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팔공산 거조사 ■
《유튜브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6월8~9일의 1박2일 은해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팔공산 은해사를 빠져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거조사를 갑니다ㆍ
영천 거조사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여
아미타부처님이 항상 머문다는 뜻을 가진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의 말사입니다ㆍ
본래 은해사보다 거조사가 먼저 지어졌습니다 ㆍ
거조사는 1912년 은해사 말사로 통합되며 거조사에서 은해사 거조암으로 불렸는데 창건 시기는 오히려 은해사(809년)보다 빠르다고 합니다ㆍ
2021년 3월 독립된 사찰로 등록되며 다시 거조사로 불립니다
거조사는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도사가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뒤 진평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신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팔공산의 3대 기도도량으로는 갓바위, 중암암, 거조사를 말한답니다ㆍ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목조건축물로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거조사 영산전,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조사당, 강릉 임영관 삼문이 있는데 거조사 영산전도. 그중 하나로 이 모두가 국보입니다ㆍ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1308년에 건립되었습니다ㆍ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은 1363년에 건립되었는데 복원 공사 후 원형 훼손에 대한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ㆍ
-거조사 영산전(국보 제14호)은 1375년에 건립되었는데 명나라 황제가 보낸 목수가 지었다는 설도 있습니다ㆍ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137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은 1377년에 건립되었는데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은 936년에 건립되었으며 수덕사 대웅전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ㆍ
-참고로 수덕사 대웅전처럼 옆모습이 사람인(人)자이면
맛배지붕이라 하고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여덟 팔(八)자 형태면 팔작지붕이라고 합니다ㆍ
다행히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병자호란에 불타지 않고 견뎌준 감사한 건축물들입니다ㆍ
"거조사는 정혜결사 근본도량입니다"
거조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1190년부터 7년간 머물면서 고려의 타락한 불교를 개혁하고 선불교를 부흥하기 위하여 정혜결사를 시작한 곳으로, 깨달음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하여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3년간 더 수행 끝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1200년 정혜결사가 순천 송광사로 옮겨지기 전까지 중심사찰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16국사가 배출되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ㆍ
👇송광사
《송광사 16국사전》
《송광사 16국사 진영》
지눌 스님께서 고려중기 송광사에 수선사를 세워 정혜결사를 이룩하기 이전에 각 종파의 고승들과 함께 정혜를 익혔던 곳이며 우리 불교문화사에 길이 빛날 "근수정혜결사문"을 발표하셨던 곳이 바로 이곳 거조사입니다.
보조 지눌 스님은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선교일원론을 통해 한국불교사상사에 큰 획을 그으셨습니다. 큰스님은 결사문에서 마음을 바로 닦음으로써 미혹한 중생이 부처로 전환될 수 있음을 천명하고, 그 방법은 정과 혜를 함께닦는 정혜쌍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결사운동은 정법불교로의 복귀작업이었고 당시의 불교현장을 이념적 또는 형태적으로 혁신하고 다시 일으키는 운동으로서 오늘날의 시국선언문과도 같아 당시 많은 스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거조사는 불교역사속에서 생동하는 호흡을 나누며 유수한 세월 동안 구도와 참구의 향촉을 밝히는 으뜸도량으로 새로운 불교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거조사는 고려시대 불교정화 운동의 시발점이자 이후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된 역사가 있는 사찰입니다ㆍ현재 거조사 국사전은 아직 준비가 안됐는지 개방이 안되고 있습니다ㆍ
영산루는 거조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인 누각입니다
입구에서 보면 2층누각이며, 영산전 앞마당에는 1층 범종각입니다ㆍ
《공사중이라 모셔왔습니다》
누각 범종각 안에는 불전사물인 법고와 동종, 운판, 목어가 모두 있습니다ㆍ
영산루 아래로 누하진입하여 계단을 오르면 거조사의 경내로 진입하게 됩니다ㆍ
정면에 등장하는 것이 거조사의 중심 법당인 영산전입니다ㆍ
그 앞에는 삼국시대의 삼층석탑이 있고, 영산전의 왼쪽에는 산신각과 천태각이 있습니다ㆍ
나머지 건물들은 종무소와 요사채들입니다ㆍ
"거조사 영산전은 국보 제14호로 1962년 12월20일에
지정되었습니다"
거조사의 영산전은 거조사의 중심 건물입니다ㆍ
낮은 기단에 자연초석을 배열하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으며 정면 7칸, 측면 3칸의 직4각형 평면에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 건물입니다.
738년(효성왕 2) 원참조사가 창건했다는 거조암(당시는 거조사였음)이 언제부터 은해사의 부속암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건물이 해체·수리될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375년(우왕 1)에 건립되고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합니다.
정면은 중앙칸에 판문과 살문으로 이중의 출입문을 설치했고 그외에는 정면에 4칸, 옆면에 각각 1칸, 뒷면에 1칸 붙박이살창을 설치했습니다.
건물 옆면의 중앙칸 양옆에 있는 고주가 길며, 그 양옆으로 앞뒤쪽에 변주를 배열하여 툇간을 만들었습니다.
건물의 내부바닥에는 고주 사이의 중앙칸을 마루로 높여 불상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벽돌을 깔았습니다.
건물벽과 고주를 따라 불단을 가설하여 총 526위의 나한상을 봉안했습니다.
거조사 영산전 법당내부에는
법화화상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려 인근의 암석을 채취해 조성했다는 석가여래삼존불과 오백나한상, 상언이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ㆍ
영산전의 오백나한상은 오백나한상이라 부르지만
526나한상 (부처님 10대제자, 16나한상, 오백나한 500구)이 봉안되어 있습니다ㆍ
그 중 법계도를 따라 봉안된 나한상은 그 하나하나의 모양이 다르게 생겼고, 해학적인 표정과 자세가 특이하며, 기도영험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ㆍ
거조사는 한자로 머물 거자에 조상조자로"조"자는 불교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어낸 뛰어난 수행자 "를 말하는데 거조사는 그런 수행자가 머무는 절이란 뜻입니다ㆍ
안내문에 있는 것처럼 거조사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어 항상 아미타불(1298년 원참스님)이 머문다고 합니다ㆍ 그뿐만 아니라 일체의 번뇌를 끊고 최고의 수행 단계에. 이르러 사람들의 공양을 받아도 된다는 성자 즉 나한(1375년)이 머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절입니다
거조사는 500나한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지만 500 나한상과 영산전이 조성(1375년)되기전인 1298년 이미 미타기도 도량의 영험한 사찰로 알려져 있었으며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그보다 앞선 1190년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 사찰로 그리고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영산전이라는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 우리들에게 아주 귀중한 사찰입니다ㆍ
영산전은 영산회상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영산회상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의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면"을 말하는데 이 설법 자리에는 10대 제자, 16나한 그리고 500나한 등이 모였으며 이와 같은 광경을 불화나 조각으로 만들어 모시는 불전을 영산전이라고 합니다ㆍ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부처님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왼쪽에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과 오른쪽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계시는데 이렇게 과거불과 현세 석가모니불 그리고 미래불을 합쳐 삼세불이라 합니다ㆍ
16나한님 옆으로. 화살표를 따라가면 500나한님을 볼 수 있는데 모든 나한님에게 번호와 명호(이름)가 붙여져 있습니다ㆍ 어떻게 500위나 되는 나한님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요?
《무학대사》
《영파성규대사 》
오백성중청문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석왕사에서 100일 동안 오백 나한을 모시고 행한 의례집을 참고하여 1805년 은해사 운부암에 계시던 영파성규(1728~1812)스님이 편찬한 책으로 10대 제자, 16성중 그리고 오백 나한의 명호가 적혀 있으며 이들의 명호를 일일이 부르며 예불하는 의식 절차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ㆍ 여기서 성중이란 극락세계에 있는 온갖 보살을 뜻한다고 하는데 나한님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ㆍ
《은해사 성보박물관》
헌재 오백성중청문은 은해사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거조사 영산전은 오백 나한님의 명호가 새겨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오백 나한전이라고' 합니다ㆍ
거조사 삼층석탑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탑 전체 높이는3.15m입니다ㆍ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ㆍ 특히 기단에 안기둥 한 개를 새긴 점과 덮개돌 윗면이 경사진 점, 노반의 낙수면이 짧은 점, 추녀가 두껍게 되어 있는 점 등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ㆍ
우리나라 보편적인 탑 구조와 마찬가지로 삼층기단 면석과 각층에 있는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ㆍ탑의 꼭대기인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모양 장식인 노반이 남아 있습니다ㆍ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다른 돌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면석 일부와 지대석은 후대에 보수된 것입니다ㆍ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은 너무나 작습니다ㆍ
산신과 함께 있는 호랑이가 뒤를 보고 있는데...
호랑이의 표정이 뭔가 억울해 보이기도 합니다ㆍ
산신각 옆에 천태각이 있습니다ㆍ
천태각을 찾아보니 독성각의 별칭이라고 합니다.
독성은 나반존자를 말하며
그는 스승 등의 도움 없이 홀로 득도를 한 인물로서
특히 성공, 진학, 출세를 빌 때 사람들이 찾아기도 합니다.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영산전이지만 500'나한님들은 이에 개의치'않고 장난치듯 몸을. 비틀기도 하고 옆 나한님들과 떠들기도 합니다ㆍ
나한님들은 떠들고 노시면서 누가 왔는지 한번씩 둘러 보시면서 이사람 소원을 들어 줄까 저사람 소원을 들어 줄까하고 지켜보고 계실겁니다ㆍ"정성껏 3일만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신다" 합니다ㆍ
자기를 닮은 나한님을 찾아 꼭 소원 이루어 달라고 떼를 써도 들어주실 것만 같습니다ㆍ
이상입니다ㆍ 감사합니다ㆍ
유서 깊고 영험있는 나한 기도도량 거조사였습니다ㆍ
🔶️영천 팔공산 거조사 🔶️국제포교사회 부울경지부 🔶️불기2568년6월9일일요일🔶️은해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오백나한님 참배🔶️🔶️
https://youtube.com/watch?v=avUGplq94Fs&si=x2BL0fCrzW_t8Z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