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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반드시 맡아봐야 할 피 냄새 |
2006.12.15 / 허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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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은 한국 장르문학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대 파란이다. 공포문학의 전통이 전무하다시피 한 토대 위에 단순한 괴담이 아닌 문학적 서사의 가능성을 확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록된 각 소설의 세부 장르가 상호 유기적인 호응과 대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단편집의 형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결과물이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완성도 높은 핏빛 단편집 속으로 잠수해본다.
피와 뼈가 분리되고 살점이 작렬하는 공포영화를 대놓고 꺼려 싫어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또 널렸다.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하면 마치 촌스럽거나 매우 속물적인 양, 혹은 아예 변태로 취급되는 경우도 쌔고 쌨다. 하지만 공포영화,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공포 장르의 뿌리 깊은 매력(서사예술의 탄생과 더불어 가장 먼저 등장한 장르 가운데 하나)에 대한 근원적 원인 규명도 없이 “단지 공포라는 이유로” 폄하하는 행위는 차라리 기만에 가깝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단지 ‘피와 뼈가 분리되고 살점이 작렬하기’ 때문에 정 붙이고 사는 게 아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전복적 사고관과 반골정신, 시대를 담는 메타포에 매료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예민하고 관찰력이 좋은 사람일 뿐이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공포 장르에 허락된 운신의 폭이 얼마나 좁고 얕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네 글자 이 땅위에서 그 폭은 더욱 더 움츠려든다. 길고 긴 군사독재정권을 겪으면서 사회에 만연한 폭력이 스크린으로, 혹은 텍스트로 재현되는 걸 원치 않았던 위정자들 덕분에 이 땅위의 공포 장르는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없었다. 김기영과 이만희, 혹은 박윤교, 고영남의 이례적 작품 몇 가지를 빼놓고는 이렇다 할 공포영화의 전통을 내세우기 힘든 처지다. 그래도 영화 쪽은 좀 나은 편이다.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네티즌 소설, 소비자 문학의 시대는 ‘공포문학=인터넷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괴담’ 따위 애비 어미 없는 공식을 낳고 말았다.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이 그 잔혹성에 대한 화제만을 낳은 채 문학적 시장적 가치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까닭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공포영화가 고사 직전이라면, 한국의 공포문학은 “응애” 한번 뱉어보지 못한 불운의 사생아다. 에, 그러니까, 최소한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고.
10개의 공포문학 단편이 수록된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은, 그래서 더욱 파격적이다. 안일한 판타지와 지루한 정통문학의 사잇길, 공포문학의 불모지 위에 광선검 곱게 차고 홀연히 나타난 루크 스카이워커다. <분신사바>(<모녀귀>) <이프>의 이종호 작가가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8명의 작가들과 <팔란티어>로 잘 알려진 김민영 작가가 뭉쳐 이룩한 성과물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먼저, 단순한 괴담이 아닌 문학적 서사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10개 단편은 오컬트, 사이코스릴러, 고어, 판타지, 잔혹 소동극 등의 다양한 세부 장르를 소화해내면서 각별한 완결성과 탄탄한 서사의 명민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쇼크 효과나 반전에 기댄 서사는 오히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단편집의 팽팽한 긴장감은 구조적인 문체와 이야기의 힘에서 기인하는 것일 뿐, 그 어떤 요행도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는 홍길동적인 태생의 설움과 렉서스 마냥 전통이 부재한 내용적 탁월함이 마구 혼재돼, 급기야 전에 없던 문학적 자신감이 용솟음치는 쾌감의 질주가 동반한다. 두 번째는 이 책의 탄생을 가능케 한 개척정신이다. 단편집에 참여한 신진오 작가는 이종호를 일컬어 “조조 같다”고 칭한다. 간사하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아 활용하는 등용과 재생산의 귀재란 의미다. 잘 나가던 공중파 방송국 PD자리 때려치우고 별로 많이 팔리지도 않는 공포문학의 길을 걸어온 그는, 두세 사람 대표작가의 노력으로 하나의 장르와 산업을 고취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이종호가 세상을 뒤져 양성할 만한 작가들을 발굴해내고, 그들과의 상호작용과 꾸준한 재훈련을 통해 단편집을 낸 결과 우리는 진귀한 공포문학 장르작가들을 한꺼번에 무려 8명이나 얻게 됐다. 기름기 조금 발라 말하자면, 이건 로또보다 멀고 기적보다는 조금 가까운 일종의 “사건”이다.
확인사살 한번 하고 넘어가자.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단편은 재밌고 흥겨운 동시에 정수리 시큰할 정도로 무섭다. 그건 공포가 가진 자 덜 가진 자, 생긴 자 못생긴 자, 아는 자 모르는 자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공평무사의 감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 스스로 공포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이 단편들은 서로 전혀 다른 독해의 지점과 장르적 성취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유기적인 호응과 대구의 과정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이루고 있다. 그 걸출한 성과에 우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좀 더 신경을 기울여 주목해볼 만한 작품들을 거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몸>으로 잘 알려진 김종일 작가의 <일방통행>은 이 책의 서두를 열기에 더 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교통 체증과 상대 운전자와의 심리적 대립각을 통해 개인적 울분을 사회적 분노로 확장하는 이 소설은, 큰 야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어질 단편들에 대한 기대치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그 기능적인 추임새에 있어서 드라마 <마스터즈 오브 호러> 1시즌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마운틴 로드>(돈 코스카렐리 감독)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권정은 작가의 <은둔>과 신진오 작가의 <상자>는 이토 준지적 상상력의 진수라 할 만하다. 전자가 비주얼적인 그로테스크를 문자로 옮기는 천부적 감각을 드러낸다면, 후자는 이야기 전개의 파격적 호흡을 통해 기상천외한 도륙의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명희 작가의 <들개>는 마치 백민석의 소설을 보는 것 마냥 유려한 문체와 피 비린내 나는 수사로 살인마의 심리와 참극의 순간을 현실감 넘치게 재현한다. 장은호 작가의 <하등인간>은 디스토피아 세계의 독재 체제를 SF화법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조지오웰의 <1984>를 연상시키지만, ‘암묵적 동의’라는 구조적 부조리의 기저에서 공포의 실마리를 끌어내는 시선의 기민함을 드러낸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최근 3, 4년간 국내에서 제작된 어떤 공포영화보다 이야기 구조상의 높은 완성도와 장르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누구나 스티븐 킹과 그의 소설을 찾아 사 읽고 훌륭하다 말하지만,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의 작품들은 독자들과 시공간적 연속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자기 반영적이다. 한마디로 더 무섭다는 말씀. 이건 결코 아리따운 민족주의가 아니다. 당신이 이 풍진 세상에 꼭 한번 맡아야 할 피 냄새가 있다면, 그건 단연코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감을 일깨워 삶을 기름지게 할 매혹의 장르 문학이 이제 막 기지개와 함께 사자후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린 정말 멋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 김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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