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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충주시배드민턴의 역사.
생활체육충주시배드민턴은 1966년 에 창립하여 오늘에 이루기까지 유구한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당시 임병구(전,북여중교장)초대회장을 위시한 충주의 지역인사들은 귀족스포츠로 알려진 배드민턴에 매력을 늦겨 배드민턴이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충주에 클럽을 창립코저 마음먹고 당시 사범부속국민학교 강당을 빌려 운동을 시작 한 것이 충주는 물론 충남북,대전지역에선 생활체육배드민턴의 시작이 된 원조이다.
사범부속국민학교에서 약 1년간 운동을 하였으나 강당이 비접아 1개의 네트를 설치할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지속할수 없음을 인식해 동호인들은 충주여중체육관을 사용코저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학교장이 화재및 안전사고를 이유삼아 뜻을 이르지 못했다.
창립멘버 동호인 들은 뜻을 이르기 위해 충북교육청 (전)육진성 교육감에 진정서를 내는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찾아 도움을 끈질기게 요청한바 드디어 1968년 7월에 충주배드민턴은 OB클럽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이 충주배드민터클럽의 탄생인데 이는 충주는 물론 충청권에선 가장먼저 생체배드민턴이 자리잡게된 시초이며 전국에서도 그 순위에 둘만큼 역사적으로나 전통에 있어 선두주자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충주에는 각학교에 배드민턴 육성학교가 지정되고 전문적인 선수육성에 임하게 되었으니 충주에는 삼원초등학교, 성남초등학교, 충일중학교, 충주여자중학교, 충주여고, 충주농고에서 배드민턴 후예들을 길러내게 되며 뒤이어 충주공고의 설립으로 공고가 배드민턴 육성학교로 지정된다.
이러듯 충주는 배드민턴의 원조이자 공로자 로서 충주지역에서 육성된 배드민턴선수들은 각처 에서 국가대표로서 화려한 공과 업적을 쌓게 된다.
충주출신의 국가대표선수와 감독,코지등은 많은 인적자원을 배치하였음은 물론 나라를 빛낸 큰 선수들이 배출 되었으니 그 유명인사를 간추려보면 바로셀루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황혜영선수 가 충주여중출신이며 단식에서 세계를 제패한 이광진선수(공고) 등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활약하게 되었다.
국가대표 코치 감독을 역임한 성한국(공고). 청소년대표선수와 직장팀에서 활약하고있는 한동성(공고)선수도 충주의 자랑이며 이밖에도 전국 각지역과 각팀에서 선수 혹은 코치 감독으로 폭넓게 활략하고 있다.
또한 생활체육충주배드민턴은 충북내 모든 대회를 횝쓸며 명성을 높혔으며 충북도민체육대회에서 승승장구 연패를 하는등 충주배드민턴의 명성을 이어왔다.
충주배드민턴 1966년~1993년 까지 충주클럽 단일클럽으로서 충주배드민턴협회의 의무와 권리를 실행하여 왔었고 충주여중에서 그명맥을 이어 오던중 1993년 청년부가 분산하여 공고체육관에서 "계명클럽" 이란 명칭으로 클럽을 찰설하게되니 이가 계명클럽의 시초이며 다 클럽 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충주배드민턴은 1966년 창설한뒤 1997년까지 충주클럽에서 단일체제로 전권을 맡아오다가1997년 충주시에서 협회를 별도로 개설하여 충주배드민턴협회라 명하고 협회장을 충주시가 직접 지명하여 충주배드민턴 활동을 하였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의 충주시배드민턴연합회는 동호인들이 2003년 새로히 창립하여 연합회초대회장에 연규찬 (당시 충주클럽회장) 을 선임 함으로서 오늘에 이르었으며 현재 충주시배드민턴연합회는 초대회장(연규찬)2,3,4대(김학성)5대(이준영)에 이어 현재 6대회장으로 (채희천)회장이 취임하였다. 2018년 충주시 배드민턴협회가 발족, 초대회장에 채희천이 선임됨으로 연합회는 충주시 배드민턴협회로 명칭과 기능이 변경됐고 2019년 제2대협회장에 송주섭이 추대되어 활발히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32개클럽에 1,500동호인들이 즐턴하고 있다. 작성자 : 충주클럽제17대 회장 김 광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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