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사랑이 어떻게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영역에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증언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담도 아니고, 흔한 비극의 재현도 아닙니다. 그것은 연인의 돌연한 죽음을 마주한 한 존재가 절망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기록하는 동시에, 사랑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인간의 근본을 되묻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담은 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의 몸을 먹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살결을 조금씩 삼키며, 매끈한 팔과 다리, 눈썹과 발톱을 자신의 몸속에 흡수합니다. 그 행위는 단순한 광기나 야만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지속시키려는 몸부림입니다. 구를 먹는다는 것은 곧 그의 시간을 삼키는 것이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흡수하여 미래에까지 데려가려는 필사적인 몸짓입니다.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를 결코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애도의 방식으로서 식인을 택합니다. 끔찍할 만큼 처절하고, 처절할 만큼 숭고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인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담과 구는 서로를 맴돌다 결국 맞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원의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점과 점처럼, 그들은 우연과 엇갈림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흔한 로맨스가 아니라, 운명적 필연이자 숙명적 결속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언제나 가장 충만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고, 이 소설은 바로 그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담이 구의 시신 옆에 앉아 속삭이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랑을 잃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공허와 고독의 심연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미치광이인가, 범죄자인가, 아니면 단지 사랑을 증명하는 또 다른 인간일 뿐인가. 그 물음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되묻게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애도란 무엇인가. 남겨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의 증명》은 독자에게 섬뜩한 불편과 동시에 숭고한 경외를 안깁니다. 역설적으로, 가장 야만적인 행위 속에서 가장 순결한 사랑의 증언이 울려 퍼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을 끊어내지만, 사랑은 죽음을 뚫고 계속 살아남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한 문장을 속으로 되뇌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먼저 떠난다면, 저는 당신을 제 안에 간직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 없이도 죽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은 이렇게도 미친 듯이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미친 듯이 잔혹합니다. 이 지독한 사랑의 서사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상실 앞에서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를 묻는, 차갑고도 뜨거운 예술적 제의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이성과 광기의 경계에서 흔들립니다.
그 경계 위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맑고, 동시에 누구보다 어둡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광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광기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애도는 눈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애도는 기억을 붙드는 일, 망각을 끝내 거부하는 일입니다.
구를 먹는 담의 행위는 참혹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함 속에서 가장 순결한 충성의 빛이 드러납니다.
죽음은 육체를 멈추게 하지만, 사랑은 시간을 멈추지 않습니다.
죽음은 문을 닫지만, 사랑은 그 벽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불편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불편함이야말로 숭고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구와 담은 특별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곧 우리의 사랑이고, 그들의 비극은 우리의 그림자입니다.
사랑은 흔한 것이며, 비극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사랑을 잃을 수 있습니다.
상실은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준비한다고 하여 준비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겨진 자는 언제나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이가 먼저 떠난다면, 나는 그를 온전히 내 안에 간직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가 사라져도 내 안에서 다시 살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묻습니다.
나는 과연 사랑을 끝까지 증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과연 상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은 미치도록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때로는 잔혹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결국, 광기라는 또 다른 이름의 증명일지도 모릅니다.
첫댓글 오오 재밌을 거 같아요!
북클럽하는데 다음 책으로 추천해야겠네요 ^^
생각보다 괴이한 주제이지만 저도 제 독서모임에서 인기가 많았던 책이었네요 ㅎ
그로테스크하네요.
엄청 그로테스크 합니다 ㄷㄷ 근데 그만큼 느끼는 바도 컸던 것 같아요
@버거킹매니아 사랑의 대상의 존재 대신 극단적인 소유를 택한자에 대한 내용같습니다.
@hooper 저 스포 싫어해서 첫문단만 봤거든요
후퍼님 댓글 보고 다시 보니 식겁했어요 ㄷㄷㄷㄷ
이런 내용이라니 당황스럽네요 으허허
최진영 작가 좋아하는데, 그 시절 최진영 작가의 한 정점에 있는 소설이죠. ㅎㅎ
작품 읽으면 그 지독한 사랑보다 더 절망적인 구의 현실이 나오죠. 담은 담대로 담담하기 어려운 삶도.
모든 작가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그 이야기 위에 어떤 당정을 입힐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이야기는 그 즈음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사랑이라는 당정을 씌워 보여주는 아주 슬픈 현실 묘사로 읽었습니다.
담이 뱉는 그 저주의 말들이란, 이 ㅈ같은 현실을 보라는 작가의 외침이자 절규로 보였으니까요.
저는 그 시절 즈음의 청춘에 대한 스케치 중 제일은 김애란의 '서른'이 아닐까 합니다.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란 문장은 담이 구의 신체 하나 하나를 먹는 것보다 더 끔찍한
현재와 그것이 재생산 되는 미래에 대한 완벽한 서술이니까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분명히. 인간이라면 계속 그럴 수는 없으니.
하지만 확실한 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 그거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참 슬퍼집니다.
많은 게 달라지는 걸 바라지는 않았을 테지만 뭣 하나, 아니 오히려 뭐 하나라도 더 나빠지기만 한 거 같은
세상을 보며 작가님은 무슨 생각이 들지... ;;;
공감이 많이 되네요👍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에서 사랑은 도피나 위안이 아니라 그 지독한 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고, 청춘은 그 속에서 얼마나 연약하고 단단하게 버텨내는가를 기록하는 장치로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그 기록의 무게가 지금 읽는 우리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구요.
한강 작가님이 곡선이라면 최진영 작가님은 직선으로 확 독자의 마음을 사라잡는 것 같아요.. 느낌은 다르지만 조심스럽게 포스트 한강은 이 작가님이 아니실지 ㅎㅎ
오우, 요즘 젊은이들에게 압도적인 인기가 있더라구요. 학교에 초청했는데 사인줄이 100명이 훌쩍.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평을 읽어보니 이해도 되고 생각지 못한 부분을 느끼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