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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을 위한 7단계(2-2)
제 4단계 : 믿는 것을 배워라
우리들이 어떤 믿음을 갖는 것에는 2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마의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는 이성적인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적인 믿음을 갖기 보다는 이성적인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이성적인 믿음은 즉 도마의 믿음은 어떤 것이고, 신앙적인 믿음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도마의 믿음은 요한복음 20장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20:25, 개정)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감각적으로 인식이 되면 믿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성적인 믿음이고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믿음 즉 신앙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롬 4:18, 개정)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9, 개정)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자연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실제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보고 그의 아내가 그에게 아들을 낳아주기 여러 해 전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성의 감각 즉 합리적인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더 우위에 두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머리로 이해가 되고, 응답을 받는 그런 감각적인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받은 것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는 거듭나고 성령 충만하고 헌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도마의 믿음에 얽매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면 우리의 오감을 초월하여 살고자 하는 의식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말하자면 여섯 번째 감각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 혹은 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여러 교회들과 협력을 하여 치유집회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집회를 열 때 여러 교회들이 협력을 하였는데 아무개 여자목사님도 이 집회를 위해 협력을 하고 본인도 치유받기를 원하여 치유기도가 있을 때마다 나가서 줄을 섰는데 치유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뽑히기도 했던 그 목사님은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그녀는 교회를 세워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아주 성결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탁월한 복음의 사역자였습니다.
어느 날 밤 예배에서 해긴 목사님이 설교를 마친 후 사람들이 치유를 받고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 줄을 섰습니다. 그 여자 목사님도 치유의 줄에 서서 해긴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해긴 목사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치유를 받으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자기에게 어떤 이상이 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해긴목사님이 그녀에게 안수를 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마자 그 여자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얻지 못했어요. 나는 얻지 못했어요.”
그러자 해긴 목사님이 “내가 다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그 여자 목사님에게 안수를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몸을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아직도 여기 오른쪽이 아파요. 나는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해긴 목사님이 “다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해긴 목사님이 기도를 마치며 “아멘”이라고 말할 때까지 그녀는 벌써 자기 몸을 여기저기 느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아직도 여기 오른쪽이 아픈데요. 아니에요, 나는 얻지 못했어요.”
해긴 목사님이 치유 기도를 마친 다음 다시 그 여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이리로 다시 나오세요.”
그 여자 목사님이 다시 나와서 해긴 목사님 앞에 섰습니다.
“당신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언제부터 믿기 시작하려고 합니까?”
“내가 치유됐을 때지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왜 그걸 믿고 싶어하세요? 가만히 있어도 알게 될 것인데!”
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 들어보세요. 나는 나의 몸의 감각이 내가 얻었다고 말해주지 않는 것을 내가 얻었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여자 목사님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지요? 몸의 감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여자 목사님은 마음으로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긴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며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목사님은 들어가 앉으시고 그냥 그 상태로 지내세요. 목사님은 결코 얻지 못할테니까요.”
(케네스 해긴 『네 입에 건강이 있다』 오태용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05. pp. 277-279.)
우리는 믿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감각지식을 따르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믿음으로 굳게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 5단계 : 예배하기를 배워라
영적 성장의 5번째 단계는 예배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우물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 개정)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개정)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에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당 건물에 나오지 않으면 예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 언약 하에서 하나님은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하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제는 우리 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형식적인 방법이 아닌 영으로 예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방언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초자연적 수단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고전 14:2, 개정)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하늘 아버지와 놀라운 교통 수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우리들의 말로 예배할 때도 있지만, 그뿐 아니라 또한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방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도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말로 온갖 형용사를 다 동원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를 말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말로는 충분치가 못합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언어로 하나님과 교제하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마음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부흥의 주역 중에 멜 테리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의 책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설교를 끝마쳤을 때였다. 기쁨과 평강의 찬송이 하늘로부터 나의 가슴 속으로 흘러넘쳤다. 나는 손을 들고 주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나는 설교할 때 인도네시아 표준어를 사용한다. 나의 영을 넘쳐흐르는 놀라운 기쁨과 평강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어로는 15분밖에 찬양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의 전능한 구원자를 찬양하기엔 일천 마디 방언으로도 부족하였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열망은 아직 더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원했다. 나는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도 더 경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어를 중단하고 티모르어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나의 티모르어 찬양도 10분 만에 끝났다.
“하나님”
“저는 계속해서 주를 경배하기 원합니다. 인도네시아어와 티모르어로 찬양했읍니다. 제가 영어를 몇 마디 압니다. 영어로 찬양하겠읍니다.”
그리고 계속 찬양했다.
“Praise the Lord, I love you...”
그리고 몇 마디 다른 단어들이 생각났다. 엉터리 영어 찬양도 몇 분 만에 끝이 났다.
나는 다시 주님께 기도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사랑을 고백할 다른 언어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찬양할 일천 마디 방언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 아주 세미한 소리가 들렸다.
"너 정말 방언을 받고 싶니?"
“예, 주님, 제 마음속에는 주님을 경배하고 싶은 끓어오르는 열망이 있읍니다. 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기쁘게하겠읍니까! 저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나에게 너의 혀를 맡겨라. 그리고 성령께서 너를 통해 말하도록 하여라"
나는 대답했다. “하나님, 지금 저에게 방언을 하라고 하십니까. 저는 원치 않습니다만 주의 뜻이라면 따르겠읍니다. 만일 그것이 예수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하겠읍니다.”
오-오, 나는 그날의 일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주님을 깊이 사랑했고 매우 황홀했었다. 성령께서 나의 혀를 주장하실 때 나의 의식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 성경은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 맺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나의 혀를 사용하여 나의 소중한 구속자이며 나의 소중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성령이 나를 점점 들어 올려 놀랍고, 은밀하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 말하게 하심도 느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심을 발견했다.
(멜 테리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정운교 역. 광명: 임마누엘 출판사, 1986. pp. 133-134.)
멜 테리의 간증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방언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단순히 기도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멜 테리의 간증을 통하여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더 많은 시간에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 10:44, 개정)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45, 개정)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행 10:46, 개정)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할 때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고 방언을 말했는데 이들이 또한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 즉 찬양하고 경배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우리말로도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방언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단계 : 드리기를 배워라
영적 성장의 여섯 번째 단계는 드림의 비밀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집에서 성경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고린도 후서 9장 10절 말씀입니다.
(고후 9:10, 개정)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아마도 그때까지 몇 십번을 이 말씀을 읽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라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먹을 양식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씨앗도 주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확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씨를 하나님께 즐겨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이 이런 씨앗을 드려야 할까요? 우리들이 드리는 씨앗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는 종자돈(seed money)이 되기 때문입니다.
찰스 캡스 목사님이 쓰신 『하늘의 권능을 가져오는 중보기도의 영적 비밀』이란 책에 이런 종자 씨와 관련된 글이 실려있습니다.
몇 년 전 어떤 분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심각한 재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줄 몰랐다. 전혀 그분의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영으로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이 내 영 안에서 감동으로 주시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심어야 할 종자(seed)를 먹어버렸구나. 그가 그렇게 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 이유는 그가 인색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무것도 내어준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가 거둘 것이 없는 것은 그가 뿌리지도 않고 심지도 않았기 때문이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나의 영 안에서부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는 그 사람에게 백 달러를 주고 그 돈은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라고 말하거라. 그 백 달러는 그 사람이 반드시 심어야 할 종자돈(seed money)이라고 말해주어라!”
나는 그에게 백 달러를 쥐어 주면서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 돈을 사용하라고 말했는데, 그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그 돈을 오십 달러씩 두 분의 사역자들에게 헌금하라는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돈을 나를 위해 다 써버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베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세 달 후에 나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감동하신 대로 오십 달러씩 두 분의 사역자를 위해 헌금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그의 아내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는 봉급이 인상 되어서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찰스 캡스 『하늘의 권능을 가져오는 중보기도의 영적 비밀』 최기운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07. pp. 159-160.)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의무감으로 드려도 안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드려도 안되고,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되돌려 주실 것을 기대하고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을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7단계 : 전도하기를 배워라
영적 성장의 일곱 번째 단계는 주님을 증거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위로부터 능력을 입어야 할 목적 중 하나였습니다.
(행 1:8, 개정)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탁월한 설교가이면 전도자인 디엘 무디는 원래 아무런 능력도 생명도 없고 영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목사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때의 일을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토레이(R. A. Torrey)가 무디의 성령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여 그는 급하게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 자기가 혼자 쓸 방이 있냐고 물었다. 무디는 그 방에 여러 시간 동안 혼자 머물렀고 성령님은 그에게 임하셨다. 그의 영혼은 너무나 큰 기쁨으로 충만하여 그가 하나님께 주님의 손을 거두어달라고 간청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 기쁨 때문에 죽을까 두려웠다.”
(로버트 모리스 『말의 능력』 오태용·김광석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6. pp. 168-169.)
그 날 이후로 무디는 하나님의 능력이 북런던에서 그에게 강력하게 나타나심으로 수백 명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복음 전파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들 목회자들의 사역이 성령의 세례와 관련이 있었다면 일반 성도들의 삶에서 또한 성령의 도우심은 필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배우기 위하여 무엇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찰스 피니 또한 성령 체험을 한 이후 놀라운 전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성령체험에 대하여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화로 옆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을 때, 나는 강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나는 이것을 전혀 기대하여 일도 없었고 또한 아무에게서도 일찍이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들어본 기억도 없었다. 성령은 나에게 부어져, 내 육체와 내 심령 전체를 휩쓸었다.
그것은 마치 내 몸 전체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파도가 내 몸과 마음에 휘돌아 넘는 듯했다. 나는 이 밖에 다른 어떤 말로서도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숨결인 것 같았다.
내 심령에 부어진 그 놀라운 사랑을 말로써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기쁨과 사랑에 넘쳐 울었다.
파도 같은 그 무엇이 내 전신을 휘돌고 또 휘돌아 그칠 줄 몰랐다. 드디어 나는 소리쳤다.
“나는 죽겠습니다. 이 파도가 만일에 그치질 않는다면 나는 죽겠습니다! 주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라고 나는 부르짖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성령의 세례가 나에게 계속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 벌써 저녁이 되어서 찬양 대원 한 사람이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그 당시에 나는 찬양대의 지휘자였다). 그 찬양 대원은 내가 소리 높여 우는 모양을 보고 “피니 선생님, 어디 몸이 아프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동안 그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니요, 아픈 것이 아닙니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그렇습니다 .…” 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벌써 떠올라 내 침실에 밝게 비치고 있었다. 아, 그때의 그 햇빛의 아름다운 인상은 무어라고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다.
곧바로 내가 어젯밤 받았던 그 성령의 세례는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내게 임하였다. 나는 일어나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쁨에 넘쳐 다시 큰 소리로 울었다. 얼마 동안을 성령의 세례에 압도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영혼을 쏟아놓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찰스 피니가 이같은 은혜의 체험을 한 후에는, 사도 시대 이후로 처음 보는 놀라운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1857년과 58년 두 해에 걸쳐 10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되었다. 피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또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거룩한 신앙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까지 줄 수 있었다. 실제로 조사해 본 결과, 그에게서 전도를 받고 회개한 사람중 85퍼센트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다.】
(홍성건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 도서출판 예수전도단, 2000. pp.179 –180.)
이처럼 성령의 충만은 전도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눅 24:49, 개정)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들 또한 전도를 잘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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