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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아나하타 차크라다.
이 네 번째 아나하타 차크라에서는 의심, 즉 불신이 문제가 된다.
그대의 마음이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 아나하타 차크라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믿음만이 이 차크라를 여는 열쇠다.
의심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의심이든지 그대의 가슴을 파괴한다.
아나하타 차크라는 가슴의 차크라이기 때문이다.
의심에서 믿음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오직 그럼으로써만 아나하타 차크라는 열리게 된다.
이때 그대의 아나하타 차크라는 마니뿌라 차크라로부터 솟아오르는 남성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아나하타 차크라는 여성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 속에서는 아나하타 차크라의 물기가 말라 버린다.
물기가 말라 버렸기 때문에 마니뿌라 차크라에서 솟구치는 남성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믿음을 통해서만 아나하타 여성 차크라는 열린다.
믿음을 통해서만 아나하타, 이 여성 차크라에 물기가 고이는 것이다.
마니뿌라, 남성 에너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비슈다 차크라이다.
모방과 흉내, 비창조적인 것, 이런 것들이 이 차크라를 상처내고 있다.
비슈다 차크라는 모방에 의해서 파괴된다.
모방자가 되지 말라.
복사판이 되지 말라.
붓다가 되려고, 그리스도가 되려고 모방하지 말라.
비슈다 차크라는 창조력에 의해서, 표현력에 의해서, 그대 자신의 삶의 방법에 의해서 활성화된다.
그대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라.
그리고 그대 자신의 그 삶의 방법에 용기를 가져라.
예술, 노래, 춤, 발명, 이 모든 것들이 아나하타 차크라를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듭 창조적이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새로운 방법을 찾으라.
독창적인 방법을, 진실한 태도를 가져라.
마룻바닥을 닦을 때조차 그대만의 방법으로 닦아야 한다.
음식을 만들 때조차 그대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아아, 무슨 일을 하든지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대 자신이 얼마만큼 독창적이냐에 따라서 비슈다 차크라는 보다 빨리 열리게 된다.
비슈다 차크라가 열릴 때 에너지는 여섯 번째 아즈나 차크라로 상승한다.
제 3의 눈으로 상승한다.
이것은 과정이다.
첫째 모든 센터를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
어느 부분이 파손되었는가를 알아서 수리하게 되면 그 차크라의 기능은 저절로 되살아나게 된다.
바위처럼 굳어 버린 에너지는 다시 굽이쳐 흐르게 된다.
이 여섯 번째 아즈나 차크라를 넘어서 사하스라라 마지막 차크라가 있다.
일천 장의 연꽃잎 피는 차크라가 있다.
여기에서 그대는 활짝 꽃핀다.
그렇다. 인간은 분명히 하나의 나무다.
물라다라 차크라는 뿌리다.
그리고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그 뿌리가 활짝 꽃핀 상태다.
꽃이 피고 그대의 향기가 바람에 흐른다.
이것이 바로 기도요, 신성의 발 아래 그 꽃을 바치는 예배이다.
그러나 그 꽃을 다른 데서 가져와서는 안 된다.
다른 나무에서 훔쳐와서는 안 된다.
그대 나무는 꽃피어야 하고 그 꽃을 바쳐야 한다.
성은 다만 기쁨의 시작이다. ABC다. 알파다. 결코 오메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은 확실히 무한한 실제는 아니다.
다만 그것에의 반향일 뿐이다.
사하스라라, 절정의 차크라는 아직 먼 곳에 있다.
성센터가 약간 행복을 느낄 때 기쁨은 다만 사하스라라의 먼 반향일 뿐이다.
때문에 사하스라라 쪽으로 상승하면 할 수록 행복은, 기쁨은 증가한다.
물라다라 차크라로부터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로 옮겨갈 때 더욱더 행복을 느낀다.
첫 번째 만남인 물라다라와 스와디스타나의 만남은 기쁨의 절정이다.
연이어 두 번째 만남은 보다 더한 기쁨이다.
다음 세 번째 만남이 있다.
세 번째 만남에서 그대는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경험해야 할 기쁨의 영역은 남아 있다.
사하스라라에서 일어나는 그 기쁨이 남아 있다.
사하스라라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오직 축복, 축복만이 넘칠 뿐, 그대는 거기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벅차고 진한 축복이기에 "나는 축복받고 있다"고 조차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대 자신이 축복, 그 자체가 되었음을 느낄 뿐이다.
일곱 번째 차크라에서 기쁨의 전율이 그대를 휩쓴다.
사하스라라 차크라에서 기쁨의 전율이 그대를 휩쓸 것이다.
지나온 여섯 개의 차크라는 여기 이 일곱 번째 차크라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사하스라라의 반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질의 이 반향을 놓치지 말라.
반향은 바로 본질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그 반향 속에서 본질에 연결된 선을 찾아라.
그 선을 잡고 본질 속으로, 내면으로 옮겨가거라
-오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