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과 북극은 추위와 눈, 얼음의 세상이지만 서로 다르다. 남극은 대륙이고 북극은 바다다. 남극과 북극은 각자 지구에서 서로 다른 유일한 환경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남극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남극은 대륙 가운데 가장 늦은 1819년에 우연히 발견됐다. 그 후 물개 사냥꾼들이 몰려들었고 아문센이나 스코트처럼 영웅적인 탐험가들이 20세기 초에 남극점을 정복했다. 하지만 아직도 인류 대부분에게 남극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땅이다.
남극의 기상과 대기, 얼음, 지자기, 생물, 그리고 바다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7-58년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도(IGY) 연구사업으로 남극점과 대륙 해안을 따라 연구기지가 건설된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후 남극조약이 맺어지고 기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18개 나라들이 30개가 넘는 상주기지에서 겨울에도 1천여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남극을 연구한다.
얼음에 기록된 지구환경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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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1950년대 들어서야 남극의 기상을 비롯한 각종 연구가 체계적으로 시작됐다. | 물론 남극연구는 낮 시간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가 생물들이 활동하고 얼음이 풀리는 남반구의 여름에 집중된다. 이때는 과학기술자가 4천여명으로 늘어난다. 예컨대 지층과 암석을 연구하는 지질과학과 남빙양의 생태계연구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가 남극의 봄에 시작해 여름에 절정을 이룬다. 또 과학자뿐 아니라 기지에 필요한 각종 물자들을 운반하고 월동대원들을 교대시키는 배와 비행기가 분주히 드나들며 관광객들도 몰려든다.
펭귄과 얼음뿐일 것 같은 남극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남극이 과학의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선 남극의 지리와 자연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지의 영역을 밝히려는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곳이다.
남극은 지구 육지면적의 9.2%를 차지하는 거대 대륙이다. 지구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사람들이 주로 온대지방에 모여 살면서, 지도에서 실제보다 작게 나와서 그렇지 결코 작지 않다.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보다 크고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얼음 아래에 있는 해안선은 말할 것도 없고 남극의 지형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남극은 2억년 전 대륙들이 갈라지면서 지금의 위치에서 지질시대가 다른 몇개의 지괴(地塊)가 모여서 생겼는데, 그 지질구조와 형성과정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나아가 남극대륙의 98%를 평균두께 2천1백60m로 덮는 거대한 빙원 자체도 그렇거니와 그 빙원 아래의 지형이나 기반암에 관한 지식도 거의 없다.
남극의 얼음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바로 남극과 지구환경의 변화가 기록된 역사책이나 마찬가지다. 눈이 다져져 생긴 얼음의 눈 입자 사이에는 눈이 쌓일 당시의 공기가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 공기를 채집해 분석하면 눈이 쌓일 당시의 공기 성분과 기후를 밝힐 수 있다.
공기 속에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많으면 기후가 따뜻했고, 눈결정의 씨로 화산재가 많으면 화산이 많이 폭발했으며 남극대륙으로 화산재가 날려온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남극에서 가장 낮은 기온 영하 89.6℃가 기록된 러시아 보스토크기지는 두께 3천7백m 얼음 위에 건설됐는데, 그 아래 얼음을 굴착해서 과거의 기후를 밝히고 있다. 3천6백23m에서 굴착한 얼음은 지금부터 42만6천년 전의 유물이다. 이 얼음으로부터 그때까지 지구 기후가 크게 네차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아래에 최대 깊이 5백m가 넘고 경기도보다 큰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보스토크라고 이름지어진 이 호수의 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얻을 방법이 아직 없어 지금도 연구중이다. 남극대륙을 덮는 빙원 아래에는 이런 호수가 약 70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의 언젠가 이 물을 채집하고 호수바닥에 있는 퇴적물을 얻는다면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신기한 현상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남극 오존층은 환경 바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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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의 영국 해군의 항공사진(위)과 몇년 동안의 아리랑 1호 위성사진(아래)으로 마리안 소만의 빙벽후퇴를 확인 할 수 있다. | 또한 남극은 북극과는 다른 극지환경으로 문명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곳이다. 남극의 대기운동, 지리, 지형, 지리위치, 그리고 생물이 복합돼 생기는 자연환경은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와 함께 남극대륙을 감싸는 남빙양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다. 이런 지구상 유일한 자연환경이 문명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남극의 대기순환은 기후에 영향을 줘 결국 농업과 산림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남빙양의 표층과 저층의 해수순환은 기후와 수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는 반대로 남극은 문명세계의 영향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으로, 지구의 건강을 감시하는 일종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인 예가 우리가 잘 아는 오존층에 생기는 구멍이다. 오존층은 지상 20-25km 상공에 있어 자외선을 막아준다. 지상의 생물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존층 덕분이다.
그러나 1930년대 자동차 냉매로 염화불화탄소(CFCs)를 주성분으로 한 프레온가스가 개발되면서 오존층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프레온을 개발했을 당시에는 1백년 지나봐야 2% 정도의 오존층만이 파괴되리라고 예상했으나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남반구 봄이 시작되는 9월부터 11월에 걸쳐 염화불화탄소의 염소성분이 오존을 깨뜨려, 심하면 오존층이 정상상태에서 30-40% 정도나 줄어든다. 남극대륙 상공에 있는 오존층이 깨어지는 사실은 서남극에 있는 영국 핼리기지에서 1984년에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남극 연구의 중요성은 남극대륙이 지구의 남쪽에 있어 천문 연구에 아주 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낮과 밤이 각각 여섯달씩 계속되는 남극점에서는 태양이나 별을 계속해서 관찰할 수 있어 천문학과 우주 연구에 아주 유리하다. 또 남쪽에 있고 문명세계의 교란이 적어 극궤도를 지나가는 인공위성의 제어와 궤도추적을 포함해 통신연구와 위성연구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남극에서 어떤 점들을 알아냈을까. 우선 남극에서도 지구온난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이란 20세기 후반 들어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 점점 더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자연현상인지 인위적인 결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최근 과거 5배 속도로 녹아내려 지구가 더워지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것이다. 이미 1970년대 말에 서남극의 얼음이 녹으리라는 예상이 나왔으며 최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에 면적이 약 2천km2이던 서남극 워디 빙붕(氷棚)은 녹고 부서지기 시작해, 1980대 중반에는 7백km2로 줄어든 것이 인공위성에서 관측됐다. 지금은 해안에 조금 걸쳐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전 신문에 게재된 서남극 라르센 빙붕도 녹아서 깨어진 것이다. 빙붕이란 원래는 얕은 바다로 1년 내내 얼음으로 덮인 바다, 곧 얼음대륙붕을 말한다.
빙붕만 녹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흘러드는 빙벽(氷壁)도 후퇴한다. 이 현상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바로 우리 세종기지 앞에서도 보인다. 세종기지는 서남극 남쉐틀랜드군도 킹조지섬의 바튼반도 북쪽 해안에 있다. 기지 앞에는 폭 1.3km, 길이 4km 정도의 마리안소만이 남서-북동방향으로 발달해 있는데, 그 북동쪽 끝에 킹조지섬에서 흘러내리는 최대 높이 20m 정도의 빙벽이 있다. 1950년대부터 간간이 찍은 항공사진과 최근 우리나라 아리랑 인공위성에 잡힌 모습을 비교하면 빙벽이 녹아내려 그 위치가 뒤로 물러난 것이 눈에 보인다.
더구나 물러나는 정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빨라져, 최근 7년 동안의 후퇴량이 과거 38년 동안의 후퇴량보다 크다. 이는 그만큼 지구온난화 현상이 격심하다는 증거로 생각돼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남극의 얼음이 녹는 현상이 지구온난화 현상보다는 그 지역이 일부 온난해진 결과라며, 지구온난화 현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더라도 얼음이 녹는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얼음이 녹으면 바다 수위가 높아진다. 이로 인해 태평양에 있는 몇개의 산호초는 물에 잠겨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산호초의 상당수는 해발 높이가 고작 2m로 바다에 낮게 깔려있기 때문에 바닷물이 20-30cm만 상승해도 이들 섬에는 큰 재앙이 된다. 실제로 지난해에 남태평양의 산호초섬으로 이뤄진 투발루공화국이 해수면 상승으로 자신의 영토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민 1만1천여명이 모두 뉴질랜드로 이민 가기로 한 것이다.
한국 포함 28개국이 남극 운영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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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현재 세종기지 주변을 주심으로 남극을 연구하고 있다. 본격적인 연구는 남극 세종기지가 건설된 1988년 이후부터 이뤄졌다. | 그렇다면 현재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남극에서 연구하고 있을까. 1961년 남극조약이 발효될 때에는 12개국이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남극조약은 이중구조로 돼 있어, 누구나 다 같은 자격을 갖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남극연구를 하는 나라만이 이른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ATCP) 자격을 획득해 남극에 관한 규정이나 법규를 개폐할 권리가 있다. 현재 남극조약에 가입한 45개국 중 28개국만이 ATCP 자격을 갖고 있다.
1980년대부터 남극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졌다. 이때 남극조약에 가입하는 나라들이 기지를 짓고 쇄빙선이나 해양조사선을 건조하며 비행장이나 부두를 건설했다. 나아가 남극환경보호에 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1991년 남극조약발효 30주년을 맞아 남극환경보호를 한층 더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지구환경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남극을 연구하는 것이 국제추세가 됐다. 예컨대 곧 남빙양 해양생태계를 밝히기 위해 남극의 봄이 시작되는 9월에 남빙양을 연구하려는 야심찬 국제공동연구가 수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여름에 남극을 연구했지만 이제는 남극의 봄에 쇄빙선을 동원해 해빙을 깨면서 남빙양에 도전하는 것이다.
세종기지의 진정한 가치 우리나라는 1978-79년부터 남극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남빙양의 일반해양조사를 하면서 난바다 곤쟁이류(크릴)를 시험으로 포획했다. 그리고 1986년 11월 드디어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으며, 1988년 2월 17일 남극 세종기지를 건설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세종기지 건설과 이전의 남극연구를 인정받아 1989년 10월 23번째로 ATCP 자격을 획득했다. 이는 우리의 남극연구활동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남극연구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북한은 우리보다 남극조약에 조금 늦게 가입했으나 ATCP 자격이 없다.
우리나라가 남극에 대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얻은 이익은 단지 과학자들의 몫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남극조약을 비롯해 남극에 관련된 조약에 가입해, 남빙양에서 크릴을 포획했고 지금은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일명 메로) 같은 고급어종을 잡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남극에 진출한 진정한 가치는 우리나라 과학자가 남극을 연구할 수 있다는데 있다. 바로 세종기지를 건설하면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매년 남빙양에서 해양조사를 하고 기지 둘레의 지질을 조사하고 월동대가 자연환경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해 왔다는 점이다. 연구분야는 크게 고층대기연구를 포함한 대기과학과 빙화학 분야, 해저퇴적물과 해저구조 해석을 포함한 지질과학 분야, 해양생물과 해양화학을 포함한 해양과학 분야이다. 연구 결과 세종기지 주변 빙벽이 후퇴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우리 기지의 평균온도가 10년 동안에 0.6℃ 상승하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는 해양저서생물과 해조류의 생태를 밝혀 오존층의 감소에 따른 영향을 규명할 예정이다. 나아가 분자생물학자들이 남극 해양생물의 발생과정, 그리고 남극 먹이망의 기본이 되는 식물플랑크톤과 크릴의 지리분포와 생태를 밝히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활동지역은 주로 기지를 중심으로 한 남빙양과 남쉐틀랜드군도의 도서지방에 국한돼 있다. 때문에 남극 본연의 연구, 곧 남극대륙을 덮는 거대한 빙원과 고층대기 같은 분야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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