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제는 24세 백유 할아버지의 후처 파평윤씨 묘제인데 매년 음력으로 10월5일 황강공 후손 주관으로 지내는 시제입니다.
기일은 음력 10월23일이라네요.
묘지는 경기도 성남시 여수동 흑암산 25번지에 있습니다.
우리 공덕종중에서는 흔히 성남시제라고 하는데 시제 공식명칭은 양후공배 파평윤씨 및 선조비 묘제라고 부릅니다.
22세(世) 황강공은 24세(世)양후공 백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서 고려말에 정 2품에 해당되는 춘추감사를 역임했고 말년에 전주 황방산에 문학대를 짓고 후학을 길렀다고 합니다.
24세 양후공 백유 할아버지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서 이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으로서 묘지는 마전에 있습니다.
24세(世) 양후공 백유 할아버지는 두 분의 할머니가 계셨는데 본처는 정경부인 해주오씨로 군수 오사운의 딸인데 자식이 없었고 묘지는 실전되었다가 나중에 전주 구이면 쇠용터에서 찾았답니다.
이번에 도로공사를 하는데 다행히 해주오씨 할머니 묘지는 그대로 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후처 정경부인 파평윤씨는 진사 윤승렬의 딸인데 장남 속(粟), 차남 자(栥), 삼남 균(稛) 등 아들 셋을 두었다고 합니다.
후처 파평윤씨가 말년에 경기도 성남시 친정집에서 별세하자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서 장사지내고 흑암산에 묘를 쓰고 해마다 음력 10월5일에 시제를 지내며 그 옆 건너편에는 친정 어머니 묘가 있는데 같이 시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는 양후공 백유 할아버지의 3남 균(稛)의 자손들이 거주함으로서 성남의 토착민으로서 전주이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지금도 여수동 뒷골에는 전주이씨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답니다.
참고로 24세 양후공 백유 할아버지는 다들 아시겠지만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서 개국공신입니다.
아버지는 몽(蒙)이고 이색(李穡)의 문인이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갈(碑碣)은 고은 안지(皐隱 安止)가 지었고 묘지(墓誌)는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지었답니다.
이분들은 용비어천가를 지은 유명한 분들인데 혹시 이분들이 지은 석물들이 훼손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몇 년 전에 보니까 멀쩡한 묘석 돌들을 전부 새돌로 단장하고 옛날 돌들은 전부 계곡에 버렸던데...
양후공 백유 할아버지는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 동진사(同進士 : 丙科에 해당) 제7위로 급제하였고 1389년(공양왕 1년) 문하부태상시(門下府太常侍)에 이르렀습니다.
1392년 예조판서를 지내고 그 해 7월 배극렴(裵克廉)·남은(南誾) 등과 함께 백관을 인솔하여 이성계(李成桂)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조선왕조를 개창하는데 기여하여 개국공신에 책립되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답니다.
그러나 1398년(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鄭道傳) 일파로 지목되어 관작과 공신의 칭호를 삭탈당하고 지방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부분 복권되어 양후(良厚)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조선 왕조의 건국에 핵심세력이 된 신진사대부의 한 사람이었으나 권력재편과정에서 축출되었답니다.
그 외 자세한 내용은 우리 족보 황강공 세보 1권을 참고 하시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