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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결정한 이별은 그렇게 하루하루 그들의 먹먹한 가슴을 다독이고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열심히 일정에 맞춰 움직이며 공연을 하는 준성과 미친 듯 작사 일에 매진하는 별님. 노래를 부르며 별님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려 애쓰는 우준성. 반면 자신이 작사하는 가사들을 읊조리면서 이별에 대처하는 별님의 하루하루.
"오우, 전별... 수입 짭짤하겠는데?!"
"요즘 쫌 그러네?!"
배시시 웃어 보이는 별님의 얼굴에 미소로 화답하는 미윤. 비록 이 모든 것이 우준성의 고집으로 별님의 작사곡이 타이틀곡으로 불려지고, 인기를 얻으면서 상도 받고. 수많은 작사의뢰 요청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임을 어느 누가 콕 짚어 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별님. 가사를 쓰고, 쓰고 또 쓰면서 항상 준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풀어나간다.
"별님씨, 이번 노래도 옛사랑에 대한 기억인가?"
"뭐... 아니라곤 말 못하겠네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애틋했는데... 왜 헤어졌어?"
"그쪽 일에 종사하는 사람 만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하긴, 그렇지. 대중들은 그 많은 인기면 쉴 새 없이 연애를 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왜 아직까지 인연을 못 만나냐 하는데. 솔직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는 거 같아.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게 딱 우리 쪽 사람들 얘기에 걸맞지."
"화려하고, 시끄러운 관심 속에 정신적으로 얻어지는 건 없다... 뭐 그런 거요?"
"척하면 척이네."
동반 해외진출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Lady.R. HeeRa는 강제적으로 시작된 관계이기는 해도 준성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조금씩 가까워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준성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HeeRa의 예상과는 계속 어긋나게만 행동했고,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상태의 HeeRa.
"뭐해?"
"아니, 그냥……."
"올라가자."
"응."
특별무대로 준성과 HeeRa의 합동무대. 성공적으로 무대를 끝마치고 대기석으로 내려오는 HeeRa와 준성. 어색한 듯 떨어져 앉아있는 Lady.R과 Sweet.B멤버들.
"우리, 얘기 좀 할래?"
"해."
"잠깐만."
비스듬하게 기대 앉아있는 준성의 팔을 잡아끌고, 으슥한 곳으로 걸어가는 HeeRa.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라 주변을 치밀하게 살피며 따라 걷고 있는 우준성. 인적 드문 곳, 어둠이 잔뜩 내려 깔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기도 힘든 곳. 깊은 숨을 내쉬면서 어렵게 입을 여는 HeeRa.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뭐?"
"꼭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말하게 된 것도 미안."
"야, 배수정."
"난 그냥... 억지로라도 상황을 만들다 보면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조금 더 해야 가까워지려나... 그냥 그 생각뿐이었어."
"후……."
"그냥, 오빠 마음을 얻고 싶었어. 그것뿐이었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줄 알아?"
".........“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씩씩거리기만 하는 우준성. 아무런 말도 더 이상 덧붙이지 못하고 준성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는 HeeRa. 조금은 편하게 말을 터놓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서 일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알아보고 알아듣는 한국보단 지금 이 낯선 타국이 조금은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으니.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생각 없이 저질러 놓은 일들로 아주 큰걸 잃었거든?!"
"그, 그랬...겠지……."
"그것조차도 네가 바라던 거 였겠지?"
".........."
"그런 내 입장에서 네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어떻게 달라질까? 뭘 기대하는 걸까? 배수정이."
"어떻게 하면 용서해줄래?"
"내가 하는 대로 이용당해봐."
"........"
"그건 싫은가봐?"
"아니! 그래. 이용당해 줄게. 그렇게라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늦춰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게."
이별한 후... 별님의 안부가 걱정된 윤준이 달님을 통해 연락을 취한다. 마지막 학기 이수를 위해 열심히 대학 생활 중인 달님이 후배들과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전화를 받는다. 브라운색의 백을 메고, 조금은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뽀얀 피부를 햇살에 맞대고 서서 통화를 이어가는 달님.
"어쩐 일이냐?"
"작사가 누나, 잘 지내?"
"네가 그게 왜 궁금한데?"
"리더로써... 우준성은 묻고 싶어도 못 물을 거고, 내가 대신……."
"너 이러는 거 좀 오버야. 둘은 둘이고. 이미 끝내고 떠난 마당에 네가 이렇게까지 챙길 필요 없다고."
"전달님.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해주면 안되냐? 그저 이렇게라도 안부 묻고 싶어서 전화한 나한테 굳이 그래야겠냐고."
"진작 그렇게 말하면 될 걸. 왜 하필 우리 누나랑 우준성이란 놈 엮어서 전화질이야. 그리고 우리 누나 걱정 안 해도 된다. 미친 듯이 일하면서 아주 자알 지내고 계시거든. 암튼 그런 쪽으론 니들보다 익숙한 사람이니까."
"그래, 잘 지내고 있어라. 둘은 둘이고 사나이 의리는 계속 돼야 하는 거 알지?"
"알았어. 임마! 너도 건강 잘 챙기면서 일하고. 한국 들어오면 연락해."
시간표대로 강의를 다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 터벅터벅... 어느새 푸르게 펼쳐져있던 잎들이 쌀쌀한 바람결에 하나하나 날려 바닥에 깔리고, 바닥에 깔린 잎들을 이사람, 저사람 지나가며 밟아서 부서지는 마른 잎들. 괜스레 윤준의 전화를 받고난 후라 그런지 별님이 마음에 걸리는 달님. 모처럼 별님의 작업실로 별님을 데리러 간다. 마지막 지하철시간을 놓칠 새라 다급하게 건물에서 따다다닥 구두소리를 울려대며 뛰어나오는 전별님. 긴 생머리였던 머리를 어깨 즈음 내려오는 단발머리로 잘라낸 지 몇 주나 됐나... 잘려나간 별님의 머리길이 만큼 달라져 보이는 얼굴색. 옅은 브라운색으로 물들여진 별님의 머리칼이 차가운 바람에 날리며 습관처럼 맹맹거리는 코를 훌쩍거리는 별님.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달님을 그제야 알아본다.
"어쭈, 어쩐 일이야?"
"아 진짜. 여자 입에서 어쭈가 뭐냐?"
"이 자식. 너 이 누나한테 잔소리 할라고 온 거면 저리저리 떨어져서 걸어라."
달님을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고 휙휙 걸어 나가는 별님. 얼마 전에 이별을 한 20대 중후반의 여성이라면 지금쯤이면 기운 없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고 금방이라도 툭.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슬픔이 가득 찬 모습이어야 하는 게 보편적일수도 있는데, 너무도 씩씩한 자신의 누나 모습에 기가차서 헛웃음이 나오는 전달님.
"참 대단해."
"뭐가 또."
"감정 추스르는 데는 최고야, 최고."
"무슨 소릴 하려고……."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누나! 우리 오늘 패밀리레스토랑 갈까?"
"허이구, 가난한 대학생님. 지금 그 소리는 이 전별님의 지갑을 좀 열어주십쇼 하는 거?"
"역시. 센스도 누나가 최고인 듯."
"좋아, 까짓것! 내가 오늘 쏜다!!!"
한껏 신나서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거리며 지하철을 타러 가려던 걸음을 옮겨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세트메뉴부터 이것저것 시켜놓고, 잔뜩 신나게 먹고, 마시는 달님과 별님. 식사를 마치고 와인에 취한 듯 해롱거리는 별님이 팔짱을 끼고 가까운 노래방으로 달님을 반강제적으로 끌고 간다.
노래방 안. 불쑥 달님의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밀고, 듣고 싶은 노래를 찾는 듯 뒤적거리던 별님이 번호를 누르고 시작버튼을 꾸욱.
[Miss you]-작곡 : S.victory / 작사 : 전별님 / 노래 : Sweet.B
"얼른! 얼른! 듣고 싶어."
"그래도 이건."
"당장 불러!"
전주가 흘러나오고 노래를 시작하려 마이크를 든 손을 입에 가까이 하는 달님. 조금은 긴장돼 보이는 별님의 표정이 걱정스럽지만 열심히 불러 보인다. 감정이 복잡해지는 별님은 열심히 노래 부르는 달님을 보며 한껏 웃고, 박수를 쳐주지만 이미 흘러 내린지 한참인 듯 보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펑펑 우는 별님을 등지고 열심히 노래를 불러주는 달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전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