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선조 임진왜란으로 전국이 들끓자 선조는 명(明)
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때 거대한 구원병을 이끌고 독진장군(督進將軍)으로 온사람이
시등과(柴登科) 인데 시씨(柴氏)의 1세조다.
기미보(己未譜)애 의하면 본래 중국 절강성 소흥부 여요현(浙江省 紹興府 餘姚縣)에 살았는데 시조 시소(柴紹)는 임분현(臨分縣) 출신으로 당나라의 개국 공신으로 초양후(醮襄候)에 봉해졌고 그의 12세손 시영(柴榮)은 주(周)(후주後周인듯)태조(太祖)의 형인 시수례(柴守禮)의 아들인데, 뒤에 세종황제(世宗皇帝)가 되었다 한다.
그 뒤에는 기록이 전해져오지 않다가 송(宋),원(元)을 거쳐 명(明)나라에 와서 나타난 사람이 시등과(柴登科) 이다.
그의 아들 시식(柴植)은 명(明)의 국력이 쇠퇴하여 청(淸)나라에 멸망당하자 바다를 건너와 태인(泰仁)에서 살았는데, 이로 인해 후손들은 태인(泰仁)을 관향(貫鄕)으로 하게 되었다.
시씨(柴氏)는 본래 중국 고대 고신씨(高辛氏)의 후예인데,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고, 시씨(柴氏)로써 최초의 인물은 고려 현종조의 흥화진두 시신운(興化鎭頭 柴臣雲)이다.
시씨(柴氏)는 능향(綾鄕),태인(泰仁), 금화(金化)의 3본이 있으나, 능향(綾鄕)이 태인(泰仁)의 지방이름인 것을 보면 태인(泰仁)의 분파로써 짐작된다.
다시 말해서 능향(綾鄕)을 본관으로 삼는 파에서 시조를 중국 후한(後漢)때의 장군인 시무(柴武)로 삼고 있다하나 사실은 밝힐수 없다. 다만 거의 전북 정읍(井邑) 태인(泰仁)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는 것만은 실증할수 있다.
@파명록
참의공파-장(長)파, 중(仲)파, 계(季)파
문장공파
@중시조: 시무(柴茂)
전북 정읍군 옹동면 칠석리 외칠부락
시준무(柴峻茂)
전북 정읍군 옹동면 용호리 송월부락
@비 석: 시조 시등과 전승비(始祖 柴登科 戰勝碑)
@종문 행례-족보 간행-갑인보(1914) 계사보(1953)
계축보(1973) 정해보(2007)
@시 제: 음3월 16일 - 9조이하 11조까지
음9월 16일 - 중시조
*그 외에 각파별로 시제가 있음
@행렬표-
14-재在() 15-()석錫 16-태泰() 17-()근根 18-현炫() 19-()곤坤 20-종鐘() 21-()수洙 22-환桓() 23-()열烈 24-만萬() 25-()구九 26-병炳() 27-()녕寧 28-성成() 29-()기起 30-강康() 31-()재宰
이상은 1998년도에 출간된 중앙일보사의 "성씨의 고향"이란 책에서 발쵀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