였다. 원적한 후 당중종이 대통선사’라고 시호를 내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홍인이 법을 계승할 때 만인에게 명을 내고 문장을 짓게 하였는데 신종이 지은 구절은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거울같아 항시로 부지런히 닦아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고 하였다.
91. 마가구치존자 (摩하俱치尊者)
마가로, 마가구비치라, 구비치라 라고 부른다.
고인도 다마유국 성시에 절이 하나 있는데 안에는 오백스님이 거주하면서 경을 읽고 도를 닦았다. 그중에 연로한 스님의 이름이 마가로라고 하였는데 머리가 둔하여 오백스님이 돌아가면서 그에게 경을 가르쳤으나 몇 년 동안 한구절도 외우지 못하여서 많은 사람의 멸시를 받았으므로 법회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국왕이 궁중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스님들을 부양하였는데 마가로는 참석 할 수가 없었다.
마가로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미련하여 남들의 업신여김을 받으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뒤뜰의 큰 나무 밑에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불교교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멀리서 이 일을 알고 순식간에 나무 밑에 와서 말하기를 “과거에 오백스님이 있었는데 지혜가 넘쳤으나 마음이 인색하여 남에게 전수하기를 싫어했는데 그 후에 세상 중생의 근성이 둔하여 졌으니 너는 자기 노력을 많이 하되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고 하였다. 마가로는 불(佛)의 감화를 받고 즉시 정의(定意)에 들어가 머리가 총명하고 민첩하여 졌다.
마가로는 궁궐로 들어가 연회석의 윗자리에 앉았고 연회가 끝난 그는 국왕과 여러 대신들에게 경을 강론하였는데 그 소리는 우뢰가 진동 하는 것과 같았으며 맑은 법문은 마치 단비가 내리는 것과 같았다.
마가로의 감화로 오백스님들은 국내에서 경을 널리 강론하여 많은 대신들이 모두 수타원과위를 이루고 마가로는 나한으로 올라갔다.
92. 벽지전지존자 (벽轉智尊者)
불교 전적 중에는 8벽지불이 있는데 그 우두머리는 파라나국왕(波羅奈國王)이다.벽지의 완전한 칭호는 벽지가불타이며 뜻은 독각(獨覺),연각(緣覺)이다.
지도론(智道論)에서 이르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치불(値佛)이고 세상의 법을 생각하며 도를 구함에 있어서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 나와서 조용하게 스승이나 친구의 가르침이 없이 혼자 도리를 깨달았다고 하여 독각, 연각 이라 한다.
혼자 깨달아 내외의 연고를 관찰하고 기다려서 성과를 얻었다는 독각은 벽지불이 비록 ‘불법이멸(佛法已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전생의 수행한 인연으로 자기의 지혜에 의지하여 정확한 길을 얻고 연각은 ‘자각불종타문(自覺不從他門)‘이라 할 수 있으며 12가지 인연을 관찰하고 깨달았으며 도를 얻었다.
장경중에는 『벽지불인연론』권2가 있는데 8벽지불각오의 인연이라고 하였다.
93. 산정용중존자 (山頂龍衆尊者)
가협파불(迦叶波佛)의 생시에 소파벌솔도하의 땅에 ‘극기’라고 하는 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주문에 정통하여 악용을 잘 다스렸고 용왕이 폭우를 내려 재해를 입히는 것을 막았으며 이로써 이곳의 바람과 비를 조절하였고 이 땅은 오곡풍년이 들어 해마다 여유가 있었다.
그 땅의 백성들은 극기의 은덕에 감사하여 매년 매집마다 자원하여 쌀 한말씩 그에게 주었다. 햇수가 오래되어 사람들의 극기에 대한 고마움이 옅어져서 어떤 사람은 쌀 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극기는 분을 품고 독용이 되어 폭풍우로 벼를 쓰러뜨리고 밭에서 수확을 거두지 못하게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는 죽은 후 환생하여 한 마리의 지용(地龍)이 되어 산위의 샘물에 숨어 있다가 매년 우기에 샘물에서 백수를 흘려 벼를 모두 말려 죽였고 이 지방의 사람들은 입을 옷도 모자라고 식량도 부족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생하여 이곳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 것을 보고 동정하여 금강방망이로 절벽을 쳐서 용왕을 두렵게 하였고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용왕은 석가모니로부터 불법을 듣고 순간 마음이 청정하여져서 악념이 모두 사라지고 석가모니의 권유를 따랐으며 다시는 그 지역의 곡식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먹고 입는 것에 부족함 없이 넉넉하였으며 이 용도 나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94. 라망사유존자 (羅網思惟尊者)
불교전적 중에 ‘보사유(寶思惟)’라고 하는 이가 나오는데 바로 이분이다.
보사유의 법명은 아이진나(阿爾眞那)인데 북인도 가습밀라국인이며 찰제리(刹帝利)라는 성이다. 어릴때 집을 떠나 선정을 외우는 것을 업으로 했고 출가 후 전적으로 율품에 정통했다.
그는 지혜와 이해력이 출중하고 학식이 깊고 넓어 불법의 선전으로 이미당의 무칙천장수 2년에 중국 낙양에 도착해 왕의 명으로 천궁사에 거주하면서 불경 번역 사업을 진행했다. 당 중종 2년부터 『불공견색라니경(不恐羂索羅尼經)』 7부를 번역한 후 다시는 불경을 번역하지 않았으며 다만 부지런히 불경을 외우며 여러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업을 지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향을 갈고 물로 불상을 목욕시킨 후에야 음식을 들었다.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몸에 지닌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후에 조정이 용문산에 절을 하나 창건할 것을 청해 천축사(千竺寺)라고 했다. 그와 신도들 그리고 스님들은 이 절에서 같이 자면서 수행했다. 당 헌종 개원 9년에 입적했는데 나이는 이미 100세를 넘었고 탑을 세워 모셨다.
95. 겁빈복장존자 (劫賓覆藏尊者)
겁빈복장의 뜻을 번역하면 집별(房星)이 다시 세상에 환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겁빈의 부모는 노년에 무자식이어서 하늘의 열 두번째 집별에 기도하여 그 집별이 감동하여 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되었고 그 부모가 하늘에 감격하여 이름을 겁빈나라고 지었는데 뜻은 집별’이다.
겁빈나는 성년이 되어 출가하였고 남달리 총명하여 얼마 후 불전에 정통하였으며 하늘에 있는 별들의 집에 대하여 손금을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겁빈나가 도를 성취한 것을 알고 한 노스님으로 변장하여 그와 함께 거주하면서 그에게 법을 설명하여 주었다.
겁빈나는 석가모니의 도움을 받고 매우 빨리 불교의 진리를 얻어 도를 닦은 후 나한이 되었는데 그가 하늘의 별에 익숙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지성숙제일(知星宿第一)'이라고 하였다.
96. 신통억구존자 (神通억具尊者)
목건련, 마가목건련, 목련, 몰특가라자 등이라고 한다. 인도 마갈타국 왕사성(王舍城)인이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에서 목건련은 신통제일이라고 불리웠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목건련과 사리불은 모두 원래 외도였는데 각각 100명의 제자를 두고 있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약속을 하고 누가 먼저 해탈하면 꼭 상대방에게 알리기로 하였다. 후에 사리불은 마승비구(馬勝比丘)를 만나 불타의 설법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에게 알렸고 두 사람은 모두 불타에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
목건련은 신통팔방하여 신족경거(神足經擧)로 10방에 날아다닐 수 있었으며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신통을 정력(定力)으로 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좌측을 배동 한다고 하여 불좌측면의 제자였다.
목건련은 관례에 따라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왕사성에 들어갔다는데 불교의 반대파인 파라문에 의하여 몽둥이에 얻어맞고 죽게 되었으나 목건련은 전생에 지은 죄라고 생각하고 피하지 않았다. 아도세왕은 이 일을 듣고 명을 내려 외도를 닦는 모든 파라문을 사로잡아 죽이라고 하였으나 목건련은 특별히 현신(現身)하여 그러지 못하게 하였다.
97. 구수구제존자 (具壽具提尊者)
존자의 이름은 사문십이억인데 석가모니의 저명한 제자였다. 열심히 불교를 배워 게을리 하지 않고 공덕을 쌓아 악업을 끊어버리고 법에 정통하였으며 심성을 수양하여 통달하므로 비구들은 그를 정진제일(精進第一)이라고 불렀다.
현우경(現愚經)권6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제자들 앞에서 신통을 발휘하여 부처님께서 먼저 갔다.
사문십이억은 공중에 기이한 한 갈래 길을 열어 유리로 길을 깔고 7가지 보배로 장식하였으며 높은 나무를 양측에 세우고 귀한 보배를 나무에 걸어 둔 다음 공중에 난 길을 걸어가니 불법의 위력과 공덕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98. 법왕보제존자 (法王菩提尊者)
덕행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불교에서 법왕은 석존의 존칭이다. 『법화경(法華經) 약왕품(藥王品)』에서 “여래는 모든 법의 왕이다.”라고 하였고 『석가방지(釋迦方志)』권상에서 “속인의 높은 위치의 이름은 윤왕(輪王)이고 성인의 제일 높은 위치는 법왕(法王)이다.”라고 했다.
『유마경(維摩經)』의 혜원소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모든 법에 득승자재(得勝自在)하심으로 법왕이라 한다.”고 했다. 보리의 뜻은 감각인데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권1에서는 범어의 보리는 번역하면 감각이란 뜻인데 법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느낌의 경계는 사리이법(事理二法)인데 이(理)는 열반이고 번뇌의 장애물을 끊어버리고 열반의 일체 지혜를 얻으며 3승(三乘)에 통하는 보리이다. 사(事)는 모든 법을 잘 알므로 장애물을 끊어버릴 줄 알며 모든 법의 일체 지혜를 아는 보리이다.
불(佛)의 보리는 이 둘을 합하여 대보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 볼 수 있는 바 법왕보리존자는 이미 석가모니와 같은 무상의 지혜를 얻었다.
99. 법장영겁존자 (法藏永劫尊者)
존자는 가협(迦叶)이라고 부르는데 뜻을 번역하면 모두 마셔버린다는 뜻이다. 그의 선조가 일월의 빛을 능히 마실 수 있어 이 이름을 얻었다. 가협은 고인도 라열지국의 부유한 파라문가에 태어났다.
기록에 의하면 존자는 천신(天神)이 세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존자는 성년 후 세상생활이 싫어서 처자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행을 했는데 옷은 다 헤졌으며 머리를 스스로 깎고 고행하여 해탈을 얻었다. 후에 왕사성죽원(竹園)에서 석가모니께 귀의 하였다.
가협은 남이 없는 다섯 가지 덕을 구비하였다. 첫째는 신선의 후대이며 부귀한 장자로 태어났고, 둘째는 용감히 부귀한 가정의 호화스런 생활을 버리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셋째는 성과를 거둔 후에도 여전히 두타계율(頭陀戒律)을 견지하고 받들었으며, 넷째는 국왕, 대중, 천용 및 귀신을 모시고, 다섯째 풍부한 부양을 거절하고 매일 탁발하며 생활하였다.
가협의 학식과 덕행은 석가모니의 중시를 받고 여러 제자의 우두머리 위치에 있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도 그가 명을 받아 교무를 주지하고 그의 영도와 관할하에서 불교 1차결집을 거행하였으며 불교의 법(法), 율(律), 론(論)으로 영원히 세상에 전파하였다.
법장은 불교 교의(敎義) 및 기타 일체내용을 가리키며 겁은 불교의 시간의단위이며 영겁의 뜻은 무궁한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100. 보주존자 (菩注尊者)
또는 선주라고도 한다. 덕행하여 이름이 났는데 주는 주해(注解), 주입(注入)을 뜻한다.
선주존자는 박식하고 불전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통달에 능했으며 중생들이 그 법의 설법을 듣고 깨달았다.
설법으로 마음이 탁 트이고 마치 법수(法水)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법이 스며 들어갔다. 그리고 일체 번뇌, 근심걱정과 먼지들을 삽시간에 깨끗이 없앴다.
또한 청정한 마음이 장로(長老)와 같이 깨끗하고 마음은 티 하나 없었다.
101. 제우존자 (除憂尊者)
또 제중우명보살(除衆憂冥菩薩), 제일체우명보살(除一切憂冥菩薩), 대구금강(大救金剛)이라고도 한다.
희비의 주문은 세상 사람들의 비목의 천문이라 하며 진여되는 마음이 있어야 해탈할 수 있고 유락을 얻을 수 있다.
불설리구시녀경(佛說裏垢施女經)의 기록에 의하면 제우존자께서는 일찍 사위국 지수급고독원에서 석가모니께서 법을 강설하는 것을 들은 후 석가모니의 교시를 받아서 이미 사악하고 사특함을 다 없앴으며 인생의 노파심과 번뇌를 버리고 인연환생의 속박을 벗어나 무결, 통달, 이치가 명백한 인인현사(仁人賢士)가 되었다.
석가존자께서 열반하신 후 제우존자는 태장계만나라지장원(胎藏界曼奈羅地藏院)에 거주하면서 일체중생의 근심걱정 번뇌 및 일체무익한 애락애중 일체무익한 명상을 제거하겠다고 맹세하였다.
102. 대인존자 (大忍尊者)
중국남조후기의 저명한 스님이며 지자대사별전주(知者大師別傳住)의 기재에 의하면 그분은 양조(梁朝)때 머리깎고 출가하여 수나라에 들어선 이후에야 비로소 입적하였다.
속고승전(續高僧傳)제17권 및 제30권, 수지자대사별전(隋智者大師別傳)등의 기재에 의하면 대인은 양, 진 2대의 덕망이 높은 고승이며 영종산에 숨어 지냈고 개선사에서 도를 닦으면서 세상 사람과 내왕하지 않았다.
명승 지의(천태종 4대 선조이며 실지는 천태종의 창시인이다)가 법회에서 법을 전하였는데 대인은 변론을 듣고 감계하면서 “이것은 문소(文疏)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 현상을 파악함으로 분별하는 것이고 반야(般若)는 둔(鈍)도 아니오 이(利)도 아니므로 이둔(利鈍)의 연(緣)으로 말미암아 이르니 때를 따라 풍부하고 그래서 그 막힘 없음은 못(地)처럼 깊고 꽃처럼 크니 둔은 가히 깨달아 알 수 있다. 내가 말년에 행복한 것은 늙고 병들었으나 피곤을 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대인으로부터 치하 받고 지의는 더욱 도를 소리 내어 칭송하였다.
명승 진관(眞觀) 역시 먼길을 걸어 대인을 방문하고 그의 오묘함을 나타내고 그를 칭송하며 “용수(龍樹)의 도(道)는 비로소 동(東)에서 흥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대인은 특별히 후예를 돕는 것을 장려하였다.
103. 무우자재존자 (无憂自在尊者)
무우존자는 과거7불 비파시불(毘婆尸佛)의 제자이다.
비파시불은 과거 7불중 그 첫째불이며 일찍이 석가모니를 71겁전에 출생하였는데 당시 석가모니께서는 아직도 보살수행을 하였고 비파시불에게서 불법의 가르침을 받았다.
무우존자는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아 불교의 각종 이론을 통달하고 불교의 각종 삼매에 있어서는 진퇴에 방해가 없었으며, 세속의 근심걱정과 번뇌를 멀리 떠나 심성이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었으며 불법에 있어서 물러섬이 없었다.
104. 묘구존자 (妙惧尊者)
불교 전적중에는 묘당보살(妙幢菩薩)이 있는데 바로 그다.
최승왕경(最勝王經) 몽견금고참회품(夢見金鼓懺悔品)의 기재에 의하면 묘당보살은 꿈을 하나 꾸었는데 취봉산에 가서 불타를 만나 뵙고 불타께 “세존이시여, 저는 꿈에서 파라문이 금북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고 그 소리 가운데 기묘한 가타(伽陀)를 설법하였는데 바로 이 참회법 이었습니다. 저는 모두 기억하오니 세존께서는 들으시기를 원합니다.”고 말하였다.
묘당은 즉시 불타 앞에서 찬송하였으며 불타께서는 그의 말을 다 들은 후 칭찬하여 “선하도다 ! 선남자(善男子)여, 만약 너의 꿈에 금북 소리가 난 것은 여래의 진실한 공덕과 참회법을 찬탄하는 것이며 만약 들은 자가 있다면 복록을 많이 받을 것이다.”고 하였다.
105. 엄토존자 (嚴土尊者)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성이 있는 제자였다.
유마힐소설경(唯魔詰所說經), 불국품(佛國品)의 기재에 의하면 엄토는 비야리라수원(毘耶裏羅樹園)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었는데 이때 그는 이미 수행을 원만하게 하여 보살과위를 획득하였다. 엄토의 불학이론은 풍부하고 해박하여 그가 홍포하는 불법은 마치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아 소리가 시방(十方)에 들렸다. 그는 선공이 깊어 마음이 청정하였으며 선정 중에서 무진한 지혜를 얻어 이미 영원히 세속의 그물을 벗어났다. 그는 법상을 잘 해석하였으며 각 사람의 전생의 선악을 알고 있었다.
엄토의 말은 민첩예시하였으며 신앙자로 하여금 마음속으로부터 설복을 받게 하고 외도로 하여금 굴복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는데 날센 독수리처럼 석가세존의 학설을 보호하였다.
그는 석가모니와 같이 자비로운 마음이 있었는데 각 사람과 친우로 사귀고 또 상대방으로 하여금 생활 중에서 평안과 길상을 얻게 하였다.
불명경(佛名經)권22의 기재에 의하면 엄토존자는 시방 모든 보살 중의 한명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있다고 한다.
106. 금계존자 (金髻尊者)
즉 금쪽보살이다.
불교경전들은 금쪽보살이란 이름을 얻은 연고를 여러 가지로 말하였다.
주유마힐경(注唯摩詰經)제1권에서는 금쪽보살은 금이 상투에 있다.고 하였고 유마경의소(唯摩經義疏)제1권에서는 금쪽보살은 아름답게 장식하는 금이 상투에 있다.고 하였으며 설무구청소(設无垢稱疏)제2권에서는 “무(无)를 보는 것이 법이며, 심수(心首)를 나눌 수 없고, 금으로 상투를 하는 것 과 같다.고 하였다.
유마경략소(維摩經略疏)제2권에서는 금계라는 것은 실지로 금처럼 지혜가 밝은 것이며 계(髻)는 즉 권지(權智)이며 엄(嚴)으로 심수하여 금계라고 한다.고 하였다.
107. 뇌덕존자 (雷德尊者)
존자의 이름은 아게다(阿揭多)이며 천둥과 번개를 다스릴 수 있는 나한이다.
불교경전 최승왕경(最勝王經) 여의보주품(如意寶珠品)의 기재에 의하면 동방에 광명전왕(光明電王)이 있었는데 이름이 아게다였다고 한다.
아게다는 일체천둥과 번개의 재난을 막을 수 있으며 만약 거주하는 지역이 아게다의 이름을 쓰고 또 모시면 벼락으로 화재나 사람, 가축 및 재물이 파괴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고 능히 이외의 기타 재난과 각종 번뇌를 피할 수 있게 하였다.
뇌전을 관리하는 나한이 모두 4존자였는데 동방광명전왕의 이름은 아게다이고 남방광명전왕의 이름은 설저로이며 서방광명전왕의 이름은 주다광(主多光)이며 북방광명전왕의 이름은 소다말니(蘇多末尼)인데 네 왕은 각 방면을 관리하였다. 원대 몽고황제 및 귀족들이 연회를 거행할 때 모두 궁전의 한 쪽에 광명전왕을 모시고 스님들은 피뇌경(避雷經)을 염불하며 외웠다.
108. 뇌음존자 (雷音尊者)
즉 뇌음보살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의 설명에는 뇌음은 원래 뇌음왕여래불국의 보살이었으며 그가 석가모니께서 설법하시는 곳에 와서 불타의 비법을 듣기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기 싫어했다고 했다.
불타와 법교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는 허공에서 꽃송이들이 비 오듯 내리게 하고 공중에서 아름다운 가창을 연주하였다. 적의보살(寂意菩薩)은 이것이 무슨 일인지 몰라 했는데 불타는 그에게 뇌음보살을 소개하며 말하는 중에 뇌음이 허공에서 내려와 부처님의 발 앞에 머리 숙여 7번 부처님을 돌며 경례를 표시하고 뇌음왕여래가 불타께 문안을 전달하였다.
불타께서 뇌음이 비법을 듣고자 함으로 승낙하고 밀적금강력사(密迹金剛力士)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뇌음과 기타 보살들에게 설법하라고 하였다. 그런 후 뇌음은 때때로 불타의 설법을 들었으며 예를 들면 유마힐경(唯摩詰經)첫머리에 소개한 법회의 여러 보살 중에 그가 있다. 십주단결경(十住斷結經)에는 또 뇌음이 “여러 선본(善本)에 있어서는 법계가 늘지도 줄지도 않음을 볼 때 법은 울타리 안에 속박되지 않으며 이 가운데서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보살혜(菩薩慧)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109. 향상존자 (香象尊者)
향상존자는 또한 향혜(香慧), 적색(赤色), 불가식(不可息)이라고도 하고 별칭은 대력금강(大力金剛)이며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다.
불교는 우주에 존재하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계단으로 나누었는데 과거주겁명(過去住劫名)은 장엄겁(莊嚴劫)이라 하고 미래주겁명은 성수겁(星宿劫)이며 현재주겁명은 현겁(賢劫)이다.
과거, 현재, 미래 3겁에는 각 1천명의 보살이 출세하였다. 향상보살은 현재 주겁보살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같은 현겁의 16존자에 속하였으며 향상은 남방 4존자 중의 제1존자였다.
불설관상불모반야파라밀다보살경(佛設觀想佛母般若婆羅密多菩薩經)의 기재에 의하면 향상보살은 일찍이 여러 부처 및 여러 보살들과 동당에서 경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 화엄경(華嚴經)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의 기재에 의하면 북방에는 향취산이 있었는데 과거주겁의 여러 보살이 이 산에 거주하였으며 현재 향상보살은 이 산에 늘 와서 이 산에 거주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경을 논하고 설법하였다고 한다.
110. 마두존자 (馬斗尊者)
즉 마두관음(馬頭觀音)이며 마두명왕(馬頭明王), 마두대사(馬頭大士)라고 불렀다. 법명은 하야게리파(何耶揭梨婆)이다.
5부명왕 중에서 연화부분노지명왕(蓮化部忿怒持明王)이었다. 말을 머리위에 놓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지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말을 머리 위에 놓은 것은 생사대해를 건너는 것을 표시하며 사방마귀를 다 부수는 큰 위력을 가졌다고 한다. 『대정진력(大精進力)』제5권의 기재에 의하면 마두존자의 모습은 “그 몸이 누렇지도 않고 적색도 아니고 해가 금방 뜰 때 색과 같으며, 백련화로 영락등(瓔珞等)을 삼고 그 몸이 장엄하고 광염이 맹렬하였다. 붉고 큰 머리에 손톱은 길고 날카로웠으며 덧니가 나고 머리카락은 사자털과 같고 화내는 상이었다.”고 하였다.
마두존자의 이 분노의 상은 모든 마귀를 쳐부수기 위한 위엄이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아주 화목한 상으로 중생을 깨우쳤다.
111. 명수존자 (明首尊者)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석가세존을 따라 불법을 학습한 적이 있었으며 성심으로 연마하여 보살과위를 받았다.
그의 생각이 신비하고 특이하여 석가모니와 비슷한 지혜가 있었다.
대승학설을 밤새껏 읽어 불법계율에 익숙했으며 깊고 넓은 불교이론은 마치 넓고 끝이 없는 천공처럼 넓었다.
어느 때 어느 곳 에서나 대중들에게 불교교의를 전하고 제도할 때 서로 다른 풍속습관에 따라 지도하여 세상 사람을 감동시키고 깊은 어둠 속에서 이끌어 중생들을 피안에 이르게 하였다.
명수는 언변이 심오하여 변화를 짐작할 수 없었으며 민간의 원망을 제거 하고 세상 마귀들의 장애를 굴복 제압시키고 외도를 굴복시켜 불법에 귀의시켰다. 시방(十方) 각지를 도보로써 다녔으며 각종 사교외도는 모두 그를 가로막지 못하였다.
불설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佛說儒首菩薩无上淸淨分衛經)상권의 기재에 의하면 명수보살은 일찍 사위국 지수급고독원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또 석가모니의 제자 대비구 5백명, 보살 천명이 함께 불학의 진리를 탐구하였다. 또 불설보살본업경(佛說菩薩本業經)1권의 기재에 의하면 “서남무국에 보림찰이 있었는데 불명은 상정진(上精進)이고 보살의 이름은 명수이다.”라고 하였는데 명수는 서남지역의 보살이다.
112. 금수존자 (金首尊者)
즉 금두선인(金頭仙人)이다. 범명은 가비라선(迦毘羅仙)이다.
본래는 외도였다. 소위 외도는 즉 불교 외에 세운 도라는 것인데 삼론현의(三論玄義)상권에서 말하기를 기묘한 허통(虛通)에 이르러 이를 보는 것이 도인데,마음이 도 밖에 있을 때 이를 외도라 한다.고 하였다.
금두선인의 주장은 마가지관(摩訶止觀)10권에서 인(茵) 가운데 과(果)가 있음을 헤아린다.라고 말하였으며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1권에서 말하기를 집유(執有)라고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가 창립한 파벌을 수론부(數論部)’라고 칭하였다.
그후 금두선인은 불교이론의 생론중에서 점차 자기 이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법에 귀의하여 정과를 이루었다.
113. 경수존자 (敬首尊者)
이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시방(十方) 모든 대보살 중의 한분이었다.
불교경전『불설보살본업경(佛說菩薩本業經)』의 기재에 의하면 “동방무극에 향림사가 있는데 불명은 입정진(入精進)이며 보살의 이름은 경수이다.”라고 하였다. 경수는 동방의 보살위치에 있었는데 그는 신통묘달하여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그의 복과 덕을 그리워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는 불교의 대승과 소승의 교의를 깊이 이해하고 늘 불법을 포교하였으며 홍익 인간사를 탈피하여 해탈하였다. 그는 천생의 지혜는 석가모니와 같은 자비를 가지고 여러 방법으로 중생을 감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서원에 대해 처음부터 동요한 적이 없었으며 세상 중생으로 하여금 3도(三途)의 고생을 면하게 하였는데 불(火)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고, 지옥 덤불 속에서 고통 받지 않게 하고, 혈도(血途)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고, 짐승들은 상호 잔식(殘食)의 고통을 받지 않게 하고, 칼길(刀途)에 들어서는 것을 면하고, 아귀(餓鬼)들에게 칼에 찍히는 핍박의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경수존자는 중생들에게 무한한 이익을 주었으며 그로 하여 무상극과(无尙極果)를 얻고 전불(前佛)이 멸도한 후에 곧 부처님이 되어 불위를 차지하였다.
114. 중수존자 (衆首尊者)
즉 중수불(衆首佛)이다.
자비도장참법(慈悲道場懺法)에 의하면 돈권중생(敦權衆生)은 늘 남무중수불(南无衆首佛)의 이름을 외우곤 하였는데 그 때문에 복록을 받았다.
중수불은 세상의 대자비부친(大慈悲父親)을 지켰으며 그는 지혜가 무량하고 신통광대하여 각종 마귀들을 굴복 제압시킬 수 있었고 무량중생을 정도에 들어서게 하였다. 중생들은 성심으로 중수불에게 지심정례하여 참회하였으며 무량한 죄과를 모두 없애고 무량한 복의 뿌리가 모두 싹이 트게 하여 정토(淨土)에 이르고 보리심을 얻었다
115. 변덕존자 (辯德尊者)
존자의 이름은 낙건달파(樂乾闥婆)인데 4건달파 중의 한명이었으며 가요소리가 아름답고 연주를 잘하여 가창의 천신이었다.
이 천신은 세상의 보산(寶山)에 거주하였는데 그가 거주하는 곳의 산림, 사자, 범, 승냥이, 표범, 소, 양, 닭, 새는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낙건달파는 각종 새와 짐승을 사랑하였다. 그는 외출할 때면 청색 누에 실로 짠 의복을 입었고 공작새의 날개털로 기를 달았는데 모든 짐승들은 몰려들었고 새들은 빙빙 날아돌았다.
천신은 그의 연주가 필요할 때는 사자의 통보가 없이도 스스로 알아차리고 능히 제때에 악대를 거느리고 4건달파와 같이 하늘에 올라가 연주하였다. 낙건달파도 아름다운 가요를 연주하였는데 여러 부처님들을 낙원회락하여 즐겁게 하였고 백성들을 화기교화하였다.
116. 찬제존자 (찬堤尊者)
즉 찬제보살이다
불명경17권에 예를 든 응당 예배해야 될 시방(十方) 대보살 중에서 찬제보살을 첫 자리에 놓았다.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2권에는 석가모니께서 아난에게 소승(小乘)과 보살을 구별할 때 찬제를 예로 든 적이 있었는데 높이 찬양하면서 “소승의 자애로움은 마치 근육과 피부와 같으며 대사의 자애로움은 골격과 같다. 무엇으로 밝히랴? 만약 사람이 보살 손발을 잘라내면 유자(乳者)로 변하는데 즉 자증(慈証)이다. 찬제비구가 바로 그 일을 당한 것이다. 비유하여 말한다면 여인이 자식을 낳으면 곧 젖이 난다는 것이다. 이 자비의 감화에 자연히 변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찬제존자는 대자비의 마음을 구비하고 일체 고난을 참아내어 중생을 감화시켜 중생이 구제된다면 손발이 잘려 혈관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고통마저도 즐겁고 기꺼이 임하였다고 한다.
117. 오달존자 (悟達尊者)
당말 고승이며 성은 진(陳)이고 미주홍아(眉州洪雅) 사천사홍인이었다.
다섯 살에 시를 읊을 줄 알았고 소년시절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처음에는 팽주(城都西) 단경산(丹景山)에 거주하였다.
14세 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열반경(涅槃經)』을 강의하였는데 당시 진보살(陳菩薩)이라고 하였으며 이상은(李尙隱)은 그를 위해 시를 썼는데 “14세의 사미가 경을 강론하였으며 곧 스승이 강의함과 같도다. 사미가 설법하고 스님들이 들으니 바른 불법이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심성이 영리함에 있다.”고 하였다.
후에 장안 안국사(安國寺)에 거주하였다.
당선종 원화원년(元和元年 806) 오달국사(悟達國師)의 칭호를 받았는데 전국의 불교영수가 되어 자주 황궁에 초빙되어 황제에게 강경하였다.
함통(咸通) 10년(869)에 당의종이 친히 안국사에 와서 지현오달국사에게 강경보좌를 베풀어 주었는데 좌석높이는 두 장(丈)이며 침향을 재료로 하고 금실로 용봉황의 꽃무늬를 박고 옆에 올라앉는 길도 설치하여 국사가 보좌에 올라 강경하게 하였다.
당의종 중화(中和) 원년(881)에 황건봉기 의군들이 장안을 점령하여 희종이 성도로 이사가고 황제가 촉나라에 있던 지현을 초자하여 궁중에서 희종에게 불경을 설법하고 해석하게 하였다.
다음해 지현은 의종을 떠나 섬서(陝西)에 돌아왔다.
기원 883년에 지현이 입적하였다. 오달국사는 삼학동관(三學洞貫)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데 불학저작은 모두 20여만언(二十余万言)이었다.
제자는 승철(僧徹)이며 승철의 제자는 각휘(覺暉)인데 모두 승통(僧統)으로 임명받고 모두 한때 이름이 높은 고승이었다.
118. 법정존자 (法定尊者)
즉 법정보살이다.
화수경(華手經)4권의 기재에 의하면 세계 한곳의 이름을 덕처(德處)라고 불렀다고 한다.
덕처세계는 과거 부처님 계신 곳에서 살고 계셨는데 이름이 사가주라고 하였다.
법정보살은 즉 사가주불의 현세화신이었다. 불교는 인식하건데 불법이 넓어 광명이 어디나 다 비추고 능히 만물을 비출 수 있어 횃불과 같다는 것이다.
법정보살의 이름과 호칭은 바로 그의 깊고 정묘한 법력도행(法力道行)이 마치 큰 지혜의 등불과 같다는 것을 나타내었으며 중생을 위해 극락정토로 통하는 길을 비추었다.
119. 리구존자 (리구尊者)
존자는 천신으로 그가 첫 번째로 중생에게 예시하여 실달태자가 불타가 되었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 11권의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정반왕의 집에서 출생하였는데 그를 실달태자라고 하였다. 그 후 수년간 바람과 비가 알맞게 와서 우박이 내리는 일도 없고 폭우 폭풍 가뭄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
각종 곡식은 적게 심고 많이 거두었으며 밭의 과일나무는 계절따라 꽃 피고 제때에 열매가 달렸으며 산의 약초들은 무성하여 수시로 사람들이 캘 수 있었다.
전국백성들은 동심동덕(同心同德)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4변의 이웃나라들과 친한 왕래로 전쟁이라곤 없었다. 모든 성시의 주민들은 임신한 자는 편안히 몸풀고 어린 나이에 죽는 자가 없고 사계절 모두 유행병이 없었다.
온 백성들은 모두 이것이 실달태자의 복덕이라고 생각하여 국민의 청으로 정반왕과 실달태자가 아름다운 화원에 와서 국민에게 사례를 하게 하였는데 이 시간에 무수한 영락, 금은, 음식, 의복과 옷을 바쳤는데 누구나 손뼉치고 춤을 추었다.
이때 리구천신은 허공에 떠서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대지와 성이 모두 황금으로 변한다 해도 실달태자의 한가닥 털과 비할 수 없으며 아무리 진기한 영락도 실달태자 앞에서는 광택을 잃으며 곧 불타가 되기 때문에 그의 공덕은 무엇으로도 비할 수 없다.”고 하였다.
리구는 말을 마친 후 자기가 사는 하늘위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120. 경계존자 (境界尊者)
즉 구경계보살(具境界菩薩)이다.
분신왕문경(奮迅王問經) 하권의 기재에 의하면 과거에 한 부처님이 계셨는데 이름이 보무구정광명왕(普无垢淨光明王)이며 구경계보살이 이 부처님께 분신법문을 가르침 받았는데 보무구정광명왕불은 그에게 상세히 진술하였는데 분신법문의 중생들은 삽시간에 모두 아누다라(阿耨多羅) 삼막(三藐) 삼보리(三菩提)를 기원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석가모니께서도 그때 분신법문을 얻었다.
소위 분신은 사자가 삼매에 신속히 달려갔다는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비유로서 몸에 털이 곤두서고 노호하는 무서운 모양을 드러낸 것을 분신이라고 하고, 부처님께서 대비의 문을 열어 대비법계의 몸을 흥분시켜 무서운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사자분신이라 하여 사자분신삼매라고도 하였다.
구경계존자는 이미 무상정등정각을 구비하고 대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번뇌와 노파심을 없애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였다.
121. 마승존자 (馬勝尊者)
법명은 아습박별다, 알비라하며 삭가족인(釋迦族人)이고 5비구중 한 명이었다.
싯달태자가 궁전을 떠나 해탈을 구하려고 뜻을 세웠다. 정반왕의 권고도 소용이 없어서 마승등 5인을 따라 보내어 함께 수련하게 하였다. 싯달태자는 먼저 고난의 수행을 하였는데 후에 고행은 해탈에 무익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마승등은 태자가 타락하였다며 먼저 태자를 떠나 스스로 해탈의 방법을 찾았다.
싯달은 보리수 밑에서 불과를 얻었다. 석가모니께서는 몸에서 신의 빛을 뿜었으며 녹야원에서 마승등 5인에게 법을 설명하였는데 그들로 하여금 최초로 불교에 귀의한 5비구가 되게 하였다.
마승은 풍채가 늠름하고 거동이 장엄하여 늘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사리불은 길에서 마승의 풍채를 보고 경의의 마음이 저절로 생겨 마승을 스승으로 모시었으며 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한명이 되었다.
하루는 이른 아침에 마승과 여러 비구들이 왕사성에 와서 탁발을 하였는데 부자인 한 장자가 먼데서 마승의 위풍을 보고 마음속에서 기뻐서 여러 스님들에게 크게 희사하고 자신의 정원 중에 방 60칸의 집을 지어 마승의 일행이 거주하게 하였다.
마승은 조기에 불교선조를 따라 열심히 배우고 물어 불학지식을 넓혔으며 사람들에게 불법을 널리 전파하여 나한과위를 받았다.
122. 천왕존자 (天王尊者)
즉 천왕보살이다.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의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라열지 기도굴산중에서 설법하고 계실 때 천왕보살과 무리들이 법을 들었다.
천왕보살은 도행이 광대하여 이미 신족통,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다섯가지 신통을 얻었다.
타심통을 얻는 자는 아무 방해가 없이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천왕보살이 중생 각자의 마음에 따라 해탈을 받게 하였다.
불법을 포교할 때 천왕보살은 늘 화기만면을 잊지 않았으며 태도가 겸손하고 거친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마치 환각과 같이 울리는 듯하고, 빛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고, 물안의 거품과 같고, 거울안의 모습과도 같고, 열날 때 뜨거운 것 같고, 물안의 해와 같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깨달아 해탈을 얻게 하였다.
123. 무승존자 (无勝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는데 불교경전 『불성유마힐경(佛性維摩詰經)』 상권 『불국품(佛國品)』제1의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비야리암라수원에서 강론하셨는데 무승보살이 여기서 귀기울여 들었다.
당시 무승은 이미 가깝고 멀리 시방에 이름난 대보살이었는데 그는 자기몸으로 불법을 지키고 외교에 대해서는 견고한 성과 같이 불법을 보감하였다. 그는 지혜와 덕행을 이미 완전히 구비하였으며 불법이 영원히 세상에 전파되게끔 하였다.
그는 자신이 해탈을 얻어 청정하고 혼란이 없는 곳에서 살면서 동시에 대자비를 베풀어 중생들을 인도하여 해탈을 얻게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윤회의 고통과 두려움에서 탈피하게 하였다.
그는 세상 중생의 친한 벗이었으며 청함이 없이도 다가와서 도와주며 그들로 하여금 평안과 행복을 얻게 하였다.
그는 세상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베풀어 주어 마치 하늘에서 감로가 내리는 것 같았다. 무승은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하였는데 말의 뜻이 기이하여 여러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념을 제거하고 그들을 정도로 인도하였으며 또한 그의 설법 소리는 우레가 진동하는 것 같았는데 음성은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아 외도로 하여금 두렵게 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다.
무승보살은 청정국토에서 이곳의 백성들이 안거낙업(安居樂業)하게 하여서 그들은 풍속습관이 소박하고 도박, 주정, 도둑질과 사념(邪念)이 없었다.
124. 자정존자 (自淨尊者)
즉 정심보살(淨心菩薩)이다.
불명경(佛名經 )에서 중생은 평범한 사람으로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마음이 있거나 없거나 많은 죄과를 범할 수 있는데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두고 거두지 않으면 죽은 후에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빠지게 되고 몸으로 잔혹은 형벌을 받으며 하늘을 불러도 응하지 않고 땅에 들어가려 해도 문이 없고 살려고 해도 안되고 죽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오직 중생이 자기의 죄과를 바로 보고 늘 여러 부처님께 귀의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여러 대보살을 대하고 성심으로 참회하면 죄는 멸하고 복이 늘어나 극락세계로 간다.
이처럼 정심보살은 대자비로써 중생을 건지는 일을 하였는데 중생들을 도와 자성청정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125. 부동존자 (不動尊者)
존자는 과거세계의 동방보살이다.
석가모니께서 출생하시기 오래 전에 동방에는 묘희국(妙喜國)이 있었는데 광목여래(廣目如來)전에서 중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대보적경(大寶積經)』 제19권의 기재에 의하면 당시 비구가 있었는데 보살과위를 얻으려 하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손을 합장하여 광목여래에게 서원을 하였는데, 이후의 수행 중에서 남을 모해하지 않고 남을 기만하지 않고 어떤 사람과도 참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여래의 교시에 자기의 지혜를 더하여 무변의 지혜로 최종의 해탈을 획득하였다.
또한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여 마음을 물처럼 청정하게 하고 영원히 탐심과 공포와 원한과 증오에 혼란되지 않았으며, 자비의 마음을 품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여러 부처님을 경배하고 영원히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비구는 서원한 후 끊임없이 수행하여 모든 부처와 모든 천왕 및 범세주(梵世主)들이 모두 좋아하였고 이 비구는 보살과위를 얻고 호칭은 부동보살이라고 하였다.
126. 휴식존자 (休息尊者)
즉 다수현자(多睡賢者 )이다.
불설무량청정평등각경(佛說无量淸淨平等覺經)제1권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왕사성 영취산 중에서 설법할 때 이 존자는 일찍 가서 설법을 들었다.
소위 휴식은 많이 자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 존자가 불법알기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며, 늘 몽중에 들어서는 것은 이 존자의 휴식을 조절하는 것으로 선정을 다하여 생각은 한곳에 집중하고 산란하지 않으므로 수면상태에 있는 것과 같고 늘 휴식하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127. 조달존자 (調達尊者)
또 제달파라고 하였는데 불교선조 석가모니의 종형(從兄)이었다.
조달은 어릴 적부터 악습에 젖어 불교를 반대하고 여러 차례 석가모니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대반열반경(大盤涅槃經) 제 17권의 기재에 의하면 아도세왕이 아직 불교에 귀의하지 않았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왕사성에 이르러 집집마다 다니며 탁발하였는데 조달의 선동하에 아도세왕은 재물을 보호하는 미친 코끼리를 내몰았고 미친 코끼리는 거리에서 내달렸는데 백성들을 마구 짓밟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정면으로 부딪쳤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손바닥을 내밀어 신통력을 발휘하여 다섯 손가락에서 5개의 사자머리가 나오게 하자 코끼리는 두려워서 엎드려 석가모니 부처님께 경례하고 불법에 귀의하였다.
후에 조달은 불교에 귀의하였는데 혼자서 심산에서 12년을 수행하여 외운 경전은 큰 코끼리 6마리로 다 싣지 못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는 권세를 이용하여 중생의 회사를 자기의 소유로 삼았으며 여러 중생 앞에서 의도적으로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여 남보다 존귀하게 보이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출가 후 쌓은 공덕은 원망의 불길에 다 타버렸는데 죽은 후 아비지옥에 빠졌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 목련을 지옥에 파견하여 위문하고 계율을 지켜 게을리 하지 말고 일찍이 고해(苦海)를 떠나라고 격려하였다.
조달은 지옥의 입구에서 남무(南无)라고 염불하고 부처님의 이름을 말하며 종일 피곤하지 않아 끝내 획득하였고 후에 공덕을 쌓아 환생하여 부처님이 되었는데 불명은 남무(南无)였다.
128. 보광존자 (普光尊者)
즉 보광보살이다.
대반야파라밀다경(大般若婆羅密多經)의 기재에 의하면 동방에 무수히 많은 모든 불제자 중에서 제일 마지막 세계의 이름은 다보(多寶)라고 하였는데 그 세상에 주지한 이는 보성여래응정(寶性如來應正)으로 감각이 밝아 원만히 행하고 이 세상에서 선하게 세상을 떠난 해무상장부조어사천인사불(解无上丈夫調御士天人師佛) 박가범(薄伽梵)이었으며 보광은 다보세계의 첫째가는 보살이다.
때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 구봉산 꼭대기에서 법을 설법하려고 준비를 하였는데 면문(面門)이 광명을 뿌리었다.
보광보살은 다보세계를 비추는 불광을 보고 무슨 일인지 몰라서 보성여래 부처님에게 물어보았는데 보성여래 부처님은 그에게 『대반야파라밀다경』을 석가모니께서 곧 설법하신다고 알려주었는데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는 곳에 신통자재(神通自在)를 연마하여 선법을 쥐고 흩어지지 않게 악법이 일어서지 못하게 하였다.
129. 지적존자 (智積尊者)
옛날 3천진점겁(塵点劫)에 한 부처님께서 출생하셨는데 불명은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다.
대통지승불은 아직 출가하기 전에 16왕자가 있었는데 17왕자는 부왕의 영향을 받아 출가하여 수행하려고 결의하고 해탈을 찾았다.
법화경(法華經) 화성유품(化城喩品)의 기재에 의하면 16왕자의 첫 번째 이름은 지적(智積)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대통지승이 출가하여 불의 과위를 얻었는데 지적 등 16왕자가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고 대통지승불로부터 수문삼승(受聞三乘)하였다. 처음에는 자비심이 생기고 불을 청하여 대승묘법의 설법과 또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해 준 법화경의 설법을 들었다.
대통지승불은 『법화경』의 해설을 마친 후 곧 정실에 조용히 입정하여 3만4천겁 에 달하는 긴 시간을 수정(修定)하였다. 부처님께서 수정하는 기간에 지적 등 16왕자는 서로 법좌에 올라앉아 사부대중들에게 『법화경』을 반복하여 강의하였다. 현재 지적 등은 이미 부처가 되어 16존자와 각기 8방에 거주하고 본토의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130. 보당존자 (寶幢尊者)
즉 보당보살이다.
승천왕반야파라밀다경(勝天王般若婆羅密多經)등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거주하시는 사파세계의 위쪽에는 10항하세계를 사이에 두고 한 불국세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불동(佛動)이라 하고 그 불호는 금강상(金剛相)인데 보당은 이 금강상불전의 보살이다.
석가모니께서 왕사성 기굴산에서 설법하실 당시에 보당보살은 이미 깊고 깊은 법성을 통달하고 여래의 깊은 경지에 도달했으나 세상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았다. 또 불설관상불모반야파라밀다보살경(佛設觀想佛母般若婆羅密多菩薩經)에서는 사람들에게 진언을 읽고 외우라고 가르쳤는데 손으로부터 머리위까지 전신을 문지른 후 사념을 버리고 일심으로 불모 및 여러 불보살을 관상(觀想)하라고 하였는데 그 중에 보당보살이 포함되어 있다.
131. 선혜존자 (善慧尊者)
남북조시대의 저명한 거사이며 남제쌍림향인(南齊雙林鄕人)이며 성은 진(陳)이고 이름은 흡(翕)이며 호는 선혜대사인데 명제건무(明帝建武) 4년(497)에 태어났다.
온 가족이 부처님을 모셨는데 처는 묘광(妙光)이고 두 아들의 이름은 보건(普建), 보성(普成)이었다.
선혜는 낮에는 몸소 산밭을 가꾸고 밤에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송경수선(誦經修禪)하며 겸하여 유도제자전적(儒道諸者戰籍)』을 읽었다. 7년 고행 후에 수능엄경을 통달하여 제자들이 사방에서 배우러 왔는데 원근각처에 그의 이름이 퍼졌다.
양무제대동원년(大同元年 535)에 명을 받고 중운전(重云殿)에서 강경하였다. 무제가 친히 경을 들으러 왔을때 여러 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영접하였는데 유독 선혜는 앉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왜 일어나서 영접하지 않느냐고 하니, 말하기를 “만약 법지가 움직이면 일체가 불안하다.”라고 하였다. 후에 떠나서 고향에 돌아왔다. 얼마 후 전란이 도처에서 일어나 양조가 멸하고 진조가 일어섰다.
선혜는 집에서 신도들을 크게 모아 설법을 계속하고 늘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손가락에 불을 붙이고 팔을 불태움으로써 부처님(佛)을 모시었다.
진선제태건원년(陳宣帝太建元年)(569년) 4월에 여러 제자들을 집결하고 그들에게 근면하고 절대 게을러서는 안된다고 타이르고 앉은 그대로 세상을 떴다.
그해 그의 나이는 73세였다.
132. 선안존자 (善眼尊者)
즉 선안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에 참가하였다. 『대보적경(大寶積經)』제90권의 기재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대비구들과 여러 보살들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석가존자께서는 마치 용상왕(龍象王)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관찰하고 여러 보살들에게 이르시기를 “선남자여, 너희들 중 누가 능히 후말세에 정법을 호지하고 여래백천만억나를 섭수(攝受)하고 그 아승지겁에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법을 모으고 비밀을 지키고 여러 방법으로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것이냐?”고 물었는데 선안보살은 대답하기를 “나는 능히 모든 중생을 자성안락(自性安樂)시킬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는 인식하건대 모든 법은 각자가 불변불개의 성(性)이 있다고 하여 이름을 지성이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심은 자성청정하여 이름을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하는 것이며 또 이름을 여래장심(如來藏心), 진심(眞心), 보리심(普提心)이라 한다.
보리심은 어떤 때는 감추이고 마치 거울이 먼지에 가리우듯이 드러나지 않는다.
선안존자는 중생을 잘 인도하여 마귀에게 잡히지 않게 하며 마음이 밝고 견성하여 정통에 이루었다.
133. 용보존자 (勇寶尊者)
존자는 한편 보용(寶勇)이라고 했다.
불덕을 구하고 불성을 보배로 여기며 용맹하게 불덕불성을 추구하여 용보라고 불렀다. 존자는 이미 보살 과위를 얻었다.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권상 『불국품(佛國品)』제1권의 기재에 의하면 용보보살은 불의 지혜로 심성을 수양하고 이미 세속의 윤회환생을 탈피하였으며 안심하고 청정하게 살아 영원히 번뇌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불법교의를 믿음이 견고하여 금강석처럼 퇴전하지 않는다. 또한 불법을 홍포하고 그 말이 기묘하여 중생의 일체 사념을 끊어버리며 불법을 나타냄이 마치 사자의 노한 울부짖음과 같아서 일체 외도를 모두 쳐부수었다.
용보보살은 세상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마치 하늘에서 감로가 내린 듯하며 만물에 영양을 주어 마치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어 우주 내에 무성히 자람과 같았다. 용보는 의술을 정통한 대의왕(大醫王)처럼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주었다
134. 보견존자 (寶見尊者)
즉 보견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예를 들면 『유마힐소설경(維摩詰小說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비야리암라수원에서 법회를 거행하였는데 그는 그 장소에 있었다.
보견보살은 신통광대하여 마귀를 굴복시킬 수 있고 외도를 제지하였으며, 세상의 일체 좋은 것을 다 버리고 오직 공덕지혜로 마음을 지켰으며 중생의 마음과 뜻을 잘 이해하고 모든 법의 심오한 뜻을 명확히 알았다.
도사처럼 차례로 선유(善誘)하여 중생을 도와 해탈에 도달하게 하였으며 신앙은 금강처럼 견고하고 가르침은 감로처럼 촉촉하며 그의 소리는 음율처럼 아름다웠다.
불교교의를 홍포하기 위하여 그의 목소리는 어떨 때는 사자의 노호소리 같고 또 하늘의 우뢰소리와 같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깨닫게 하였다.
135. 혜적존자 (慧積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획득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시에 혜적은 늘 석가세존의 강경을 들었으며 『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제3권 기재에 의하면 혜적보살은 사람들 앞에서 불교진리의 전제를 이야기하였는데 석가모니의 칭찬을 받았다.
혜적보살은 덕행을 구비하고 능력이 있어 불법으로 하여금 영원히 세상에서 유전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미 해탈을 획득하였으며 청정안주하고 동시에 대자비를 베풀어 중생이 해탈을 얻도록 인도하겠다고 서원하였다.
중생을 널리 건지려면 신통력이 필요함으로 존자는 이미 신통을 구비하여 중생들을 무수히 구하였다.
존자의 이름은 멀리 시방세계에 알려져 명예로움이 수미산보다 더 높았고 중생들의 다정한 벗으로서 요청치 않아도 다가와서 도와주며 중생을 인도하여 대승불해(大乘佛海)에 들게 하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불보진체(佛寶眞諦)를 얻어서 중생을 세속의 얽매임에서 떠나게 하고 중생을 위하여 번뇌와 두려움을 제거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준 은혜는 마치 하늘에서 감로비가 내린 듯하였다. 혜적은 지혜로서 이름이 저명하였다.
136. 혜지존자 (慧持尊者)
동진의 스님이다.
성은 가(賈)씨이고 안문루번인(雁門樓煩人)이며 명승 혜원의 동생이었다.
천성이 총명하여 박식다재하였다. 18세때 형인 혜원과 같이 태행항산 도안(道安)에 귀의하고 불교경전을 다 펄쳐보았다. 후에 형과 도안에서 작별하였으며 먼저 형주(刑州) 상명사(上明寺)에 거주하다가 후에 또 여산에 와서 동림사(東林寺)에 거주하면서 전법하였다.
그 후 혜지는 고도의(姑道儀)를 호송하여 경두에 와서 동안사에 거주하고 랑아왕 사마순(司馬珣)의 중시를 받고 일찍 사마순 요청에 응하여 열서역승인(閱西域僧人) 승가라차(僧伽羅叉)가 있는 곳에서 『중아함경(中阿含經)』을 번역하였다. 후에 여산에 다시 돌아왔다. 태수 법정 요청에 응하여『법화』등의 경을 설법하였는데 사방에서 배우러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구마라선(鳩摩羅什)도 경의를 표시하는 편지를 보내왔으며 친구로 사귀었다. 그는 성도의 땅이 기름지고 백성들이 풍작을 거둔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가 전교하려고 결심하였는데, 형 혜원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므로 인생은 합하기를 좋아하거늘 넌 왜 떠나기를 즐겨하는가?, 라고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만약 정 때문에 한 곳에 머무는 자는 응당 출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욕구를 자르고 도를 구하려는 것은 바로 서방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융안(晋隆安) 3년을 촉나라에 들어가 용연사(龍淵寺)에 거주하면서 널리 불법을 포교하였다. 촉나라 사람 초종이 암살자인 모거(毛據)를 죽이고 땅을 나누어 각기 거주하였는데 혜지는 피난하여 비현중사에 있었다.
국세가 평정된 후 용연사에 돌아와서 경을 강설하고 계율을 지키며 불심이 돈독하였다.
의희(義熙) 8년에 원적하였는데 나이는 76세였다.
137. 보승존자 (寶勝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또한 보현보살의 일체공덕을 구비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제60권의 기록에 의하면 보승보살은 마음대로 법계를 두루 왕래할 수 있고 능히 무수한 화신으로 변화하여 동시에 다른 지점에 나타나며 법안이 청정하고 장애가 없어 능히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체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중생들에게 유익을 주고 고난에서 건졌으며 그 자비의 마음은 끝이 없어 빛을 비추는 곳마다 모두 청정하여 졌고, 자기의 지혜로 무궁무진한 신통력을 행하여 수시로 중생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으며 각종 화신으로 변하여 세상 사람들을 고난 속에서 구원하였다.
보승보살은 이미 불교의 진제를 얻고 법성이 두터워 영원히 세속을 탈피하였으며 부처님의 공덕에 의하여 마음은 조용하고 먹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처럼 깨끗하였다.
보승보살은 세상의 모든 부처님을 찬양하였으며 맹세하기를 불법을 보호하여 불교를 세상에서 끊임없이 유전되게 하고 세세대대로 환생하여 불교를 국토에 전파함으로 일체 무량의 지혜를 찾겠다고 하였다.
138. 도선존자 (道仙尊者)
또는 승선(僧仙)이라고도 한다. 강거국(康居國)인이다.
원래 상인이었는데 성질이 탐욕스럽고 재산이 많지 않았다. 상업에 종사하느라 재주신성군(梓洲新城郡) 우두산(牛頭山)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사의 설법을 듣고 내심으로 깨우쳤다.
두 배에 실은 재물이 강물에 가라앉자 곧 관구죽림사(灌口竹林寺)에 출가하여 맹세하기를 도를 닦지 못하면 이 산을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분은 인적이 없는 곳을 선택하여 수행하였는데 주위에는 오직 선을 학습하는 승려들만 있었다. 선정에 참선하여 한번 앉으면 4~5일이었으나, 일단 손님이 문에 도착하면 즉각 알고 일어나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남량시흥왕(南梁始興王)이 소담진 사천을 지키고 있을 때 도선에 대해 경탄하고 천감(天監) 16년에 청계산에서 영접하였고 도선은 이 산에서 죽기로 하였다.
산에 있은 지 28년 후 도선은 산을 내려가 불법을 널리 전하였는데 그 영향이 매우 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수촉왕 양수(楊秀)가 사람을 파견하여 도선을 만나보려 하였는데 도선이 명에 복종하지 않으므로 양수는 크게 노하여 친히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도선을 잡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도선은 이 말을 들은 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단정하게 앉아서 염불하였다.
양수가 산 아래까지 왔을 때 갑자기 큰비가 퍼붓기 시작하고 우박이 쏟아져 물이 하천에 넘쳤다. 양수와 병사들은 몸둘 곳이 없어 산을 향해 배례하고 참회를 표시하자 하늘의 노여움이 풀리고 산길이 청결해졌다. 도선은 양수에게 설법하였는데 성도정중사(城都靜衆寺)에도 요청을 받고 갔다. 개황(開皇)중 청계산에 다시 돌아와 백여 세에야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139. 제망존자 (帝망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획득하였다.
불교경전 『불설유마제경(佛說維摩詰經)』상권 『불국품(佛國品)』의 기록에 의하면 제망보살은 일찍 비야리암라수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제망보살은 불법을 지키고 지혜와 덕행을 모두 구비하여 불법으로 하여금 영원히 세상에 유전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망은 덕망이 높아 마치 사자의 노호소리처럼 널리 시방(十方)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분은 세상에 널리 자비를 베풀어서 중생을 인도하여 생사윤회의 고통과 두려움에서 탈피하게 하고 일체 죄악으로 통하는 길을 닫아버렸으며 극락세계로 달려가게 하여 마치 의술에 정통한 대의왕(大醫王)처럼 대중으로 하여금 번뇌를 단절하고 탈겁을 받게 하였다.
제망은 중생들에게 설법하였는데 그 언어가 기묘하여 마치 중생을 인도하여 중생불해에서 자유향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외도에 대해서는 그의 불법연설은 마치 무서운 사자의 노호소리처럼 청천벽력 같아서 외도로 하여금 굴복하고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다.
제망보살은 신통광대하여 변화가 자연스러웠으며 마치 공중에서 바람을 따라 변하는 뜬구름처럼 변화를 알 수 없었다.
140. 명라존자 (明羅尊者)
또는 명망, 즉 명망보살이라 하였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회의에 참가하였으며 『불설여래불사의비밀대승경(佛說如來不思議秘密大乘經)』은 그가 쓴 것이다.
명망보살은 능히 여러 마귀들을 굴복 제압시킬 수 있었고 모든 논의를 다스렸으며 또 중생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자기의 절대적인 지혜로 상대에 따라 설법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 파라밀다리교법문(婆羅密多理敎法門)에 들어서게 하고 교묘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구경최상피안(究竟最上彼岸)에 도달하게 하였다.
명망보살은 마음이 평등하여 마치 땅, 물, 불, 바람의 인연이 허공처럼 멀었다, 그는 이미 금강견고의 몸의 대명창으로 일월의 빛을 바라니 그는 사자가 금수왕이 되듯이 법을 견양하여 세상 사람을 제도하였다.
141. 보광존자 (寶光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고 보현보살의 일체품행과 공덕을 구비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제 60권의 기록에 의하면 보광보살은 이미 불법의 진제를 획득하였으며 무릇 불교에 대한 이론을 모두 마음 속 으로부터 이해를 하였고 법성이 깊고 견고하여 번뇌와 근심걱정에 휘감기지 않고 영원히 세속세계를 탈피하였다.
보광은 신통 자재하여 마음대로 세계각지를 내왕할 수 있으며 법안이 청정하여 장애가 없어 세상유정이 발생하는 일체 선악의 모든 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능히 무수한 화신으로 변할 수 있고 동시에 세상의 여러 지점에서 나타나며 요청이 없이도 백성들을 친구로 사귀고 그들의 평안길상을 보호하였다.
보광은 지덕이 무궁하여 자기의 지혜로써 중생들의 유익을 위하고 세상의 질고를 제거하며, 그의 공적은 마치 공적무변의 태공(太空)같았고 또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같았다.
보광은 불법을 굳게 믿고 일찍이 세상의 모든 불타를 부양하였으며 불법을 보감하고 불법이 영원히 세상에 전파되게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142. 선조존자 (善調尊者)
즉 일장(日藏)보살이다.
법원주림(法苑珠林)59권에 의하면 5백인이 모든 불을 공양하고 보살승을 배웠으나, 후에는 악한 지식을 가까이 하여 악업을 하고 축생에 빠져 말이 되어 살며 파라문에서 사육되었다.
일장보살은 그들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변신하여 말로 태어나 말 5백 마리의 본래 도심(道心)을 불러일으켰다.
석가모니께서 이곳에 오셨을 때 한 파라문이 불타께 공양하겠다고 하였으나 불타께서는 그가 변심할 것을 알았지만 말 5백 마리를 지나 그 파라문 집까지 오셨다. 파라문이 음식을 주지 않아 일장보살은 말의 소리로 여러 말에게 설법하여 그들더러 자기음식의 절반을 여러 스님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고 그 자신도 절반을 불타께 바치었다.
그 후 석 달 후 5백 필의 말은 모두 목숨을 끊고 하늘에 올라가 천자(天子)가 되었다.
그들은 또 불타께서 계신 곳에 와서 묘법을 듣고 모두 아뇩보살이 되었다.
불타께서 예언하시기를 미래 세계에서 이 5백 천자는 모두 벽지불이 되고 일장보살도 부처가 되어 그 호칭을 선조여래라 한다고 하였다.
143. 분신존자 (奮迅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분신왕보살이라 불렀다.
분신은 맹수가 분노하여 울부짖는 형상을 나타내고 또 용감히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 존자가 화낼 때면 대지에 6가지 진동이 발생하는데 대지의 진동에 따라 지옥 속의 중생, 외도의 신도들이 모두 해탈을 획득하였다.
『신분왕문경』의 기록에 의하면 분신왕보살은 일찍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면 무상의 지혜와 일체 진기를 다 알 수 있고 불법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지를 배웠다. 석가모니께서는 분신왕보살에게 4가지 분신을 해야 된다고 알려 주셨는데 첫 번째는 계(戒)분신으로 엄격히 계행을 준수하여 심신의 잘못을 금하여 막고, 두 번째는 통(通)분신으로 선정의 수련을 통하여 신통력을 얻고 신체의 자유로운 변화에 조금도 장애가 없으며, 세 번째는 지(智)분신으로 사리의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며, 네 번째는 혜(慧)분신으로 심성이 어둡지 않고 사물의 발전변화의 법을 통달한다.
분신보살이 기도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평안하며 일체재난에서 멀리 떠나 자신의 악습과 과오를 없애고 정등정각(正等政覺)을 획득한다. 죄악을 범한 사람이 목욕하여 몸을 씻고 의복을 깨끗하게 하며 보살 앞에 무릎 꿇고 입으로 보살의 이름을 외우면 죄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144. 수도존자 (修道尊者)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불교는 보살승(菩薩乘)을 수습하는 과정을 10지(地), 또는 10주(住)라 부르는데 즉 발심주(跋心住), 치지주(治地住), 수행주(修行住), 생귀주(生貴住),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정심주(正沁住), 불퇴주(不退住), 동진주(童眞住), 법왕자주(法王子住), 관정주(灌頂住)로 나누었다.
첫 번째 발심주로부터 네 번째 생귀주의 이름을 ‘입성태(入胎胎)’라고 하였는데 다섯 번째 방편구족주부터 여덟 번째 동진주의 이름은 ‘장양성태(長養成胎)’라고 하였으며 아홉 번째 법왕자주의 형상은 구족으로부터 출태하는 보살이며 불사를 행하여 부처로써 지혜의 물을 관정함으로 열 번째는 관정주이다.
첫째부터 열 번째까지 전체과정을 ‘수도’라고 한다.
수도존자는 즉 차례로 점차 나아가 보살이 되었다.
145. 대상존자 (大相尊者)
대상’은 존자의 과거세상의 이름과 호칭이며 보살과위를 응당 얻었다.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菩薩行方便境界神通變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과거 세상에 당시 석가모니께서 아직 부처의 과위를 획득하지 못했을 때 당시의 세존 불께서 여러 신도들에게 수기(授記)하였으며 장래에 누가, 언제, 어디서 부처님이 될 것인가를 예시하셨다.
그 중 대상보살이 있었는데 원래는 외도의 한 소동자였으나 총명과 지혜는 세상의 동자들을 초월하여 이름을 ‘환희’라고 불렀으며 불교에 귀의한 후 공덕이 원만하고 품성이 구족(具足)하여 보살과위를 얻고 이름을 대상이라 하였다.
대상보살은 석가모니께서 부처님이 될 때 다시 세상에 출생하여 이름과 호칭을 문수보살이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문수보살 즉 대상보살의 후세신이 부처의 과위를 얻었을 때 호칭을 ‘대장엄여래(大藏嚴如來)’라고 하였다.
146. 선주존자 (善住尊者)
또 선주천자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욕계 육천중의 도리천(도리천 또는 33천, 제석천 중앙에 있었고 사방에 각 8천이 있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의 여러 천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착한일을 하지 않아 7일 후 목숨이 끊어져 환생하여 짐승이 되고 또 지옥속에 빠져 고난을 받을 것을 알고 이 공포감에 급히 제석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석천은 지원정사(祗園精舍)의 부처님께 가르쳐 달라고 하였는데 불타는『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을 선주에게 외우도록 가르쳤다.
선주는 성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정과를 이루어 나한이 되었다.
조각상의 표정이 한 곳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성심으로 경을 염불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147. 지세존자 (持世尊者)
존자는 보살의 과위를 얻었다.
불교경전 지세경(持世經)의 기록에 의하면 지세보살은 일찍이 5백 대비구 및 모든 대보살과 함께 왕사성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서 불교교주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었다.
지세보살은 심성이 유연(柔軟)하여 치욕을 참고 책임을 다하는 덕성이 있었으며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근면하게 교학의 이론을 학습하여 선정에 정통했고 그 심성은 무겁고 조용하여 허공과 같았다.
지세보살은 자비의 마음으로 세상의 일체 중생을 동정하여 3천 대천세계에 이익을 주는 것이 소원이었으며 중생의 원한, 공포와 번뇌를 제거하고 중생에게 광명의 길을 가르쳐 주어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환생의 고통을 탈피하고, 환생하여 생축(牲畜), 아귀 및 지옥에 빠지지 않는 것을 꾀하게 하고, 중생들이 불법을 믿도록 인도하고, 또 이 세상에서 평안길상(平安吉祥)하고 저승에서 늙고 병들어 죽는 고생을 벗어나서 환생하여 극락세계로 가게 하였다.
지세보살은 일심으로 불법을 호지하여 불교로 하여금 세상에서 크게 광명을 비추게 하였다.
148. 광영존자 (光英尊者)
즉 광영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에 참가하였다.
대보적경(大寶積經),불설순진타라니소문여래삼영경(佛說純眞陀羅尼所門如來三映經)의 기록에 의하면 광영보살의 마음은 마치 금성맹약처럼 단단하고 무엇으로도 잘라버릴 수 없으며, 또 산, 물, 불, 구름처럼 평등하고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이 오직 자비심으로 세인들을 구원한다.
광영보살은 여러 불법 일체를 터득하고 모든 불법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능히 자기의 법력으로 중생의 마음을 명백히 알아 인심에 따라 기쁘게 하기도 하고 법으로써 밝히기도 한다.
의왕(醫王)의 덕을 구비하여 능히 유행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환사인현경(幻士仁賢經)중에서 광영보살이 이르기를 “비유하여 환사(幻士)라면 인현(仁賢)이 이곳에서 나타나니 일체 세상이 역시 그러하여 우매한 자는 깨우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149. 권교존자 (權敎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다.
세상의 중생들 중 대다수는 모두 부귀영화를 탐내어 인정의 그물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기에 무궁무진한 번뇌와 심격청찬에 빠진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불교를 따르려고 하여 불교의 교의와 계율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법성이 아직 견정하지 못하기에 수행할 때 수차의 환생이 필요하며, 얼마나 환생해야 비로소 불법의 진리를 깨달을지 모르고 언제 최종의 해탈을 얻을지 모른다.
권교보살은 심성이 자비하여 중생이 고통에 싸이는 것을 동정하여 권의지법(權宜之法)으로 중생의 일시적인 고통을 해결하였다.
권교보살은 중생을 도와 구원해 주었는데, 마치 집에 불이 나서 전 가족이 불화에 포위되어 생명이 위급한 경우처럼 위급한 찰나에 대중들을 도와 불속에서 중생들이 헤쳐 나오게 하였고, 구원받은 사람은 비록 최종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희망이 없던 곳에서 생명을 얻고 불타버림을 면하게 되었다. 중생이 일 푼이라도 고난을 멀리 떠나 갈 수 있으면 권교보살께서는 곧 기이한 방법으로 일 푼의 자비심을 베풀어 중생을 싣고 그 고난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150. 선사존자 (善思尊者)
즉 선사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에 참가하였다. 대보적경(大寶積經) 102권의 기록에는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도굴산에서 설법하셨다고 했는데 선사보살은 참석하여 귀기울여 들었다고 했다.대반야파라밀다경(大般若婆羅密多經) 576권의 기록에 의하면 선사보살은 용길상보살(龍吉祥菩薩)과 함께 하였는데, 용길상보살은 단정하게앉아서 입정하였는데 선사는 그가 빨리 출정(出定)했으면 하여 법력을 발휘하여 3천 대천세계의 모든 산과 대지를 진동하였으나, 용길상은 심신이 평온하였고 동하지 않았다. 후에 용길상은 출정하였는데 하늘의 꽃 향기에 선사가 그에게 부동지리(不動之理)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용길상은 “선사께서 아시듯이 만약 모든 심신이 동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면 대지 또한 흔들리나, 모든 불세존(佛世尊), 불퇴보살(不退菩薩) 및 대독각대아라한(大獨覺大阿羅漢)께서는 심신이 안정하여 동(動)에서 멀리 떠나 모든 법에 있어서 움직이고 돌고 기울어지고 동요함을 보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선사는 묘법을 완전히 깨달았다.
151. 법안존자 (法眼尊者)
존자의 성은 곽(郭)가이고 이름은 문익(文익)이며 5대 여항(余杭 절강성항주시북인)이다. 7세에 출가한 후 희각화상(希覺和尙)을 따라 불교율장(律藏)을 배웠다. 문익은 문장을 잘 지었으며 언변도 예리하여 희각스님은 그를 다시 보았다. 그 후 그는 고승을 찾아 선법을 학습하였는데 비록 노력을 하였지만 시일이 많이 지나도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고승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탐구하였다. 문익은 장주에서 나한천을 만난 후 나한천의 도움으로 불리(佛理)를 순식간에 깨우치고 그로부터 나한천을 따라 법을 배웠다.
나한천이 입적한 후 문익이 그 뒤를 계승하였다. 문익은 부지런히 정진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당시 남방의 이름난 고승으로 소문이 났고, 자기 절에서 자신의 교파를 세우고 제자를 모집하였다. 문익은 제자 및 여러 대중들을 가르치고 강법 할 때 매 사람의 특성에 따라 말할 것을 주장했는데,“병에 따라 약을 주고 몸에 맞추어 옷을 하는것“이라고 하여 제자 및 대중들의 찬양을 받았다. 남당중주(南唐中主)이경(李璟)이 문익을 영접하여 금릉(지금의 남경시) 보은원에 거주하게하고 스승의 예로 대해 주며 정혜대사(淨慧大師)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그를 위해 새로 지은 청량사에 거주하게 했다. 문익은 이경에게 계를 주고 불법을 강론하였다.
현덕 5년(958) 문익이 시적 하였는데 그해 나이는 74세였으며 대법안(大法眼)의 호칭을 받았기에 문익이 창립한 교파를 ‘법안종(法眼宗)’이라 불렀다.
152. 범승존자 (梵勝尊者)
대덕이란 이름을 떨쳤다.
불교 중에서 범(梵)은 청정을 뜻하는데 『지도론(智度論)』제 12권에 말하기를 “법명은 욕계를 떠나 청정하다.”고 하였고 『현응음의(玄應音義)』제6권에서 또한 말하기를 “범언(梵言)은 범마(梵摩)라고 하는데 조용한 것을 선택하는 것 또는 청정, 정결한 것을 말한다.”고 했다. 범승존자는 어릴 적에 출가하여 열심히 범행(梵行)을 익혔다. 소위‘범행’은 『법화가상소(法華嘉祥疏)』 제7권에 의하면 “일체의 계(戒)를 모두 일컬어 범행이라 하며 달리는 단음(斷淫)하는 것을 범행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범승존자께서는 음욕을 철저히 단절하고 일체 계율을 힘써 준수하여 구족청백(具足淸白)의 모습을 이루어 아라한 과위를 얻었다.
153. 광요존자 (光曜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또 광요망보살(光曜망菩薩)이라고도 불렸고, 북방불토 이암명세계(이暗冥世界)의 대보살이다. 광요는 일찍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상술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만물의 생생멸멸은 마치 환사(幻師)가 환술을 펼쳐 보이는 것과 같으며 환사의수법의 변화로 중생이 세계의 천변만화(千變万化)를 볼 수 있다고 보고, 이로 인하여 각종 복잡한 감정이 일어나는데 만약 환사가 변환을 정지한다면 세상만물은 곧 정지부동하며 중생의 칠정육욕(七情六欲)이 없어진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은 한 번의 큰 꿈과 같아서 사람이 꿈속에서 약간의 경상(景象)을 보고 깨어난 후면 일체는 곧 없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몽경(夢境)을 탈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절대로 유정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유정을 해탈 하는 것은 곧 해탈이며 해탈 이후 다시 유정에 이끌리지 않으면 곧 정과를 획득할 수 있다고 하셨다. 『대애경(大哀經)』의 제1권의 기록에 의하면 광요보살은 이암명세계와 여러 보살들에게 법론도(法論道)를 설법하고 홀연히 중생 속으로 사라졌는데 잠시 후 석가모니 부처님의 거처로 날아와 진주보석으로 만든 영락(瓔珞)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 위에 덮어놓고 머리를 땅에 박고 부처님께 경례하고는 부처님의 공덕을 쌓았다.
154. 직의존자 (直意尊者)
덕을 쌓아 존경받았다.
직의존자는 성품이 바르며 출가 후에 무슨 일이든 모두 직심(直心)으로 하였다. 소위 직심은 정직하고 아첨할 줄 모르는 마음인데 이것은 불법을 익히는 근본이다.
『유마경(維摩經) 불국품(佛國品)』에서 말하기를 “직심은 보살정토이다.”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보살품(菩薩品)』에서는 또 말하기를 “직심은 도장(道場)이다.“라고 하였고, 『능엄경』 제1권에서는 “시방 여래가 동일한 도인데 생사를 떠나는 것은 모두 직심이다.”라고 하였다. 직의존자는 늘 성실하고 바르게 사람을 대하며 일을 하여 아라한 과위를 이루었다.
155. 마제존자 (摩帝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다.
마제는 또 마지(摩地), 마제(摩提)라고도 하였는데 뜻을 번역하면 현명하다는 것이다. 능가아발다라보경 제1권의 기록에 의하면 마제보살과 대혜보살(大慧菩薩)이 세상의 제불을 참배하러 돌아다닐 때, 석가세존께서 세상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남해 빈릉가산(濱楞加山) 꼭대기에 모이셨는데, 이 두 보살은 이 산에 이르렀고 석가모니와 그 외 제불은 두 보살을 관정가지(灌頂加持)하였으며 또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마제보살은 오래 선정하기를 즐겨하였는데 염려와 의심을 끊고 심신이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서 신통과 지혜와 방법을 높였다. 세상 모든 부처님은 공덕은 무량하였으나 중생을 구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다. 마제는 여러 부처님들이 중생을 구원하는 방법을 보고 그것들을 기억해두었다. 세상의 유정중생들은 빈부가 불균하며 존귀와 비천이 불평등하고 노소의 차별이 있으나 마제보살은 대중을 평등하게 대하여 세상 각처의 어려운 자들을 각각 돌봐주었다.
156. 혜관존자 (慧寬尊者)
또 혜관(慧寬)이라고도 하며 중국당대 고승이었다.
사천 면죽인(綿竹人)이었다. 성은 양(楊)씨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혜관은 소년 시절에 유난히 총명하여 신동이라 하였다. 매번 그와 누나가 같이 있을 때면 앉아서 선론도(禪論道)를 하는데 그의 말은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매번 사람들이 그의 말을 박식한 서사에게 물어보면 선사는 크게 감탄하면서 깊고 묘한 불교의 이치라고 말하였다. 후에 그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윤법사(胤法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산중에서 조용히 30년을 수행하였다. 영휘 4년에 성도 정혜사(靜慧寺)에서 원적하였는데 향년 70세였다.
157. 무승존자 (无勝尊者)
존자는 불교선조 석가모니의 전세신이다.
대승비분타리경(大乘悲分陀利經) 제7권의 기록에 의하면 한 나라의 이름이 염부제(閻浮提)라고 하였는데 국왕 무승은 석가모니의 전세신으로 그에게는 천 명의 아들이 있었다. 무승 및 그 전국의 백성들은 모두 불교를 믿고 모시었는데 그의 권유하에서 1천명의 아들은 모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오직 여섯 아들이 세상에서 생활하기를 원했다. 무승은 국토를 여섯으로 나누어 여섯 자식에게 주어 관리하게 하고 자기도 출가하여 수행하러 갔다. 그러나 아들 여섯은 서로 맞지 않아 상호 출정하여 싸워서 천신이 노하였고 이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오곡을 거두지 못하고 유행병이 돌아서 초목이 말라들고 새와 짐승들의 먹이도 없었다. 중생들의 어려운 시기에 무승은 장수산(障水山)에 올라가 서원하였는데 목숨을 버려 고기산(肉山)이 되어 자신의 혈육으로 중생을 구원하기를 원하였다. 서원할 때 대지가 진동하고 수미산이 뒤흔들렸으며 바다에 파도가 넘쳤다. 무승은 장수산에서 뛰어내려 순식간에 고기산이 되어 일천여경의 넓이와 일천여경의 높이의 산이 되었는데 염부산의 백성들과 새 짐승들의 양식이 되었다. 육산(肉山)에서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는데 1만년 동안 중생에게 공급하였다. 육산의 백성들은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불교에 대한 경의가 생겨 불교의 충실한 신도가 되었다.
158. 담마존자 (曇摩尊者)
즉 담마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설법회의에 참가했다.
무극보삼매경(无극寶三昧境)상권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는 일찍이 라열지죽원에서 법회를 거행하였는데 당시 땅위에서 자연히 문타반꽃(文陀般花)이 피었는데 매 꽃마다 각 백만 개의 잎이 달렸고 매 잎사귀 위에는 부처님이 한 분씩 단정히 앉았으며 각 부처님 앞에는 각기보살들이 부처님을 우러러 배우고 있었다. 담마보살은 부처님께 말씀하기를 “보살은 이미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어 자유로우며 여러 가지 지혜를 구비하여 삼보(三寶)를 얻었으니 첫째는 예를 들어 물에 비친 그림자와 같이 그림자가 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물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보살이 방에 앉아도 그 몸은 시방을 알고 있지만 몸이 시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예를 들어, 산중에서 소리를 내면 음성이 울리는데 음성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보살이 방에 앉아서 멀리 시방 모든 불보살의 일들을 잘 알고 말하지만 시방의 모든 보살은 여기로 내왕한 사람도 없고 여기 사람이 그 쪽으로 내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석가모니께서는 담마보살에게 “이미 타라니(陀羅尼)를 얻었는데 즉지선법(持善法)은 흩어지지 않게 하며 지악법(持惡法)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힘을 쓴다. 예를 들어 활과 화살을 가지면 쏘고 싶은 곳에 다 쏠 수 있는 것과 같이 보살이 한 지혜를 얻으면 만억 지혜를 얻은 것과 같으니 어찌 그 많은 지혜들로써 법을 전하지 않으리오?”하고 말씀하셨다. 담마는 불타의 기묘한 해석을 듣고 불법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159. 환희존자 (歡喜尊者)
불교 제2대 선조인 아난존자이며 왕사성인이고 성은 찰제리(刹帝利)이다.
그 부친은 곡반왕(斛飯王)이다. 아난은 석가존자의 종형이며 부처님께서 도를 이룬 당일 밤에 인간세상에 출생하여 이름을 환희라고 지었다. 존자는 박문강기(博文强記)하고 지혜가 비할 바가 없었으며 석가모니께 불법을 배웠다. 그리고 교내의 사무를 잘 총지하여 각종 불법과 계율에 익숙해지자 석가세존께서는 그를 ‘총지등일’이라 불렀다. 석가모니의 생시에 명을 받고 석가세존의 시자가 되었으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한 후 아난이 교무를 주지하였으며 불교 제2대 선조가 되었다. 아난이 노년 시 한 사미가 불경을 잘못 외우고 읽는 것을 지적하였었는데 이 사미는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존자가 연로해 눈이 침침하다고 비웃었다. 아난은 세상 중생이 죄과가 중하다고 생각하고 말로 교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세상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신속히 적묵(寂黙)을 구하여 극락세계로 가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마갈타국을 떠나 견사리성에 가버렸다. 『대당서역기』제7권의 기록에 의하면 아난의 배가 극가하 중류에 까지 갔을 때 마갈타왕이 아난이 곧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하며 병사를 거느리고 남쪽 강둑까지 쫓아왔다. 견사리왕은 아난이 곧 온다는 것을 듣고 기뻐하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영접하고 병사들을 북쪽 강둑에 주둔시켰다. 양국은 서로 아난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아난은 혹시 서로 살육하는 전쟁이 발생할까를 두려워하여 배 안에서 허공으로 떠올라 스스로 불태웠다. 뼈는 두 개로 나누어졌는데 하나는 남쪽강둑에 떨어지고 하나는 북쪽 강둑에 떨어져 두 왕은 각각 하나씩 가지고가서 탑을 세워 모시었다.
160. 유희존자 (遊戱尊者)
즉 대유희보살이다.
불화엄입여래덕지불사의경계경(佛華嚴入如來德智不思儀境界經)의 기록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 마갈타국 법아란나처보리도장(法阿蘭拿處菩提道場)의 보광당(普光堂)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대유희보살은 대평등심과 대자비심을 갖추었으며 일체 중생들이 모두 불과를 기원하는 마음이 생기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이미 신통자재를 얻었으며 인간 세상에 들어가며 나오는 무변(无邊)중에서 법행을 하고 중생이 해탈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161. 도세존자 (道世尊者)
당대의 고승이며 경조(京兆 서안시)인인데 성은 한씨이고 이름은 현훈이며 개황(開皇) 20년(602)에 태어나서 총장(葱章) 원년(668)에 시적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의 거리낌을 피하여 평시에는 이름자만 부르고 법호는 부르지 않았다.
도세대사는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아 불전에 정통하였으며 특히 글을 잘 썼는데 붓을 들면 일필휘지요 내용이 깊고 문자는 거침없이 아름다웠다.
현경(현경 656~660)중에 황제가 령을 내려 장안서명사(長安西明寺)를 세운 후 저술을 담당했는데 그 저작으로는 법원주림,신복론, 대소승선문관, 사분율토요,사분율니초,금강경집주등 이었다.
도세의 저작은 간단명료하여 알기 쉬웠으며 그 심오한 법리를 사람들에게 소개하였다.
예를 들면 그는 인식하기를 어떤 불교신도들은 매우 성급하여 급히 앞으로 나가려고 하나 반드시
불법에 따라 차례로 수련해야 한다고 하며, 즉 마음이 망동(妄動)하면 정토와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인식하건대 사원에서 18신위를 모셔서 절의 재산 및 중생들이 재난을 받지 않게 하는데 한편으로 스님들도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며 만약 게을러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현세에 그 갚음을 받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162. 명조존자 (明照尊者)
즉 명조보살이다.
이 보살은 이미 일체 장애물을 떠나 무량의 밝음을 얻어 그 마음은 마치 순정의 둥근 달 같고 지혜의 빛을 중생에게 뿌려 중생으로 하여금 자성청정(自性淸淨)을 깨닫게 하였다.
그는 최승지(最勝智)에 거처하고 지혜가 넓어 마치 허공 같고 중생은 그 자애로운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불명경(佛名經)에 의하면 늘 제불과 명조 등 대보살의 이름을 기억하고 염불하면 마음으로부터
귀명하여 범한 죄를 모조리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락세계로 올라가 무상락과(無上樂果)를 향수한다고 하였다.
163. 보등존자 (普等尊者)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정을 출중하게 한 나한이었다.
보등은 늘 선정 중에서 세상 일체 제불을 다 만나고 친히 모든 불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들었으며,
그리하여 세상의 일체 고난의 모든 원천은 탐욕에서 오므로, 반드시 칠정육욕(七情六欲)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영원히 세상속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심신을 안정하여 조용함이 허공과 같았다.
보등은 선정 중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무량의 지혜로 무량의 방법을 만들고 무량의 방법으로 최종의 해탈을 획득하였다. 보등은 여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들었으며 그 가운데서 마음속에 여러 부처님과 같은 자비의 마음이 생겨서 중생을 구원하겠다고 서원하였다.
그 후 대중을 인도하여 고해를 탈피하게 하고 정토에 오르게 하기 위하여 일체 죄악으로 통하는
문을 닫으며 고난의 지옥 속에 빠지는 것을 피하도록 대중들에게 설법하였는데 마치 용한 의원처럼 세상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164. 혜작존자 (慧作尊者)
불설구광명정의경(佛說具光明定意經)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는 가유라위국정사(迦維羅衛國精舍)에 있으면서 하루는 사람이 와서 불법의 요점을 물어 볼 것을 미리 알고 아난에게 명하여 명사(明士)를 청하여 악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무저(无著), 이적(履迹) 네 부류의 사람들을 오게 하였는데 혜작은 여러 병사중의 한 명이었다. 혜작존자는 계율을 힘써 지켜 마음이 맑고 입이 깨끗하였는데, 그 깨끗함은 마치 달과 꽃 같고 밝고 순한 향기를 뿜었다. 그는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을 쳐부수고 광(狂), 아첨(阿諂), 교, 번뇌, 증오, 한(恨)의 6혹을 제거하였으며 색(色), 수(受), 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 마귀를 던져버리고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었다.
165. 조환존자 (助歡尊者)
이 존자는 불신환락(佛身歡樂)을 서원하였기에 호칭을 조환이라 불렀다.
불신은 곧 법신이며 법신은 즉 자신이며 여기서 가리키는 자신은 세속의 자신이 아니라 불법불성(佛法佛性)으로 충만한 자신을 말한다.
석가존자의 법신은 이렇게 만들어진 무량공덕 중에서 생겨난 것인데, 선정의 참선 및 진언을 외우고 염불하는 데서 생긴 것이며 심성이 자비하여 중생을 구제하는데서 생긴 것이며 37조보리법(三十七菩提法)중에서 생긴 것이다.
수행자의 공덕이 날이 갈수록 원만해지고 불성이 날이 갈수록 깊어질 때 법신은 점차 세속의 자신으로부터 대체하여 불법으로 충만한 자신이 된다.
조환존자는 이미 공덕이 원만하고 불성이 깊고 두터워 충만하고 끊임없이 중생에게 유익을 주고 불토를 깨끗하게 하여 불신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였다. 소위 불신환락(佛身歡樂)은 곧 불법을 널리 전하고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을 말한다.
166. 난승존자 (難勝尊者)
또 무능승(无能勝)이라 하며 법명은 아일다(阿逸多), 아질달산(阿質達散)등이라고 불렀다.
당조 말년에 중국에 와서 불경 번역 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학식이 깊고 넓어 동행들의 존경을 많이 받았다.
애석한 것은 무능승이 중국에 올 때 바로 당왕조가 기울어져 전란이 빈번하고 백성들이 살 길이
없어 유랑하는 혼란의 시국이 그로 하여금 평안한 환경에서 번역 사업에 종사하기 어려웠다.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167. 선덕존자 (善德尊者)
존자는 거사(居士)였다.
선덕은 출가한 적이 없었으며 계율을 엄격히 지켜 일체 번뇌를 끊어 버릴 수 있었고 자신의 세속의 정을 제거하고 심중의 사욕을 버려서 영예와 치욕을 뜬구름으로 대하고 재산을 흐르는 물처럼 대했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승법교를 듣기 좋아했으며 들은 후에는 또 타인에게 전파하여 불법을 갈망하는 자신을 만족케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교학문을 알고자 하는 바램에 만족을 주었다. 그리고 불법 중에서 무진한 지혜를 취하여 전심으로 대승불교를 익히고 대승불교를 보호하여 구제되지 못한 자를 구제하고 해탈을 채 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였다.
대열반경(大涅槃經) 제1권의 기록에 의하면 2월15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쌍수림에서 곧 열반하려 하실 때 양미간에 한 줄의 광망(光芒)을 뿌리었는데 그 빛은 3천세계를 다 비추어 중생들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곧 멸도 한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소리 내어 통곡하며 손을 들어 머리를 치고 가슴을 두드려 외쳤다.
이 비통한 정이 우주를 감동시켜 순식간에 산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고 강과 바다가 넘쳤다. 이때 선덕거사 및 석가모니의 많은 제자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둘러싸고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세상에 머무르도록 간청 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께서는 이미 알아차리고 선덕거사를 미래세에 부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불법으로 하여금 세상에 유전되게 하였다. 불교선조께서는 후에 계승자가 있음을 알고 안연히 멸도하여 천국으로 올라갔다.
168. 보애존자 (寶涯尊者)
덕행 하여 이름을 떨쳤다.
보애는 즉 보해(寶海)이며 공덕의 보배가 너무 많아 얼마인지 계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 것인데, 그것은 망망한 대해의 무애지(无涯地)라는 것이다.
정토론(淨土論)에 이르기를 “공덕은 큰 보배의 바다”라고 하였다. 보애존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향하며 착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희사를 거듭하여 스님들에게 양식을 시주하고 다리를
수리하여 길을 고쳤으며 빈민을 구제하고 고독한 자를 부축해 주는 등 무엇이든지 평생 무수한
착한 일을 하여 쌓인 공덕이 큰 바다처럼 넓었다. 동시에 불리(佛理)를 연구하고 선정의 수련으로
용맹히 정진하여 아라한 과위를 이루었다.
169. 관신존자 (觀身尊者)
존자는 불가제자로서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감각이 영민하여 깨달음이 뛰어났으며 문묵서간(文墨書簡)하고 보면 잊어버리지 않았으며 세상의 모든 법을 다 배워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존자는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었지만 정사와 세속을 잘라버릴 수 없어 늘 번뇌와 노파심에 싸여 있었는데 마치 밀림 속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이 하늘의 해가 가리워서 어두우며 자신의 총명한 지혜로 불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록 출가하여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불교의 도가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존자는 홀로 반성하며 해탈을 못하는 원인을 찾았는데 지력이 못한 것이 아니며 또 신앙이
불경건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 원인은 세속무명(世俗无明)의 여러 겹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자신이 여전히
생사윤회 중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존자는 자아(自我)를 관찰한 후 청정 중에서 불교의 진리를 구했고, 세상의 진리를 찾으려는 자아를 제거한 후부터는 천정(天淨), 지정(地淨), 자신육근청정(自身六根淸淨)을 깨닫고 세속을 탈피하여
나한과위를 이루었다.
170. 화왕존자 (華王尊者)
즉 화왕보살이다.
불명경(佛名經) 제21권의 기록에 의하면 죄악을 범한 비구와 중생은 지옥 속에 들어가 고통을 받는데 그중 한 지옥은 양성규환지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지옥 중에는 불길이 세차게 타올라 연기에 휩싸인 죄인들이 그 속에서 만단의 고통을 받고, 마두라찰은 철 몽둥이를 잡고 머리를 두드리며 죄인들은 양의 울음소리를 내고 옥졸야차가 때려 숨을 땅을 찾아 도망가다 동문에 가면 잠겨져 있고 남, 서, 북문 역시 모두 마찬가지인데 밤낮 고통을 받으니 살려고 해도 살지 못하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다. “죄과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지옥에 빠지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중생들은 응당 여러 부처님께 마음으로부터 귀의해야 하며 시방 여러 대보살에게 귀의하고 경건하게 참회해야 하는데 화왕보살은 마땅히 경외를 받을 중요한 보살이다.
171. 덕수존자 (德首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시방 여러 대보살 중의 한 분이었다.
불설보살본업경(佛說菩薩本業經)의 기록에 의하면 “동북무극에 청련찰(靑蓮刹)이 있었는데 불명은 비정진(悲精進)이고 보살은 덕수였다.”고 하였다.
덕수보살은 신통묘달하여 명성이 원근 시방에 널리 알려졌으며 대승과 소승의 각종 경전에 정통하였는데 중생들을 제도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하는 방법이 심오하였는데 차례대로 점차 파고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당대 대시인인 이백이 세상에 출생하였는데 어릴 때 놀이에만 탐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시냇물 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한 늙은 노파가 물가의 청석 위에 굵다란 쇠절구를 갈고 있었다. 이백은 호기심에 쇠절구를 갈아서 뭘 하느냐고 물으니 늙은 노파는 대답하기를 “갈아서 쇠바늘을 하나 만들겠다.”고 하였다.
이백은 쇠절구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늙은 노파는 이백을 깨우치면서“오직 공을 깊이 들이면 쇠절구도 갈아서 바늘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이백은 이 사실에서 하나의 도리를 깨달았는데“도를 성취 하려고 하면 반드시 오랜 노력으로 깊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덕수보살은 공덕을 많이 쌓아 전불께서 열반하신 후 곧 부처님이 되어 불위를 차지하였다.
172. 희견존자 (喜見尊者)
즉 희견보살이다. 늘 석가모니 설법장에 참석하여 가르침을 귀기울여들었다
불설월상여경(佛說月上女經)의 기록에 의하면 불타께서 비야리국 대수림(大樹林)중의 초막정사에서 법회를 거행할 때 그가 있었다고 한다.
희견보살은 이미 무수한 백천 만억 겁의 오랜 시간의 수행에 성공하여 대위신력이 신통하고 능히 선법이 멸하지 않게 하며 악업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삼세를 깊이 알고 있었는데 마치 물속의 달이나 공곡(空谷)의 울림과 같았다.
그는 대자비심을 구비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도처에서 대중들에게 불법을 해설하였는데 언제나 싫증내지 않고 가르쳤으며 자애로운 얼굴로 결코 화내지 않았다.
또 절대적인 지혜를 갖고 있어 중생의 마음을 쉽게 분별하고 곳곳에서 설법을 잘할 수 있었다.
그는 설법력이 아주 좋아 어구를 기묘하게 짓고 마음이 곧아 변하지 않으며 설법이 무궁하였다.
무량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하였다.
173. 선숙존자 (善宿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불교경전 불명경(佛名經) 제22권에서 열선숙(列善宿)은 시방 모든 대보살 중의 한 명이었다. 선숙은 세상의 무진한 고통중의 중생을 권유하여 삼보(三寶)에 귀의하게 하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직 생사윤회를 해탈하지 못하였을 때 한 겁 중에서 각 사람이 생사를 수없이 반복하여 환생하였는데 한사람의 유골을 한곳에 모으면 마치 왕사성 비부라산처럼 높았으며, 한 사람이 한 겁 중에서 모친의 젖을 빨아들인 것을 합치면 마치 사해의 물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신체에서 흐르는 물은 사해의 물보다 더 많았으며, 임종 시 친족들이 흘린 통곡의 눈물을 합치면 사해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윤회중생이 지옥에 갇힌 것처럼 도망하지 못하며, 대해의 격류 속에 밀려 들어간 것처럼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무슨 원인으로 중생이 고해를 탈피하지 못하는가? 근원은 세속의 정애(情愛)인데, 사랑이 있으면 생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죽음도 있으니 이렇게 윤회의 반복은 끝이 없다. 선숙존자는 윤회가 없기를 발원하며 중생을 권유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여서 과위를 얻고 영원히 고해 속에서 벗어났다.
174. 선의존자 (善意尊者)
법명은 미율두지다나(彌栗頭支多那)이며 36부신 중 제 18부의 신왕(神王)이다.
불설관정신주경(佛說灌頂神주經)의 말에 의하면 무릇 3귀(즉,3귀의(歸依) 혹은 3귀계(歸戒), 첫째는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인데 불보(佛寶)에 귀의하는 것을 사자(師者)로 여기고, 둘째는 법에 귀의하는 것으로 법보에 귀의하는 것을 약자(葯者)로 보며 셋째는 승보(僧寶)에 귀의하는 것을 친구로 본다) 의 사람 대접을 받는다. 선의 등 36부 신왕이름을 글로 써서 몸에 가지고 다니면 능히 언제든지 신왕 및 그 권속의 보호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의신왕은 유행병을 제어하는 신통력이 있어 그 이름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각종 온역과 전염병의 침입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5. 애광존자 (愛光尊者)
존자는 법력 높은 불자(佛子)이다.
그 조부의 이름은 애경(愛敬)이고 조모의 이름은 의락(意樂)이며 유리광성에서 살았다.
그 부친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공덕이 무량하고 잠심수행(潛心修行)하여 불이 되었는데
호칭은 광명여래라고 하였다. 신통광대하고 법력이 끝이 없어 온몸에서 빛을 뿜으면 3천 3백 20리를 비추었는데, 광명을 비추는 곳마다 중생이 평안하고 가화(嘉禾)가 넘쳐났다. 광명여래는 강단을
설치하여 강경하였는데 제1차 강경대회는 82억의 제자를 받아들이고 제2차 강경대회는 86억의 제자를 받아들였으며 제3차 강경대회는 87억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현겁경(賢劫經) 제8권의 기록에 의하면 광명불의 제자는 모두 정과를 획득하고 광명불의 생시에는 중생들이 안락하게 보냈으며
보통 백성의 수명이 1만세 이상이었다고 한다. 애광불자는 그 부친 광명여래의 영향을 받아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3보를 모시고 공덕을 많이 쌓아 나한과위를 얻었다.
176. 화광존자 (花光尊者)
즉 화광당보살(花光幢菩薩)이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 제1권의 기록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이 불타의 설법장에 와서 설법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화광당보살은 태연하고 마음이 담담하여 무위무욕(无爲无欲)하며, 그 마음이 선정의 삼매에 있어 모든 법의 대지혜를 통달하고 열반문을 열어 해탈의 바람을 일으켰다. 또 중생의 좋은 스승과 유익한 친구이며 대자비로 고난에서 구원하는 마음을 품고 간곡하게 권유하여서 중생본유의 착한뿌리에 영양을 주어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했다. 그는 마치 한 척의 순탄대로의 배처럼 중생을 싣고 생사해를 건넜으며 열반대안에 도달하였다.
또 대의왕(大醫王)으로서 약에 정통하고 병의 근원을 잘 진단하여 병에 따라 약을 주고 약만 먹으면 병이 곧 나았는데 심지어 소경도 보게 하고 귀머거리도 들리게 하고 코 베인 자의 코가 생기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하며 신체 중 부족한 부분을 모두 능히 고치고 치료하였다.
177. 선견존자 (善見尊者)
존자의 이름은 아도다이며 뜻을 번역하면 선견(善見)인데 고인도 마갈타국의 국왕이었다.
열반경(涅槃經)의 기록에 의하면 선견이 출생하기 전에 부왕은 그를 위해 점을 쳤는데 점치는 사람은 이 아들이 커서 꼭 부모를 해친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선견이 세상에 출생했을 때 부왕은 그를 누각의 창문으로 내던졌으나 죽지 않고 약간 다쳤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악한 소년들을 사귀고 악한 모습이 뚜렷하였다.
후에 부모를 가두어 놓고 왕위를 계승한 후 법사를 거느리고 이웃나라를 토벌하였는데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죄악이 산더미 같이 많아서 천벌을 받고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오래 치료하였지만 낫지 않았고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명의 시박가(時縛迦)를 청하여 치료하게 하였는데 시박가는 그를 석가모니께 소개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설법하셨다. 설법을 들은 선견은 죄악을 참회하고 불법에 귀의하여 나라 안에서 불교를 널리 전하게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선견이 호법왕(濩法王)이 되어 가섭을 도와 제1차 집결을 완성하였다. 선견은 목숨이 끊어진 후 생전의 죄악으로 빈타죄(賓咤罪)지옥에 빠졌으나 후반생의 공덕으로 순식간에 지옥에서 불토로 올라왔다.
미래겁 미륵불이 출생할 때 선견은 다시 세상에 돌아올 것인데 이름을 부동보살(不動菩薩)이라 하였다. 선견은 결국 불의 과위를 획득 하였는데, 호칭은 정계여래(淨界如來)였다.
178. 선근존자 (善根尊者)
유 · 불 · 선 · 덕행하여 이름을 떨쳤다.
불교는 신(身), 구(口), 의(意) 3업지선(三業之善)은 견고하여 뽑아낼 수 없다고 하여 근(根)이라고
하며 또 묘과(妙果)가 자라게 하고 선이 생긴다고 하여 근이라고 불렀다.
유마힐경(維摩詰經) 보살행품(菩薩行品)에서 이르기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러 선근(善根)을 심었다.”고 하였다. 구마라섭(鳩摩羅什)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심이 견고하여 그 깊은 뿌리가 뽑히지
않아서 이름을 근이라 지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 가지 선근이 있는데 십주비파사론 제1권에서 말하기를 “선근자는 탐욕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우둔하지 않고 일체 선법은 이 세 가지에서 생긴다.”고 하였다. 선근존자는
열심히 수행하고 여러 선근을 심을 때부터 용맹 정진하여 아라한과위를 이루었다.
179. 덕정존자 (德頂尊者)
존자는 보살의 과위를 얻었으며 불학경전 불명경(佛名經) 제22권에서 열선숙(列善宿)은 시방여러 대보살중의 한 명이었다. 덕정은 중생을 제도하여 세속을 탈피하고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다. 세속의 중생은 윤회를 반복하여 고통이 무궁하여 인간 세상에 출생 하는 것이 곧 고생이고,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는 것은 또한 고통이며 죽음도 고통이다. 죽은 후 지옥에 빠져 도림(刀林)의 고통을 받으며 또 환생하여 아귀신이 되어 배고픈 고통을 겪으며, 죽은 후 축생에 들어서면 호랑이, 표범 , 승냥이들에게 잡아먹히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여러 가지 고통에서 탈피하려면 오직 불교에 귀의하여 정과를 얻은 후 생사윤회를 벗어나 극락불토에 올라야 한다.
180. 묘비존자 (妙臂尊者)
즉 소파호보살(蘇婆呼菩薩)이며 묘비는 소파호의 뜻이다.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는 허공장원(虛空藏園) 허공장보살의 제2위인데 허공장길지덕(虛空藏吉之德)에 있었다. 소위 허공장은 공혜지고장(空慧之庫藏)인데 마치 허공과 같으며 또한 일체의
공덕을 포장(包藏)하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는 것을 가리킨다.
대집경(大集經)제14권의 허공장품(虛空藏品)의 기록에는 불타께서 허공장의 뜻을 해석하면서 말하기를 “비유컨대 대부장자(大富長者)는 많은 민중들에게 창고에 가득 찬 재산을 나누어 줄만큼 마음이 인색하지 않았다. 또한 나누어 줄 때는 빈궁한 자가 마음대로 가지게 하고 대보장문을 열어 중생들에게 알맞게 나누어 주었다.
장자는 희사하면서 마음으로 기뻐하였고 후회함이 없었다.”
묘비보살은 보장보살을 도와서 “허공중에서 중생의 필요에 따라 법과재물을 나누어 있는대로
다 베풀고 기뻐하였다.”고 했다
181. 용맹존자 (龍猛尊者)
용맹을 용수(龍樹)라고도 하며 용승(龍勝)이라고도 한다.
고인도 남천축국인이며 유년에는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신기하게 이해를 잘하여 나라 안에 소문이 났었다. 성년 후에 도보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명인에게 배워서 천문, 지리, 도위, 비참(秘讖)에 정통하고 또 술사에게서 은신술을 배웠다. 그는 세상의 일체 애욕이 모두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출가하여 정신적인 해탈을 구하겠다고 맹세하고 입문하여 계율을 지키는 스님이 되었다. 용맹은 경전을 열심히 읽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또 사원을 나가서 명승대덕을 방문하고 끝내 불학의 연박지사(淵博之士)가 되었다. 후에 제13대 선조 가비마라존자에게서 법장을 넘겨받고 불교의 제14대 선조가 되었다. 당시 남천축왕은 외도를 믿고 불법을 얕잡아 보았는데 용맹은 궁에 들어가 국왕에게 불법을 강설하여 국왕 및 여러 귀족들로 하여금 모두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그는 뛰어난 웅변으로 교도에게 도전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불교를 믿게 하였다. 용맹존자는 고인도 10대 노자들 중 상위에 앉아 풍부한 재능을 발휘하여『우파제사, 장엄불도론(莊嚴佛道論), 대자방편론(大慈方便論), 무외론(无畏論) 등을 편찬하였다.
182. 불사존자 (弗沙尊者)
즉 불사보살이다. 화수경(華手經) 4권에서 말하기를 “석가모니께서 거주하는 사바세계 외에 또 무량항하사수세계(無量恒河沙數世界)가 있었는데 그 중에 중향(衆香)이라고 이름 하는 세계가 있었고, 그 중에 연화상(蓮花象)이 있는데 지금의 불사보살마하살이다.”라고 하였다.
불사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곧 무상묘법을 설법하신다는 것을 듣고 사바세계에 와서 예불하고 법회를 들었다. 불사보살은 대위력(大威力), 대신통(大神通)이 있었기에 석가모니께서 불명경(佛名經)중에서 그를 중생들이 응당 마음속으로부터 귀의해야 할 대보살중의 하나로 열거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참회하면 재난과 피해를 면하고 지옥에 빠져 고통 받는 일을 면한다고 하였다.
또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의 기록에 의하면 유마힐이 여러 보살들에게“여러 인자(仁者)들, 어떤 말을 해도 보살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이며 각기 낙(樂)에 따라 말한다.”고 하였다.
불사보살은 회답하여 “선(善)과 불선 (不善)은 둘인데 선과 불선이 생기지 않으면 무상변에 들어간 통달자이고 이는 곧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섬이다.”라고 말했다.
183. 덕광존자 (德光尊者)
과거 무수겁 이전 불교가 전파된 나라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이름은 안진무이며 염부리(閻浮利)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국왕의 태자는 덕광인데 그는 용모가 단정하고 풍채가 늠름하였다.불설덕광태자경(佛說德光太子經)의 기록에 의하면 덕광태자는 출생 후 칠일 만에 지혜가 높은 수준에 달하여 불교 및 세속의 일체 지식을 모두 통달 했으므로 국왕이 이를 기뻐하고 옥중의 모든 죄수들을 석방하여 천불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여래께서 직접 덕광태자의 거처에 와서 덕광에게 불계를 준수하여 불수면(不睡眠), 불유희(不游嬉), 불가무(不歌舞), 불청음악(不聽音樂), 불관간가무(不觀看歌舞), 불외출유산완수(不外出游山玩水), 불탐도안일(不貪도安逸), 불탐연재산(不貪戀財産), 불유연가정(不留戀家庭), 불취국고재산(不取國庫財産)등 일체 세상의 물질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타일렀다.
이리하여 덕광태자는 독처안거하고 감히 자아방일하지 못하도록 모든 애욕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덕광은 커서 성인이 된 후 모든 불보살들이 친히 다가와 그를 위해 설법하였는데 태자는 국왕의 동의를 얻어 많은 재물을 희사하여 중생들에게 유익을 주고 국민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도록 하며 마치 극락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게 하였다.
덕광태자는 불계를 지키고 국민의 유익을 위하였기에 그 무량공덕의 보답으로 끝내 보살과위를
얻었다.
184. 산결존자 (散結尊者)
불설성구광명정의경(佛說成具光明定意經)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잠시 가유라위 정사에 거처하고 계실 때 하루는 사람이 와서 불법의 요점을 물어볼 것을 미리 알고 아난에게 명사(明士),악을 제(除)한 대중, 무저(无著), 이적사류(履迹四類)의 사람들을 청하여 듣게 하였는데, 그 중의 일원이었다. 산결존자께서는 계율에 있어서 정성들여 힘써 지키고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을 멸하여 색, 수, 상, 행, 식의 다섯 가지 마귀들을 제거하여, 중생의 번뇌와 걱정을 버리게 하였으며 수묘지행(殊妙之行)을 닦아 마음과 입이 맑고 깨끗하여 아라한 과위를 얻었다.
185. 정정존자 (淨正尊者)
당대의 고승이며 선조의 본적은 복주장락(福州長樂)이고 성은 왕가이며 현종개원 11년(752)에 태어났다.
어린 소년시절에 출가하여 법호은 회해(懷海)이며 계(戒), 정(定), 혜(慧) 3학에 정통하였다. 성년 후 선법을 사모하여 마조현소(馬祖玄素)를 스승으로 모시고 심심상전(心心相傳)하며 그 심오한 의미를 깨달았다. 현소선사의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하여 다년간 좌우에서 시중을 들었다. 후에 강서봉신 백장산(百丈山)에서 선원을 세워 선법을 가르치고 신도들을 모이게 하였다. 회해대사는 불교 원래의 계율위에서 새롭게 규정을 만들고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함께 준행하였으며 또, 스님들의 공양을 해결하였는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세상에서는 계율을 백장청규(百丈淸規)라고 불렀으며 천하의 사원에서는 누구도 집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청정정법(淸淨正法)이 되었다. 당선종 원화 9년(818)에 입적하였다.
186. 선관존자 (善觀尊者)
즉 선관보살이다.
늘 석가모니의 법회에 참가하였다. 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最勝門菩薩十住除垢斷結經)의 기록에 따르면 석가모니께서 비사리성 나씨수원에서 법회를 거행하였는데 선관보살은 좌석에서 법을 들었다. 선관보살은 이미 총지(悤持)를 얻어 지선법(持善法)은 멸하지 않고 지악법(持惡法)은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이미 선정 삼매에 들어갔는데 정(定), 수(受), 조직정(調直定)을 하였다. 소위 정은 정심행처(正心行處)인데 염려와 의심을 끊고 마음을 한 곳에 정하여 동하지 않으며, 수는 소관지법(所觀之法)을 바로 받으며, 조직정은마음을 조절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선관보살은 자신의 해탈뿐만 아니라 또한 세인들을 제도하여 오취(五趣)를 두루 관찰하고 제도하며, 불교의 넓은 지혜를 중생들에게 널리 펼쳐 그 근원에 따라 구제한다고 한다. 이 법회에서 선관보살은 일찍 보살혜를 해석하며 말하기를 “일체의 색상(色想)은 무색상(无色想)을 깨닫는 것이며, 그 중에서 몸과 입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보살혜(菩薩慧)이다.”라고 하였다.
187. 대력존자 (大力尊者)
존자는 8대 천신의 한 분으로서 대력왕(大力王), 대력금강(大力金剛)이라 불렸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29권의 기록에 의하면 싯달태자가 보리수 아래 앉아서 입정하여 깨달을 때 여러 흉악한 악귀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태자가 바른 도를 얻어 나쁜 짓을 못하게 될까하여 여럿이 태자를 박해하였다. 악귀들은 입에서 긴 혀를 내고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흔들며 태자에게 겁을 주었으며, 흑신라찰녀(黑身羅刹女)는 손에 해골을 들고 환술을 하여 태자를 미혹시켰고, 또 악귀들이 두 눈에서 불을 내뿜어 태자를 태워버리려고 하였다. 여러 귀신들은 호랑이, 승냥이, 이리의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고, 마왕이 손에 검을 빼들고 태자를 놀라게 하였다. 이때 싯달태자는 이미 상당한 신통력을 구비하였는데 여러 마귀들이 비록 살기가 등등했으나 가까이 하지는 못했으며, 동시에 대력등 8대천신들이 태자가 실족할까봐 각인이 16가지 화신으로 나타나 마귀들을 쫓아내고 싯달태자를 보호하였다. 싯달태자가 득도한 후 대력천왕은 호법금강이 되었으며 불법을 보호하였다.
188. 전광존자 (電光尊者)
즉 전광보살이다.
늘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회에 참가하여 불법의 심묘한 이치를 귀기울여들었다.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제9권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정법(政法)을 논하실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여러 보살들은 석가모니께 모두 “세존과 우리 모두는 정법을 보호하고 지켜 널리 펼칩니다.”라고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나아가 “선남자여, 너는 오늘 어떤 법으로 정법을 호지하겠느냐?”고 물으니 전광보살은 대답하기를” 세존이여 만약 남의 마음을 따라 호법을 하지 못하면 내 마음과 뜻을 따라서 호법 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전광보살은 이미 명심견성(明心見性)하고 스스로의 마음으로는 외물소역(外物所役)하지
않으며, 대자재를 얻어 번뇌를 떠나 장애가 없이 통달하고 스스로 나아가 중생들을 제도하였다.
189. 보장존자 (寶杖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다.
불교경전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상권 불국품(佛國品)의 기록에 의하면 보장보살께서는 일찍 비야리암라수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에 귀 기울여 들었다. 보장의 지혜와 덕행이 다 구비되어 능히 제불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법륜이 영원히 정지되지 않게 하고 불법이 영원히 세상에 유전되게 하였다. 보장은 세상에 널리 자비를 행하겠다고 서원하고 중생을 인도하여 생사윤회의 고통과 공포로부터 탈피하여 일체 죄악의 길을 막고 극락세계로 들어갔다. 세상에는 중생들이 많아 각 사람이 모두 각자의 애호(愛好)가 있는데 보장은 각종 기묘한 방법으로 애호가 서로 다른 중생들이 공통으로 이상적인 불교정토에 들어가게 했다. 보장은 세상에 끝없는 공덕을 쌓고 가는 곳 마다 암흑을 몰아내는 광명과 같았으며 감로로 벼를 촉촉하게 하는 것과 같았다. 보장은 불법을 병기(兵器)로 삼아 불교교의를 지키고 다른 교리를 믿는 사람들조차 놀라게 하여 그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190. 선성존자 (善星尊者)
대방광삼계경(大方廣三戒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등의 기록에 의하면 선성비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20년 동안 시중하였다. 그는 먼저 12부경을 배우고 사선(四善)을 획득하였다.
후에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마음에 사견이 생겨 사선을 상실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시중하며 사처로 쫓아다니면서 친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허공에서 다니시는
등 신통력을 발휘하고, 많은 외도를 굴복시키는 것을 보았지만 선상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력에 대해 여전히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은 석가세존께서 왕사성에 거주하면서 초저녁에 천제석천설불법정요(天帝釋闡說佛法精要)를 하였다.
당시의 관습에 의하여 제자들은 응당 스승을 쉬게 한 다음 비로소 휴식해야 했다. 선성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면 아무리 오래 말해도 피곤하지 않았다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을 쉬게 하지 않았고,
마음 속에는 스승에 대한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왕사성에서 만약 어린애가 울고 그치지 않으면 부모들이 “또 울면 너를 박구라 귀신에게 주겠다.“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고 큰소리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빨리 선당(禪堂)에 가십시오. 박구라(博拘羅)귀신이 와요!”라고 무례하게 행하였는데 그의 이런 행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질책을 받았다. 그 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늘 선성에게 설법하셨으나 선성은 한구절 한마디의 뜻도 이해하지 못하고 악심을 고치지 않았으며 항상 중생들에게 무인무과(无因无果)를 홍포하여 아비지옥에 빠져 들어갔다. 지옥의 고통을 통하여 선성은 참회와 깨달음으로 법행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아라한 과위를 얻었다.
191. 나순존자 (羅旬尊者)
나순은 또 나순유(羅旬喩)라고도 하였는데 출가하여 비구가 된 후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성이 있는 제자였다. 나순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기구하여 박명비구(薄命比丘)라고 불리웠으며 그는 자기만 복이 없을 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 연루되어 늘 불행을 당하였는데, 하루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도 없어져 여러 사람들이 배고픈 고통을 당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누가 저지른 소행인가 조사하기 위하여 여러 제자들을 둘로 나누어 동시에 음식을 주었는데 그중 일부의 음식은 삽시간에 없어졌다. 또 음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동시에 음식을 먹게 하였는데 한쪽은 밥과 나물을 먹을 수 있었으나 다른 한쪽의 제자들은 사발이 빈 그릇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여러 번 번갈아 한 후에 마지막 두 사람이 남았고 한사람은 음식을 가졌으나 한 사람은 음식이 없었다. 음식이 없는 사람은 곧 나순 이었는데 그의 사발에 음식을 쏟아 넣으면 그 즉시 없어지는 것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의 액운을 동정하여 친히 음식을 그의 사발 안에 넣어주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힘으로 음식이 다시는 없어지지 않아 나순은 이렇게 액을 제거하고 복을 얻었다. 파사닉왕(波斯匿王)은 이 일을 듣고 사자를 파견하여 쌀 한주머니를 가져와 나순에게 복을 주었는데, 도중에 날아다니는 새가 쌀 한 알을 입에 물어가니 사자가 큰소리로 “이 쌀은 파사닉왕이 나순 비구에게 내린 것인데, 네가 어찌 감히 물어가느냐?”고 하자 새는 이 말을 듣고 즉시 쌀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나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복력을 받은 후 새와 짐승들도 감히 침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대로 풀려 후에 나한과위를 얻었다.
192. 자지존자 (慈地尊者)
사분율(四分律),마가승지율등의 기록에 의하면 자지비구는 계율을 준수하지 않았고 특히 타인을 잘 비방하고 모해 하였다고 한다. 답파마라자(沓婆摩羅子)는 석가모니의 대제자중 한 사람이었는데 석가모니께서 그를 치하하면서 “나의 제자 중 승와구를 받을 사람은 답파마라자가 제일 처음이다.“라고 말하였다.
당시 스님들이 와구를 분배받는 방법은 “상좌에 따라 순서를 배열하여 응당 받을 차례에 따르는 것이다.”고 했다. 즉 스님의 지위와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지는 집과 가구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하루는 자지비구가 라열성에 왔는데 그의 지위가 비교적 낮았기 때문에 분배받은 집과 와구가 모두 매우 차이가 나서 그는 답파마라자를 원망했다. 그는 그의 여동생 자비구니를 시켜 석가모니가 거행하는 법회에서 답파마라자가 그를 강간하였다고 모해하게 하였는데 석가모니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였다.
후에 그는 법회에서 또 그들이 처자를 더럽혔다고 모해하게 하였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또한 거짓임을 간파하여 자지비구의 죄과를 질책하고 깨닫게 하여 자지비구가 끝내 감화되었고 성심으로 수행하여 힘써 계율을 지킴으로써 아라한의 과위까지 얻었다.
193. 경우존자 (慶友尊者
존자의 이름은 난제밀다라(難提密多羅)이며 뜻을 번역하면 경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800년이 되던 때 존자는 사자국(獅子國)에 출생하였는데, 현재의 스리랑카는 당시 원근에 이름 있는 고장이었다.
경우는 입적시 16대아라한의 법명과 주소를 신변의 제자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제자는 그의 임종 전에 한 말을 책으로 편찬하였고, 이것이 세상에 유포되었던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 인데 간칭은 법주기 였다.
당대 중국 고승 현장대사는 법주기를 중문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로부터16나한의 이름이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였고 당대 이후 중국의 불교계에서는 경우의 공덕을 찬양하여 그를 제17번째 나한에 배열하였으며 법주기의 중문번역자 현장은 제18번째 나한에 들었다.
194. 세우존자 (世友尊者)
법명은 벌소밀단라이며 또 파수밀다(婆須密多),화수밀(和須密) 등이라고 하였다.
고인도 건타라는 일체 유부(有部)를 스님들께 설법하였고 활동했던 시기는 기원 1 ,2 세기라고
하였다.
귀상황(貴霜黃)은 가니색가가 불교 제4차 결집을 소집하였을 때 세우를 상좌에 추천하고 아비달마비파사론의 편찬을 주관하여 일체 유부이론(有部理論)을 종결하게 하였다. 법구(法球), 묘음(妙音), 각천(覺天)과 또한 일체 휴부 사대론사(四大論師)를 말하였다. 저작으로는 일체유부종윤론(一切有部宗輪論)등 소승의 20부를 서술하였다. 세우보살이라는 존칭으로 불리었다.
195. 만숙존자 (滿宿尊者)
존자는 원래 타종교의 신도였으며 몰특가(沒特伽 즉 목건련)의 제자이며 후에 스승을 따라 함께 불교에 귀의하였다.
만숙은 처음에 불문에 들어섰을 때 늘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시를 위반하고 불교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하여 마사(馬師), 가유타(迦留陀)등 6인과 함께 6비구라고 불리웠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많은 계율은 모두 이들 때문에 제정하게 된 것이었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의 기록에 의하면 하루는 저녁에 여러 비구들이 모여 석가모니 부처님 주위에서 경을 들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므로 여러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목건련은 삼매정에 들어가 그 까닭을 알아보았는데 만숙, 마사 두 사람이 또 계율을 위반했다는 것을 알았다. 목건련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을 강경당에서 떠나라고 하였다.
이후 여러 사람의 권유로 만숙은 허물을 고치고 새 출발을 하였는데 스승 목건련에 대해서는 특별히 존중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목건련은 타종교 교도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만숙, 마사는 분노로 인해 머리털이 곤두섰고 대력사신(大力士神)의 힘을 빌어 여러 외도를 죽여 버렸다. 이 과실로 인해 만숙은 환생하여 생축도(生畜道)에서 큰 용으로 변하였다. 대용(大龍) 만숙은 전력을 다해 수행하여 많은 선업을 행하였으며 결국에는 나한과위를 얻었다.
196. 천타존자 (闡陀尊者)
또는 차닉(車匿), 천탁가(闡鐸迦), 천나(闡那)라고 하며 뜻을 번역하면 낙욕(樂欲)이라 한다.
석가모니께서 성을 나가 수행을 하실 때 천타는 불타의 차를 모는 차몰이꾼 이었는데 후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나쁜 입버릇을 고치지 않아 악구천타혹은 악성천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위 악구는 사람을 성내게 하는 입으로 모진 욕을 하여 10악 중의하나이다. 불타께서 즉 곧 열반하시려 할 때 아난에게 묵빈지법(즉, 똑바로 단 위에 세워 다른 사람들과 말을 못하게 함)의 벌을 서게 하였다. 천타는 불현듯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 『나타가전연경』을 받고 또 나한과위를 얻었다.
197. 월정존자 (月淨尊者)
존자는 남천축국 향지국왕(響至國王)의 장자인데 이름은 월정다라(月淨多羅)이고 그 세 번째 동생의 이름은 보제다라(菩提多羅)였다. 향지왕은 불교를 숭배하고 모시었으며 늘 불교 제27대 선조 반야다라를 요청하여 불법을 전하여 설명하게 하고 또 반야에게 진주 한 알을 주었다. 월정도 불법을 숭배하였는데 비록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지만 집에서 계율을 지키고 송경수선(誦經修禪)을 끊임없이 하였다. 하루는 반야다라가 월정 등 형제 3인의 지혜를 시험해 보았는데 향지왕이 준 진주를 꺼내 보였다. 월정은 원래 부왕이 반야에게 진주를 준 것을 몰라서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보았는데 즉시 진주의 내력을 알아차리고 말하기를 “이 한 알의 진주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인데 세상에는 아직 이 진주와 비교할 수 있는 진주가 없으며, 부왕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것을 얻을 수 없으니 이 진주는 부왕이 당신에게 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월정 등 3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세 번째 동생 보제다라는 불교 제28대 선조가 되고 월정 본인은 나한과위를 얻었다.
198. 대천존자 (大天尊者)
법명은 마가제파이며 뜻을 번역하면 대천이다.
석가모니께서 세상 뜨신 백년 후의 중인도 말토라국인(末土羅國人)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대천이 자란 후 부모께 효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죄과가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고 계원가람(鷄園伽藍)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대천은 총귀하여 다문을 잘하였고 사고력이 우수하여 교의에 관하여 다섯 가지 새로운 견해를 제출하였는데 상좌부 교단의 장로 비구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국왕 아육왕(阿育王)은 대천편에 서서 상좌부 여러 스님들을 강변에 인도하여 모두 물에 빠져 죽게 하려고 하였다. 여러 스님들이 목숨을 잃게 될 때, 각기 신통을 발휘하여 가습미라국으로 도망갔다.
대천의 학설은 일부 사람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았는데 이 사람들을 대중부라 하고 대천은 대중부의 시조로 불리웠다.
199. 정장존자 (淨藏尊者)
아주 오랜 옛날에 한 광명장엄국이 있었는데 국왕의 이름은 묘장엄이고 국왕의 부인의 이름은 정덕(淨德)인데 묘장엄왕 및 그 부인은 외도를 믿고 불교를 비방하였다.
당시의 뇌음숙왕화지불(雷音宿王華智佛)은 묘장엄부부를 인도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려고 약왕보살(約王菩薩)과 약상보살(約上菩薩)을 보내어 묘장엄국왕집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였는데, 그 두 아들의 이름이 장자는 명정장(明淨藏)이고 차자의 이름은 명정안(明淨眼)이었다.
두 보살은 37품 조도법(助道法)을 환히 통달하고 또 장기적으로 보살정삼매(菩薩淨三昧), 일성숙삼매(日星宿三昧), 정광삼매(淨光三昧), 정색삼매(淨色三昧)를 수련하였기에 무한한 신통력이 있었다. 정장과 정안은 먼저 모친 정덕부인을 설득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으며 부인은 “너희들의 아버지가 파라문교를 굳게 믿고 있는데 만약 그가 불교를 믿는다면 일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정장은 부친 묘장엄왕 앞에서 부왕을 설득시켜 불교에 귀의케 한 후에 허공에 솟구쳐 올라 각종 신으로 변하였는데 몸높이가 수십 장이 되고 몸 위에서는 물이 나오고 몸 아래에서는 불이 나왔다.
묘장엄왕은 이를 본 후 아주 기뻐하며 불교에 귀의하였다. 정덕부인 및 여러 대신과 백성들도 모두 불교에 귀의하였다.
200. 정안존자 (淨眼尊者)
법화경의 기록에 의하면 과거세 광명장엄국의 국왕의 이름이 묘장엄왕인데 사교를 맹렬하게 믿고 불교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정안은 즉 묘장엄왕의 아들이다. 그와 형님 정장(즉 제199존자)은 모두 불법을 오래 전부터 믿었으며 신의 힘을 획득하였다. 그들은 부왕이 사견(邪見)에 마음이 홀려 불교에 대한 의심이 많았는데 불법의 힘을 빌어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주자, 부왕이 마음을 바꾸어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조각상은 바로 신통을 표현할 때 모습인데 늘 사납고 용맹한 범이 불법의 위력하에서 고양이처럼 온순하게 변했다
201. 파라밀존자 (波羅密尊者)
또 파라밀다라(波羅密多羅), 파라파가라밀다라(波羅頗迦羅密多羅)라고도 하며 뜻을 번역하면 지식, 지혜가 밝다는 것이고 중천축인이고 찰리제종성(刹利提種姓)이었다.
10살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대승불교를 배우고 또 율장을 배워 계강(戒綱), 심락(心樂), 선사(禪思)에 해박하였으며 12년간 열심히 읽고 손에서 떼지 않았다.
공부를 모두 한 후 인도와 각 대명사(大名寺)를 돌아다니며 이름 있는 스님을 찾아 방문하였다.
파라밀존자는 불학에 정통하였고 전교하고자 하여 10인을 거느리고 중국에 왔다. 돌궐북면 가한(可汗)을 지나오면서 가한에게 설법 하였는데 가한의 숭배를 받아 그곳에 머물렀다.
당무덕(唐武德) 9년(626)에 당고평왕이 돌궐에 사신을 보내어 파파(波頗)를 장안으로 영접하고 그후 당고종이 그를 접견하였다. 고종이 당년에 병으로 세상을 떴는데 태자가 뒤를 이었으며 파파를 흥선사에 거주하라는 명을 내려 불경번역을 주관하고 좌승상 방현령 등을 참여하게 하여 대장엄경(大莊嚴經) 35권을 번역하였다.
정관(貞觀) 6년(632) 겨울 당태종이 왕명을 내려 불경 번역한 것을 10부로 베껴 쓰게 하고 전국의 큰절에 나누어 주어 세상에 유전되게 하였다.
정관 7년에 파라밀존자는 승광사에서 입적하였는데 여러 제자들이 그 사리를 거두고 탑을 세워 승광사에 모셨다.
202. 구나사존자 (俱那舍尊者)
또 구나함(拘那含), 고나모니, 가약가모니, 갈약가모니라고 하는데 뜻은 금적(金寂), 금선인(金仙人)이다.
현겁 중의 제2불, 과거 제 7불 중의 제5불의 인수(人壽)가 3만세 때에 청정성(淸淨城)에서 태어났다. 장아함경(長阿含經)권1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일찍 한번 법을 설명하는 집회를 가졌는데 3만 명의 제자가 참가하였다고 하는데 방대하고 대홍적인 초능력은 불타의 진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감화된 중생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한다.
203. 삼매성존자 (三昧聖尊者)
존자는 대범천(大梵天)의 변화신이다.
대범천은 또 시기(尸棄)라고 불렀으며 그 신좌(臣佐)를 범보(梵輔)라고 불렀고, 백성들은 범중(梵衆)이라 하였다. 시기가 선중에서 득도했다.
대범천은 삼천대천세계를 좌우하였으며 세상 중생의 시초신이고 그는 성심성의로 불법을 숭배하고 믿어 매번 새로운 부처님께서 출세하실 때마다 첫 번째로 와서 청하여 전법륜(轉法輪)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세상에서 전교하실 때 제자들은 심전구수 하였는데 문자가 없어서 세존존자의 교시를 기록하지 못하였으므로 대범천이 변화신상하여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고대 법문을 창조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교의를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였다.
후세 신도들은 경전을 보면 마치 부처님께서 앞에 계신 것 같았으며 경전을 들으면 마치 부처님의 교시를 공손히 듣는 것 같았다.
204. 보살성존자 (菩薩聲尊者)
대덕하여 모든 안위를 지킨 보살은 범문보리살두(梵文菩提薩두)의 약칭인데 뜻으로 말하면 각유정(覺有情), 도중생(道衆生), 도심중생(道心衆生)이며 또 번역하면 개사(開士), 시사(始士), 고사(高士), 대사(大士), 성사(聖士), 초사(超士), 력사(力士), 무쌍(无雙), 대성(大聖), 법신(法臣)등인데, 즉 불과의 성과를 추구하는 대승수행자라는 것이다.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권1에서 승조(僧肇)의 해석한 것을 인용하면 “보리는 불도의 이름인데 살두는 대심중생이다. 즉 큰마음이 있어 불도에 들어감으로 그 이름은 보리살두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또 법장의 해석은 “보리는 깨달음이며, 살두는 이 중생을 가리킨다. 지혜로써 불과를 얻으며 자비로 중생을 구한다.”라고 하였다. 또 법장의 해석은 "보리는 깨달음이며, 살두는 이 중생을 가리킨다. 지혜로써 불과를 얻으며 자비로 중생을 구한다"라고 하였다.
보살성존자는 대승6도를 수지하여 대보살이 되기 위해 용맹정진하였으며 여러 불도로서 중생의 업적을 이루었다.
205. 길상주존자 (吉祥주尊者)
존자는 불가의 제자이며 중생을 그 고난 속에서 구원해 내는 것이 자신의 서원이었다.
매번 밤이 되면 야차(夜叉)귀신, 나찰(羅刹)귀신, 광전귀신, 염구귀신, 나지니귀신, 구독기시귀신, 왕적수화귀신들이 늘 나와서 사람을 해쳤는데, 만약 중생들이 이상의 여러 귀신들에게 잡히면 길상주존자는 즉시 와서 악귀를 몰아내고 중생을 보호하였다.
사람들이 길을 걸을 때, 강도들이 길을 막았을 때, 또는 심산 중에서 악한 짐승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길이 험난하고 도중에서 배가고플 때, 또한 큰 강, 바다에서 항해하다가 재난을 당했을 때 길상주존자는 다가와서 구원해 주었다. 또한 만일 광풍폭우의 재해를 받았을 때나 벼락이 쳐 재해를 받았을 때, 그리고 천공의 별이 변하고 일식월식 때나 사람들이 질병에서 시달림을 받고 있을 때 길상주존자께서는 역시 다가와서 구해주었다.
길상주존자는 일체 중생들을 보호하시고 선남신녀(善男信女)로 하여금 비할 수 없는 지혜를 얻게하여 지락이 뛰어나게 하였다.
206. 발다라존자 (鉢多羅尊者)
또 발다라, 발단라, 파다라, 발화라 등이라고 하였는데 인도 스님이었다.
5대 10국 시기에 발다라는 촉광천(蜀光天) 원년, 양정명(梁貞明) 4년(기원 918) 인도 마가타국으로부터 사천, 자언으로 9만9천3백80리 길을 행하였는데 그해 나이는 270세였다.
인도 승인은 서북노선을 많이 걷고 왕래하였는데, 즉 장안에서 서행하여 돈황에서부터 지금의 신강 등의 지역을 경과하여 중국에 왔다.
발다라존자는 서남으로부터 인도를 건너 고대 서남의 지구의 숭산(崇山)준령에 도착하여 중국에
당도한 인도스님이었다.
207. 무변신존자 (无邊身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2권의 기록에 의하면 인도동방에서 아주 먼 지역에 의락미음세계(義樂美音世界)가 있었는데 무변신보살께서 바로 이 세계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보살의 신체는 아주 웅장하였으며 그 신체의 각 털구멍마다 큰 연꽃이 한 송이씩 자라났는데, 한 송이마다 연꽃 위에는 8만 8천개의 큰 성이 있었고 성벽 위에는 7가지 보물로 장식되었으며 성내의 거리는 넓어 거리 양측에는 7행의 다라보수(多羅寶樹)가 줄지어 늘어섰는데, 이 나무는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미풍이 불면 그 소리가 마치 신선이 연주하는 음율과 같았다.
성의 변두리에는 신기한 물이 가득했는데 맑고 깨끗한 물에는 7개의 보선(寶船)이 떠있었고 중생들은 강에서 배를 타고 유희를 하며 몸을 씻었으며 성안의 주택은 마치 꽃밭처럼 아름다워 마당 안에 꽃향기가 그윽하고 물은 깨끗하였다.
매좌성(每座城)에는 각8만4천의 국왕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각 국왕의 주위는 무수한 관원과 백성들이 있었고 주민들은 의식이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였다.
무변신보살은 위엄과 덕망이 높았으며 매번 출행할 때면 대지가 6가지로 진동하였다. 그와 기타 여러 보살들이 함께 거주하였는데 기타 여러 보살들은 어두워져 빛이 없었으며 신통력이 없어졌다.
208. 현겁수존자 (賢劫首尊者)
즉 현겁보살이다.
불교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는 한 설법장에서 과거 무수한 부처들이 염불하며 주문을 한 것을 외우고 또 현겁보살과 미륵보살에게 명을 내려 앞으로 책임지고 중생들에게 이 주문을 외우라고 하였다. 이 주문의 이름은 “선치칠십이충병우뇌다라니” 또는 ”발오충음무명근본다라니”라고 하였다.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악한 짓을 범하지 않게 하고 일체 번뇌를 제거한다.
주문의 전문장은 아래와 같다. “나무불타, 나무달마, 나무승가, 나무마가리사비도라도, 게출타달타, 파만두, 발도라시, 타라굴나서나, 서리서리, 마가서리우마리우마륵시실침비려비, 아염비리구국국시보살파타라니시아산제마구리응지우미우미우마우마파화아.”
209. 금강매존자 (金剛昧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는데 이름은 금강위덕보살(金剛威德菩薩)이며 모든 금강 중에서 위력이 제일 강한 분이였기에 “최승상미(最勝上味)”라고 말했다.
묘고산(妙高山) 꼭대기의 33천제석궁(天帝釋宮)중의 최승루각에 거주하고 있었다.
금강위덕보살께서는 이미 부처님의 여러 가지 지혜를 구비했었다. 『불설경계섭진언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 보살께서는 이미 일체 여래관찰지대유가에 들어갔으며 능히 소원대로 변화가 자유로웠다. 세상 중생의 취미가 달라서 불교정과를 얻는 방법과 얻을 정토 역시 달랐으나, 금강위덕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들이 원하는 대로 교묘한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들로 하여금 만족을 얻게 하였다. 금강위덕보살은 또 악인을 미워하고 원수처럼 생각하여 자기의 무량한 신통력으로 일체 악마들과 악한 외도를 굴복시키고 굴복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계속 악한 짓을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금강위덕보살은 불교의 호법신이었으며 불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량한 공덕을 쌓았다.
210. 승미존자 (乘味尊者)
즉 승오선사(乘悟禪師)이다.
중국당대 고승이며 형주인(荊州人)이다. 박학다문하고 불전을 세밀히 연구하였으며 덕행이 고상하고 순수하였다. 그는 불가의 진제를 깊이 연구하여 법진선사(法振禪師), 양주승인 승여선사(乘如禪師)와 같이 바닷길로 인도에 갔다 돌아 오늘 길에 승오선사는 첨파(瞻波)에서 입적하였다.
비록 그 뜻은 미치지 못하였으나 뭇사
람들을 감응시켰다 한다.
211. 파사타존자 (婆私吒尊者)
존자는 파라문가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성이 높은 제자였다.
석가모니께서 득도하신 후 그의 학설은 거대한 대중적 관심을 일으켰으며 많은 사람들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불법을 배웠는데, 파사타및 동족인 파라파(婆羅婆)들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러나 파사타의 행위는 파라문 종성의 반대를 받았는데 파사타를 엄격히 질책하면서 이르기를 “파라문 종성은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고 기탄종성은 모두 하등인이다.
파라문 종성은 백색이고 청정하며 기타 종성은 검고 더럽다.
파라문 종성은 천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고귀하며 기타 종성은 모두 파라문보다 못하다. 너희들이 오늘 고귀한 것을 버리고 비천한 것을 택하면 자손들의 대를 끊는 것이니 이것은 최대의 죄악이다.“라고 하였다.
파사타가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왔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에게 깊은 불법을 설명해 주기를, 불법은 종성을 따지지 않고 일체가 평등하며, 오만한 사람이 없고 또한 다른 사람의 오만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불법의 추구는 불생불멸이며 무생무멸이기 때문에 생생멸멸의 고통이 없다. 라고 하셨다.
파사타는 불법의 이치를 깊이 느끼고 불교에 대한 신앙이 견신불이(堅信不移)하여 끝내 나한과위를 얻었다.
212. 심평등존자 (心平等尊者)
심평등존자는 언행일치하였고 덕을 겸비하였다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참회 할 때 7가지 마음이 생기는데, 큰 참회심이생기며, 공포심, 혐오심이 생기며, 불과(불과)를 기원하는 마음이 생기며, 원수와 우리편에 대한 평등한 마음이 생기며, 불(佛)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기며, 관죄성공심(觀罪性空心)이 생기는데 소위 원수와 우리 편에 평등한 마음이란 일체 중생들이 원수도 없고 우리 편도 없이 자비를 베풀어 너, 나 구별 없이 평등하게 구원받는 것을 말한다.
심평등존자(心平等尊者)는 이미 도를 닦아 매우 높은 경계에 있었으며 원수와 적, 부모 친척들을 동일하게 대하는 대자비심을 발휘하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였다.
213. 불가비존자 (不可比尊者)
존자는 세상천하를 다 돌아보았으며 널리 불법을 포교함으로 중생들을 권유하여 허물을 고치고 옳은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량한 벗들은 떠나지 말고 모든 불과 모든 대보살들로부터 멀리 떠나지 말며 사악의 무리들은 고기 미끼와 같으니 지나친 안락을 추구하다 불속에 뛰어들어 타 죽어버리는 누에의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인생은 세상에서 많은 착한 일을 하면 환생하여 좋은 보응을 받게 되며 그렇지 않으면 곧 무변무지의 검은 고해 속에 가라앉아 배가 고파서 울부짖는 나찰귀신에게 먹히운다.
천성적으로 총귀한 사람들은 조심하여야 하며 행위가 단정하지 못하면 곧 스스로 번뇌를 만드는 것이고 만약 일심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총명하고 지혜로운 심령도 구름에 가리우게 된다.
중생은 부처님처럼 자비의 심성으로 각종 덕행을 갖추어야 해탈을 얻게 되는데, 여전히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도와주며 이 일을 잠시라도 정지하여서는 안된다.
불가비존자는 세상의 중생들을 가르치고 무수한 사람들이 해탈을 얻도록 했으며 그리하여 많은 공덕을 쌓았다.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의 기록에 의하면 불가비존자는 이미 불(佛)의 과위를 획득했다고 하였다.
214. 낙복장존자 (樂覆藏尊者)
부덕하여 이름을 떨쳤다.
불교는 인식하건대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이 모두 선정(禪定)에 들어가 일심으로 청정하게 하고, 만 가지 생각을 정지하면, 심신이 편하고 즐겁게 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먼저 출가락(出家樂)으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업과 번뇌가 있으나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영원히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두 번째는 낙을 멀리 떠나는 것인데, 그것은 색계초선천(色界初禪天)의 낙으로 초선은 멀리 욕계의 사랑에 물든 번뇌를 능히 떠날 수 있어 선정의 기쁨이 생긴다. 세 번째는 적정락(寂靜樂), 이선천의 낙으로, 초선천의 낙과 느낌 그리고 요동함을 떠나서 조용하고 적정한 마음에 깊은 낙이 일어나며 네 번째는 불과를 기원하는 낙, 성무상도(成无上道)로써 법계에서 자신의 법락을 얻는 것이며 다섯 번째의 낙은 열반락이다. 생사의 고통을 떠나서 열반에 들어가는 구경적멸(究竟寂滅)의 낙이다.
낙복장존자는 출가하여 선정하였는데 저절로 초보적인 선정으로부터 열반의 과정까지 각 선정단계의 경지를 만끽한 다목적의 존자이다.
215. 화염신존자 (火焰身尊者)
존자의 이름은 부동명왕이며 보살과위를 얻었고, 비밀호칭은 상주금강(常住金剛)인데 몸에서 불을 뿜어 교의에 어긋나는 것을 굴복시키며 불교 5대 명왕중의 한 존자이다.
불교밀종(佛敎密宗)중에 대일여래(大日如來)는 일체 모든 부처의 총체이며, 부동명왕은 일체 모든 부처의 교령윤신이라 하였다. 부동명왕은 대일여래의 교령을 집행하여 분노의 형상을 나타내고 능히 진언으로 신통력을 발휘하며, 여러 가지 변화신으로 나타나서 세상의 일체 악귀들을 항복시키고 세상의 일체 외도를 굴복시켰다. 부동명왕은 밀종중에서 큰 존중을 받아서 다수의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죄악을 제압하고 불교를 보호하며 널리 사랑하고 망혼을 불러 달라고 기도하였다.
부동존자는 불법을 보호하여 공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일찍이 대일여래연화대 앞에서 부처가 되었으며 그가 처음 맹세한 서원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대일여래의 종이 되며 대일여래의 일군이 되기에 그를 또한 부동사자라고 불렀다.
216. 파라타존자 (頗羅墮尊者)
본 이름은 빈두로파라타이며, 또 빈두로돌라도, 빈도라발라타도를 간칭하여 빈두로, 빈두라고 하였는데 빈두로는 동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름이며 파라타는 재빠르다, 이롭다라는 뜻의 성이다.
원래 구사성 우전왕의 대신이었는데 우전왕이 그가 명석하고 성실한 것을 보고 그에게 출가하라고 하였다.
힘든 수행을 거쳐 나한과위를 얻었다.
한번은 그가 아직 계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신통력을 자랑하였는데 부처님에게 질책을 받고 남섬부주에 거주하지 못하게 되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불법을 널리 전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남천부주에서 사부와 제자를 그리워하다가 부처님께 고향에 내려가게 해달라고 네 번씩이나 빌어보았으나 그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에게 열반에 들기 전에 영원히 남천의 마리산에 거주하게 했으며 늘 세상에서 살면서 중생들을 위해 많은 복전을 가꾸게 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파라타는 늘 흰 머리에 눈썹이 긴 귀인상이었다고 한다
217. 단번뇌존자 (斷煩惱尊者)
세상중생의 고통은 모두 번뇌에서 온다.
번뇌로 인해 많은 나쁜 짓을 하는데 전생에 악업으로 금생에 고통을 받으며 세세생생을 환생하여도 세세생생으로 고통이 따른다. 단번뇌존자는 중생의 번뇌를 잘 제거하며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번뇌는 일체 중생의 적이다. 번뇌는 중생의 지혜로운 근원을 단절하며, 세상사람들이 우매하고 탐내고 화내어 불의한 많은 일들을 하게 되고 그 후 강물과 같이 중생들은 떠 밀려가 큰 바다에서 생사를 구원받을 수 없으며 생사지옥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단번뇌존자는 중생들을 권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는데 불성을 유익하게 하여 심성을 깨끗하게 하고 번뇌를 없애며 능히 옛날의 숱한 악업을 깨끗이 씻은 후 선심을 더하며 육취(六趣)를 탈피하여 영원히 해탈을 획득하라고 하였다.
세상은 중생에게 번뇌를 가져오니 만약 단번뇌존자에게 기도하면 번뇌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조용하여져서 명예와 재산이 구름처럼 떠나가고 일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다.
218. 박구라존자 (博俱羅尊者)
박구라, 박라파구라, 박거라, 파구여라고 하였는데 뜻은 선한 용모, 위대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박구라는 가리륵과 한 알을 희사하여 91겁의 오랜 동안 악에 타락하지 않고 천인복락을 받았는데, 80여년을 수행하였으나 머리 한 번 아파본 적이 없으며 잔병도 생긴 적이 없이 약은 한 알도 먹어보지 않았고 수명이 매우 길었다.
그리하여 “장수제일”이라 불렀다. 박구라는 안정한 것을 제일 즐겼는데 80년 동안 도를 닦으면서 남에게 법을 설명한 적이 없었다.
아난은 그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소? 변재나 지혜가 모자라 그런 것이 아니요?”라고 하자, 박구라는“나는 말주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혜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며 다만 안정을 즐기기 때문에 떠드는 것이 싫어서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성사제일(省事第一)”이라 불렸다.
박구라는 신체가 장대하고 용모가 단정하였으며 출가하여 도를 닦은 후 부터는 드러누워 자지 않고 시종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벽에나 나무에 기댄 적이 없었다. 소상은 바로 단정하게 올방자를 틀고 앉은 고승 형상이다.
219. 리파다존자 (利婆多尊者)
리파다, 가합화(假合和)라고도 한다.
불교경전 지도론의 기록에 의하면 총총히 길을 가는 한 사람이 밤에 여관에서 쉬지 못하고 한 교외의 신묘에 들었다. 늙은 귀신 하나가 죽은 사람을 하나 메고 이 신묘에 와서 먹고 배를 채우려 했다. 뒤에도 좀 젊은 귀신이 들어와 이 시체를 빼앗아 먹으려고 쌍방이 서로 싸우게 되자 이 두 귀신은 행인에게 증명해 달라고 하였다. 행인은 속으로 내 참말을 해도 죽을 것이고 거짓말을 해도 죽을 것이니 참말을 해서 죽어도 거짓말을 하고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고 “이 시체는 늙은 귀신이 메고 온 것이다.”라고 증명하였다.
젊은 귀신은 크게 노하여 그 자리에서 행인을 잡아먹었는데 다만 머리와 두 손발만이 남았다. 늙은 귀신은 행인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참회하여 젊은 귀신이 먹다 남은 머리와 손발을 자기 몸에 메었다.
날이 밝은 후 늙은 귀신이 한 절문 앞에 와서 절의 스님에게 묻기를 “이 머리는 내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이냐?”고 하자, 스님은 사실의 경과를 묻고 나서 그에게 “세상 만물은 모두 지, 수, 화, 풍의 4가지로 조성되었는데 이 머리 및 손발은 신체와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늙은 귀신은 불교진리의 깊은 뜻을 깨닫고 모두 내버려두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 선업을 행하고 만중생을 이롭게 하겠다고 맹세하고 후에 나한과위를 얻었다.
220. 호묘법존자 (護妙法尊者)
본명은 혜원이며 수나라 초기의 스님이다.
성은 이(李)가이며 돈황인이고 후에 상당고도(上黨高都 금산서진성)에 이사갔는데 13살에 출가하여 16살이 되던 해에 수나라 심법사를 따라 예(하남임장)에 가서 대소승경론을 익히고 20세에는 법상에게 구족계를 받고 후에는 대은율사(大隱律師)로부터 『四分律』을 고도 청화사에서 학습하였다.
주무제가 제도를 금하여 경당을 폐하라는 명이 내리자, 사문에서는 곡식을 도로 내주고 5백 승려들도 모두 두려워서 한마디도 못하는데 유독 혜원은 항의하기를 “폐하께서 어찌 금일 자유로운 왕의 힘으로 삼보를 멸하고 사악하게 합니까, 아비지옥에서는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지 않는다는데 폐하께서는 그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후에 급군서산(하남과 현서남)에 숨어 있으면서 3년간에 『법화경』,『유마경』 등을 외웠다. 대상 2년 북주정제가 불법을 회복하자 소림사에 있으면서 설법하였다.
수개황 7년에 왕명을 내려 ‘대덕(大德)’에 임하고 흥선사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후에 따로 정영사(淨影寺)를 세우고 늘 그곳에 거주하면서 법을 설명하였다.
사방에서 배우러 온 사람이 700여명이나 되었다.
개황 12년에 경을 번역하라는 명이 내려져 해석을 개정하여 간행하였다. 그해에 정영사에서 입적하였는데 세수는 70세이었다. 저작으로는 『대승의장(大乘儀章)』,『대열반경의기(大涅槃經義記)』,『십지경론소』 등 도합 20부 100여권이었으며 불경 주석의 최고권위자로 여겨졌다.
221. 최승의존자 (最勝意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획득했으며 그의 서원은 최승(最勝), 최락(最樂), 최선(最善), 최고묘(最高妙)였으므로 이름을 최승의라고 했다.
존자는 심신이 조용하여 안정하고 세상의 정이 있는 일체 번뇌를 제거하며, 이미 부처가 되는 공덕에 접근하여 불생불멸으로 늘 인간세상에서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비를 품고 중생이 고난 속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고 잠시도 쉬지 않고 중생을 인도하여 수행의 길에서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그는 세상의 제왕 및 권세가 있고 존귀한 자를 권유하여 착한 일을 많이 하라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생사윤회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최후에 존귀와 복이 끝날 때, 만약 금세에 악한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저승에서 구더기로 환생할 수 있으며, 만약 나라를 다스릴 때 게을러 공이 없으면 큰 돌을 안고 깊은 물 속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머리를 내밀고 구하나 참으로 곤란한 것이다.
최승의보살은 세상의 백성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권유하였는데, 각종 죄악은 윤회환생중에서 보응을 받을 것이며 생명이 끝난 후에 도악한 업을 면치 못하며 3번 환생하여도 악업의 구속을 받는다.
222. 수미등존자 (須彌燈尊者)
수미등존자의 이름은 그의 덕행으로부터 왔다.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에 의하면 “수미등자에서 수미는 구름처럼 기묘하게 높다는 것인데 묘하다는 것은 3지원융(三智圓融)했다는 것이며, 높다는 것은 인(因)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정이란 것은 비유적으로 3지(三智)를 다 비춘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소위 ‘3지’는 일체지혜 곧 성문연각(聲聞緣覺)의 지혜와 도종지(道種智) 곧 보살의 지혜와 일체종지(一切種智) 곧 불의 지혜를 말한다. 비록 세 가지로 갈라놓았지만 일체종지는 실지로 일체지혜와 도종지를 겸한 것이기에 세 가지 지혜가 원만하고 밝아서 중생들을 다 비추어준다는 것이다.
아미타경의소에 의하면 “수미등자는 산등(山燈), 즉 비유하여 법(法),보(寶) 2신이 무량한 정진을 하며 중생들을 평안하게 해 주려고 잠시도 태만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위 법신은 불신이라고도 하며 불법으로써 이룬 몸, 혹은 일체의 불법을 갖춘 몸을 가리킨다.
보신(報身)은 공덕을 쌓아 부처의 실제 지혜를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수미등존자는 선천적으로 여래장(如來藏)을 구비하고 진력을 다해 수행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으며, 또 자기의 법력으로 중생들을 편히 지내게 하고 근면하여 불법홍포에 게으르지 않았다.
223. 몰특가존자 (沒特伽尊者)
또한 몰특가라자(沒特伽羅子), 대목건련, 목련(目連)이라고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10대 제자중의 한 명이다. 신출귀몰하여 시방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신통제일이라고 불리웠다.
몰특가와 사리불은 원래 외도의 동문으로 모두 6사 외도 중 하나였는데 각 제자들이 백 명이 있었지만 자기의 신앙에 대해 늘 의혹을 품었다. 두 사람이 약속하여 누가 먼저 해탈하면 꼭 서로 알리자고 정하였다. 하루는 사리불은 삽시간에 도리를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사리불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해탈을 몰특가에게 알렸고 얼마후 몰특가도 제자들을 데리고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의 유력한 제자가되었다. 몰특가는 늘 부처님의 좌측에, 사리불은 우측에 따라다녔다. 몰특가는 정력(定力)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천, 인, 짐승, 아귀, 지옥 등 5취의 각종 경험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몰특가는 스스로 석가모니께서 세상을 떠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석가모니께서 열반전에 그는 라열성에 가서 탁발하다가 외도에게 몽둥이로 맞았는데, 이 소식을 아도세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흉악한 외도를 죽이려 하자 몰특가는 말리면서 “내가 맞은 것은 전생의 죄악 때문 입니다.그러니 다름 사람들에게 이런 응보를 내려서는 안되며 외도의 모든 사람을 징벌하여서도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 몰특가는 입적하였다.
224. 미사색존자 (彌沙塞尊者)
또 미사익, 미희사파가라고 하였는데 뜻은 화지, 불저유무관이라는 의미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미사색은 우파국다의 다섯 제자 중의 한 분이며 그가 화지부(火地部 또는 미사색부라고도 한다)를 창립하였다고 한다.
현응음의(玄應音義) 권23의 해석에 의하면 화지부라는 이름을 얻은 연고는 “이 나한(즉 미사색)이 왕의 국사였기 때문이며 광화토경(匡化土境)이라 하여 이름을 화지라 하였고, 불법을 땅으로 여기며 또한 땅을 변화시켜 이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십비니의초에 의하면 미사색은 늘 청색의 가사를 수하고 있었는데 불경에 대해 정밀하고 깊은 생각으로 깊고 오묘한 뜻을 이해하였으며 “선사입미(禪思入微), 구창현지(究暢玄旨)”라고 했다.
225. 선원만존자 (善圓滿尊者)
고인도 수파라가국(輸波羅伽國)의 부귀한 장자의 이름이 ‘자재(自在)’이었는데 상업을 업으로 하였다.
슬하에 아들 넷이 있었는데 막내아들의 이름이 원만이며 어린 시절에 형님들이 바다에 나가서 상업을 경영하는 것을 보고 역시 바다에 나가려고 생각했다.
부친은 원만의 나이가 어리므로 다만 성 내의 점포에서 일하게 허락하였다. 원만이 장사를 할 때 속이지 않아 매매가 흥성해졌으며 연말에는 이윤이 세 형님보다 더 많았다.
얼마 후 자재는 병이들어 세상을 떴는데 원만이와 큰 아주머니가 유산을 못 받아 가난한 날을 보냈다.
하루는 원만이 운이 있어 우두단향목 한 개를 얻었는데 마침 수파라가국왕이 열병에 걸려 4억냥의 황금으로 이 우두단향목을 병치료에 쓰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원만은 황금 4억냥을 얻었고 그 중의 3억냥은 물건을 사들여와서 잠깐 사이에 원가의 3배가 넘는 이윤을 얻었으며 또 6번이나 바다에 나가서 매번 안전하게 돌아와 재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났으니 용왕의 후한 배려를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전국의 제일 부유한 상인이 되었다. 하루는 원만이 왕자 교답마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곧 기수급고독원에 와서 불법의 가르침을 들은 후 불법의 계시를 깊이 믿게 되어 의연히 가산(家産)을 버리고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많은 공덕을 쌓아 석가모니의 저명한 제자가 되었다.
그 사적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경』 제4권에 기록되어 있다.
226. 파두마존자 (波頭摩尊者)
즉 파두마보살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권17에 의하면 파두마자는 빨간 연꽃이라 하였는데 심신이 연꽃처럼 깨끗하고 청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두마보살은 무수히 긴 시간에 무수한 모든 불을 공양하고 끊임없이 도를 닦으며 게으르지 않아 심신이 깨끗하여서 이미 정과에 도달했다. 파두마보살은 또 대자비심으로 중생들이 모두 해탈할 것을 희망하였다.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권14에 기록되기를 석가모니께서 부처가 되신 후 파두마보살이 법락강당에 석가모니를 청하여 설법하시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은 아래와 같다. “생사에 빠지니, 오도(五道)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다만 세존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오랫동안 굶주려 허약한사람들이 제도 받기를 원할 뿐이다.”하였다.
227. 지혜등존자 (智慧燈尊者)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득도하시기 전에 일찍이 여러 번 환생하신 적이 있었는데 매번 다시 태어날 때마다 모두 공덕을 더 쌓았으며 최후에 모은 공덕이 무량하여 비로소 득도한 불과를 이루었다.
석가모니의 전생에 선화당등 이라는 세계에서 환생한 적이 있었는데,『대방광불화엄경』권 제52의 기록에 의하면 선화당정세계에는 6천만억 중생들이 살고 있었는데 여러 부처님들은 이 세계에서 출생하였으며 많은 백성들을 가르쳤다.
당시 석가세존의 전생신은 여러 부처님을 공경히 모셨으며 지혜정불은 그때 제10존불이었다. 지혜정 및 기타 제불은 석가세존의 부양을 받았으며 석가세존의 전세신(前世身)은 지혜정불에게로부터 지혜와 역량을 얻어 불도를 닦는 또 한번의 성과를 이루었다.
228. 전단장존자 (전檀藏尊者)
즉 전단장보살이다. 전단은 나무의 일종인데 짙은 향기가 그윽했다.
전단장보살은 몸에서 특이한 향기를 뿌렸는데 그것은 이미 아주 깊이 향취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 제14권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시기 90일전에 중생들로부터 부탁받아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석가모니께서 당초에 바로 부처님이 되신 후 법락강당에 많은 보살들이 와서 설법하여 중생들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실 것을 부탁 받았을 때에 전단장보살도 와서 청하면서“오탁(五濁)이 세상에 가득하고, 진정법을 모르며, 지혜의 해가 이미 떨어졌으니, 원컨대 어두움을 제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로 볼 수 있는 바 전단장보살은 인간세상의 더러움과 추악한 일을 근심하고 걱정하여 불법의 위력을 빌어 다 쓸어버리기를 희망 하였는데,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듯 암흑이 사라지고 세상이 온통 광명으로 밝아졌다.
229. 가난류존자 (迦難留尊者)
가(迦)의 뜻은 업작(業作)이며 많은 중생들이 땅을 갈고 파종하여 수확을 거두고 세상에서 끊임없이 번성해감을 가리킨다.
가난류존자는 출가초기에 근면하게 도를 닦았으며 욕심이 점차 사라지고 불심이 일진하여 이미 청정과 공적을 깨달았으며 근심걱정과 번뇌가 없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상을 돌아보면 중생들에게 비록 빈곤과 병노의 고통과 이별의 그리움이 있으나, 이웃지간의 인정도 있고 가정의 처자식간에도 천륜지락이 있으며, 속세의 생각도 있는 것이다. 가난류존자는 청정한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상세히 관찰하고 중생들이 생사윤회와 인연업보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비록 여러 가지 낙과 취미가 있지만 범부속자(凡夫俗子)의 거족동보(擧足動步)도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후세에 환생하여 짐승, 아귀가 되고 또 지옥에 떨어져 끝이 없는 고통을 받는다.
영원한 해탈을 획득하려면 오직 불법을 수행하여야 하며, 이로써 청정불국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때부터 가난류존자는 마음을 다 바쳐 도를 닦아 끝내 나한과위를 얻었다.
존자 역시 본생의 행덕 때문에 ‘가난류’라는 법호를 얻었다.
230. 항염당존자(香焰幢尊者)
향염당존자는 최승왕경(最勝王經) 권6에서 말하기를 “그 향연을 보니 찰나의 순간에 향개(香盖)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향염당은 이와 비슷하여 불공의 향연기가 당이 되었다.
당은 한 가닥의 꼭대기 위에 각종 색깔의 비단천으로 장식한 대나무기둥을 말하는데 부처님 앞에 늘 세워 중생들에게 모든 마귀를 몰아낸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향염당존자는 불을 숭배하는 마음이 극히 경정하여 성심으로 매일 부처님 앞에 예배하며 참회하고 향을 피워 경의를 드렸는데, 향연은 위에서 모여 하나의 연당(煙幢)이 되었다.
231. 아습비존자(阿濕卑尊者)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저명한 제자이었다.
불학경전 대보적경(大寶積經) 권99의 기록에 의하면 아습비는 석가모니를 따라 왕사성의 기도굴산에서 수행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존자 아습비, 존자 가협 등 여러 명성이 높은 제자들이 왕사성에 들어가 탁발하였는데, 그들이 왕궁까지 왔을 때 아도세왕은 친히 일어나서 영접하여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였다.
아도세왕의 딸 무외덕공주(无畏德公主)는 일어나지도 인사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에 앉아서 부왕의 질문을 받았다.
무외덕 공주는 반문하여 “대왕께서 소국의 제후를 보고 일어나 영접 합니까? 사자는 짐승의 왕인데 작은 야수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합니까?”라고 하였다.
아도세왕은 비록 마음이 편치 못하였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아습비, 사리불 등은 무외덕이 총명하고 말재주가 좋은 것을 발견하고 공주를 불문에 받아들이기 위하여 무외덕에게 불법을 설명하였는데 공주는 곧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때 석가모니와 미륵보살은 이 사실을 알고 신통력으로 무외덕으로 하여금 보살과위를 얻게 하였으며 또 여자로부터 남자로 변하게 하여 그를 무외덕보살이라 불렀다.
232. 마니보존자(摩尼寶尊者)
즉 마니보영락보살인데 또한 금강혜보살이라고도 한다.
성유식론료의등 권7의 기록에 의하면 이 보살은 ‘등각중일인’이라 한다.
소위 ‘등각’은 대승에서 52번째 보살인데 이 보살의 위치는 아주 높아 묘각의 불과를 얻으며 공덕과 지혜는 부처님과 동등하였다.
범문 중에서 마니의 뜻은 곧 진주, 보배, 이구, 여의이다.
소위 이구는 혜원음의 권 상에 의하면 “이 보물은 빛이 나고 깨끗하여 티끌도 묻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니보존자의 청정한 불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소위 여의는 인왕경량분소 권하에서 “여의보주는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모두 만족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니보존자의 공덕이 원만한 것을 상징하며 이미 자기 뜻대로 하는 경계에 도달하였다.
이외에 열반경(涅槃經) 권 9에서 말하기를 “마니주는 흐린 물에 던져도 물이 곧 맑아졌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마니보존자는 세상의 더러운 것을 쓸어버리고 중생들을 고액(苦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였다.
233. 복덕수존자(福德首尊者)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세신이다.
한사람이 능히 불의 과위를 얻으려면 일생의 공덕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 세에 끊임없는 수행을 거쳐 공덕을 쌓아 대중에게 복을 나누어 주어야 최후에 비로소 부처의 과위를 얻을 수 있다.
대보적경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찍이 여러 제자들에게 거듭 태어나서 공덕을 쌓은 이력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제자들에게 서로 분발하고 본받아 열심히 노력하라고 격려하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회상하여 말씀하시기를 환생하여 국왕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복덕’이었으며, 이 복덕왕은 재위시에 선정을 베풀고 모든 것을 부흥하게 하여 천지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바람이 조화롭고 비가 알맞게 내려 오곡의 풍작을 거두었고 백성들은 업에 안락하게 종사하여 나라 안에 기근이 없었다.
그러나 복덕왕은 의연히 백성들이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을까 염려하여 그가 다스리는 성중 진향촌의 거리 여러 곳에 음식과 의약을 설치했으며, 만약 배가 고프고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마음대로 꺼내어 먹고 쓸 수 있게 하였다.
복덕왕의 이 일은 후에 원세조 홀필렬이 모방하여 원의 대도시에서 널리 자선바자를 행하였으며 황궁에서 매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용할 곡식을 주었는데 『마가파라유기』에 이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234. 이파미존자(利婆彌尊者)
또 이파제(利婆提)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중의 한 분이신 목건련의 제자이다.
『마가승지율』 권32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신 후 많은 신도들이 경전을 결립하려고 준비하였는데, 대가협존자는 이파제를 33천에 파견하였고 속제나비구를 집회에 초청하였다.
속제나비구는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신다는 말을 듣고 결심하여 몸으로 시중을 들고 또 열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파제는 돌아온 후 불교경전의 제1차 결집에 참가하였다.
235. 사차독존자(舍遮獨尊者)
존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은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님의 교시를 자세히 들을 수도 없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조용하고 청정하여 세속의 번뇌를 싫어하고 혼자생활하며 수행하여 스스로 불성을 깨달았다.
오래도록 도를 닦아 심성으로 대낮에 광명이 비추는 것 같이 불법의 구경을 깨달았다.
최후에 지혜와 공덕을 원만하게 닦고 불법의 본의를 다 깨달아 생사윤회를 영원히 벗어났다.
236. 단업존자 (斷業尊者)
단업존자는 덕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업이라는 것은 일을 하는 일체 심신활동을 넓게 가리키는 것이다.
불교를 각종 파에 따라 업에 대한 분류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3가지 업으로 나누어 신업(身業,행동), 어업 (語業, 口業), 의업(意業, 사상활동)이다.
대비파사론 권113에서 말하기를 “만약 자성이면 의당 한 가지 업인데 소위 어업이고 이는 말이 업이기 때문이며, 만약 소의(所依)이면 응당 일체 업을 모두 신업이라 이름하는데 이는 세 가지 업이 모두 몸을 의지하기 때문이며, 만약 등기이면 일체 업을 모두 의업이라 하는데 이는 3업이 모두 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3업의 선악이 있음으로 하여 과보가 달라진다.
성실론 권 7에서 말하기를 “업보의 3가지는 선, 불선, 무기인데, 종선, 불선생보(不善生報) 무기불생(无記不生).”이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착한 일을 하면 좋은 보응을 받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쁜 보응을 받으며 무기는 보응이 없다.”고 하였다.
단업존자는 불법에 귀의하였으며 진력을 다해 수행을 하여 이미 인과응보를 떠나 윤회를 벗어났다.
237. 환희지존자(歡喜智尊者)
아난의 뜻은 환희이다.
불교현철(賢哲)에는3 명의 아난존자가 나오는데 즉 아난타, 아난발타와 아난파가이며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경전과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존자는 아난파가에게 밤을 새워가며 대승불교의 교의를 수지하였으며 대승불의 이론에 따라 불성을 배우고 중생들을 제도하였다.
그는 불학이론이 매우 깊었으며 그 가운데서 무궁한 지혜와 신통을 얻고 동시에 태평성대의 장생을 염원하였고 중생들을 만나 대승불교가 가진 자비심을 구가하였다.
그리고 시시각각 중생들에게 대승교의를 포교하여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고 고난으로부터 청정대안에 이르게 하였다.
238. 건타락존자(乾陀落尊者)
또 건타륵, 건타라(乾陀羅)라고 하였다. 서역인이다.
후에 만리를 멀다하지 않고 중국 낙양에 왔는데 기개는 숭고하고 탁월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법술에 능하여 한번은 함께 있는 스님들에게 말하기를 “낙양 동남에 반지산이 있는데 산중에는 옛날 옛적에 절이 있었고 지금도 옛날 기초가 아직 남아 있어 절을 고쳐쓸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스님들은 믿지 않았지만 그를 따라 산에 가 보니, 과연 한곳에 옛 절의 터가 있었다. 일행은 초석을 찾아 그 기초 위에 절간을 고쳐 세우고 건타륵을 절의 주인으로 추천했다.
신사(新寺)와 낙양 사이가 100여 리가 되었는데 건타륵은 매일 아침에 낙양성에 왔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돌아갔다.
걸음걸이가 아주 빠른 스님이 건타륵을 따라가려고 땀을 흘리며 뛰었으나 여전히 쫓아가지 못했다.
건타륵은 그에게 자기의 옷자락을 잡으라고 하였는데 그 스님은 귓전에 바람이 쏴아 지나간 후 잠깐 사이에 절에 도착하였으나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239. 사가타존자(莎伽陀尊者)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성이 있는 제자였는데 미래세에서 부처의 자리를 차지할 분이며 불호는 ‘보명(普明)’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4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사가타등 여러 나한 수기에서 어떻게 수행하는가와 어떤 과위를 얻는가를 가르쳤다.
사가타등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깊이 깨달아 자신은 본래 지혜가 적음을 깨닫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크게 진보하였으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다. 그는 당시에 예를 들어 비유하기를 한 장자가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마침 친구가 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였는데 장자는 보배진주를 친구의 옷에다 달아 놓고 떠났다.
친구는 술이 깬 후 배가 고파서 도처에 가서 탁발을 하였는데 친구가 다시 장자를 만나서야 자기가 만관을 몸에 지닌 부자라는 것을 알았다. 사가타는 석가모니께서 자기에게 지혜를 준 것에 감사를 드렸다.
이 지혜는 그로 하여금 능히 번뇌를 탈피하고 정각(正覺)을 이룰 수 있게 하며 도처에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할 필요없이 해탈의 방법을 얻게 하였다.
240. 수미망존자(須彌望尊者)
수미망존자는 ‘망수미(望須彌)’라고도 하였다.
수미는 저명한 신선이었는데 뜻은 아주 묘하게 높다는 것이다.
불교전설에 수미산은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었으며 일월은 이 산의 둘레를 돌면서 출몰한다.
산 높이는 8만 4천 유순(由旬 고인도에서 제왕이 1일 행군한 노정을 1유순이라 하였다)이고 산꼭대기에는 제석천이 있으며 주위에는 7향해(香海)와 7금산이 있었다. 제7금산 밖에는 철위산을 싸는 함해(咸海)가 있고 함해의 네 주위에는 사대부주(四大部洲)가 있었다.
불타부터 존자의 지위가 높은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불교는 부처의 자리를 수미산의 형태로 만들며 이름을 ‘수미좌’ 혹은 ‘수미단’이라고 하였다.
수미망존자는 경건한 불가제자였으며 신선무희 도를 닦아 마음속으로 수미를 생각하고 또 수미를 바라보아 최후에 아라한과위를 얻었다.
241. 지선법존자(持善法尊者)
존자는 선법은 불교수행의 대법으로서 5계 10선과 3학 6도로 나눈다.
5계는 불살생, 불도둑,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이며, 10선은 불살생, 불도둑, 불사음, 불망어,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 불탐욕, 불진혜, 불사견(不邪見), 즉 소위 10악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10선이라 한다.
이상의 모든 법은 집에서 수행하는 거사들이 지니는 선법이다.
3학은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인데 계학은 인생의 악업을 방지하는 것이며 정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용한 마음을 길러내는 것이며 혜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와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분별하는 것이다.
6도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知慧)를 말하며 도라는 것은 곧 도(渡)다.
이 6가지 도는 생사고해 속의 세상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이며 청정한 곳, 곧 락토(樂土)까지 보내준다. 3학 6도는 출가스님이 선법을 확립하는 것이다.
선법존자는 5계 10선을 확립하고 출가 후 3학 6도를 확립하여 끝내 더러운 것을 탈피하고 정과를 얻었다.
242. 제다가존자(提多迦尊者)
또한 제다가(提多迦)라고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이다.
본명은 향승며 선종존자의 서천28대 선조중 제5대 선조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登錄)들의 기록에 의하면 제다가가 처음 태어날 때 그 부친은 둥근 금색 태양이 지붕 위에서 나와서 온 천지를 비추었는데 그 앞에는 각종 보물로 장식한 큰 산의 산꼭대기에서 샘물이 용솟음쳐 사방으로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후에 제4대 선조 우파국다는 이곳에 이르러 그의 머리를 깎고 정법안장을 넘겨주었다.
후에 제다가는 중인도까지 왔었는데 거기에 8천 대신선이 있었으며 미차가가 우두머리였고 함께 와서 오방배례하였다.
제다가는 미저가의 불성이 잘 구비된 것을 알고 그의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게 하였다.
다른 신선들은 부처님께 대한 마음이 경건하지 못하였는데, 제다가가 큰 신통력으로 여러 신선들에게 불과를 기원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여 출가하였다.
후에 제다가는 정법안장을 미저가에게 넘겨주면서 이르기를 "본래의 법심을 통달하면 법도 비법도 없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이 같으며, 무심이 곧 무법이다"라고 하였다. 제다가는 몸을 솟구쳐 허공에 올라 18번 변한 후 화광삼매에 들어가서 자신을 불태웠고 미저가와 8천비구는 사리를 거두어 반차산에서 탑을 세워 모시었다.
243. 수조성존자(水潮聲尊者)
존자는 이미 보살과위를 얻었으며 또 일체해조성보살이라고도 불렀다.
세상의 강물, 호수 바다는 비록 이름이 서로 다르지만 조류가 밀려들고 나가는 소리는 똑같다.
세상의 모든 부처의 명칭은 부동하고 읽은 경전도 같지 않지만 모두 중생의 해탈을 획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수조음존자(水潮音尊者)는 세상 모든 부처의 수양방법을 학습하고 세상 여러 부처의 경전을 해석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들으며 친히 세상의 모든 부처의 가르침을 받는다.
존자는 모든 불법을 널리 전수하였기에 세속을 탈피하고 심성이 청정하였으며 명월같이 불법에 통달하였다.
244. 지혜해존자(智慧海尊者)
즉 지혜보살이다.
지혜해는 보살의 지혜가 바다처럼 깊으며 삼림처럼 끝없이 일체를 포용한다는 것을 “우법관달(于法觀達), 무경불조(无境不照)”의 정신을 말한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권17에 의하면 지혜보살은 “지혜로 가득차야만 능히 세속의 선을 쫓아 생사에비유한 것이다.
소위 지혜는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즉 지혜보살은 자기가 바른 도를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비의 마음을 품고 “일체 중생의 생사와 이(利)에 들어가서 교화하며 정법으로 이끌어 믿게 한다.”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원행관문골목(大方廣佛華嚴經愿行觀門骨目) 권상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는 몸의 광명으로 시방(十方)을 비추시고 시방대보살은 각각 설하였는데, 지혜보살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무혜안이어서 능히 부처를 보지 못하였으며, 유정(有淨)이면 생사(生死)이고 무정(无淨)이면 열반이니, 생사와 열반은 함께 가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245. 중구덕존자(衆具德尊者)
수나라의 명승이다.
위군(魏郡 하남 안양)인이며 성은 왕가이고 동위(東魏) 흥화(興和) 2년 (540)에 태어나 4살에 출가하였으수나라의 명승이다.
위군(魏郡 하남 안양)인이며며 법호는 신행(信行)이다. 8세부터 경을 외웠는데 후에 상주 법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신행은 인식하건대 근기최리(根器最利)와 근기상리(根器上利)의 두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혜가 예리하므로 불교정각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근기노둔(根器魯鈍)한 제3계층의 사람들은 심성이 어둡고 참회하지 않으며 때로 5역(逆)10악(惡)을 저질러 정각을 획득하기 힘들지만, 신행은 정법을 진실하게 전파하여 제3계층 중생들을 가르쳤는데, 법이 대승소승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것처럼 중생들을
평범함과 현명함으로 나눌 수 없으며, 비록 계행을 지키기 힘드나 단지 법려(法侶)간의 무애무증(无愛无憎)을 추구하여 헐뜯지 않고 비방하지 않으면 오랜시간 후에 해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신행은 대근기행(對根起行), 삼계집록(三階集錄) 등 35부의 책을 쓰고 3계학설(三階學說)을 널리
알렸다.
수나라 초 장안에 초청되어 조용한 절에 거주하였는데, 몸소 일하고 탁발하며 지내고 그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신도들이 나날이 많아졌다.
해내영걸 현달도 와서 방문하였으며 사의보살(四依菩薩)이라 불렸다.
개원 14년 (594)에 입적하였다.
246. 불사의존자(不思儀尊者)
즉 불사의보살이다. 늘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회에 참석하였다.
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最僧問菩薩十住除垢斷結經)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비사리성 금씨수원에서 거행하는 법회에서 불사의보살을 보살에 대하여 논하였는데, “무위는 유위와 분리될 수 없고, 유위 또한 무위와 분리될 수 없다. 유위와 무위가 모두 무소유임을 아는 것과 그 중에서 몸과 입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보살혜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보적경, 불설결정비니경, 대방변불보은경등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여러 보살들에게 “누가 능히 말세에 정법을 호지하겠는가?”라고 하니 불사의보살은 “나는 능히 명심하고 감당하여 아귀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불사의보살은 또 석가모니 부처님께 맹세한 것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정법을 지키고 시방계(十方界)에 널리 전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하였다. 석가모니께서 친히 중생에게 이르시기를 불사의를 중심으로 하여 70여 대보살이 이미 무수한 겁 동안에 무수한 부처를 부양하였고 늘 법행을 하여 피곤하지 않고 불법을 잘 보호하였다고 하셨다.
그들은 스스로 자비로써 수행하였으며, 자비를 버리지 않고 중생이 죽기직전에 만약 불사의등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경건한 마음으로 귀의하고 죽은 후 불국정토에로 갔다.
247. 미저선존자(彌저仙尊者
불교 6대 선조 미저가존자는 전생에 신선이었기 때문에 또 미저선이라고 불렀다. 중인도인이며 다문박달(多聞博達)하고 말재주가 좋은 달변가였다.
불경에 의하면 미저가는 과거 오래 전에 하늘의 선사였는데, 아사타는 그에게 선법을 전수하여 선지가 뛰어났으며 지위는 8천 대신선의 머리였다.
당시 아사타는 그에게 이르기를 “이후 제6겁에 오늘 너와 같이 불법을 배운 동학을 만나고, 그때 너의 동학이 이미 정도를 얻었으면 너는 그를 계승해야 한다.”고 하였다.
환생하여 금세에 미저가는 불교 5대 선조 제다가를 만났는데, 제다가는 지식이 많고 깊은 것과 그 사람됨이 자비한 것을 보고 그가 전생의 동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출가를 청하였다.
미저가는 출가 후 5대 선조 가르침으로 정과를 얻었다.
5대 선조는 열반 직전에 미저가에게 법장을 주면서 널리 정법을 홍포하고 중생을 인도하여 육도윤회를 탈피하게 하라고 부탁하였다.
하루는 미저가가 외출하여 탁발한 후 열반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사리를 거두고 탑을 세워 모시었다.
248. 니타가존자 (尼馱伽尊者)
또 니타, 니제라고도 한다.
현우경(賢愚經) 니제도연품(尼提度緣品)에 의하면 니제는 원래 농부였는데 심성이 남달리 심연하였기에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가는 지론을 터득하였고, 오로지 정직한 것은 땅이라 하였다.
이것을 지켜본 석가모니께서는 고귀하고 비천한 것을 가리지 않으시고, 니제존자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켜 대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
249. 수정념존자 (首正念尊者)
존자는 덕행으로 법호를 얻었다.
수정념은 불법에 귀의한 이래 사악한 망상을 제거하고, 사고(思考)의 청정을 추구하였다.
심성이 조금이라도 흩어지면 불법진여(佛法眞如)에서 떠나기에 마음을 모아 법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오랜 시일이 지나면 심신과 법성이 하나로 융합되고, 법성이 자신의 천연지성(天然之性)이 되므로 유정세상을 떠도는 것은 물론 몸 또한 청정토에 있게 되며, 그 불성이 결코 변하지 않고 오염되지도 않는다. 중생들은 번뇌의 고통을 벗어나고, 외도는 일어나지 못하며, 각종 혼란은 뜬구름과도 같다.
자신의 불성은 명월과 같아서 수정념존자는 맑고 밝은 빛으로 천하의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250. 정보리존자 (淨菩提尊者)
즉 정각(淨覺), 노사나(盧舍那), 정만(淨滿)이라고도 하였다.
소위 정만은 “제악을 모두 없애므로 정(淨)이라 하고, 덕스러움에 있어서 모두 원만함으로 만(滿)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소위 노사나는 “광명이 온 누리에 비춘다는 것으로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첫째는 안으로 지혜의 빛이 진법제를 비추니 스스로를 비추고, 둘째는 밖으로 몸의 빛이 중생들을 비추니 세상을 비춘다."는 뜻이다.
자수용(自受用)은 정보리존자는 오랜 시일에 무량한 복덕을 쌓아 늘 스스로 큰 법락을 받아쓰고, 타수용(他受用)은 정보리존자는 평등지혜로 묘하고 깨끗한 공덕의 몸을 나타내며 순수한 정토에서 큰 신통으로 정법을 전하여 중생들의 번뇌의 그물을 타파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광대한 법락을 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