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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19) / “내니 두려워 말라!”
☞ 말 씀 : 요한복음 6장 16절 - 21절 (신약성경 p.152)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아멘!
+ 서로 사랑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행복하세요.
인생을 살다보면 "아주 안 좋은 상황" 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안 좋은 상황' 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모든 조건들이 좋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위기’ 라고 하는데,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위기를 수없이 많이 겪게 됩니다.
+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가 487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를 작시한 죠셉 스크리븐의 이야기입니다.
죠셉 스크리븐은 1820년 아일랜드의 ‘듀브린’ 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트리니티 대학’ 을 졸업한 후, 미래의 성공만을 꿈꾸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일랜드 처녀와
희망에 부풀어 약혼을 합니다.
그러나 결혼 전야에 그만 그의 약혼녀가 물에 빠져 죽는 불행한 일을 겪게 됩니다.
그는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신체허약으로 훈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25살 되던 해에 모든 것을 잊기 위해, 고향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두 번째로 약혼을 했지만, 그 약혼녀도 결혼하기 전 잠시 앓다가는 죽고 맙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사랑으로 자기 곁을 지켜주던 어머니마저도 몸져 앓아 눕고 맙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안 좋은 상황, 곧 계속되는 위기 속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인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문제와 해답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 있습니다.
+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 16절 - 21절 봉독 /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아멘!
함께 봉독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난 위기는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난 일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공기가 식고, 찬 공기가 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면서 종종 돌풍으로 변해 바다에 큰 풍랑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이 갈릴리 바다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의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다가 큰바람과 파도를 만납니다.
이렇게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은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에도 기록되었는데,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큰 위기에 빠뜨린 큰바람은 거슬리는 바람이었습니다.(마 14:24)
이 큰바람은 하루 중 가장 어두운 한밤중에 불어닥친 맞바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큰바람은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를 떠나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바람이었습니다.
19절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 쯤 가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큰바람이 불어 파도치는
바다를 노를 저어 십리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도 육지가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엔, 바로 그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 출신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노를 잘 젓고, 갈릴리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십리나 노를 저어 나아갔으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경험과 지식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절망은 제자들이 바다를 건널 때면 항상 함께 동승하셨던 예수님께서 거센 풍랑을 만난
그날 밤에는 함께 타시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였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까지 질렀습니다.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였습니까? 그들이 영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두려움을 신앙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신앙의 두려움, 곧 영적인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염려 때문에 두려워서 기도하고, 성경보고,
회개하고, 바로 살려고 하는 염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염려합니다. 사업에 실패하면 어쩌나, 병에 걸리면 어쩌나,
우리 가정에 불행이 닥치면 어쩌나, 전쟁이 났다는데 어쩌나, 매사가 염려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에,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의 해결보다는 두려움과 염려에서 해방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도 두려움이 있다면, 염려가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것 또한 축복이 아니라 가시방석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는 말씀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과 염려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니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인도 우화에 보면,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쥐가 고양이가 된 다음에도 개만 보면 무서워하니까, 이번에는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더니 이제 포수를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그냥 "너는 다시 쥐가 되어라!
무엇을 만들어 주어도 쥐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어쩔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신의학자들은 인간의 두려움을 200여 가지로 나눕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뚱뚱해질 두려움,
해산에 대한 두려움, 결혼에 대한 두려움, 벌레에 대한 두려움 등,
정말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두려움에서 해방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고, 어둠의 영들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 영적인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선발하실 때도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돌아가라 하시니" - 돌아간 사람들이 이만 이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의학자들 역시 두려움과 염려는 만병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두려움과 염려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다음에,
반드시 무슨 말씀이 가장 많이 나옵니까? "내가 너와 함이니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입니다.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내니 두려워 말라." 파도를 정복한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파도를 밟으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풍랑은 대작하고, 갈 길은 멀어 끝이 보이지 않으며, 밤은 어둡고, 힘을 다해 지칠 대로 지쳤고,
도움의 손길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아주 절박한 상황에 있는 제자들을,
우리 예수님은 절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고난의 한 가운데에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으십시오.
상황이 급하시면 물위를 걸어서라도 우리의 고난의 자리로 오시는 분이 주님이시오,
고비를 넘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라면 창일하는 홍해라도 갈라 길을 내셔서 마른땅을
걷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신 분이시니, 아주 안 좋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주님을 향한 자세가 바르다면 그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위기에 있을 때마다 주님은 우리 곁에 도움의 손길로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님을 바로 보는 바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 그러면 어떤 자세가 주님을 바로 보는 바른 자세입니까?
먼저 영안을 똑바로 뜨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 고난으로 어두울수록 육신의 눈으로 내 인생의 앞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확인하거나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큰바람에 거센 파도가 치는 가장 어두운 한 밤 중에 육신의 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를 저어 애쓰며 십여리를 갔으나,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캄캄한 고난의 밤을 맞이했을 때,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볼 수 있는 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애를 써도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제까지 쌓아온
삶의 공든 탑들을 무너뜨리는 큰바람으로 인한 파도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육신의 눈으로 풍랑이는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두려움과 염려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분별력을 잃게 되고,
나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마저도 유령으로 보는 혼돈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육신의 눈을 감고 영안을 뜨십시오.
그리고 내 인생의 위기 가운데 나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위기 가운데 나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영의 귀가 열리게 됩니다.
사납게 다가오는 바람도 보지 말고, 코앞에 닥친 풍랑도 무시하고, 믿음의 귀를 열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내니 두려워 말라.”(20절)
바로 우리를 구하실 모든 능력으로 가까이 와 계신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난 뒤, 제자들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도 두려움의 지배를 받던
제자들이 주님의 음성에 기쁨을 찾은 것입니다.(21절)
두렵고, 걱정되고, 막막하고, 마음이 어둡습니까? 갈 길이 멀어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혼란스러우십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귀를 열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 인생의 위기 가운데 나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영의 귀가 열리게 되고, 그 음성을 듣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0절, 2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아멘!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 기쁨은 믿음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현재로선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밤이 지나 새벽이 온 것도 아니요, 풍랑이 수그러져 잔잔해 진 것도 아직은 아닙니다.
가버나움이 눈앞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로선 다만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한마디를 듣고 난 후,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은 기쁨으로 영접하는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내 안에 영접한 주님을 모시고 삽시다.
프렌시스는 어느 날, 한 시골 여인이 물을 길을 때마다,
가득한 물통에 나무 조각 하나를 띄워 짊어지고
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여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무 조각을 물통 속에 띄우면, 물이 흘러넘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며, 항상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 어떤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코 침몰되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기쁨으로 영접한 결과에 대해 오늘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1절)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풍랑과 싸운 긴 시간의 싸움은 끝이 나고,
목적했던 곳에 너무 쉽게 도착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이전엔 그렇게도 어렵게 오랜 기간을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마자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영접하자마자,
너무 쉽고도 빠르게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씩이나 약혼의 단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꿈마저 좌절된 데다,
어머니마저 병마에 시달리게 된 스크리븐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평생을 이웃을 위하여 살라." 는 말씀입니다.
그 후로 스크리븐은 평생을 주님만을 알고, 이웃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고독했고, 몸도 허약했으며, 가진 것도 많지 않았지만,
그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불구자와 고아와 과부 같은
불우한 사람들을 열심으로 돕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런 신앙의 고백을 시로 지어 투병하는 어머니에게 드린 고백의 찬송이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라는 찬송입니다.
+ 찬송 369장 / 1.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주께 기도 드리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받겠네. 아멘!“
스크리븐이 66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마을 사람들은 평생을 남을 도우며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다간 스크리븐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새겨진 기념 비석에 비할 수 없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찬양을 통하여
고백되는 그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은 스크리븐의 삶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톱 레이디 목사님도 이런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을 찬송가 373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아멘!“
우리의 삶은 큰 물결이 일어나 힘겨워도 믿음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가는 삶인 줄을 믿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험한 풍파를 피할 수는 없으나, 우리 주님이 그 풍파 속으로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안을 똑바로 뜨고, 날 도우러 우리 삶 가운데 오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영의 귀를 열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우러 우리 삶 가운데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여 기쁨으로 모시고 삽시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큰 물결이 일어나 너무 힘겨워도, 그 큰 풍파 속에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잠시 침묵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풍랑은 과연 어떤 풍랑입니까?
그리고 그 큰 인생의 풍랑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여러분의 지식과 경험으로 해결하려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영안을 열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는 풍랑을 잔잔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제 여러분의 귀를 열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 침묵기도 후 / 이 시간 ‘나를 도우러 나의 삶 가운데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기쁨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하고 새롭게 결단하고 고백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
+ 축복기도 /
+ 기도 후 찬양 / “주만 바라볼지라! -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