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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THE
NEW TSTAMENT
by
T. Ernest Wilson
신약성경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교훈들
-T.어네스트 윌슨 글-
▣ 교훈에 관한 비밀
《1,》교회의 비밀("에베서서 3장")
《2,》신부의 비밀("에베소서5:23", "요한 계시록19, 20장")
《3,》천국의 비밀("마태 복음 13장")
《4,》이스라엘의 소경됨의 비밀("로마서11:25")
《5,》휴거의 비밀("고린도 전서15:51")
《6,》일곱 별과 일곱 교회의 비밀("요한 계시록1:20")
《7,》큰 바벨론의 비밀("요한 계시록17, 18장")
※본 여기에 계시한 교훈들을 읽으시면서 성경 본문 구절들을 꼭 참조 하시어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강원도 강릉시 †강릉 Gospel Hall of Christ 배장식 형제 옮김
▣교훈에 관한 비밀
《1.》믿음의 비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9→).
-바울은 그의 목회서신서에서 자기가 떠난후에 증거의 '햇불을 높이 치켜든 젊은 동역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들을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서에서의
《1,》교회의 비밀
<1.>한몸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비밀 ("에베소서 3장)
―사도바울의 사역에서 중심된 가르침은 교회의 비밀이라고 말하여지며, 그는 이것을 에베소에서 드러내었습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맨처음 우리주님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그 다음에 18장 17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나타내셨던 것은 교회는 장래에 생길 것이며, 주님 자신이 그 교회의 건설자가 되실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이 교회의 생일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대로 오순절날이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47절에서 보면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셨다고 나왔있습니다. 그다음 사도행전 8장 1절에는 교회에 큰 핍박이 있었으며, 바울이 교회를 사정엇이 파괴한 사실이 나왔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바울이 변화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계시된 큰 비밀은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지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똑같은 입장에서 교회로 인도된 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후사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에 함께 참예하게된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에베소서 3장에서 드러내어 상세히 설명하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 에베소서 3장의 비밀을 살펴보기전에 교회에 관한 세 가지의 잘못된 개념을 분명히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첫째, 바울이 상술한 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구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 그것은 온전히 새로운 것이며 이 큰 비밀안에 처음으로 계시딘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상징과 예화가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아담과 이브를 그리스도와 교회와 연관지어 말하고 있습니다. 누룩을 섞어서 구운 떡 두개로 드리는 오순절 축제는("레23:15~22"→). 분명히 현 시대의 교회에 대한 그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가르침 자체는 신약 성경에서 계시될 때까지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었습니다.
둘째, 몸과 그 머리입니다.
―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서 오직 바울만이 교회에 대해 이 비유를사용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그것을 아홉번이나 언급했습니다.
셋째, 신부입니다.
― 바울으 최초의 신랑과 신부를 예로들어 그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적용했으며("엡5:25~32"→). 그는 이것을 큰 비밀이라 했습니다.
― 이의 ㅔ 가지 중에서 에베소서 3장의 비밀은 특히 머리와 몸의 중대한 진리에 관계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 23절에는 그 영광을 받드신 머리와 관련된 몸이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1장의 끝부분에 나오는 바울의 기도에는 부활하시고 지극히 존귀히 되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일곱가지 영광스러운 결과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것 들 중 나중의 두 구절은, 만물이 그 발 아래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분은 교회의 머리로 주신 바 되었는데, 그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교계에서 어마어마한 직함들을 가지고 다니는 고위 성직자들의 발전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이 중대한 진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사도 시대에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의해 골로새에서 크게 손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서 상기시키기를 그것에 대한 치료책은 머리를 붙들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위치에 두어야 하나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에 있어서 모든 생각과 행동과 성장은 머리의 통제를 받습니다. 따라서 만일 머리가 어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손상을 받게 되면 몸은 애처러운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 에베소서 2장 16절에서 우리는 "한 몸"이라는 말을 처음 보게 됩니다. 에베소서 2장은 복금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놀랍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구원의 세 시제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서도 다ㅜ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장(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함께 십자가 아래로 인도되었으며, 중간에 막혔던 담이 허물어졌으며, 서로간의 적대감이 없어졌으며, 둘 다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서로가네도 한 몸 안에서 화목된 사실을 맗라고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가 그 중대한 진리, 현 시대의 하나님의 작품에 관한 충전하는 불길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3장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방법으로드러나 있습니다.
비밀의 계시-1절~5절
비밀의 해설-6절
비밀의 교제-7절~12절
<1.>비밀의 계시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 ...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시;ㄴ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하뫄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엡3:1~5"→).
그 비밀에 관하여 바울은 다섯 가지의 사항과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갇힌 바 되었습니다.(1절).
―그러나 그는 로마나 네로에게 갇힌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가혔습니다. 그가 그 이후로 감옥에서 기록한 것들을 통해 우리가 어들 수 이쓴 귀중한 보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비밀들을 맡은 청지기였습니다.(2~6절).
그는 복음의 일꾼이였습니다.(7~13절). 그는 츠걍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했습니다.
그는 중재자였습니다.(14~19절). 그느 무릎을 끓꼬 우리 쭈 에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예배자였습니다.20절 21절은 그의 찬양의 노래입니다.
― 5절에서 그는 말하기를 이 비밀은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서려으로 나탄신 갓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9절에서 그것은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취어 이썼다고 했습니다. 여ㅣ에서 주목할 것은 바울은 그 비밀이 자기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ㅓ룩한사도들과(신약의) 선지자들에게도 역시 주어졌다고 말한 점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구약 성경에서도 발견될 수 있으며 또한 사도행전 7장 38절의 광야 교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널리 유포된 개념을 완전히 배재합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금까지 감취어져 있다가 이제야 드러난 전혀 새로운 개념인 것입니다.
<2.> 비밀의 해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ㅡ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3:6"→).
― 이 모든것은 유대인들이 대닪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수세기 동안 그들은 인종과 영적인 면에 있어서 대단히 우월감을 가진 지나친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을 하지 않으며, 자기들을 이방인 또는 이방 개들과 가튼 수준에 놓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루하고 이것은 그 로운 계시가 선포하는 내요ㅣ었습니다.
― 주님께서 초기의 교사들을 위임하여 보내실 때는 그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0:5~6"→). 그러나 그분의 마지막 위임에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며, 온 처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28:19","막16:15"→).
― 복음의 확장에 대한 개요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러한 지시는 유대인의 전통에 깊이 빠진 사도들이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 예를 들면 시몬 베드로는 하늘로부터 달아내리워진 보자기 같은 것에 들어있는 정(淨)하고 부정(不淨)한 짐승들이 함께 섞인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시장하였으며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 레위기 11장의 금지된 음식을 기억하고 대답했습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러나 두 번째 소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
―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에 그는 이방 로마 군인 고네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에 나타나 자기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을 와서 전해주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때서야 그 환상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 그후 베드ㅗ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ㅏ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들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이방인들에게서 떠나 물러갔습니다. 그것을 본 바울은 베드로의 한겨랕지 않은 자세를 책망했으며, 잉베드로는 다시 한번 교훈을 배워야만 했던 것입니다.("갈2:11~14"→). 바나바처럼 선한사람까지도 베드로의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습니다.
― 이 모든 것들은 대단히 인간적이고 현대적이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을 동상처럼 주춧대 위에 오려놓기를 워나며, 종종 사회적 계급이나 지식인 파벌 혹은 인종적 교만으로 자신을 들어내기를 좋하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온 성도들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에게 바리새인적인 기질이 너무 많이 살아있습니다.
"거기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레당과 무할레당이나 야인9野人)이나 스구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3:11"→).
<3.> 비밀의 교제 또는 경륜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혹은 교제)이 어떠한 것을 들어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政事)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3:9~11"→).
바울은 이 비밀의 계시를 받은 무리 혹은 집단을 세 종류로 들었습니다.
첫째는,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 성령으로 나타났으며(5절), 바ㅜㄹ은 이 뮈에 속했습니다.)3절), 그는 그 비밀이 계시되는 통로였으며, 그에 의해 그 비밀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둘째는,모든 사람들
― 로 하여금 그 비밀의 교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 바울의 책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각 지역 교회의 일반 성도들에게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천사적 존재와 같은
― 더 넓은 영역입니다. 즉 교회를 통해 하늘의 각종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성경 구절에서 천사들도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들에 대해 대단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벧전1:12", "고전11:10"→).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교회를 사용하셔서 하늘의 지성적 존재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지혜와 사랑을 실물 교수 (實物 敎輸)하고 계십니다
―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그 신비한 그리스ㅗ의 모이 관한 가르침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가고 있는지 주목해 보는것은 매우 귀중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몸"이란 단어가 아홉번 나오는 것 안에서 네 가지의 주된 그의 가르침을 분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권(suveignty)입니다.
― 에베소서 1장 22절,23절에서 우리는 그 몸의 머리를 소개받았습니다. 부활로 지극히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맨 나중에 취하신 영광은 하나니께서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무뤼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입니다. 육체적인 몸에 있어서 머리가 몸의 성장과 운동을 통제하듯이 신비한 몸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께서 최고 주권을 가지신 주(主)가 되어야만 합니다.
― 교회는 그 머리의 충만 또는 보안물입니다. 이브가 아담을 돕는 배필 또는 짝의 한 쪽이었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몸의 큰 신비 주의 하나는 그분은교회가 없이는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몸의 하나됨(unity)이며 이것은 4장에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 바울은 3저레서 성려의 ㅏ나되게 하신 것을, 13절에서는 믿음의 하나됨을 언급했습니다. 4절~6절에서는 하나됨의 이상적인 본으로서 이롭 가지의 하나됨을 열거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세)례도 하낭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이 하나딤의 중심과 심장부는 삼위의 하나님의 하나되심이며, 다른 네 가지인 한 몸, 한 소망, 한 믿음, 한 침(세)례는 그것에 기초를두고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영강을 받으신 그리ㅡ도께서 하나됨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11절).
세째는 몸의 성숙(maturity)이며, 하나님의 은사들은 이것에 기여합니다.
―" 욹 다 하나님으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긔스도의 장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엡4:13"→).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성숙의 과정은 오직 영원 무궁의 세월이 시작되는 때에 가셔야 온전한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승천하신 머리로부터 온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12절).
끝으로 넷째는 몸의 영광스러운 숙명(destiny)입니다. ("엡5:23~33"→).
― 우리는 중요하고도 전형적인 가르침을 다음의 말씀과 같이 받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결혼 즉 아담과 이브의 결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딤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3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0절).
이브가 아담의 모메서 취해졌으며, 그의 몸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그의 신부였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임과 동시에 그분의 신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ㅡ 교회의 숙명은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그분께 영과으러운 교회로 드려지는 것입니다(27절).
《2,》신부의 비밀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 2장의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고 요한 계시록 19장의 결혼과 함께 끝난다는 말을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하나님의 크신목적은 그 사이에 자기 아들의 신부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누 곧 어린양의 아내 의 정체가 항상 논쟁점이 되어왔습니다. ("계21:9"→).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부르심 및 위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전부 살펴보는것이 바람직하다. 마닐 우리가 이점에 있어서 혼동을 한다면 그것은 균형잡힌 해석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내와 신부로 간주되었습니다.("사50:1", "렘3장", "겔16장", "호2장"등). 그러나 아내된 이스라엘이 자기 남편에게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스러운 관계는 이스라엘이 영적인 간음에 의해 손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자기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이별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사50:1"→). 하지만 장래에 남편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회복이 남아있습니다. ("호2:14~20"→).또 시편 45편은 천년왕국의 영광 중에 계실 그 왕과 그분의 옆에 있게될 왕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ㄱ 어떤 생각으로도 음란하고 이혼을 했었던 여인이-비록 용서를 받았고 화목이 디었을지라도- 처녀신부와 같다고는 결코 말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ㅖ 드리려고 중대함이로다" ("고후11:2"→).그는 에베소서 5장 25~27절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기를 주심과 같이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깻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ㅣ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하려 하심이니라" 이와같은 말씀은 이스라엘에 간해서 결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장래에 회개한 여호와의 아내로서 용서받고 회복될 것이지만 결코 어린 양의 정결한 처녀신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1.>상징에 나타난 신부
― 우리가 구약의 상징들로부터 교훈을 연역(演譯)해낼 때는 주의해야한다고 종종 경고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과 사도들은 구약의 상징들이 신약에서 응용되고 해설될 때 우리는 견고한 토대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주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의 상징을 결혼과 이혼에 관해 가르칠 때 사용하셨으며("마19:3~6"→). 바울은 똑같은 상징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과내 가르칠 때 사용했습니다. ("엡5:23~33"→). 그밖의 많은 비슷한 구절들이 상징으로 불리워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것들을 신약의 가르침에 대한 예화로서 사용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창세기에는 신부에 대한 세 가지의 사랑스런 예화가 나옵니다.
이브("창2장")
― 그녀는 아담이 깊이 잠들었을 때 그의 옆구리에서 취해진 산물이며, 신부가 신랑에게로 인도됩니다. 그녀는 "돕는배필" 또는 남편의 다른 한쪽이라 불리워집니다. 그는 그녀가 없이는 불안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아담" 이라고 부르셨으며 아담들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나 이름에 있어서나 하나였던 것입니다.
리브가("창24장")
― 이삭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주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위임을 받아 그의 아들 이삭의 신부를 찿으려고 메소포타미아로 갔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 종 (아마도 다메섹의 엘리에셀)은 이 은혜의 시대에 역사하고 계신 성령의 사역에 대한 분명한 그림입니다. 그는 우물에서 신부를 찿은후 이삭이보낸 보물함을 열어 보였습니다.
― 얼마후 그는 시집갈 신부를 인도하고 호위하여 사막을 가로질러 저녁 무렵에 들에서 묵상하는 신랑에게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만잉 이것이 상징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적어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네 가지 사역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아스낫("창41장 45절")
― 요셉 역시 그의 치욕과 존귀의 면에서 볼 때, 우라ㅣ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까지 일곱 가지로 자기를 낮추신 것과 "빌립보서 5장 5~11절"에 기록된 대로 그 후 일곱가지로 지극히 높임을 받으신 것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요셉은 감옥으로부터 총리까지 승리의 출세를 한 후에 일곱가지의 상급을 받았습니다. 반지, 세마포, 옷, 금사슬, 수레, 포고령, 존귀히된 이름, 그 다음에 그 절정으로서 이방 신부가 그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 위해 취해졌습니다.
― 이 세명의 신부안에서 성삼위일체의 사역을 찿아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성부 하나님(2장), 성령 하나님(24장), 성령 하나님(41장).
<2.>신약의 가르침에 나타난 신부
― 농부와 포도원의 비유에서("마21:33~44"→). 그리고 자기 아들을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의 비유에서("마22:1~14"→).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가 메시야라고 주장하게 될 때 이스라엘에 의해 배척받을 것을 보여주는 선명한 경륜적인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배척의 결과로 그들의 도성은 A.D70년에 파괴되었으며 그 증거의 포도원은 열매맺을 다른 백성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한몸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현 시대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 이스라엘에 의해 주님께서 배척받으실 것을 나타내는 이 비유 다음에는 임금의 아들의 결혼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그 혼인잔치에 초청하는 전갈은 사거리길이나 골녹길로 퍼져나갔습니다.
― 침(세)례 요한은 우리 주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요한복음 3장 2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노라" 메시야의 오심을 미리 알리는 사람이며 울법과 선지자의 마지막이 되는 그는 자신을 그 신부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 그러나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구절은 "에베소서 5장 25~33절"입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우주적 교회이며,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 세 가지의 비유가 사용되었습니다. 몸("엡1:23"), 집("엡2:19~22"), 신부("엡5:31~32").
― 5장의 가르침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이며, 그 몸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 주님께서 자기 신부를 위해 수행하시는 일곱가지 사항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과거의 것이고, 네 가지는 현재의 것이며, 한 가지는 장래의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분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전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에 까지 이릅니다.
현재에는, 그분은 교회를 깻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고, 양육하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깨끗하게 하다" 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3장 10절에 나오는 "온 몸을 씻었다"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양육하다"라는 단어는 "에베소서 6장 4절"에 나오는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다"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장래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바로 자기 자신에게 기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증식은 "그 영광앞에서" 거행할 것입니다.("유24"→).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은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기 위해서" 였습니다.("골1:22"→).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 에베소서 5장의 그리스도와 신부를 서로 비교해 본다면 둘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승리의 신부
― "교회라는 단어는 요한 계시록의 처음 석장에서 19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22장 16절에 가서 다시 한번 사용됩니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지상에서의 교회의 역사는 3장에서 끝납니다. 이후로부터 그 교회는 하늘에 있게되며, 승리자의 면류관을 쓰고 앉은 24장로로 나타내지고 있습니다.
― 요한 계시록에는 네명의 여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각 사람마다 전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세벨(2:20").
― 그녀는 두아디라 교회에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끌어드였습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12장).
― 이 여인은 해를 입고 있으며(clothed with the sun,태양으로 옷을 입고 있으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낳습니다.
음녀 큰 바벨론(17장).
신부(21:9).
― 요한 계시록의 끝부분에 나오는 두 여인은 의도적으로 대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 음녀는 지나치게 자신을 꾸민 가짜이고, 그 신부는 어린 양의 정숙하고 순결한 아내이며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성이 이 각 여인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음녀의 집은 큰 도시 바벨론인데 그곳은 귀신들의 처소요,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요,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가 모이는 곳입니다. ("계 18:2"→). 그 여인과 그 성은 둘 다 큰 바벨론이란 용어로 며영되어 있으며, 그 신부의 집은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그리고 그 신부나 그 성은 둘 다 신부, 어린 양의 아내라 불리우며("21:9", "22:17"→).둘 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이것이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리운 사실은 혼인식이 이미 있었음을 뜻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식과 혼인 잔치는 하늘에서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영광 중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11절까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둘 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광경입니다.
― 그리고 그 묘사는 결혼 행진곡처럼 할레루야 합창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결혼식은 보통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약혼에 따르는 계약이 있습니다. 만일 결혼할 당사자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경우 신랑이 될 어린 총각은 결혼 지참금을 비불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 두 사람은 합법적으로 결혼한 것으로 간주되며, 신랑은 신부를 아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둘째, 실제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오면 신랑은 친구들을 동반하여 신부의 집으로 가 그녀를 자기 집으로 호위해서 대려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한 배경입니다.
셋째, 결혼식과 결혼 피로연인데 여기에 손님들이 초대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참석하셨던 혼인 잔치는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계약은 영혼이 그리스도를 구주아 주님으로 영접할 때 맺어집니다. 그 구속의 값을 십자가의 보혀로 이미 치루어졌습니다. 두번째 단계는 그분이 자기의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휴거 때에 있게 됩니다. 결혼식 자체는 교회가 완성될 때 하늘에서 있게되며 그분은 그 때 자기 신부와 결합하십니다. ㅔ번째 단계는 그 결혼식의 손님들이 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1.) 신랑
― 이 땅의 결혼식은 분명히 신부의 날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있을 결혼식은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그것은 어린양의 결혼식입니다. 이 땅의 ㅕㄹ혼식에는 신랑이 종종 잊혀지기도 하지만 거기에ㅓ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결혼식은 그분의 기쁨의 그기가 될 것입니다.("히12:2"→). 그분은 만족히 여기실 것이며("사53:11"→). 즐거움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실 것입니다.("시45:7", "히1:8,9"→).
신랑이신 그 분은 또한 어린 양이신데 이것은 곧 그분의 희생적인 사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왕이신데, 이것은 곧 그분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분의 기업을 무를 자(the Kinsman-Redeemer)이시며, 보아스 처럼 기업을 무르셨습니다.
(2.) 신부
― 그 분의 아내ㅏ 예비하였습니다. ("계19:7"→). 어디에서, 어떻게 예비했을까요? 헌신적인 봉사와 예배의 삶 속에서, 그리고 그 분의 말씀안에서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생활과 실생활에 있어서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 다음엔 상급이 으혜롭게 수여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입니다.
― 그녀의 혼인 예복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로 만들어지며 이것은 성도들의 의들(righteousnesses, 복수 형태임에 주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녀에게 주어지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 이 혼인 예복과 구원의 옷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ㅜ리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우리의 더러운 누더기 옷을 구워늬 옷으로 바꿔입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단수 형태에 주의)" 라 불려지는 것이비다.("롬3:22"→).
― 그러나 요한 계시록 19장 8절에 나오는 단어는 복수 형태인 디카이마타(dikaimata)입니다 이것은 "의로운 행위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단수 형태인 디카이오수니(dikqaiosunee)-"의" 와는 다른 것입니다. 신부는 그 흠없는 의의 옷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그 정결하고 흰 결혼 예복과는 밀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 미혼 여성에 대한 옛날의 영어 단어는 스핀스더(spinster)이며, 이것은실을 잣는 여자 혹은베를 짜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처럼 찬란한 헌신의 실을 뽐아내는 삶의 베틀 위의 날실과 직조기의 북을 가리킵니다. 그러ㅏㄴ ㅂ틀에서 만들어진 실은 신부의 혼인 예복에서 눈부식 빛날 것입니다. "흰"이란 단어는 평범한 단어가 아니라 종종 찬란한, 눈부신, 빛나는 등으로 버녁되어지는 단어입니다.
"신부"라는 단어는 요한 계시록 21장~22장에서 세번 사용되었습니다. 처음 두 개는 하늘의 하나님께로버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과 관계가 있습니다.21장 2절에서는 그것이 신부가 남편을 우하여 단장한 것처럼 예비되어 있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21장 9절에서는 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리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니라" 그 성을 자세히 묘사한 것을 보면 어린 양의 12사도의 이름들이 12기초석 이에 있으며, 이스라엘 자손의 12지파의 이름들이 12문들 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사실은 그 신부가 이스라엘과 교회로부터 온 모든 시대의 구속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어떤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미 앞에서 전술한 사항들 -이스라엘의 부르심과 교회의 부르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 하나는 지상의 백성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백성이라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은 전에는 여호와와 사이가 틀어졌다가 다시아내로 회복된 것임에 비해 교회는 처녀 신부이며 어린 양의 아내라는 것- 이 ㅏ실이라면 위의 어떤 이들의 주장은 틀리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과 교회가 둘다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라 불리우는 하늘의 도성에 언급되어 있을까요?
다음의 사항드른 고려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 그 성의 모든 문은 "한진주"입니다("계21:21"→). 진주는 구약 성경에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의 "잠3:15", "8:11", "20:15", "31:10"→)등에 나오는 진주는 영어 성경에 루비로 되어 있음)
― 마태복음 13장 45절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우리 주님이며, 열국의 바다에서 취해진 그 값진 진주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peculiar treasure)"로 불려자ㅣ지만("시135:4"→).교회는 순결하고, 귀한 진주인 것입니다.
― 복음안의 축복이 이방인들에게 저날된 것은바로 이스라엘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12지파의 이름들이 문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 성을 천년앙국의 상태로 받아드리든지 또는 영원의 상태로 받아드리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그 지상의 도성과 하늘의 도성 상환에 아주 긴밀한 여락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야곱의 사닥다리의 큰 환상이 성취될 것입니다. ("창28:12", "요1:51"→).
오늘날의 현대의 도시 예루살렘에는 다메섹 문(Damascus gatu)과 계곡 문(Valley gate)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 무늘로부터 다메섹으로 가는 길과 계고그로 가는 길이 시작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 성경에서 신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요한 계시록 22장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몇년전에 어느 기독교 잡지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실렸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그 신부이며 이스라엘 혹은 이스라엘의 남은자는 신부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 요한 계시록 22장 17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신부가 주어진 증거에 응하여(16절) 회당이 아니라 교회에서 말합니다. 그 신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바로 교회안입니다. 달리 증명할수도 있지만 이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1,》천국의 비밀 (마태복음 13장)
―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가르침을 주의깊게 관찰해보면 12장의 끝과 13장의 시작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시점까지 그 왕께서는 자신의 신임장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시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의 지도자들은 그와 같은 주장들을 심각하게 조사해 본 후 그분을 고의적으로 거절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그분의 기적은 사단의 역사이지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가 ㅏ니라고 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사함받지 못할 죄라고 말씀하시고 그 민족으로부터 돌아서십니다.마태복음 12장 31절의 사함 받지 못할 죄는 성령님에 대한 모독이라곧ㅎ 일컬어지는데 , 이것은 곧 나사렛 예수님을 유대인의 메시야가 아니라고 민족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때부터 그분의 사역은 돌변하여 , 쉽고 분명한 가르침 대신 그분은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만이 조사하고 질문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관심했던 사람들은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 소경이 바로 현재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이며, 신약의 비밀들 중의 하나인 로마서 11장의 주제인 것입니다.
― 마태복음 13장은 신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열쇠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레위기 23장의 여호와의 일곱 절기와 요한 계시록 2~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함께 주의깊게 공부해야 합니다.
― 이 세가지는, 이스라엘과 그 나라ㅘ 현 시대의 교회에 관계된 하나님의 목적들에 관해 연대순의 개요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고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곳의 가르침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조직 신학에 있어서 본질적인 교육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theKingdom of God)는 성경의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이지만, "천국(Kingdom of heaven)"이란 용어는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찿아볼 수 있으며, 거기에서 26번 나옵니다. 비록 천국이 교회와 종종 혼동되는 일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두 가지를 같은 걸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교회와 다릅니다. 천국은 교회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 교회가 생겨나기 훨씬 오래전인 구약 성경에서도 찿아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시간의 끝과 영원까지 계속될 것이며, 그 때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시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밖으로 불러내심과 증거에 있어서 현재의 은혜 시대에 한정됩니다.
―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어떤 비유들은 천국의 비유들로 불렸는데, 똑같은 비유들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 명명되어 있다는 사실은 두 용어가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독단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동의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다른 두 단어를 사용하실 때는 반듯이 그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전체적인 그림으로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영역에 있어서 우주적입니다.
― 마태복음 13장에 개략적으로 나와 있는 대로 천국은 배척받은 그왕께서 지상에서 자리를 떠나 하늘에서 자신의 목적들을 수행해 나가고 이씀을 암시합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여억임과 동시에 물질적인 나라이며, 하나님으 권위와 통제에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머리를숙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천국은 하나님의 주궈놔 그분의 우주적인 통치를 침식(侵蝕)하고 파괴하려는 반역 행위와 사ㅏㄱ한 영향들로 꿰뚫려 있습니다.그러나 어느날 이 극악무도한 운동들은 뿌리채 뽐히고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로 합병될 것입니다.
― 마태 복음 13장의 일곱 비유는 이두 가지의 운동이 어떻게 나란히 역사하고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간과 전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목적들의 궁극적 승리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현재의 천국을 묘사하는 그 두 용어가 서로 겹치거나 병행되어서 사용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나간 영원부터 장차 올 영원까지 손을 뻗치는 것인데, 그 때 이 세상의 나라들은 우리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왕께서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배척을 받아 망명중에 계시니다. 그럴지라도 그분은 하늘에 있는 ㅘㅇ과 제사자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고 계십니다.
― 이것과 관계해서 공부해 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용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아버지의 나라 ("마26:29"→), 인자(人子)의 나라 ("마16:28"→),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골1:13"→), 위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벧후1:11"→).
― 마태 복음 13장의 일곱 비유는 두 부부느로 나뉘어집니다. 처음 네 비유는 해변에서 무리들에게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나중의 세 비유는 집에서 제자들에게 사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으 부분은 사단이 하나님의 일을 ㅏ괴하려고 어떻게 여사ㅏ고 있는가를 묘사ㅏ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하나님의 목적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1.>해벼에서 무리에게 하신 처음 네 비유
― 처음 네 비유 모두는 씨 또는 그 수학에 관계가 있으며, 또한 그것이 어떻게 원수에 의해 공격을 받는가를 보여줍니다.
(1.)씨 뿌리는 자와 씨
― 이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말씀의 씨를 뿌리는 농부입니다.
네 종류의 땅-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네 종류의 전치사- by, upon, among, into( ...옆에, ...위에, ... 사이에, ... 속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네 가지의 조건-좋은, 부드러운, 깨끗한, 깊은.
네 종류의 밭 중에서 단지 하나의 밭만이 감소하는 비율로 결실함-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
― 주님께서 이 비유를 "마태 복음 13장 18~23절"에서 해석하였습니다.
― 길가와 같은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한번도 성령님의 쟁기와 써레에 의해 부수어진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씨는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단단하게 된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그 씨를 쪼아먹어버린 새는 악한 자 곧 사단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멧세지가 전혀 박히지 아니하므로 즉 이해되지 못하므로 결국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 두 번째 씨는 돌밭 곧 아래에 깔린 암반(岩盤)이 흙으로 얇게 덮혀 있는 곳 위에 떨어졌습니다. 결국 그 씨는 뿌리를 뻗을 수가 없어서 태양이 떠 ㅗ르면 타서 말라버립니다. 이것은, ㅁㄷ음의 고백은 빨리 하지만 그 속에 영생의 참 뿌리가 없기 때문에 타는 듯한 핍박과 시련이 닥치면 곧 없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 세 번째의 씨는 가시떨기 사이에 떨어진 과녜로 가시가 솟아나와 씨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억눌러버립니다. 가시는 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材利)의 유호그로서, 예상되는 어떤 열매ㅏ도 짓누르고 망쳐버린다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씨는 좋은 땅속으로 떨어져 농부의 고생과 수고에 보답합니다.
이 처음 네 비유에 나오는 세 종류의 원수는 마귀와 육체와 세상입니다. 전체를 통틀어서 그것은 말씀에 대한 사단의 대적을 뜻합니다.
(2.) 곡식과 가라지
― 두 번째 비유에서 사단은 농부의 일을 침식(侵蝕)하기 위해 다른 전략을 시도합니다. 좋은 씨가 밭에 뿌려졌지만 사람들이 잘때에 원수들이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버립니다. 가라지는 수염이 달린 독보리로서 자라는 동안에는 고식과 어찌나 비슷한지 거의 구별할 수 없습니다. 찐짜 곡식으로부터 가라지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삭이 팰 때입니다.
― 중동지역의 농부들에게 있어서는 독보리가 가장 파괴적인 잡초 중의 하나입니다. 그 뿌리는 진짜 곡식의 뿌리를 휘감기 때문에 독보리의 뿌리를 뽐으려다가 곡식까지도 함께 뽐을 수가 있습니다. 독 보리 씨는 검고 가벼우며 독이 있습니다. 따라서 농부들은 일반적으로 독보리를 추수때까지 그냥 두었다가 추수 때가 되면 가볍고 더 작은 가라지의 씨를 부채로 쳐서 날려 버립니다. 되깨질을 한 후 모든 곡식 알갱이들을 채로 치는데, 그 때까지도 남아 있는 독 보리의 씨는 체 밑으로 빠지고 체 속에는 더 굵고 무거운 곡식들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독보리 씨의 안쪽 껍질에는 독 곰팡이가 자라고 있어서 만약 사람이나 짐승이 먹게되면 현기증과 구토를 일으키며 때로는 죽기까지 합니다.
추수 때는 곡식과 가짜 독보리를 가려내는 최후의 시험의 때입니다.
― 잘 익고 무거운 곡식의 이ㅏㄱ은 추수때가 가까와짐에 따라 머리를 숙이는데 반해 속이 텅 비고 가벼운 독보리는 황금의 이삭들 가운데 뻔뻔스럽게 서이씁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풀이 있지만 독성이 있는 것은 오직 세 종류만이 알려져 있으며, 독보리는 그 중의 하나에 속합니다. 그것은 눈을 안보이게 할 숟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침식하는 사단의 주요 무기 중의 하나는 모조품인 흉내내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때마다 마귀도 그 일을 너무나 영리하게 복사하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란 대다히 어렵습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종들으 질문과 농부의 대답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뽐기를 원하시나이ㅏ?"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뽐다가 곡식까지 뽐을까 염려하노라"
― 우리는 매우 ㅟㅂ게 속거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유ㅏ가 가방을 가지고 다니며 가나안 사람 시몬과 함께 복음을 전할 때는 꼭 곡식처럼 보였습니다. 시몬 베드롸 빌라도의 법정 안에 피운 불옆에 서서 주님을모독하며 부인할 때는 꼭 독보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마 베드로는 진짜 곡식이였음에 반해 유다는 가짜요 배교자인 독보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려는 사단의 두번째의 방법은 사악한 흉내 입니다.
(3.) 겨자나무
― 세번째의 비유는 기묘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 주의 하나로부터 자라나는 정원의 초목 겨자 나무는 새들이 가지에서 쉴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합니다. 박물학자들이 이야기 하기를 팔레스틴의 겨자 식물은 보통 90Cm 정도까지 자라지만, 어떤 장소와 어떤 조건하에서는 3~3.5m까지 자라 수 있으며, 새들은 그 씨를 보고 가지에 길들이나고 합니다.
― 서영엣 감람나무와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는 축복의 나무로서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 비유적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까다로운 식욕을 만족시키는데 사용될 뿐입니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의 항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성장-정원 식물에서 나무로 성장
공중의 새들의 안식처- 새는 마태 복음 13장 4절에서 사단과 그의 졸개들로 해석되어 있음("단4:20,21", "계18:2" 참조→).
― 비유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또 다른 공격 방법이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감짝 놀랄 만한 팽창에 의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다락방과 카타콤으로부터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까지... 바티칸에는 만 천개의 방과 여덟개의 대계단, 그보다 작은 이백개의 계단, 스무개의 뜰이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는 그 값을 혜아릴수 없는 예술품과 대리석 조각, 설화(雪花희귀한 사본과 같은 보물들이 있다고 합니다.
바티칸을 찾아간 한 방문자에게 안내자가 말했습니다. "성 베드로는 이제 더 이상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어요" 방문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군요"
― 요한 계시록 17장~18장에 나오는 큰 바벨론에 관한 묘사에서 , 조직화된 종교의 마지막 형태를 보여주는 배교 체제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즈안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계18:2"→). 전에 좋은 씨를 가져간 새들, 그리고 나서 그 나무 가지에서 안전한 안식처를 찾은 새들은 이제 자기들이 도와서 발전시킨 그 체제속의 새장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데에는 상상력이 그리 풍부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서에서 종종 언급되는 거짓 선생들입니다.
(4.) 누룩
― 누룩("마13:33~35"→).은 흔히 성경에서 가장 잘못 해석되어지는 비유라고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이론 중 후천년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누룩이 온 사회에 고루펴져서 점차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면 천년 왕국이 결국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 그러나 두 세계 대전과 급증하고 있는 사회의 도덕적 부패가 그 이론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통치는 복음전파에 의해서가 ㅇ니라 요하 계시록 6~19장에 묘사된 대격변적인 심판에 의해 시작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후에 만 앙의 왕이시요 만 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시는 일이 뒤따릅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항상어둠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가르침 또는 영향을 상징합니다. 누룩은 유월절과 그 후속(後續)절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또 누ㅜ은 레위기 2장의 소제(素際)에 넣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습니다. 소제에 포함되는 고운 가루와 기름, 소금, ㅠ황은 모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영광과 온전하심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막8:15", "마16:6"→). 바울도 성적인 죄악의 누룩과 ("고전5:6~8"→). 교리적인 죄악의 누룩에 관해 이야기 했습니다.("갈5:9"→). 여기에서 누룩에 관한 해석은 성경의 다른 부분의 해석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 가루 세 스아(석되)는 한 에바와 같습니다.("창18:6", "삿6:19", "삼상1:24"→). 이 구절들과 특히 레위기 2장의 소제(素際)를 고려에 넣는다면 고운 가루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온전하심, 그리고 그분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상징합니다. 자연계에서 누룩은 가루를 더욱 맛있게 그리고 소화를 잘 되게 만드는 자굥으 하지만, 영적인 영역에서는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를 육(肉)에 속한 사람들에게 더 구미가 당기도록 만드는가를 우리는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합니다.
― 누룩을 가루애ㅔ 섞은 여자에 관한 언급도 역시 사악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공격하거나 바른 교훈을 침식하는 많은 이단 종파들이 여자인 메리 베이커 에디(Mary Baker Eddy) 부인에 의해 창시 및 널리 보급디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며, 소위 그녀의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ec)-사실은 크리스챤(기독교)도 아니요 사이언스(과학)도 아닙니다-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가루 속의 누룩의 비유는 그리스도에 과난 이단적인 가르침의 교묘한 침투를 나타낸다고 보여집니다.
― 지금까지 사항을 요약해 본다면, 마태 복음 13장의 천국에 관한 처음 네 비유는 천국의 멧세지가 사단의 네 종류의 할동(사단의 대적, 사악한 모방, 깜짝놀랄만한 팽창, 교묘한 침투)에 의해 저항을 받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이 네 가지 비유는 비밀 가운데 있는 천국에 대한 가르침의 한 단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ㅢ 비유에ㅓ 위는 하나님의 일에 관한 원천을 얻게 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가라지와 겨자 나무속ㅇ서 외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며, 누룩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복시키고 파괴하려는 사단의 노력의 절정을 복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운동이 아주 명백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이씀을 봅니다.
― 그것을 달리 표혀하자면, 처음 두 비유는 복음 전도에 관한 것이고, 세번째 비유는 조직적이며, 마지막의 비유는 교리적이라 하겠습니다.
<2.>집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나중 세 비유
― 마태 복음 13장의 처음 네 비유와 나중 세 비유의 가르침 사이에는 분명한끊김이 있습니다. 처음 네 비유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 하시고 계시며, 마ㅟ가 어떻게 그 일을 대적하여 파기하려 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니다.
― 집에서 제잗ㄹ에게 주어진 나중 세 비유는 하나님의 일이 궁극적으로 승리 할 것을 보여줍니다. ㅏㅌ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ㅏㅄ진 진주는 여왕스ㅓ운 짝을 이루어 설 동행합니다. 이것들이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밝히 드러날 두개의 감추어진 보화를 가지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바다에 치는 그물은 마태 복음 13장의 요약이요 절정입닏. 이것은 그 왕께서 왕국을 세우러 욀 때에 진짜로부터 가짜를 분리해낼 것임을 개략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1.) 밭에 감추인 보화
― 이스라엘 나라는 그 앙국ㅇ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합니다.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과 사무엘 하 7장의 다윗에게 하신 언약들은 성취될 것입니다. "특별한 보화(peculiar treasure)"ㅏ는 용어는 구약에서 "출애굽기 19장 5절", "시편 135편 4절", "전도서 2장 8절"에 3번 나옵니다.(그외 "신14:2", "26:18"참조 → 우리말 성경에는"소유", "특별한 소유", "보배"로 나와 있음). 말라기 3장 17절에는 이것이 "보배(jewels)"로 버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특별한 소유"로 나와 있음). 베드로는 이 용어를 베드로 전서 2장 9절에 인용했습니다. 이 구절들에 대한 주의깊은 좌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 보화임을 가리킵니다.
― "마태 복음 13장 14절" 에서 그 보화는 밭에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후에 다시 파묻힙니다. 밭은 세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발견되었으며, 어린 양의 피로 구속(救贖)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갑니다. 거기에 있는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피의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와 우상숭배 특히 그들의 메시야를 배척하고 죽인 죄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화(소유)는 다시 한번 세상의 밭에 파묻히게 됩니다.그들은 하ㅡㄹ 아래 있는 모든 나라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은 유대 민족의 메시야 주 예수님이십니다. 십자ㅏ 위의 ㅢ생적인 죽음으로 그분은 그 보화를 다시 사셨을 뿐 아니라 그보화가 감추어져 있던 밭까지 사셨습니다. "로마서 8장 19절~23절" 에서 바울은 탄식하는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르사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그러므로 "감추인, 발견한, 숨겨두고"라는 세 용어는 현재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강략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밭을 산 사람은 그리스도의 육신을 입으심과 십자가의 사역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ㅣ대에 들어와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관계된 하나님의 목적이 급작스레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언된 대로 그들은 불신의 땅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적들로 둘려싸인 그들은 이제 곧 "야곱의 환난의 때" 곧 환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렘30:7"→). 하지만 그들의 메시야가 오심으로써 그들은 기적적으로 구출을 바들 것입니다. ("슥14:4"→).그들의 민족적인 회개와 (슥12:10"→).그들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에서의 정결케 됨이 있은 후("슥13:1"→).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 관계로 다시 인도될 것입니다. 그왕국이 들어나는 천년 동안 열국(列國)의 밭에 파묻혔던 그 보화도 함께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장사와 극히 값진 진주
― 마태복음 13장 45절,46절 의 이 비유도 성경 해석자들의 손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자 나뮤 및 누룩의 비유와 같은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장사꾼은 죄인으로, 극히 값진 지주는 구주로 풀이되어 죈인은 구원을 얻기 위해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꾸로 뒤집힌 주석이며, 이 비유의 가르침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 장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극히 값진 진주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로서 현 시대에 열국(列國)의 바다에서 밖으로 불러내어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판 그 장사는 고린도 후서 8,9절 빌립보서2장 5~11절에서 교훈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2장은 하나님의 여왕으로붜 십자가의 죽음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분의 엄청난 겸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갈보리에서 자기 목숨을 대속적으로 내놓으셨을 때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그 진주를 사셨습니다.
― 이것을 에베소서 5장25~27절 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앙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에게 영광스러운 ㅛ회로 드리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업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 복음 13장 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농부와 장사와 어부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 여기의 그 장사는 휴륭한 진주를 찾고 있습니다. 진주는 교회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비유이니다. 또한 교회는 건물, 몸, 신부, 양무리, 성으로도 불려집니다. 이 모든 비유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거작품에 관하여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 진주는 고난의 산물이며, 상처난 옆구리에 대한 대답입니다.
바다의 바닥에 누워 있는 연체 동물에 모래알이나 자갈이 침입하여 살아 있는 살속에서 기숙(寄宿)합니다. 이 기롭히는 이물질(異物質)은 진주모(眞珠母)의 잇단 층 곧 연체 동물의 결석(結石)으로 계속 덮힙니다. 이와 같이 진주는 살아 있는 생물체에서 그 옆구리의 사어에 답하여 생겨납니다.
대단히 값진 진주는 발광(潑光) 반투명으로 특징지워집니다.
― 모양이 물방울처럼 더 안전할 수록, 그리고 진주의 광택이 더 깊을 수록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흠없는 진주는 완전을 나타내는 고대 상징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고전(古典)로마에서는 오직 특수 계급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착용하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플리니는 진주를 "모든상품 중 가장 값진 것, 온 세계에서 극상(極上)의 일용품"이라 했습니다.
― 일본에서의 진주 양식(養植) 산어븨 발달에도 불구하고 품질좋은 천연 진주는 아직도 수처 달러의 값이 나갑니다. 가장 가치 있는 진주는 폐르샤 만에서 발견됩니ㅏ. 진주 채취장은 48~120피이트의 깊이에 있습니다. 진주 채취 잠수부들은 둘씩 짝을 지어 일을 합니다. 한 사람은 수면에 나아서 배에서 바다 바닥까지 연결되어 있는 ㅜ개의 밧줄을 담당합니다. 밧줄 하나는 무게가 약 40파운드 정도 나가는 돌에 묶여 있는데 이것은 잠수부를 바닥까지 운반해 주는 역활을 합니다. 잠수부는 조개류를 담을 바구니를 휴대하며, 상어로부터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벨트에다 칼을 차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밧줄 하나는 신호용으로 사용합니다 잠수부는 채ㅟ했다는 신호를 보내어 물위로 끌어올려지기 전까지 보통 60~80초 동안 물 속에서 견딥니다. 진주채취 잠수는 위험한 작업입니다.
― 진주는 비교적 부드러우므로 마찰이나 열 혹은 신체의 땀에 있는 산(酸)에도 ㅟㅂ게 손상되니다. 다라서 피부에 좀 오래 동안접촉한 후에는 즉시 닦아내야지 그렇지 않다간 변색되는 수가 있습니다. 진주는 핀이나 동전, 칼 따위로 긁어 흠을 낼 수가 있습니다.
― 크기와 아름다우뫄 역사적인 의미로 명성있는 극히 값진 진주는 세계의 유명 보석류의 서열에 끼어 있습니다. 27.5 캐럿 짜리 동양산 진주 "La Reine des Perles" 는 프랑스에서 대과식에 쓰이는 보석 중에 끼어 있었습니다.34케럿이나 되는 달걀 모양의 진주 "Le Regent" 는 한 때 프랑스 황실이 소유했었습니다.
― 지금까지 살펴본 이 아름다운 보석의 세부 사항들은 교회에 관계된 우리 주님의 사역을 그림적으로 대단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 요ㅏㄴ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그 신부의 성의 각 문은 한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 분의 고난의 산물이자 그분의 상처입은 옆구리에 대한 대다인 것입니다.
(3.) 바다에 치는 그물
― 여기에서 비유는 장사에서 어부로 바뀝니다. 어부와 그물은 성경에서 복음 전파의 예화로 사용되었습니다. 천국의 멧세지는 세(침)례 요한과 우리 주님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전 세계적으로 전파디고 있습니다. 교회가 완성되고 하늘로 휴거되고 나서도 천국 복음은 다시 잔파될 것입니다. ("마24:14"→).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비유가 특히 세상 끝에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마13:49"→).
― 현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듣고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큰 유혹이 역사하여 거짓 것을 믿게 되는데, 이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살후:12"→). 교회가 가버린 이후에도 그리스도를 배처간 사람들에게 두 번째의 기회가 있으 것이라고 추츠개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그러한 것처럼 사법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무에 그리스도를 따라감으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 그런데 엄청난 수확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껫는 깨달은 이스ㅏ엘의 남은 자들을 다시 치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처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들입니다("고전15:8"→).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인치심을 받고, ㅗ시는 왕의 멧세지와 함께 보내어집니다.
― 그들은 세상이 본 것 중 가장 큰 외국 선교사단이 될 것입니다. 현대의 교통수단과 통신의 대중 매체의 도움으로 온 세계는 그 멧세지를 듣게 됩니다. 아무도 셀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그 멧세지를 받아드린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 그러나모든 대중 운동처럼 거기에도 진짜와 가짜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처음 두 비유에서처럼 거기에도 참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 왕께서 오실 때에 실제와는 다르게 그저 입으로만 고백했던 사람들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간에 분리가 있게 됩니다. 천사들이 대행자가 되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그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으면 그들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마13:49,50"→).
<3.>결론("마13:51~52"→)
―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러하오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처구긔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 이 놀라운 장(章)에서 우리는 얾나 보배로운 가르침을 ㅏ지고 있습니까? 다시 반복 하자면 이장으 교회를 포함하여 더 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분으 몸인 교회는 오순절날에 그 생일을 맞았으며, 휴거시에 완성디ㅓ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3~18절","괸도 전서 15장 51~57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도 예언되어 있으며, 구약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에 으해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침(세)례 요한의 사ㅕㄱ과 ㅜ리주님의 가르침 속에 선포디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개략적으로 나와 있는 대로 이것은 오늘날 그 왕의 부재 중 동안 신비한 혀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왕께서 눈에 보이게 다시 오셨서 친히 다스리게 될 때 그것은 실제적으로 그 모습을 드려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은 이 일을 주목하고 그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2,》이스라엘의 소경됨의 비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11:25"→).
― 로마서에서 ㅂ울이 상술(詳述)한 주재들 중의 하나는 현 은혜의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입니다. 9~11장까지 세 장(章)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1~8장까지의 처음 부분에서 바울은 오늘날 유대인과 이방인간에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정죄된 입장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 이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했으며 그분의 율법과 ㅡ분의 말씀울 관리했었지만, 이 큰 축복은 그들의 불순종과 우상숭배, ㅗㅇ국에 가서는 그들의 메시야ㅔ 대한 배ㅓ과 살해로 인해 무횰 되어 버렸습니다. 스데반이 그 민족의 지도자들을 질책했을 때 그들은 그도 살해했습니다.("행7장").
― 마태복음 12장 2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소치로 돌렸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기적들이 사단의 힘으로 행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같은 문맥에서 이것을 성령님에 대한요어받지 못할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주에 롬 재판관비라도가 그분을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에게 왕으로 제시했을때에 그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게 왕이 없나이다" 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라고 말하자 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도릴지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 구약 성경에는 이 땅위의 하나님의 증인으서의 이스라엘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을 미리예언한 구절들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그 예로 팔레스틴 언약에 첨가된 엄중한 겨오가 신명기 29, 30장에 나와 있으며, 이사야가 본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환상에 대한 글의 나중 부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사6:9~13"→). 그리고 호세아 3장 4절에서 다ㅡ뫄 같은 놀라운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이것이 바로 호세아 1장 9절의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 불리는 기간입니다.
― 로마서 9,10장에서 자기들의 메시ㅑ를 배척하는 이스라엘의 배척의 때에 관한 개요 후에 바울은 당연히 로마서 11장 1절의 질문을 던집니ㅏ.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긔고 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렇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그는 자신의 논증을 25절의 절정으로 이끌어 갑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ㅡ스로 지혜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마난 수가 드러ㅗ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소경이 된 것이니라(blindness in part)" (우리 말 서영에는 '와악하게 된 것이라'로 나와 있음) 그 소경딤은 임시적인 것이며, 이바인에 곤계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디면 오늘날 이스라엘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베일은 벗거질 것입니다.
<1.>세 가지의 언약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다음의 세 가지 언약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창세시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과 맺은 그분의 언약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장들 중의 하나입니다. 행위에 의하지 않고 믿음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바울의 교훈은 이 장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롬4:13~25"→). 히브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선택과 부르심은 역사상 하나의 경계표(境界票)가 되었습니다.
― 이것은 정확히 창조와 십자가의 중간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실한 자의 아버지" 그리고 "첫 순례자의 아버지" 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히브리"란 명칭은 "물 또는 강물을 가로질러 온 "사람"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명칭은 분명히 가나안 사람들이 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때를 기록한 창세기 12장 1절~4절에서 맨 처음으로 은연중에 비칩니다. 그것은 창세기 13장 14절~1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가 땅의티끌 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은 차에기 15장 1~7절에서 ㅏ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가 하늘의 별과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비준되었습니다. 나중에 창세기 22장 17절에서 아브라함이 몰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티끌, 별, 모래 이 세 단어를 주목 하시기 바랍니다. 이세 단어는 은유로서 땅과 하늘과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그 언ㄴ약은 할례의시게 의해 인침을 받습니다. ("창17:9~14"→). 그것은 나중에 이삭과("창22:15~18", "26:3~5"→). 야곱에게도("창28:13, 14"→).확증딥니다.
아브람에게 했던 이 억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희생제물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 암 송아지, 암 염소, 수양, 산 비둘기, 집 비둘시로 드려진 복합적 희생젬불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여러면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레위기서의 제사에서 발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언약의 희생제물이었습니다.("렘34장", "히10장"→).
― 알렉산더 맥크라렌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 기묘한 의식은 그것이 희브리서 9장 16절, 17절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약을 맺는 쌍방은 쪼개어진 짐승의 조각들 사이를 통과했습니다. 그들은 그 끔찍한 희생제물에 둘러싸인 채 그리고 그 신비의 심원(深遠)으로 에워싸인 채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 그것은 깊은 잠과 연기나는 풀무와 타는 햇불로 상징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은 그가 옆으로 제켜지고 하나님 혼자서 계약자가 되셨음을 보여줍니다. 풀무와 햇불은, 그 씨가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 될 것임을 가리킵니다.
― 그 어약적 약속은 그 씨와 미 그 땅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티끌과 별과 모래, 이 세 상징은 아브라함이 땅과 하늘의 씨를 갖게 될 것임과 아에서 따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임을 가ㅣ킵니다.
― 창세기 15장 18절에서는 땅의 변겨을이 정해졌는데 그것은 애굽강(나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에 배성들이 이전 지역을 점유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닏.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넓은 중동 ㅈ역이 아브라함의 씨의 유업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 아랍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약속된 씨가 아닙니다.
― 우리가 조심스럽게 주목해야할 사실은 그 씨와 그 ㄸ깡에 관한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불렸으므로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창 17:7"→).
두번째 언약은 팔레스틴과 관계가 있습니다.
―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 땅을 침입해서 정복하기 바로직전,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 의해 개괄적을 산포디었습니다. 신명기 28장~30장에 기록된 그 언약은 백성들에게 선포된 일련의 축복과 저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 하면 그 땅에서 축복을 받을 것이요, 만일 그들이 불순종하고 여호와를 저버리며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신명기 28장 23절, 24절에는 비 데신 그 땅이 티끌과 모래로 변케 된다는 주목할만한 언약이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30장 3~8절에는 흩으심과 모으심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언은 곧 역사가 되어 모든 사항들을 예언된 그대로 성취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 번의 사로잡힘과 세 번의 회복으로 요약 될수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 상태. 이섯은 43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국가를 이룬 것은 바로 애굽에서였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인도해 낸 자는 선지자 모세였습니다.
두 번째로 사로잡혀간 곳은 바벨론이였으며, 70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 땅을 침략하여 성전과 예배를 파괴하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회복은 제사장 에스라 치하에서 있었습니다. 그 역사는 구약의 다섯권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에스라서", "느혜미야서",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
가장 혹독했던 세 번째의 사로잡힘은 A.D70년 로마의 발굽 아래에서 있었습니다.
―이 때 로마군은 성전을 불사르고 그 땅을 유린했으며 그 포위 공격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한 때 젖과 꿀이 흐르던 그 땅은 오랜 세기 동안 강우가 드문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28장 49절~68절에 예언된 흩어짐은 이미 있었지만, 신명기 30장 1~5절에 예언된 다시 모임은 오늘날 우리의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 백성들은 불신가운데 있는 에레츠(Eretz)이스라엘로 돌아각 이씁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ㅜ마른 뼈의 골짝기이며, 그들은 아주 말라 있습니다.("겔 37장"→).하지만 기적적인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오래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의 나타나심으로 극에 달하게 될 것이며, 그분은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 팔레스틴 언약은 온전히 성취될 것이며, 그 땅은 희년(禧年)의 안식 가운데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세 반째의 언약은 다윗에게 주어졌으며,
― 이것은 사무엘 하 7장 10절~16절, 시편3,4절, 예레미아 33장 19~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두드러진 특징들은 왕국과 보좌와 면류관과 홀(笏)에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다윗과 그의 집에 영원토록 약속과 보증이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불순종 하면 그들은 지예와 벌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 언약 자체는 이미 확립된 견고한 것이므로 결코 취소됮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다윗은 받았습니다.
― 우리는 이 언약이 다윗의 더 위대한 자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암ㄴ에서 성취될 것임을 압니다. 그분은 그분의 조상 다윗의 보좌에 앉아 바다 끝에서 바다끝ㄲ싸지, 그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시게 될 것입니다.
<2.> 세 가지의 상징
―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관련된 것드로서는 세 가지의 언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그들의 영적인 생활과 관계있는 세 가지의 상징이 있는데 그것은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감람 나무 입니다.
― 이것들 역시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역사적 증거에 있어서 세 기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대 부분의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역사나 배경의 두드러진 특성을 나타내는 국가적 상징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독수리, 영국은 사자, 소련은 곰입니다. 많은 나라들은 나무나 꽃도 채택합니다. 캐나다는 단풍나무 잎, 영국은 장미, 스트랜드는 엉겅퀴, 아이랜드는 토끼풀, 웨일즈는 부추, 대한민국은 무궁화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상징물들이 분명히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포도나무
― 애굽에서 나와 그 땅에 심기워진 포도나무의 비유는("사5:1~7"→). 과거의 이스라엘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선택을 받있으며, 하나님에 의해 구속을 받아 열국(列國) 가운데서 그분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편80편 8~16절"은 수풀의 돼지와 들짐승들이 그것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가를 애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주제를 "마태복음 21장 33~42절" 에서 채택하셨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 상속자를 죽이고 그 유업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종들에게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줍니다. 이 그림은 우리 주님께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5장"에서 와넝됩니다. 그분은 실패하는 이스라엘의 자리를 빼앗으셨습니다. 그분과 연결된 사람들 곧 포도나무의 가지가 오늘날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증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2.)무화과 나무
― 우리 주님의 3년간의 공적인 사역 기간 중 무화과 나무에 대한 언급은 세 번 나옵니다.
"누가복음16:6~9절"에는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 농부는 3년 동안 계속 아서 열매를 구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는 과수원지기에게 그것을 잘라버리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과수원 지기는 이렇게 중재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두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이 비유의 적용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그분의 공적인 사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하신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대한 두번째의 언급은 "마태복음21:18~22절"에 나옵니다.
― 그분의 사역의 마지막 주에 베다니에서, 성우로 돌아 오실때 주님께서는 시장하셨으므로 길가에 서있는 무화과 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으셨으나 잎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분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자 그것은 말라버립니다. 이 비유의 교훈ㄷ 분명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그림적 실물교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것을 잘못 이해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저주를 겉으로만 보고 그 교훈은 지나쳐 버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대한 세번째 언급은 "마태복음 24:32~33절"에 나옵니다.
― 감람산에서 있었던 우리 주님의 예언적 강론(講論)에서 그분은 자신의 재림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부록과 적용으로 다음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 "누가복음21:29절"에는 "...모든 나무를 보라"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주권 국가의 모든 기능을 행사하는, 자기 땅에 있는 나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거의 2천년이나 지난후에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입니까!
―1948년 5월 18일 그들은 자기들의 대통령, 그 엣날의 산헤드린을 대신하는 자기들이 국회, 통화, 국기를 갖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실로 무화과 나무가 푸른 잎사귀를 내었습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남"가 그러하며, 이것은 곧 국가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큼 고조디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3.)감람나무
― 포도나무가 과거의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무화과나무가 우리주님의때부터 현재까지의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면 감람나무와 및 그것과 관계된 로마서 11장 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장래의 회복과 추곡을 가리킵니다. 사실 이 세 가지의 상징은 "로마서 9장~1장"까지 세 장(章)의 가르침을 망라합니다.
― 로마서 9장 은 특히 이스라엘과 관계된 택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 이 장(章)에서 우리는 애굽에서 나아 그 땅에 심겨진 포도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는 이스라엘과 복음 그리고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농부는 땅을 파고 무화고 나무에 거름을 주지만 낙심디는 결과만 가져옵니다.이것은 마지막 절에 다음과 같이 ㅛ약됭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시니라" 로마서 11장 에는 감람나무가 나옵니다. 이 장(章)에는 이스라엘의 현재의 소경됨의 비밀과 또한 바울의 괴로와하는 질문에 대한 온전한 대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렇수가 없느니라....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29절)
― 감람나무의 원래 뿌리는 견고히 심기워진 채로 남아있습니다.
― 이에 반해 그 가지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해 꺽이우고 여룩(列國)의 돌감람ㄴ무 가지들이 접붙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핮만 이것은 단지 이리적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 까지만 계속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완성되고 이 땅에서의 사명을 성취했을 때 그것은 하늘 집으로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원래의 가지들은 다시 접붙임을 받아 이스라엘은 이 땅위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 이것이 어ㄸㅎ게 일어날 것이나에 대한 세부 사항은 예언의 말씀인 "스가랴 12~14장"과 "마태복음 24장", "요한 계시록 16장~19장" 그리고 그외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반듯시 현 시대의 소망과 이스라엘의 소망을 구별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부ㅡ는 것과 ("갈6:1"→).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약속과 언약의 축복들을교회를 위해 주자하는 것은 성경을 합당치 않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문자적인 이스라엘을 뜻하므로 그것을 영적으로 풀이해서는 안됩니다.
― 바울은 이스라엘의 장래의 축복과 영광에 관한 "로마서 9장~11장"의 논증을 다음과 같은 장엄한 송영(頌詠)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갚도다 하나님의 지혜아 지식의 부요함이여...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3,》휴거의 비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시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구약과 신약에는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 분의 지상 재림에 관해 수백번의 언급이 나옵니다. 그 때 그 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시고 천년동안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말씀들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지거나 교묘하게 해석되어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 말씀들은 그 말씀들이 표현하는 그대로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사람의 눈에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시기 전에 선택 받은 자기의백성들을 하늘로 데려가시려고 먼저 비밀히 오시는데, 이것은 심판이 배교의 땅에 내리기 전에 있으며, 이 진리는 구약 성경에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갑작기 모습을 감추는 이 사건을 가리켜 흔히들 휴거(the rapture)라 부릅니다.
― 구약에 상징적인 부분에 비밀의 휴거에 대한 그림이 다수 나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적인 가르침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에녹은 홍수 이전에 악한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과 3백년 동안 동행하다가 대 홍수의 시만이 임하기 전에 육체적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옮기웠습니다. ("창5:22, 24"→).
―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라고 권면할때 그는 이 에녹 의 일을 마음에 두었던 것 같으며, 그 다음에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의 똑같은 문맥에서 휴거의 비밀을 계시했습니다. ("살전4:15~18"→).
― 롯도 믿는 자에 대한 또 하나의 예로서 소돔과 고뫄에 심판이 내리기 전에 옮기워졌습니다. 그가 비록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아야 할 곳에서 살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으로 부르셨으며("벧후2:8"→).평지의 도성에서 쏟아진 불과 유황으로부터 그를 구해주셨습니다.
― 우리는 똑같은 원리를 죽지 않고 옮기운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열왕기서 하 2장" 우리가 구약에 계시된 교훈에서 얻은 유리한 입장에서 뒤돌아볼 때 그와 같은 그림들과 상징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사실입니다. ㅡ렇지만 구약에는 두 단계의 그리스도의 재림-처음에는 교회의 비밀스런 휴거, 그 다음에는 그분이 영광 중에, 눈에 보이게, 공공연하게 나타나시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 전서 15장 51절에서 그것을 가리켜 비밀 즉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불렀던 이유입니다.
교회의 비밀스런 휴거와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는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휴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요 구절들이 네 군데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다락방 사역을 묘사하는 요한 복음 14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 공관복음에서는 자신의 재림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자신의 왕국에서 통치하기 위해 영광중에 나타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전에 먼저 환난의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25장"과 "13장",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비슷한 구절들은 이것을 분명히 해 줍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4장" 에 나오는 가르침은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그분이 자기 백성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영접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분은 이땅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처소를 강조하셨습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에 나와 있는데,
― 여기에서 바울은 오실 인물을 강조했습니다. 그 인물은 주님 자신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교회를 세우는 3주간의 기간 동안만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틀림없이 데살로나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개요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사건의 순서에 관해서 다소 혼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후 핍박이 뒤를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주의 날이 이미 핍박과 심판과 함께 임한 것이 아닌가 궁금히 여겼습니다. 바울이 거기 있었던 그 이래로 그들 중 몇이 죽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사람들이, 바울이 이야기했던 바, 죽지 않고 하늘로 휴거되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 데살로니가서는 그와 같은 문제들에 과내서 그들의 마음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휴거시에는 살아 있는자들이라 해서 이미 죽은 자들보다 유리할 것이 전혀 업사는 것입니다. 무더속에 있는 자들이 먼저 영광스러운 몸으로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있는 자들도 변화되어 다 함께 위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때 부터 영원토로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휴거를 다루는 세번째의 구절은 "빌립보서 3장 20절, 21절" 입니다.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ㅣ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니라"그 때에 있을 믿는 자들의 몸의 휴거와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양광스러운 목적의 일부분입니다.
"빌립보서 3장 은 자서전적(自敍銑的)입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자신의 생을 개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구원받기 전에는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이었음과, 주님께서 자기를 붙잡아 자신의 삶의 방위를 다시 결정지으셨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학교에 들어가 그의 봉사를 좌우하게 될 중요한 교훈들을 배웠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눈을 푯대에 두 채 장거리 경주를 시작했습니다. 이 자의 끝에는 믿는 자의 삶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마무리하는 복스러운 소망이 나와 있습니다.
휴거를 다루는 네번째의 구저른 고린 전서 15장" 입니다.
― 고린도 교회는 분명히 몸의 부활을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부인하는데까지 이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가운데에는 사두개인들, 이방인 가운데에는 에비구레오 철학자들(the Epicureans)이 중대한 근본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 철학자들을 만나 죽은자의 부활을 저나자 그들은 그를 조롱했습니다.("행17:32"→). 나중에 그가 산헤드린에 의해 심문을 바을 때 ("행23장"→). 부활에 과난 논쟁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간에 격앙(激昻)케 되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했지만 바리새이은 다 있다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이교도와 ㅅ두개인의 부인은 분명히 고린도 교회에 악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육체의 부활에 관한 교훈을 상술(詳述)했습니다 첫째로 그가 지적한 것은 그것이 복음의 토대 중의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 다음 그는 그 교훈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위에 두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죽기 전의 몸 ㅡ리고 십자가에 못박힌 ㅗㅁ과 똑같은 몸으로 부활하셨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분의 육체적인 부활은 유게의 부활에 대한 시금석이자 본보기요 원형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5절 에는 두 가지의 질문이나와 있습니다."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방른 나중질문에 대해 먼저 답변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6절~41절에서 그는 믿는 자의 부할의 몸의특성을 묘사하기 위해 세가지의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첫째 것-씨와 수학-은 식물학에서 취해졌습니다.
둘째 것-사람, 짐승, 물고기, 새의 네 종류의 육체- 은 생물학에서 취해졌습니다. 이 각각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두신 환경에 적응되어 있습니다.
세째 것- 해와 달과 별들의 상대적인 영광-은 천문학에서 취해졌습니다.
이 세 가지의 예화는 땅의 몸과 미든 자가 소유하게 될 영광스러운 하늘의 부활의 몸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 이 놀라운 장의 마지막 단락은(51~58절) 35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죽은 자들이 ㅓ떻게 다시 사느냐?" "보라 내가 비밀을 말하노니 위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51절).
― 여기에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비밀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처음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우리 주님에 의해 마태복음 14장~25장에서 묘사된 계시와 그리스도의 출현, 인자(人子)로서 눈애ㅔ 보이게 공연히 낱나심은 비밀이 아니지만 다음의 사항은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지 않고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 일은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나팔을 요한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 째 나팔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휴거가 대 환난의 끝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 계시록은 적어도 35년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요한 계시록을 참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9절에서 아주 본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십중 팔구 그는 민수기 10장의 은나팔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나팔은 장로들과 전 회중을 소집할 때, 정한 절기에, 전쟁을 하려 나갈 때에, 희생제물위에, 온 진(陣)이 이동하ㅕ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행진할 때가 되면 마지막 나팔은 후진으로 하여금 진을 정돈하고 대오(隊伍에 끼어가도록 하는 신호였습니다.
― 바울은 휴거시에 있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두 부류를 묘사하기 위해 썩은(을) 것과 죽을 것이라는 두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썩은것은 이미 죽어 무덤속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죽을 것은 살아있지만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사야 25장 8절 에 나오는 아름다운 구절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는" 때인 그 왕국의 영광을 묘사합니다.
― 휴거시에는 죽을 것 곧 살아 남은 자들이 주금에게 도전장을 던질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소리칠 것입니다. (위 말 성경에는 '무덤ㅇ' 대신 "사망아'로 나와 있음). 그리고 죽음에서 일어난 자들이나 변화된 생존자들은 둘다 함께 위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바울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기록과 권면 및 격려의 말로 이 놀라운 단락을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럼로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6,》일곱별과 일곱 교회의 비밀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1:20"→).
―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베일을 벗기면서 시작하는데 1장에서는 그 분의 본체에 대해, 2~3장은 그분의 교회에 대해, 4장~22장은 그분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 계시록의 개요를 1장 19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본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 은" 1장에, "이제 있는 일"은 2~3장에, "장차 될 일" 은 4장~22장에 나와 있습니다.
― 1장에 나와 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큰 환상은 그분의 본체와 사역의 모든면을 다루는 일련이 일곱 환상중 첫번째 것입니다. 이 첫 환상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첫째는, 왕으로서 그분은 자신의 이름과 직함들을 ㅔ시하시며(4~8절), 둘째는, 제사장과 재판장으로서 그분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며(9~16절), 세째는, 죽으에서 부활하시 권능의 정복자로서 그분은 가슴에 띤 금띠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17~18절).
― 그 환상을 본 후에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고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요한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의 의미와 해석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데, 대체로 세 가지로 새악 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 지리적 적용입니다. 일곱 교횡 전해진 말씀은 요한의 시대에 실재적으로 있었던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부녕히 일차적인 적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영적.실생활적 적용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모든 시대의 지역 교회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째, 예언적. 시대 대표적 적용입니다. 그 서신들은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의 시작부터 휴거시 들림받을 교회의 종말까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교회의 역사를 개관 (槪觀)하고 이씁니다.
― 대부분의 보금주이ㅏ들은 첫째와 둘째의 적용을 받아드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째의 적용을 부인하거나 회의를 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에베소에서 시작하여 라오디게아로 끝나는 그 일곱 교회가 교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또 연대적으로 보여주고있으며, 또한 은혜의 시대의 전(全) 기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일곱 금 촛대는 비밀이라 불려졌습니다.
― 이것은 뭔가 가추어졌다가 이제야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표면에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연구하고 조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명철을 주셔서 그 멧세지의 의미를 가르쳐주시도록 의지해야 합니다. 각 교회에 보내는 멧세지 속에는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멧세지는 지역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에는 연대적으로 또 예언적으로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 예를 들면 여호와의 일곱 절기 축제("레위기서 23장"), 다니엘의 칠십이레("단니엘서9장"), 하나님 나라의 일곱 비유("마태복음 13장")등입니다. 그ㅓ므로 이것들과 비스산 또 다른 하나가 요한 계시록 2장~3장의 일곱 교회에 나와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셋째로, 일곱 교회는 의도적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지역에 저거도 세개의 교회가 더 있었습니다. - 드로아("행20:6, 7"→), 골로새("골1:2"→), 히에라볼리("골4:13"→). 그나 그 중에서도 일곱 교히만 선택된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해변의 에베소에서 시작하는 일곱 교회들은 지리적으로 볼 때 대충 워늘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이년 동안 머무를 때 세운 것 같습니다.("행19:10"→). 성경에는 그 당시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로, 일곱 교히에게 보내는 서신에 포함된 가르침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련의 진행성을 볼 수 있습니다.
― 시작 부부에서는 교회의 사애가 점차적으로 저하되다가 중간에 두번의 부흥이 있으며 라오디게아 교회 전체에 대한 주님의 거부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처음의 세 ㄱ히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언급이 없지만 나중의 네 교회에는 그것이 현저하게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처음 세 교회에는 과거의 시작 할 때 상태가 나와 있고 나중의 네 교회에는 장래의 재림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섯째로, 일곱 교히의 이름들은 뜻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에베소는 "갈망하는" 또는 "탐내는"이란 뜻이며, 총각이 고르고 고른 사랑하는 처녀에게 이 단어를 사용 합니다. 서머나는 "몰약", 버가모는 "결혼한", 두아디라는 "게속적인 히생", 사데는 "도마아는",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 라오디게아는 "인권(the people's ri-ghts)"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나 풍성한 뜻들입니까!
일곱째로, 그 열쇠는 그 자물쇠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the key fits the lock)! 해리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고대에 만들어진 자물쇠로 잠궈진 옛 성의 재미있는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쓰레기 덤 속에서 열쇠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열쇠를 자물쇠에 끼워더니 문이 드디어 열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그 열쇠는 그 자물쇠에 맞는 합당한 열쇠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아이언사이드는 이렇게 덧붙혔습니다. "여뢰가 아주 복잡한 자물쇠의 홈에 딱 들어맞아 어려움 없이 그걸 열어을 때 그것들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졋다고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은 가직 있지 않고 오지 역사책만 가지고 있을 때 교회의 역사가 다음과 같은 일곱 기간으로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시대, 핍박시대, 콘스탄틴 대제와 그의 국가 종교시대, 중세 암흑시대, 웨슬레와 교회 부흥 시대, 미지근 하고 무관심한 현시대.
―이것은 어떤 특정 해석학파의 견해에 꿰어맞추려고 공상적으로,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여사가들의 건전하고 자연적인 구분이며 변개하거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일곱 교회는 교회 일생의 제반 문제와 어려움들을 실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그 일곱 교회가 전(全) 교회 시대를 보여주는 파노라마라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의 휴거의 위치입니다. 이 논제에 대해 주석가들은 세 가지의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전(前) 천년주의자들은 요한이 하늘로 끌려올려 보좌와 그 보좌주위에 24 보좌들이 있고 그 위에 흰 옷을 입은 24장로들이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 환상을 보게 되는 요한 계시록 4장의 처음 부분에서 교회의 휴거ㅏ 있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나오는 24장로들은 다시 살림을 받아 영화롭게 된 거룩한 제사장들로 구성된, 완성된 교회라고 생각 됩니다.
― 다른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 12장 5절에 나오는 남자(the Man child)가 대환난 중간에 하늘로 올리워가는 것이 휴거라고 말합니다.
― 요한 계시록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땅에 있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요한 계시록 3장 끝에서부터 요한 계시록 22장 16절까지 전혀 나오지 않는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영화롭게 된 하늘의 장로들이 와성된 교회를 의미한다면 휴거가 요한 계시록 3장과 4장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거로서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드러납니다. 교회의 증거는 요한 계시록 3장 14절~22절에 기록된 라오디게아 교회 시기와 함께 끝이 납니다.
―트렌치 대 주교는 일곱 교히에 관한 그의 책에서 예언적인 해석을 부인하지만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역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헨리 불라운트(Henry Blount, 1838)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 개혁 이전의 많은 주석가들과 그 이후의 브라이트맨, 포오브즈, 미이드, 모어, 길, 아이삭 뉴튼경, 비트링가, 램프같은 사람들은 일곱 교회가 사도 시대부터 끝까지 일곱 기간으로 나뉘어지는 교회의 상태를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 블라운트 자신도 그 경해를 취했으며, 그는 거기에다 이렇게 덧 붙혔습니다.
"일곱 교회는 전(全) 교회시대를 상징적으로 묘사학 있을 뿐만 아니라 예언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1.> 일곱 별의 비밀
― 부활하시고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천사(angel,우리말 성경에는 "사자"라고 번역됨).라고 ㅐ석하셨습니다. 주모갈 점은 그 편지들이 각 교회의 천사들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각개 모임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 "교회의 천사"가 뭣이냐는 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려서 그 천사를 각개 교회의 수호 처사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그들은 보이지 않는 문자적인 천사가 문자적인 지역 교회에 어떻게 그 멧세지르 전달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를 설명하지 못햇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그 단어를 "사자(使者,messenger)라고 번역하여 그것을 밧모섬의 요한으로부터 온 멧세지를 소아시아의 지역 교회들에게 전달하는 급사(急使)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스코필드 성경에 있는 주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밧모섬에 유배뵈어 있는 나이 많은 사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일곱 교회로부터 보내진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그 사자들에 대한 자여느런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멧세지를 교회에 전달하는 어떤 사람도 다 대표할 수 있습니다.
― ㄸ 다른 해석으로는 그 "천사"가 지역 교회의 감독 혹은 목사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때 주님의 서신을 받았던 그 감독 혹은 그 목사(단수 형태 즉, 일일 성직자란 뜻)는 신약 성경에는 없는 비 성서적인 견해입니다. 물론 감독들 혹은 목사들이라는 복수 형태의 단어는 신약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의 감독만이 지역 교회를 돌보는 것은 나중에 성직자 제도에서 생겨난 것이며 우리 주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번째 서신서는 그와같은 일인 성직자 제도를 장려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네번째의 견해는 그 천사가 교회의 장로회를 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마 천사라는 단어가 단수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런 견해는 맞지 앟는 것 같습니다.
― 우리는 그 권면이 모든 일곱 교회에 있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 아래 있으면서 하나님의 멧세지를 분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개체입니다. 이것은 성소에서 보내는 시간과 교회의 머리되신 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요구합니다. 그 용어의 참된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은 예언적인 사역입니다.
―그들은 ㅏㄴ지 장황하게 떠버리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난믜 백성들의 상태를 잘분석하고 보좌로부터 그분의 멧세지를 받아 그것을 겅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대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7,》큰 바벨론의 비밀("계 17,18장")
― 바벨론이란 이름은 성경에서 260번이나 언급되어 있으며 인간 역사의 초기 시대인 창세기에서부터 그 끝인 요한 계록에서까지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동에 있는 한 도성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또한 축복의 도성 새 예루살렘과 직접 대조가 되어 있는 사악한 체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에 대한 언급은 세 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는, 창세기 6장~12장에 기록된 역사적 바벨론이며, 이것은 우상숭배로 특정지워집니다.
둘째는, 다니엘과 예레미아 시대에 유대 백성들이 사로잡혔던 장소인 예언적 바벨론이며, 사로잡힘의 기간은 칠십년간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요한 계시록 17장~18장에 나와 있는 비밀스런 바벨론입니다.
<1.>역사적 바벨론 ("창세기 6장~12장").
― 바벨론은 역사적으로 홍수 직후의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언급은 창세기 10장 10절에 나옵니다. 함의 아들 구스가 니므롯을 나았는데, 이니믓롯은 세상에서 처음 영우이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수한 사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의 시작은 바벨이었습니다. 바벨은 "하나님의 문"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인간들은 도성을 만들고 구운 벽돌과 진흙으로 탑을 쌓아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다헤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므로 그일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벨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문이라는 뜻 대신 "혼잡"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바벨은 희브리어이며, 바벨론은 그 이름의 헬라어형입니다.
―함 족속 니므롯은 하나니므로부터 이탈 동맹하는 사람들의 첫 지도자요 그 운동의 수뇌였습니다. 그는 농부 또는 양치기가 아니라 강한 사냥군이었습니다. 그는 고대의 군사령관이였으며, 장차 올 적 그리스도의 모형잉ㅆ습니다. 홍수 후의 하나님의 명령은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을 분산시키고 확장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니므롯은 반대 사상은 합병시키려고 도성을 짓는 것이어씁니다. 그의 ㅡ로우건은 "뭉치는 것이 힘이다"였습니ㅏ. ㅡ느 니느ㅔ를 침략하여 방심하고 있는 셈 족속을 불시에 스벽하고 단결된 힘을 과시하는 바벨탑 위에 구스 족속의 깃발을 펄럭이게 했습니다. 초기의 바벨론 제국은 이렇게 해서 생견ㅆ습니다. 그 탑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아랍 사라믈은 그걸 "비르스 니므로우드(Birs Nimroud)"라고 부릅니다. 추산된 바에 의하면 그것은 원래 660피이드(약 200m)로서 대 피라밋보다 더 높은 것이었는데, 너비가 점차로 줄어지는 여덟개의 탑이 위로 차례로 세워진 후 맨 꼭대기에는 길이가 40피이드(약 12m)나 되는 항금 우상이 서있어ㅏ고 하니다.
오늘날 중앙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들은 바벨탑의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히스롭(Alexander Hislop)은 자신의 저서 "두바벨론(The two Babylons)"에서 이곳에 중심과 기원을 두고 있는 우상 숭배 종교 체제의 발전 상황을 추적했습니다. 그 창시자 니므롯은 태양신이 됩니다. 나중에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하늘의 여왕이라는 뜻)는 아스다롯으로, 그의 남편 니므롯은 아스다르테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녀의 아들 아도니스는 호로스가 됩니다. 이것들은 갈데아의 불가사의였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애굽과 그리이스와 로마에서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본질적으로는 모두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바샤(페르샤) 왕 고레스가 B.C539년에 바벨론을 탈취했으 때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이단 종교를 가지고 솨시아로 도망가 버가모에 정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 계시록 2장 13절에 언급된 사단의 위(位)였습니다.
― 쥴리어스 시저는 그리스도의 탄생직전에 그 이교 사제들과 그 소지품 전부를 로마로 옮겼습니다 그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바벨론의 칭호를 사용하여 자신 안에 정치와 종교의 권위를 결합했습니다. 로마 황제 콕스탄틴도 그칭호를 A.D313년에 사용했으며, 나중에는 교황이 그것을 전유(傳有)하게 됩니다. 사제술(司祭術), 어머니와어린아이의 숭배, 성수(聖水), 십자가의 성호를 긋는 것, 미사, 고기모양의 사제관(司祭冠) 등은 다 고기 신 다곤으로부터 취해진 것들입니다. 모하멧교도와 불교 신자와 로마 카토릭에서 사용하는 묵주는 다 같은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니므롯과 바벨론의 직계 자손입니다.
― 히브리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해 그곳에서 나오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 사람들은 달을 신으로 숭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에 기록된, 그곳을 떠나라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획기적인 역사의 경계표(境界表가 되었습니다.
<2.>예언적인 바벨론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모세의 인도로 해방된 후 그들은 여호수아 휘하에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윗과 솔로몬 차하에서 군주제의 정부 형태를 갖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3.>불가사의한 바벨론
―요한 계시록 내용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7장, 18장의 마흔 두 구절은 큰 바벨론의 마지막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것은 비밀로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 계시록에 나와 있는 바벨론 성을 문자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실제의 바벨론 성이 옛 장소에 재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사야 13장 20절"에는 그것이 다시 사람 사는 곳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요한 계시록 17, 18장의 기사는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실 사단의 조직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 으며와 그 여자 그리고 그 성은 의도적으로 대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가짜요 거짓 것이며, 다른 것은 진짜요 참된 것입니다.
― 그녀의어미큰 바벨론은 세개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 괴물적 조직체입니다. 세개의 가지 중 첫째는 종교적인 것이고("계17:1~7"→). 둘째는 정치저인 것이며("계17~8~18"→). 셋째는 상업적인 것입니다.("계18장"→).요한 계시록 17, 18장은 그 마지막 형태와 궁극적 파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종교적인 형태("계17:1~7"→).
―요한은 성령님에 의해 광야로 이끌림을 받아 거기에서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앉은 여자를 보는데, 그 짐승의 몸에는 참람(僭藍)딘 이름들이 가득하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는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종교개혁 이래로 많은 신학자들이 그 여자를 교황 제도의 로말 보았습니다. 루터, 틴데일, 캘빈, 녹쓰, 알포드, ㅡ릭 그외의 많은 사람들도 그 단락을 그와 같이 해석했습니다.(물론 로마 교회는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바하고 죽인 것이 이교 로마여싸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 음녀가 오로지 로마 교회만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거의 부하비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벗겨놓고 보면 불교, 유교, 신도(神道), 모하멧교, 그리고 의식적(儀式的)이고 합법적인 기독교계는 본질적으로 다 동일한 것들입니다. 그것들 모두는 다 똑같은 교훈을 가지고 있는 동일한 것들입니다. 그것들 모두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각각 다른 형태로 은밀히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조직의 일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의 기원과 원천을 창세기 11장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ㅖ시록 18장 2절은 그것이 사단적인 히뫄 영감으로 충전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귀신과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것은 곧 그것이 강신술과 비술(泌術)을 그 안에포함하고 있음을보여줍니다. 그것은 참된 교회가 하늘로 휴거딘 ㅜ에 이 땅에 나게 될 거짓 배교 조용 더러운 찌꺼기인 것입니다.
― 요한 계시록 17장 15절은 그것이 거대한 국제 조직임을 보여줍니다.그것은 배교한 카톨릭, 신교(新敎), 동양 종교, 무신론의 복합체입니다. 그것은 종교의 괴물이요, 말세의 거대한 초교파 세계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하에 그것은 정치적인 힘으로 파괴되고, 거짓 숭배의 마지막 형태, 큰 기만, 불법의 사람의 숭배를 위해 길을 내어줄 것입니다.
※바벨론의 정치적인 형태("계17:8~18"→).
― 바벨론의 정치적인 무기는 요한 계시록 17장 8절~18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곱개의 머리와 열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 짐승에 의해 통일되는데, 그 위에는 그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짐승은 분명히 요한 계시록 13장 1절의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동일한것입니다. 두 지승 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으며, 두 짐승 다 참람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요한 계시록 17장9절에 해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로마입니다.
―요한 계시록 17장 8절에는 요한이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時方), 없으나 장차 무저갱(無底坑)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네 국면을 선명히 보여주는 공관적(共觀的)묘사입니다. 그것은 네번째의 세계 군주국의 부흥이 끝에 가서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데, 네번째의 섹 군주국은 다니엘서 2장의 신상(神象)과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의 묘사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 요한 계시록 17장 10,12절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왕들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 머리들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 뿔들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는 로마 제국의 첫 단계 동안 통치하게 될 것이고, 열 뿔은 로마 제국의 부흥 후 마지막 단계동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일곱머리는 로마제국의 시작때부터 몰락때까지의 상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곱개의 정부형태로 해석되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을 국가의 머리들로 간주합니다. 아마도 국가와 그 머리 둘 다 거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7장의 짐승은 옛 로마제국의 영토에서 일어나는 여덟번째의 것입니다. 열 뿔은 열 왕 또는 국가의 머리로서 잠깐 동안 독립적으로 통치하다가 각각의 주권을 그 짐승에게 넘겨주는데, 그 짐승은 그 때 최고의 독재자로서 권력을 넘겨 받습니다.
―처음에는 여자로 표현된 종교적인 힘이 더 우세해서 짐승으로 표현된 정치적인 힘에게 정책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바와 같이 그녀는 견딜 수 없게 되며, 그 정치적 독재자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멸망시킵니다. 1798년의 프랑스 혁명과 볼쉐비키 혁명은 그 음녀 곧 거짓된 세계교회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계17:16~18"→).
※바벨론의 상업적 형태("계18:1~24"→).
― 요한 계시록 17장은 여자와 짐승 곧 마지막 때에 있을 사악한 세계조직의 종교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18장은 그 성과 그 성의 상업적인 면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의한 그 성의 궁극적 파멸을 그리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 곧 마지막으로 크게 배교하는 세계교회 펴의회는 정치적인 힘에 의해 청소되어 버림으로써 최후의 세계 종교 곧 인간과 그의 우상 숭배를 위해 길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상업적 도구- 세계기업, 사업, 재정-와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멸망을 받기로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18장의 그 성을 말세에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서 유브라데에 다시 세워지는 옛 성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그곳이 결코 사람이 거하는 곳이 되지 못할것이라는 이사야 13장 20절의 예언은 그와같은 견해를 배재합니다.요한계시록 17장의 여자와 짐승이 은유적으로 묘사된 세계 체재를 가리킨다면 요한 계시록 18장의 그 성도 분명 그러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물질 도시 보다도 훨씬 더 당당하고 넓게 펼쳐진 대단한 성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괴물적인 세계체재의 세번째 가지입니다.
― 이 일과 관련지어 볼 때 로마 교회와 배교한 신교(新敎)는 정치와 상업에 관해서 항상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바티칸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종류의 귀중품들이 들어 있는 엄청난 보물 창고입니다. 성 베드로는 이제 더 이상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너무나 종종 복음 전도보다는 경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 오늘날의 세계는 "가진 자" 와 "못가진 자"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대략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생계 수준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의 절반 가량이 매일 밤마다 굶주린채 잠자리에 들고 있스니다.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자 두 진영으로 급속히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무시론 공산주의는 세상이 본것 중 가장 무자비하고 냉혈적인 체재입니다. 그 반면에 쇠업들을 으깨어버리는 독점 기업들과 카르텔(기업 연합)들과 콤바인(기업 합동)들은 탐욕과 이기주의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 18장에는 여덟 부류의 상품이 나와 있습니다. 보석류, 값비싼 의류, 가구재료(향목과 상아), 그릇(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의 기명들), 향품류와 화장품류, 음식류, 운송 수단(말과 수레), 종들(사람의 영혼들과 몸들).
― 이 엄청난 체재가 멸망할 때 네 부류-해운업, 정부, 기업, 연예계-가 통곡합니다.(17, 9, 11, 22절). 세부류-성도들, 사도들, 선지자들- 가 크게 기뻐합니다.
― 요한 계시록 18장은 세계제정의 붕괴에 관한 무서운 그림을 묘사합니다. 오늘날 달러, 파운드, 마르크, 프랑크, 엔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국제수지, 그리고 정치가들과 세계 지도자들의 불안은 그 일이 어떻게 갑작기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세계무대에서 일어났던 다음과 같은 또다른 의미 심장한 일은 사건들이 급속히 종국을 향해 구체화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57년 3월 25일, 로마에 있는 저 유명한 캐피톨라인 힐(Capito-line Hill, 옛 로마 7언덕의 하나)에서 벨기에와 프랑스, 이태리, 룩셈부르크, 서독, 네델란드 대표들이 모여 로마 협정이라 불리는 문서에 서명을 했는데 그 협정은 그 6개국 간에 공동 시장을 설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진로에 크게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중대한 운동이 바로 이날시작되었습니다. 하나의 유럽 연방에 대한 근사한 개념이 구체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영국은 그 합동의 회원이 될 것을 가결했으며, 다른 나라들도 회원권을 신청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유럽에 있는 옛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10개국 합동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그것은 곧 요하녜시록 17장, 18장이 성취되고 있는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1957년 10월, 그 당시 나토의 사무총장이었던 폴 헨리 스파크는 파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위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것들이라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충성을 포용할 수 있으며 우리가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경제적인 늪에서 우리를 들어올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에게 보내라. 그가 신이든 악마든 우리는 그를 영접할 것이다."
― 마귀는 하나님의 허락하에 그 인물이 자기의 때에 나타나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이 사단적 동맹의 초기에는 정치적인 힘과 경제적인 힘이 종교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될 것임을 고려한다면, 현재 유럽 경제 공동체의 인구 중 대다수가 로마 카토릭이라는 사실과, 로마 카토릭이 정치적 영역과 재정적 영역에서 엄청난 여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모든 참된 성도들은 요한계시록 18장 4절의 권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광야길에서 얻은 우리의 교훈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이것이다.- 감옥을 옮기거나 불을 끄는것이 주님의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것들을 인내하는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주의 방법이 것입니다. 주님은 련으로부터 우리를 면제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것을 약속하셨고, 또한 시험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전10:13"→).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의 수많은 사소한 일들에게까지 적용된다. 주님은 우리의 가시를 제거하시지 않고 은혜를 주어 견디게 하십니다.(고후12:8, 9"→). 이렇게 하여 쓴맛을 달게 만드시므로 우리는 환난중에도 즐거워 한다.("롬5:3"→).
―엘림이, 열두개의 우물과 칠십주의 종려나무(출15:27", "민33:9"→).와 함께 그 다음에 나온다.사막의 푸른 지점이며, 시련후에 왔기에 더욱 적당한 것이다. 엘림은 가나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중에 있는 쉼의 장소였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때에 맞을 기쁨의 시식이 되고 종려 그늘아래서 초막절을 지킬것에 대한 기대를 준다. 우리에게 그것은 장차 올 영광을 말해주고, 광야길이 지난 후에 있을 것이나, 이제도 우리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중에 바라는 것이다. "된소망" 그렇게 꽉 붙잡고 본향의 기쁨을 동경하는 것은 쓴물을 마실때 시련은 약속을 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난" 과"영광"은 "베드로 전서 1:2", "4:13", "5:1, 10"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 우리의 마라와 엘림도 서로가 매우 가까이 있다. 폭풍후에 주님께서 주신 고요함을 갈릴리 호수의 어린 소년이 즐길 수 있다! 마리아와 르다의 마음은,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슬픔과 눈물뒤에, 재연합의 잔치에서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고 우리 사랑하는 자들이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본향에서 주의 영접을 받을때 그렇게 될 것이다. 오! 거기에 있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이겠는가!
"걱 생명의 수정강가에서,
거기, 생명의 경이스러운 나무밑에서
거기, 구름이나 불화가 없는 곳,
어린 양과 영원히 있게 될, 영광의 상속이여!
너와 나를 위한 그 어떤 소망인고!"
"나에게 주어진 고난"
나 당하는 고난 아무도 몰라.
주 예수 밖에는...
나 당하는 고난 아무도 몰라.
노래하자 할렐루야!
흥할때도 있고 망할때도 있네.
땅에 있을때도 있고
영광이 비칠 때도 있네.
놰하자 할렐루야!
나의 하는 일 아무도 몰라.
나의 슬픔 아무도 몰라. 내가 맛보는 기쁨 아무도 몰라.
오직 주 예수 밖에는...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눈물흘리는 밤이 있으리라.
그러나 낮이 반드시 오리니
즐거운 새 아침을 여시고
슬픔의 눈물을 거두어 가시리라.
저 새 날이 동트는 것을 바라볼 때
인생의 가장 힘겨운 수고가 보람있을 듯
내 여온 잠잠하고 기다릴지어다.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여호수아서를 통한 영적 교훈
<1.>요단강을 건너라
―오래동안 바라던 날이 드디어 이르렀고 여호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가라"
― 요동치며 강둑을 넘쳐 흐르는 요단강이 가나안 땅으로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백성들의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려는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굴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40년 전에는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바다를 가르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 지팡이와 지팡이를 잡고 휘두르던 손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신32:49,50", "34:5~8"→). 제사장 예복을 입은 레위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언약궤와 속죄소와 청색 덮개가 이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가 된 것입니다.
― 거룩한 기구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물에 잠기자 마자 그 강은 갈라져서 멀리 아담읍까지 물러나 쌓였다.("수3:14~17"→). 아담읍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으나, 그 이름이 첫 사람과 관련되어 있고 그로 인해 사망이 왔다는 함축된 의미를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갈라진 곳의 아래쪽에 있던 강물은 사해바다로 흘러들어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날에는 요단강이 이스라엘의 눈 앞에서 사라졌으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섣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갔던 것이다. ("수3:17"→).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가운데의 마른 땅위에 굳게 서 있는 한 단 한 바울의 물도 백성들을 건드릴수 없었으며, 만일 그 강물이 이스라엘 백성 중의 지극히 작은 어린아이 하나라도 건드리면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먼저 덮쳐 넘어야만 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바닥에 굳게 서 있는 한 백성들은 절대적으로 안전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친히 역사하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병사, 노인, 어리아이들, 모든 백성이 대낮에 요단강을 완전히 건너서 가나안 땅을 밟게 되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감과 아주 휼륭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애굽에서 유월절 양과 뿌려진 피는 우리의 죄와 장차 임할 진노에서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홍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요단강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타내며, 따라서 이제 사망은 폐지되었고 심판은 지나갔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마른 요단강을 통과한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된 경험을 아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진리를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질 무진장한 영적인 축복들을 받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축복의 땅에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이 있으며("엡1:3"→).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있으며("엡1:19"→). "그 은혜의 지극이 풍성함"이 있으며("엡2:7"→).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있습니다.("엡3:8"→).
―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러한 축복들을 알고 그러한 축복들에 대해 쓴 글을 읽을 수가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줄수 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다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을 깨달은 자에만 주어지는 특권인 것입니다.
<2.>요단의 기념석("수4장→).
―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각 지파에서 선발된 12명의 대표들은 제사장들이 아직 굳게 서 있는 요단강 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서 돌을 각각 하나씩 주워 어깨에 메고 가나안쪽으로 옮겨온 후 약속의 땅위에 그 돌들을 세웠다.
그 돌들은 장래의 세대들에게 요단을 나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하는 증거물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죽음의 장소인 요단강강으로부터 가져온 이 기념석은 새로운 장소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곧 영원한 멸망의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진 성도들의 현재의 축복된 이치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 돌들과 마찬가지로 한 때 그들도 심판과 죽음아래 놓여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며 주님께서 계신 하늘의 처소에 함께 앉히신 바 되었다.
― 이러한 축복된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 마음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매일 매일 주님을 드러내는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될때, 그들은 곧 세상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돌은 무슨 뜻이뇨?" 그러면 성도들은 대답할 것이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강물을 마르게 하사...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으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하려 하심이니라("수4:23, 24"→).
―또 하나의 기념석이 다른 장소에 세워져야만 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었던 요단강의 깊은 바닥에서 12개의 돌을 더 취하여 강 바닥에 세워놓았으며, 언약궤를 멘 모든 제사장들이 강 밖으로 다 나오자 마자 강물은 그 돌위를 덮었고 원래대로 여전히 흘려 넘쳤다. 우리는 여기에서 똑같은 그림의 다른면, 즉 한쌍의또 다른 진리를보게 됩니다. 요단강으로부터 가져와서 간안 땅에 세워둔 12개의 돌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의 새로운 신분을 보여주며, 요단강바닥에 잠겨서 다시는 볼수 없게 된 12개의 돌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죽었고 장사된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받는 침례(쎼레)는, 그리스도와 함께사망하고 장사되었다가 그리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요단강 물속에 잠긴 돌과 요단강 밖의 가나안 땅에 세워진 돌에 대한 신약 성경의 해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바로알고 마음으로 그것을 소유한 후에 그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성도님들에게는, 그 기념석과 침례(세례)가 참으로 귀중하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거침돌과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정복한 사실과 그 후에 선택된 지파들이 그들의 기업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택된 민족들에 의해 보여진 힘과 열망과 믿음, 그들의 원수들에게 패함과 실수, 정복과 승리- 이 모든 것들은 영적으로볼 때 오늘날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너무나 귀중하고 큰 교훈을 주고 있는것이 확실합니다.
―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의 좋은 군사"로서 믿음과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계속 전진해 나가면서 지금까지 바라본 영적인 이 교훈들을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날에 나아가는 자녀들이여!
필사적인 전투에서 부룰의 투지를 가지라.
적대적인 적진을 향해 돌격하여,
젓드를 돵치게 못하게 하라.
전능한 능력으로 띠를 띠고
믿음으로 적들의 대혼란을 보라.
믿음은 전투의 시간을 기다리리...
확실한 승리 있으리라.
싸우라!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나의 적도 그대 앞에 없어질 때까지
주님의 오른 손을 방패삼으면
그의 구원을 보게되리
그의 명성은 영광을 받게되며,
예수는 영원토록 동일하시리라.
구주의 비길데 없는 이름이여
이제 그대의 군가가 되리!
-죤.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