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치유의 서사 <구운몽>
이강옥(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구운몽>은 우리나라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잘못 읽혀지고 있다. <구운몽>은 ‘인생무상’이나 ‘인생 일장춘몽’을 주장하는 절망의 서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운몽>은 절망의 서사가 아니라 도도한 희망의 서사다. 왜 그런가?
<구운몽>의 가장 독특한 설정은 성진이 양소유와 같은 사대부의 삶을 간절히 생각하였기에 양소유의 일생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의 적극적인 생각을 이룬다. 양소유는 출장입상하여 아름다운 여인과 인연을 맺고자 간절히 생각하여 마침내 다 이룬다. 진채봉은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는 평소 생각에 충실하여 양소유를 선택했고 결국 그 뜻을 이루었다. 계섬월은 사창가에 팔려간 신세가 되어도 덕 높은 군자를 만나 떳떳하게 푸른 하늘을 볼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고아가 된 적경홍은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고르기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되었고 마침내 양소유를 택했다. 심요연, 백능파 등도 다들 자기 앞날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고 양소유와 만남으로써 그 생각을 이루어낸 것이다. 즉, <구운몽>에서 긍정적 생각의 힘과 형성력을 확인한다.
그러나 <구운몽>은 요즘 유행하는 ‘긍정적 생각하기’처럼 무턱대고 긍정적 생각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집착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든 생각은 ‘망념(妄念)’이기에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구운몽>은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룬 말년의 양소유가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욕망과 행복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한다. 세속적 욕망을 다 이룬 양소유는 일종의 ‘노인성 우울증’을 앓는 것이 큰 충격을 준다.
이 지점에서 ‘현실은 꿈이다’라는 가르침을 되씹게 된다. <구운몽>은 매 순간 우리가 당연히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꿈이나 가상, 속임수의 세계와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한다. 양소유는 자주 꿈을 꾸고, 가상을 경험하고, 속임수에 넘어간다. 양소유의 꿈과 현실은 겹쳐지고 이어진다. 꿈 속 사건이 현실에 나타나고, 현실의 생각이 꿈 속 사건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구운몽>의 이런 설정은,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속임수에 의한 가상과 속임수에서 벗어난 ‘현실’이 교차된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하는 양소유가 자신의 현실적 실재를 믿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양소유는 엄연히 성진의 생각 속 존재인데 말이다.
이런 <구운몽>의 구도를 충실히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꿈 수행 혹은 몽관(夢觀)으로 나아간다. 현실을 꿈으로 보는 수행이다. ‘인생 일장춘몽’은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드러내는 허무주의의 혐의가 짙다면, 꿈 수행은 현실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근간으로 하기에 현실의 삶을 오히려 더 뜻있게 영위하도록 한다. 현실이 꿈․환상․가상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은, 현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덜어줄 것이고, 꿈․환상․가상처럼 덧없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다.
‘꿈[夢]’과 ‘인간세상[人世]’을 구분하지 말라는 육관대사의 마지막 가르침도 꿈 수행과 연결된다. 육관대사의 가르침은 분별심을 내어 꿈의 세상과 현실 세상을 구분하는 성진에 대한 꾸중이었다.
<구운몽>은 꿈, 가상, 환몽, 티끌세상 속에 위대한 가치와 진여본성이 깃들어있는 것을 보인다. 집착을 버리고 깨어 있는 입장에서 보면 꿈이고 환상일 따름인 이 더러운 세상에 최고의 가치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육관대사가 돌아온 성진을 꾸중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환몽 속에서 불생불멸의 본체를 볼 수 있다면, 가상적 존재인 양소유의 꿈결 같은 일생도 무진장한 가치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양소유는 남성 영웅이지만 외모나 정서에서 여성적 성향이 다분하다. 난양공주와 백능파는 성적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다. 검객 심요연은 가냘픈 몸매에서 일기필살의 남성적 힘을 뿜는다. 이처럼 양소유 세계에서는 남녀의 성징이 역전되거나 차이가 최소화되어 있다. 당대 사회가 철저히 남성 중심적 가부장 사회였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구운몽>의 이같은 현상은 가히 혁명적 배치라 할만하다. <구운몽>은 이미 고정되어있던 남녀 형상과 남녀 관계를 해체함으로써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의 현실을 훌쩍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 신분 면을 따질 때도 그러하다. 여덟 여인, 태후, 천자, 왕, 그리고 양소유와 그 어머니는 명백한 차별적 인간 군상들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이 구성해내는 현실 삶은 너무나 조화롭다. 천민으로부터 태후에 이르기까지 서로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 인간들의 차별성도 실제가 아니며 그 관계가 평등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마침내 여덟 여성들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서 관음보살 앞에서 형제의 의를 맺음으로써 신분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옳고 그름의 상대적 분별을 넘어선 정당함, 높고 낮음의 상대적 분별을 넘어선 절대적 높음, 남성성과 여성성의 상대적 분별을 최소화한 남성성과 여성성. 너와 나의 분별을 넘어선 형제애 혹은 동성애. 이런 특별한 요소들이 양소유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것은 위대한 평등 세계다. 망념의 소산인 양소유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이런 조화로운 인간관계야말로 우리의 세속에 대해 희망을 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의 양소유는 자기가 구축한 이상적 현실에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최고의 이상적 수준으로 충족되지만 그것조차 초월하고자 한 것이다. 말년의 양소유는 밤마다 참선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마침내 온갖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출가를 결심하며 이별을 고한다. 이 광경이야말로 환몽 속에 깨달음의 씨가 남아있다는 진실의 오묘한 표징이다.
이런 <구운몽>을 잘 읽으면 더럽고 초라한 우리네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처절하게 절망하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사실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했다는 창작동기부터 우울증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성진과 양소유도 우울증을 구체적으로 보인다. 성진은 양소유로 태어남으로써 우울증을 잠정적으로 극복하고, 양소유는 성진으로 돌아오면서 우울증을 부분적으로 해소한다. 육관대사의 금강경 설법에서 비롯한 성진의 수행으로써 우울증은 완전 해소되었다.
우울증은 부정적 생각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환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참 중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이 강력한 영향력과 형성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운몽>은 우울증 환자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생각에 집착하지 않도록 더 나아간 가르침을 준다. 아상을 내려두고 온갖 망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제시한다.
<구운몽>은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필요한 자극과 계기, 논리를 제공한다. <구운몽> 읽기를 통하여 이룩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는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을 이겨내게 하며,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한 일상을 꾸려가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운몽>은 절망의 서사가 아니라 희망의 서사다. <구운몽>을 희망의 서사로 다시한번 더 읽기를 권한다.
(현대엔지니어링 매거진 [사람과 공간],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